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1)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1)
  • 임정진
  • 승인 200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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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11. “애를 죽게 하다니, 무슨 교육이 이러냐”



민호는 독서실에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생각했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다. 그냥 내가 잠이 안 와서...」

거실 탁자에는 술병과 술잔이 있었다. 손님이나 오셔야 꺼내던 술병이 나와 있어 민호는 의아스러웠다.

「아버지, 손님도 안 오신 것 같은데...」

「응, 내가 좀 마시고 싶어서...」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고2가 된 후 아버지의 표정을 자세히 본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제가 한잔 따라 드릴까요?」

「그럴래?」

민호가 아버지 잔에 술을 따르는데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다.

「민호 배고프지 않니?」

「라면 사먹고 왔어요. 이따 쥬스나 마시면 되니까 그냥 주무세요.」

어머니는 민호 곁에 앉았다.

「네 아버지 오늘 속이 상하셨단다.」

「왜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잠자코 술잔을 비웠다. 대신 어머니가 민호의 물음에 답을 해주었다.

「아버지 학교에서 중학교 2학년짜리가 자살했단다. 아버진 고등학생만 가르치시지만 한울타리 안에 있는 중학생이 죽었다니 왜 속이 안 상하시겠니?」

「왜 자살을 했대요? 이유가 있을 거 아녜요?」

민호 아버지는 힘들게 입을 떼었다.

「그 애 아버지 때문이란다. 아비가 자식을 죽인 거야. 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머니가 옆에서 마저 설명을 해주었다.

「그 애가 영어 성적이 안 좋아서 아버지가 두 달 동안 매일 저녁마다 영어를 가르쳤대. 그래서 웬만큼 기초를 다져 놓았다 싶어 아버지가 딸의 영어 성적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단다.」

「그런데 영어 성적이 나빴군요?」

「그게 아니고, 영어 시험 전날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딸 방을 들여다보았는데 딸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더란다.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자는 애한테 침을 뱉고 <너 같은 건 인간 쓰레기다> 하고 말을 함부로 했다는구나.」

「아니 어떻게 딸한테 침을 뱉어요? 피곤해서 자는 애한테······.」

민호도 덩달아 흥분이 되어 말소리가 커졌다. 아버지는 빈 술잔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그 어린것이, 더구나 여자애가 얼마나 놀랐겠니? 나라도 죽고 싶었을 거다. 다음날 새벽에 그애 엄마가 마루로 나와 보니 애가 현관에서 목을 매고 매달려서... 아이구 끔찍해라.」

어머니는 말을 맺지 못한 채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민호는 아버지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시지 않았다.

「자살하는 애들이 1년에 7백 명씩 된다고 해도 난 우리 학교가 실업계고 해서 별로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우리 중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구나. 중학생까지 자살을 하게 만드니, 이게 도대체 무슨 놈의 교육이냐. 애들이 행복하게 잘살게 해줘야지. 죽음으로 몰아 댔으니...」



민호는 어떻게 아버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어 보려고 했다.

「어머니, 은주네 교실로 가서 은주를 만났었어요. 그런데 웬 남자애가 쫓아와서는 질투를 하더라구요. 은주가 인기가 좋은가 봐요.」

「은주가 남학생 사귈 틈이 있겠니? 지 엄마가 그렇게 극성인데.」

「이모는 정말 왜 그러신대요? 반에서 1등이고 전체에서 6등이면 얼마나 잘한 거예요.」

「낸들 아니. 니 이모는 그 학교가 8학군보다 떨어지니까 적어도 전체 3등 안에는 들어야 안심이 된다는 거야.」

「은주가 아주 힘든가 봐요. 도대체 애가 맥이 하나도 없던데요.」

「어떡하겠니. 저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이모가 일류 대학 가겠다고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은주 공부 잘해서 판사 돼봐라. 은주에게 나쁠 게 뭐 있니?」

어머니는 은주를 동정하면서도 이모의 입장 또한 두둔했다. 어느 에미가 자식 못 되길 바라서 극성을 떨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듣고 있던 아버지가 술병의 뚜껑을 닫았다.

