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는 관객들 기대치 못채웠다” 배우 박중훈
“<해운대>에서는 관객들 기대치 못채웠다” 배우 박중훈
  • 이승우
  • 승인 200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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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마라톤 선수, 긴 호흡으로 갈 길 / 이승우



[인터뷰365 이승우] 한국영화 사상 다섯 번째로 ‘천만클럽’에 가입한 영화 ‘해운대’는 지난 주말까지 1,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실미도’를 제치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

‘해운대’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환호를 하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얼굴 하나가 있었다. 극중 ‘김휘’ 역을 맡은 배우 박중훈이었다.

박중훈은 동료 선후배 배우들이 중국 개봉을 앞두고 프로모션에 한창일 때 미국으로 가 다음 작품을 준비하느라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영화 ‘깜보’로 데뷔한 후 24년 동안 특히 코미디영화의 제왕으로 알려졌던 박중훈은 그러나 ‘해운대’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박중훈의 솔직한 답변을 들었다.

한때 토크쇼를 진행했을 만큼 순발력이 뛰어나고 논리정연하게 말을 하는 배우 박중훈은 그리고 그 이상의 이야기도 허물없이 털어놓았다.



미국에 간 것은 재충전을 위해서였나.

몸 만들기 위해 떠난 이유가 가장 크다. ‘해운대’를 찍었을 당시 보다 현재 3킬로그램 정도 감량한 상태다. 한국에서는 워낙 걸쳐 있는 포지션이 많아서 몸을 만들기가 힘들다. ‘해운대’ 끝나고 몸도 만들고 정신도 다듬을 겸, 미국 외곽을 돌면서 최근 하와이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들어왔다.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소감은?

예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잘 될 거란 느낌이 들었으니까. 개봉 전 CG논란이 한참 일어날 때 그런 대중의 그런 시각들이 약간 의아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더 기뻤다.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흥행 요소라기보다 상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뭔가 영화적으로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게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물 재앙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현실로 느껴지는 비주얼로 완성됐다는 점. 또 그걸 뒷받침할 만한 기술력과 감동 코드가 다양하게 관객에게 먹힌 거라고 본다. CG는 과학이지만 영화는 이야기의 힘이니까. 좋은 이야기에 리얼한 과학이 붙어서 최고의 시너지를 낸 것이라 보여진다.


역시나 달변가다.

언론이 재미있는 게, 보면 좋다 나쁘다만 있고 보통은 없는 것 같다. 좋지 않았다, 혹은 나쁘지 않았다 같은 중간이 없다. (웃음) 원래 기자들은 글을 쓸 때 확실한 걸 써야 하니까 그렇게 훈련 받는 건 알지만. 사실 ‘박중훈이 말을 잘한다’ 혹은 ‘달변가다’ 라는 소문도 기자들이 그렇게 몰고 간 경향이 있다. 그런 시선이 얼마나 부담되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늘 책을 관심에 둔다는 수준일 뿐인데 마치 독서광인 것처럼 비쳐져서 난감할 때도 많다.



‘해운대’에서 연기한 ‘김휘’라는 캐릭터는 조연에 가깝다. 더구나 일부 관객들은 극중 연기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운대’에서의 내 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대다수가 그렇게 본다고 해서 내가 나서 그렇지 않다고 맞서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어서 굉장히 조심스럽다. ‘해운대’에서의 내 연기를 면밀히 생각해 봤다. 보통 우리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낯설다고 하잖는가. 하지만 ‘낯설다’는 것과 ‘못한 것’은 차이가 분명 있다. 또 낯설다는 건 익숙하지 않으니까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사람들이 봤을 때 박중훈은 주로 에너지가 많은 역할과 임팩트가 큰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해운대’에서는 쓰나미를 구해내지 못하고 예고만 하고 끝나니 미운가봐.(웃음) 그 역할이 관객들의 기대치를 못 채운 것 같다. 내가 연기한 김휘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니까 그게 박중훈이 그 전에 해왔던 것과 너무 틀려서 낯설게 보는 것 같다.


영화가 개봉 된 후 본인의 연기 가운데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없다. ‘내가 이렇게 잘했는데, 이걸 못 알아주다니!’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다시 하라고 해도 그 정도로 못할 것 같다. 아마도 신인 배우였다면 인상적인 연기로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래 알려진 배우다 보니 호흡까지도 파악을 하고 있는 게 관객이거든. 스포츠로 비교하자면 마라톤이 바로 배우다. 이런 반응이 있으면 저런 것도 있는 거라고 본다.


만약 김휘가 아닌 다른 역할로 ‘해운대’에 출연했다면 어땠을 것 같은가.

내가 그 동안 해온 게 개인전이나 복식 전에서 부각되는 선수 역할을 주로 했다면, 김휘는 단체전에서 수비수를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고, 또 좋은 경험이었다. 만약 다른 역할이 들어왔다면? 내 연령상 맡을 거라곤 설경우 역할밖에 없지 않나.(웃음) 그러나 그게 어울릴 것 같진 않고. ‘해운대’에서는 김휘 말고는 없다. 지금이 90년대면 김인권이었고. 사실 그 역할을 했었으면 굉장히 좋았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내가 20대라면 아마도 이민기 역할이었겠지.


포스터에서 가장 중앙이지만 극중 아역배우보다도 얼굴이 작게 나와 놀랐다.

