제주도 5일장의 산타클로스 이명구 아저씨
제주도 5일장의 산타클로스 이명구 아저씨
  • 김우성
  • 승인 200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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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문화 널리 퍼지는 게 생애 마지막 바람"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건어물상을 하며 30년 넘도록 어려운 이웃들을 돌봐온 이명구(65)씨를 만나기 위해 제주공항에 도착,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이상을 더 내려가 모슬포 5일장에 도착했다. 장터에 들어선 시각은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 아침. 목덜미를 휘감아 들어오는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다. 이씨는 푸른 지평선 안쪽으로 바다의 싱싱함이 북적대는 그곳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지난 1974년 건축일을 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정착했다. 이씨가 처음 선행을 시작한 건 건축회사에 다니던 때 보육원 아이들을 후원하면서부터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건어물상을 꾸리며 스무 명이 넘는 이웃들을 후원해왔고, 매달 한 번씩 그들을 직접 만나 따뜻한 사랑을 나눠왔다.

이씨의 미담은 꼭 10년 전인 1999년 세밑에 MBC 예능프로그램 <칭찬합시다>를 통해 소개됐었다. 방송 이후 잠시 유명세를 치렀던 이씨는 지금 세인들의 기억 속에 완전히 잊혀졌지만, 여전히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참. 이렇게 찾아오면 안되는데... 우선 이리 오세요"


그는 기자일행을 시장터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더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먼저 빈 속을 채우라고 국밥을 시켜주고는 자신은 가게로 돌아갔다. 넉넉한 인심에 몸과 마음을 함께 데운 후 다시 가게로 찾아갔고, 손님이 끊이지 않은 탓에 그를 따라다니며 짬짬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기자가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왜 그토록 사양한 건가요.

조용히 해야 덕이 있는 거지, 떠들썩할 거면 할 필요가 없잖아요. 알려지지 않아서 오래도 할 수 있었고요. 예전 방송 오던 날도 도망갔었어요.(웃음) 장사 잘되려고 돈 주고 방송했다는 그런 말도 들리고... 오해를 많이 사게 되더라고요.


건어물상 한 지는 얼마나 된 거죠?

가만 있어보자... 작은(아들)놈 태어나던 8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28년째 하고 있네요. 건축일이라는 게 계절을 타서 일이 있을 때는 몸이 열 개라도 바쁘지만, 없을 때는 계속 없어요. 그러면 수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건어물상을 하게 됐죠. 원래는 나 회사 다닐 때 집사람이 먼저 조그맣게 시작했었어요.


둘째 아드님 태어난 해에 두 분이 함께 장사하려면 갓난아기 업고 고생 많았겠어요.

이제는 추억이지 뭐. 아이들 시장에서 놀다가 잃어버리기도 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찾고. 처음엔 다 그렇게 하는 거죠. 그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던 거 생각하면 참 서럽기도 했고, 나중에 내가 누구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또 안 그러네.(웃음) 정이지 정. 정과 사랑 없으면 못했을 거예요.



회사 다닐 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어 선행을 시작했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이었나요.

회사에 동아리가 있었는데 후원 구좌를 만들었어요. 한 구좌에 50원이었나? 5백원?... 당시 월급이 50만원쯤 됐으니까 아마 5백원이었을 거예요. 회사가 제주지역 보육원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동아리 직원들이 후원해주는 거였죠. 그런데 월급을 못 받을 때는 구좌에 입금을 할수가 없었어요. 장사 시작하고 나서야 계속 도와줄 수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한 구좌로 시작했던 게 늘고 늘어서 (아내를 보며) 한 20명 넘었지.


30년 간 선행을 지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야죠.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장사 5년 만에 우리 살 집 지었으니까 더 필요한 게 없었어요. 그거면 됐지. 내가 어렸을 때 없이 살아보니까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기도 했고요.


직접후원을 하다가 몇 해 전부터는 물품전달로 대체했다던데.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그 분들을 찾아뵈려고 했는데 장사가 바쁘면 못 갔어요. 내 자신과의 약속을 자꾸 어기게 되니까 꼭 죄짓는 것 같고... 나이 먹으니까 돌아다니기도 힘들더라고.(웃음) 게으른 거죠.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면 그분들이 더 실망하실까봐 3년 전부터는 시청에 물품으로 갖다 주고 있습니다.


물품이라면 어떤 거죠?

10kg 짜리 쌀포대 2백 개를 관공서에 보내요. 설날 때 1백 개, 추석 때 1백 개.


