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3)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3)
  • 임정진
  • 승인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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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13. 애들이 무서워, 학교 가기 싫어



7교시 수업이 끝나고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나니 보충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윤리 담당 윤 선생이 봉구네 반에 들어와 보니 아이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날씨까지 사람을 나른하게 만들기 딱 좋은 그런 날씨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칠판 한가득 필기를 하고 잠시 아이들에게 베낄 시간을 주고 윤 선생은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꾸벅꾸벅 졸면서 필기를 하느라 글씨가 커졌다, 작아졌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윤 선생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힘드냐?」

「네에----.」

아이들은 한결같이 동정을 바라는 목소리였다. 혹 재미나는 이야기나 야외수업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렇게 힘들어?」

「네에----,선생님. 힘들어 죽겠어요.」

「알아, 알아. 너희들 힘들어 하는 거 다 안다. 허나 별 수 있냐? 사회가 대학 나온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세상인데...」

「우우」

아이들은 실망했다. 에이 기껏 그 소리. 대학 안 가고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말해 주는 어른은 왜 없을까.

「녀석들, 대학 가기 싫으냐?」

「몰라요.」

「모르긴 왜 몰라. 가고 싶지. 자 그럼 내 설명을 잘 들어 봐.」

아이들은 다시 눈을 부비고 칠판을 쳐다보았다. 아아, 우린 언제나 이 따분한 신세를 면하게 될까. 시간이 좀 후딱 후딱 지나가 주었으면...


민호는 오랜만에 중학생 동창인 승재를 우연히 라면집에서 만났다.

「야, 승재야, 너 이쪽 동네에 웬일이니. 니네 학교 근처에는 라면집이 없어?」

「민호구나. 나 학교 그만뒀어.」

「뭐? 학교를 그만둬?」

민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재는 성적도 중상이었고 성격도 조심스러워 퇴학을 당하거나 할 친구가 아니었다.

물론 고등학교 올라가서 갑자기 변하는 애들도 봤지만 승재가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승재는 힘없이 웃었다.

「놀라긴 짜식, 내가 사고 칠 위인이나 되니? 자퇴했어.」

민호는 순간적으로 승재네 집이 홀딱 망해서 학교도 못 다닐 지경이 되었나 생각했다.

「자퇴는, 왜? 1년만 더 다니면 되는데...」

「나 맹장 수술을 했거든.」

「근데 뭐가 잘못돼서 의사가 학교 가지 말래?」

「아니, 중간고사를 못 봤어. 수술 땜에. 그래서 내신 성적이 엉망이 되었거든. 게다가 아무리 중간고사 기간이라지만 문병 오는 놈이 한 놈도 없어. 와서 10분만 있다 가면 되는 걸. 학교에 다시 나가기가 싫더라. 애들 보기가 무서워. 엄마도 내신 걱정 많이 하고, 그래서 자퇴했어. 검정고시 보면 지금보다 내신이 좀 나을 것 같구, 그래서 지금 학원 다녀.」

「그랬구나.」

「학원 다니니까 속은 더 편해. 머리 잘라라, 청소해라, 잔소리도 없고 때리는 선생도 없고.」

「기왕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니까 잘해 봐라. 대학 가서 만나자. 학교 다니든 학원 다니든 대학 가는 게 목표니까 목표만 달성하면 되는 거지, 뭐.」

민호는 승재와 라면 먹는 동안만 얘기하고 그냥 헤어졌다. 독서실에 늦게 가면 주인 아저씨가 체크해서 집으로 통지해 주기 때문에 제 시간에 가야만 했다.



시험은 자주도 돌아왔다. 또 한 번 성적표가 나오고 아이들은 예외 없이 긴장 속에서 도장을 받아 왔다.

달중이가 친한 넷을 청소 시간에 불렀다.

「야, 이따 자율학습 빼먹고 나랑 어디 가자.」

「어디?」

「좋은 데, 내 돈 좀 생겼거든.」

봉구와 천재, 종섭, 촉새는 달중이를 따라 교문을 나섰다. 봉구는 달중에게 물었다.

