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로 떠난 '국보작사가' 박건호
잊혀진 계절로 떠난 '국보작사가' 박건호
  • 석광인
  • 승인 200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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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가 꺼지는 순간까지’ 시를 쓰다 떠나버린 고인 / 석광인


[인터뷰365 석광인] “세상에 이런 일이….” 작사가 박건호씨가 기어코 떠나고 말았다.그의 부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신문으로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더욱 원통한 마음이 든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한 젊은 기자가 <‘아! 대한민국’의 작사가 박건호씨 타계>라고 쓴 제목의 기사를 보고선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국보 같은 존재였던 박건호씨의 대표작이 군사정권 시절 건전가요로 만든 ‘아! 대한민국’이라니 기가 막혔지만 곧 체념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히트하기도 했으니 그 노래를 대표작으로도 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가 쓴 3천개의 노래 전부를 그의 대표작으로 꼽아도 될 만큼 모든 곡들이 보석처럼 소중한 작품들이다.이젠 클래식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1972년의 데뷔작 ‘모닥불’을 비롯해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이용의 ‘잊혀진 계절’, 조용필의 ‘모나리자’, 나미의 ‘슬픈 인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등 그가 남긴 명곡들을 꼽으려면 끝이 없다.

박건호씨는 생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작사가로 불렸지만 작사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작사가로 데뷔하기 전인 1969년 ‘영혼의 디딤돌’이란 시집을 펴낸 이후 ‘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가요계에선 그를 최고의 작사가로 모셨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뚝배기 깨지는 목소리를 지녔지만 언제나 구수한 인상을 풍기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다정한 그 모습을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 기자는 “그렇게 촌스럽게 생긴 남자에게 무슨 매력이 있는지 가수들은 그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의 가사를 받아 히트곡을 만든 가수들도 이젠 그 멋진 가사 하나 받지 못하게 생겼으니 정말 원통한 일이다.

기자는 “복제인간의 생산이 가능하다면 우리 가요계에서 제일 먼저 복제인간의 원본으로 추천할 사람이 바로 박건호인지도 모른다” 라고 쓰기도 했다. 대한민국 가수들이 너도나도 그에게 가사를 써달라고 매달릴 정도로 작사 요청이 쇄도했지만 혼자의 몸으로 다 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복제하려면 한 20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으니 그것마저 이뤄지긴 글렀다.

1993년 지병이던 신장병을 심하게 앓고부터 박건호씨의 다작은 잠시 멈추는 듯 싶었다. 히트곡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가사를 쓰는 일보다 시를 쓰는 일에 더 매달렸기 때문이다. 야심작을 써놓고 음반이 나와도 잘 찾아오지 않던 사람이 기자를 찾아오는 일이 잦아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인쇄소에서 막 나왔다는 시집을 한 보따리 싸들고 찾아와선 “석형, 나 시집 냈어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짓던 남자였다.

시집뿐이 아니었다. 에세이, 투병기, 가사집 등 끝없이 책을 내놓고는 시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박건호닷컴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박건호넷(www.parkkunho.net)이라고 홈페이지를 새로 단장했단다. 2004년인가의 일이다.

이후 기자는 그를 만나보질 못했다. 그래도 그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빈대떡에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가사’를 쓰려고 하지 않는 요즘 젊은 가수들과 작사가들을 실컷 흉보고 싶었는데 기자가 게을러 그런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모닥불’의 가사처럼 박건호씨는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시를 쓰다가 떠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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