하루 용돈 2천, 3천원에 반찬도 세 가지만 놓고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네 식구 살아가기도 빠듯하지 않았나요.

'여유'라는 게, 어디까지 모은다는 건 한도 끝도 없어요.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나 먹고, 내 집에 살면 그 뿐이에요. 자식들 삶은 자식들이 개척하는 거고.


가족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응원 안 해주면 어떻게 이웃들을 도울 수 있었겠어요. 게으르지 말라고 가족들이 더 격려해줬어요.



평생 선행을 실천한 부모님 밑에서 두 아드님이 속 썩인 적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비뚤게 나갈 수가 없었지. 자식 자랑하는 거 아니라지만, 그것만큼은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두 놈 다 늘 반듯하게 자라줬어요. 똑같이 해병대 나오고.(웃음) 부모의 삶을 자연히 쫓아하게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자제분들에게도 나눔을 물려줄 생각인지요.

그럼요. 내가 얘기 안 해도 알아서 하겠지 싶어요. 보고 자란 게 그건데.


평소 집에서 강조하는 말은 뭔가요.

가훈이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안 이루어지는 게 없거든요.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안 된다고 탓할 수는 없어요. 또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면 남에게 악하게 하지 말라. 1등은 하지 말라. 쫓는 사람 너무 많고 피곤하니까.(웃음)


15년 전 한 쪽 시력을 잃었다고요?

벌써 20년 가까이 됐어요. 어느 날 눈다래끼가 심해지더니 병원 가보니까 각막염이라 하더군요. 그랬던 게 결국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처음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장사를 위해서 트럭을 몰아야하는데 후진을 하려해도 거리 감각이 없으니 불가능했지요. 그런데 또 살다보니까 살아지더라고.(웃음) 이젠 후진도 잘 하고 물건도 척척 싣고 해요.


사모님 고향이 제주도라죠?

우리는 양가 부모님 허락 없이 결혼했어요. 그걸 연애결혼이라고 하나. 하하. 난 육지사람이고 이 사람은 섬사람이었던 데다가 나이가 9살이나 차이 나니까 반대가 심하셨지.


두 분이 여행이라도 다닐 시간은 있으세요?

11월 단풍철 되면 한 번씩 가요. 실은 그것도 2년 전부터 처음 가기 시작한 거라 집사람에게 미안해요. 그전에는 앞만 보고 뛰었으니까요. 작년에는 내장산 다녀오고 이번에는 삼척 대금굴에 다녀왔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장 서는 날 일과가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5시면 집을 나서요. 6시 반쯤 장에 도착하면 짐 내리면서 바로 장사를 시작합니다. 저녁 8시에 장사 마치고 물건 정리해서 집에 들어오면 10시 넘어요.


장은 어디어디 다니나요.

여기 모슬포하고 서귀포장, 제주장 이렇게 3곳을 다녀요. 5일 중 3일 일하는 거죠.


5일 중 3일만 일한다고는 하나, 장이 서는 날 20시간 가까이 추위와 싸워가며 제때 끼니를 챙기지도 못한 채 손님을 맞이하는 노동강도는 일반 직장인과 비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3년 전까지는 쉬는 날을 온전히 할애해 후원 이웃들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물건 가지러는 어디로 가는지.

광주로도 가고 서울로도 갑니다.


큰 아드님이 서울에서 공부한다던데 물건 가지러 가서 종종 얼굴 보나요.

물건만 후딱 사서 와요. 가르치는 일 하고 싶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시간 뺏으면 되나요.


언제까지 선행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돈을 버는 한 계속 하려고요.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하겠어요. 주민등록 나이가 3년 늦었는데 원래 45년생입니다. 새벽에 나와서 밤늦게 가는 이 일을 5년 더 할 수 있으려나... 돈 벌 때나 도울 수 있는 거지 무리될 것 같으면 못해요. 내 능력이 안 되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제주에서도 계속 살 계획인가요?

제주도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여기 평생 살려고 집 지었잖아요. 돌아 다녀보면 제주도 만한 곳이 없어요. 서울에 있는 거 다 있지, 공기 맑지, 춥지 않지...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요?

나눔이 전파가 되어야 하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요즘 같은 연말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혼자 드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들면 괜찮을 텐데 말입니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이명구 허인자 부부에게 만큼은 이 말이 예외가 될 것 같다. 굶주린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목적 없는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30년 간 조금씩 조금씩 일구어낸 미담은 제주도 전역의 강풍을 녹이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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