「처형도 너무 그러는 게 아냐. 그 착한 은주가 어련히 알아서 열심히 할라구. 그러다 애 잡지, 애 잡어.」

「당신은 그런 편한 소리 마세요. 당신이 그러시니까 민호 얘도 천하태평이잖아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거 모르세요? 더 잘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솔직히 민호네 학교, 8학군 학교에 비하면 너무 애들을 풀어 준다구요.」

「아버지, 어머니. 그만두세요. 저 들어가서 공부할게요.」

민호는 얼른 가방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던져 놓고 방 한가운데에 벌렁 누웠다. 그리고 잠시 그 여학생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 죽어서라도 행복해라. 죽는 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 당시엔 죽고 싶었을거야. 천당에 가서 너 하고 싶은 공부 즐겁게 하려무나.」

민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얘기를 계속 했다. 민호가 고3이 된 후로는 거실의 텔레비전을 켜는 일이 없었고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일도 삼갔다.

「그나저나 당신 반 아이들 취업은 잘돼 가요?」

「아직은 추천 의뢰가 별로 없나 봐. 취업 담당 선생님이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여름방학 때쯤 많이 되겠지. 취업할 애들보다 대학 간다고 나서는 애들이 더 걱정이야.」

「아니 실업계에서 무슨 대학을 가요? 인문계 애들도 떡떡 떨어지는 판에....」

「실업고등학교 나와서 취직해 봐야 뻔하니까 애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월급도 적지, 승진도 안 되지, 일도 단순직만 맡기지, 대졸하고 차별 대우 받는 게 어디 한두 가지야.」

「그래도 대학 나온 실업자가 얼마나 많은데 실업고 출신들은 취직 잘되는 편이잖아요.」

「글쎄, 취직이 되면 뭘 해. 대우가 나쁜데.」

「그래도 4년 먼저 사회 나가서 그만큼 돈 더 벌면 비슷하잖아요.」

「4년 경력 쌓아도 대졸 신입사원 밑에서 심부름만 하게 하니까 그렇지. 대학 가겠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취업 나가는 애들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지, 그나마 수업받는 것도 입시 과목과 다른게 많지, 그래도 내신성적은 신경써야지, 애들이 고민이 많아.」

「참 취업 담당 선생님은 바뀌었어요? 작년에 취업시켜 준다고 애들한테 1,2십만원씩 받았다면서요.」

「아니, 그대로 있어.」

「아니 어떻게 그런 교사가 그대로 학교에 남아요. 말도 안 돼요.」

「이사장 조카사위야. 그때 시말서 한번 쓰고 그만이야. 핑계는 기업체들과 안면 있는 교사가 있어야 취업이 수월하다는 거지. 취업 담당 8년이니 웬만한 회사 인사 담당과는 다 잘알고 지내니까.」

「아니 어떻게 선생님이 애들한테 취업을 미끼로 돈을 받고도 무사해요?」

「학교는 새로 채용하는 선생님에게 돈 받으니 그게 그거지 뭐야.」

「참, 아가씨도 아직 취직 안 됐죠? 교사가 꿈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면서...」

「사립대 사범대 나와 취직 안 된게 어디 걔 하나야? 여기저기 알아본 모양인데 3백만원은 내야 한다길래 내가 관두라고 했어.」

「그거 내고라도 들어가는 게 낫죠. 여교사들은 시집가기도 수월하다는데 1년 노는 셈치고 1년 무료 봉사하면 되잖아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더구나 남편이 교사인데... 애들 앞에서 떳떳하지 않으면 뭘 가르쳐도 거짓인 거야.」

민호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이불을 폈다. 남편의 꼬장꼬장한 성격에, 여학생 자살까지 겹쳐 더 이상 말을 했다가는 대판 싸움이라도 벌일 것 같아서였다.

(아들 공부하는데 부모가 시끄럽게 싸울 수야 없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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