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9)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9)
  • 임정진
  • 승인 20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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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9. 봉구의 짝사랑



천재가 치료받는다고 뛰어나간 후 아이들이 거의 올 때까지 들어오지 않자 봉구는 혼자 전략을 짜느라 고심했다. 무작정 대쉬할까, 어쩔까 망설이는데 은주가 가방에서 작은 보온병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앗, 은주가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봉구는 내일부터 커피를 끊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주가 보온병에서 갈색 액체를 따르자 짝 소연이가 쳐다보았다.

「은주야, 그게 뭐야? 코코아?」

「응, 약.」

「약? 너 어디 아퍼?」

「아니, 이 약 먹으면 잠도 안 오고 피로가 풀린대.」

소연은 딱하다는 듯 은주를 쳐다보았다. 공부도 잘하는 애가 왜 저리 극성을 떠는지 이해가 안 갔다.

「너두 참 지독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공부해야 돼?」

은주는 할 말이 없었다. 잠자코 약을 마셨다. 봉구는 은주에게 다가가 뭐라고 첫마디를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였다.

교실 앞문으로 못 보던 남자애가 불쑥 나타나더니 은주를 불렀다. 은주보다 봉구에게 더 잘 들리는 목소리였다.

「어머, 어쩐 일이야?」

반색을 하며 일어서는 은주의 모습에 봉구는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좀 나와 봐.」

은주의 이종사촌 민호였다. 민호는 은주를 데리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은주가 교실을 나서자 남학생도 여학생도 <우와> 하고 함성을 질러 댔다. 여학생들이 더욱 놀란 모습이었다.「어머머, 쟤가...」

「저 내숭, 얌전한 게 뒤로 호박씨 깐다더니.」

「생긴 건 캡인데.」

「주윤발 닮았지. 그지?」

봉구는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주윤발? 주윤발 좋아하네. 이주일이가 <형님> 하겠다.」

봉구는 은주를 영영 못 볼 것만 같은 초초함에 휩싸여 은주와 민호 뒤를 허겁지겁 쫓아갔다. 둘은 동산으로 가더니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봉구는 나무 뒤에 숨어서 둘을 훔쳐보았다. 다정스레 얘기하는데 봉구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은주야, 이모 등쌀에 견디기 힘들지?」

「오빤 어때? 오빠두 마찬가지 아냐? 더구나 고3인데.」

「나도 들볶이지. 그래두 엄마는 이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뭐. 이모는 좀 유별나셔. 울 엄마도 고갤 흔드시는 걸.」

은주는 잠자코 신발로 땅을 팠다. 민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제 저녁 엄마와 이모가 전화하는 걸 옆에서 들은 민호는 은주가 꽤 상심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위로해 주려고 일부러 은주네 교실까지 왔던 것이다.

「아마 이모부 탓도 있을 거야. 최연소 고시 패스에다가 최연소 부장판사. 그야말로 최고의 엘리트잖아. 그런 이모부에 비해 원래 집이 부자란 걸 빼면 이모는 너무 처지니까 열등의식 같은 걸 가지고 계시겠지. 혹 자식이 못나면 자기 닮아 그렇다는 소리 들을까 봐 불안해 하시는 마음도 있을 거야. 엄마랑 얘기하는 걸 들어서 잘 알아. 특히 넌 딸이잖아. 모녀지간은 쉽게 비교가 되니까.」

은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 마.」

민호는 은주 어깨에 손을 얹고 두어 번 두드렸다. 그걸 보는 봉구의 눈에서는 불이 났다.

「네 성적이 어때서 그래? 나보다 휠씬 좋은데. 그만하면 이모가 원하는 법대는 위태로워도 원하는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잖아.」

「난 법대는 정말 싫어. 국문과나 사학과 쪽을 가고 싶어.」

「그래, 까짓 거,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 안 되면 개기는 거야.」

은주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슬며시 웃었다. 은주가 다른 남자애에게 미소짓는 것을 봉구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아. 그림 조오타.」

잔뜩 심통이 난 봉구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불량스런 아이 같은 몸짓을 했다. 은주와 민호는 갑자기 나타난 봉구를 쳐다보았다.

봉구는 발 밑의 돌을 툭 차서 민호 곁으로 날렸다.

「이거 뭐, 여기가 학교야. 카바레야. 이래서 애들은 풀어 주면 안 된다니까.」

민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봉구는 민호 곁에 털썩 앉았다.

「날씨가 좋다 보니 곳곳에 제비로구먼.」

「뭐야.」

민호가 벌떡 일어나 봉구를 당장이라도 칠 듯한 기세로 <이 자식 이거 돌은 놈 아냐> 하자 은주가 당황하여 민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오빠, 그냥 가.」

봉구는 땅에다 침을 탁 뱉으며 대꾸했다.

「흥, 급하면 다 오빤가?」

「뭐야, 이 자식이, 너 이리 좀 따라와.」

민호는 봉구의 멱살을 거머쥐고 소리를 질렀다.

「좋지, 나도 이제 세상 살기 싫은 놈이야.」

봉구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은주는 울상이 되었다.

「이러지 마, 오빠. 걔 우리 반이야.」

「뭐 2학년이야?」

봉구는 민호의 멱살을 같이 잡으며 으르렁댔다.

「이 판에 2학년이고 3학년이고가 어디 있어. 가지고 가!」

「나 참, 이거 완전히 군기 빠졌구만. 은주야, 넌 들어가.」

민호는 봉구를 끌고 건물 뒤 공터로 데리고 갔다. 유도로 단련된 민호와 입만 살아 있는 봉구와의 싸움은 간단히 끝났다.

「열, 차, 열, 차, 동작 봐라.」

민호의 구령에 맞춰 봉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미 한쪽 눈두덩이는 천재 못지않게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열, 차, 임마, 이젠 정신이 좀 들어?」

민호는 빙그레 웃었다. 봉구는 민호의 표정을 보고 안심을 했지만 대답만은 우렁차게 했다.

「넷, 선배님.」

「하극상에 대한 벌치고는 많이 봐준 거다. 앞으로 조심해, 알았어?」

「넷.」

「짜식.」

민호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손을 툭툭 털고 가버렸다. 봉구는 민호의 뒷모습을 보고 혼자 웃다 손을 들고 소리쳤다.

「잘 가게, 처남.」

그리고는 봉구는 신이 나서 교실을 향해 전력 질주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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