「야, 공부 못하는 골통들만 데리고 어딜 간다는 거야?」

달중이 씩 웃었다.

「니들 어제 성적표 때문에 혼났지?」

달중의 질문에 천재는 악몽이 되살아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에휴, 말도 마라. 끔찍하다.」

「그래서 이 형님이 위로해 줄려고 그런다.」

「어떻게.」

「나만 따라와.」

다들 신이 나서 달중을 쫓아가는데 같은 반 민자가 그들을 앞질러 빠르게 걸어갔다. 달중은 민자를 보고 얼른 불렀다.

「어이, 박민자.」

「왜? 뺀질이.」

「어차피 자율학습 빼먹는 같은 운명인데 우리하고 같이 안 갈래?」

민자는 표독스럽게 달중을 노려보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애들은 애들끼리 놀아. 그리고 난 담임한테 허락받고 나오신 귀한 몸이야.」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려 골목길로 들어갔다. 달중은 닭 쫓던 개모양 멍하니 민자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쟤 정말 큰일이야. 공부도 못하는 게 까져만 가지고.」


미선이 사건 이후로 강 선생과 최 선생은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미선인 요즘 어떻게 지내요? 전 그날 보고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양호실에는 한 번도 안 오더군요.」

「사귀던 남자가 그때 수술비 대주고는 그만 만나자고 했대요. 그래서 미선인 더 충격이 컸나 봐요. 매일 멍하니 있고 저한테 와도 울기만 하고 별 얘기를 안 하니 상담도 잘 안 되고, 문득문득 전 미선이가 저보다 인생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열등감이 생겨요. 참, 미선이 아버지가 초청장을 보냈다더군요. 미선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모양이에요.」

「미국의 아버지도 가정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미선이 어머니는 정식으로 재혼한 건 아니지만 깊이 사귀는 남자가 있나 봐요. 미선이도 짐작만 하는 거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죠. 젊어서 이혼했는데 딸만 믿고 혼자 지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미선인 불쌍한 애군요.」

「정에 굶주린 애예요. 그래서 남자가 조금만 잘해 주면 금방 푹 빠지곤 했었나 봐요. 아버지 사랑을 못 받아서 남자에 대한 그리움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커요.」

「차라리 미국에 가는 것이 낫겠어요.」

「미선이가 선택해야죠. 참 지난번 시험 때 놀라셨죠? 그 3학년 녀석 때문에.」

「그 학생, 신경성인데 어떻게 증상이 그렇게 심해요? 난 처음에 급성맹장이나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걔 1학년 때부터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요. 몇 번 상담했는데 나아지지가 않아요. 요즘 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더 이상 그냥 두면 안 되겠길래 그 날로 내가 부모한테 연락해서 정신과 의사 소개해줬어요.」

「생긴 건 잘생겼던데 어쩌다가...」

강 선생은 시험 보다 말고 배가 아프다고 몸부림을 치며 친구 등에 업혀 왔던 남학생을 떠올렸다. 덩치도 좋았는데 어떻게 신경은 그렇게 약한지 안타까웠다.

「아주 정신병원에 입원한 여학생도 하나 있어요. 정신과 치료받는 애는 서넛 되고.」

「입원까지요?」

「학력고사 치는 날 차가 막혀서 고사장에 늦게 도착을 한거예요. 그래서 첫 시간 시험을 못 봤거든요. 그러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죠. 시험 보고 온 날부터 계속 울더니 1차 합격자 발표하는 날, 아주 정신이 나가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대학교 안을 왔다갔다하는 걸 부모들이 찾아내서 입원시켰어요. 참 불쌍한 애예요. 그래서 전 학력고사 날은 신자는 아니지만 혼자 기도해요. 시험 잘 보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구 지각하는 애 없게 해달라고, 미치는 애 없게 해달라구요.」

「저도 이젠 기도해야겠네요.」

강 선생은 창 밖에 보이는 아이들이 모두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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