내 역대 출연작 중 가장 얼굴 크기가 작게 나왔다. 나도 인간인데, 포스터에서의 비중을 왜 신경을 안 쓰겠나.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초월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연연해 하지도 말자’ 라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직업이고, 그 중 포스터는 1차적인 통로이니까 크게 안 나오면 당연히 싫다. 사실 이런 포스터는 처음 받아봤다. 내가 조연을 했어도 막상 보니까 서운하다.(웃음) 하지만 이건 역설적인 얘기기도 한데, 내가 조연으로 나온다는 것과 포스터 크기가 회자된다는 게 참 고맙다. 내가 원래 그런 배우였다면, 포스터의 크기쯤이야 뉴스거리도 안 되지 않겠는가. 그만큼 화제의 중심에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해운대’가 불법 유출된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상영중인 영화의 불법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중훈은 자신의 트위터 (http://twitter.com/moviejhp)에 이에 대한 장문의 글을 올려놨다)

이번에 귀국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굿 다운로더 캠페인’ 때문이다. 7일에 동영상 홍보물을 찍었다. 안성기 선배님과 나, 송강호, 정우성, 장동건, 김주혁, 현빈, 김태희, 하지원 신민아. 엄정화, 김하늘 이렇게 참여해서. 이번에 해운대 불법 동영상 유출이 업계에선 100억에서 300억 선으로 추산하지만 금액보다 더 큰 것은 해외에 수출될 때 큰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다. 흔히 부가판권이 죽으면 투자가 위축된다고 하잖는가. 무엇보다 창작자의 의욕을 꺾는 것만은 사실이다.


‘해운대’의 흥행과 더불어 배우들이 받을 보너스에 대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러닝개런티 계약이 아니어서 아쉬운 점은 없나. 비교적 적은 개런티로도 흔쾌히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유대관계나 끈끈함이 무너질 때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무리수를 둘 때다. ‘해운대’에는 130억 원의 제작비가 들고, BP가 600만 명으로 시작한 영화였다. 그걸 넘는 게 쉬운데 아니었고, 내 역할로 인해 관객이 많이 올 정도의 비중도 아닌 상태서 출발한 영화다. 반대로 ‘투캅스’는 배우가 중요한 영화였고 러닝 개런티였다. 쉽게 이야기해서 ‘해운대’가 300만 명밖에 안들었다고 해서 배우가 돈을 안 물어주는 것처럼, ‘해운대’에 출연할 때 러닝 개런티를 안 했어도 영화가 잘됐으니 뭘 좀 더 바란다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심적으로 서운하다던가 어떤 기대를 한 적도 없다. 단지 그 동안 고생했던 스태프들과 출연한 배우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웃음)



청춘 아이콘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가장 잘나가는 주류 광고에 캐스팅되는 등 흔히 말하는 ‘돈방석’에도 앉아봤을 것이다. 돈에 대해서는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돈은, 슬프지만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다. 돈의 가장 좋은 점은 몸을 편하게 해준다는 거다. 좀더 아늑한 집과 좀 더 좋은 차 그런 것들. 물질이라는 게 풍족할수록 편하긴 하니까. 이 자리를 빌어 승자의 여유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란 걸 거듭 밝히면서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20대에 성공했을 때 돈이 무한대로 있거나 배우로 성공하거나 둘 중에 가치를 둔 건 후자였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귀에 안 들어올 말이라 조심스럽지만, 좋아하는 일을 쫓으면 돈이 따라 붙지만, 그 반대는 둘 다 아니다. 돈도 안 오고 일도 안 온다. 요즘 88만원이라 불리는 세대들의 경우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경쟁하고 돈의 우선 가치를 몸소 겪은 세대라 가치가 더 돈으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


‘해운대’에서 김휘는 이혼을 했고 7년 만에 재회한 딸에게 당당히 아버지라고 밝히지 못한다. 가정에서는 어떤 아버지, 남편인가. 별다른 스캔들 없이 부부생활을 이어나가는 비결도 궁금하다.

별다른 스캔들이 없는 건 아마도 들키지 않아서인가.(웃음) 농담이고. 나는 어렸을 때 지겹게 공부하라고 들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란 소리 안 하겠다고 다짐해서인지 공부하란 소리 안 하는 아빠다. 사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친구 같은 아빠는 아니셨지 않나. 나는 권위적이지 않은 친구 같은 아빠를 궁극적으로 꿈꾸고 있다. 아들이 큰 애고 그 뒤로 딸이 둘인데, 아이들한테 “난 아빠가 웃겨서 좋아”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기분 좋다. 아내에게 어떤 남편인지는 내 입으로 말하기가 좀 그렇고...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든 관계를 잘 맺으려면 필수요소가 인내인 것 같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한달 배낭여행을 가면 엄청 싸우지 않나, 아내는 인생의 배낭여행 친구니까. 끝까지 함께할 여행의 친구인데 당연히 인내는 필수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안)성기 선배님의 말로는 끝까지 함께하는 친구인데 어떻게 좋을 수만 있냐고, 인내하지 않으면 자유는 주어지는데, 인내를 하고 나서 느끼는 화답과 보람은 없는 것 같다고.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그 동안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톱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배우와 앞으로 함께 연기하고 싶은 여배우가 있다면.

이런 질문이 곤혹스러운 게, 희대의 여배우들과 다 공연을 했는데 그 중 고른다는 건 정말 힘들다. 최근에 있었던 얘기만 하자만 엄정화를 꼽고 싶다. ‘마누라 죽이기’ 때 잠깐 함께 했고 이번에 만났는데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변함이 없는지.(웃음) 여전히 매력적이고 열심이고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다음 영화에서 후배 정유미와 공연한다. 홍상수 감독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고 정말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만나서 기쁘다.


작품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고 있나.

변한 건 없다. 시나리오와 감독을 보는 건 여전한데 잘 못 봐지는 것 같다. 감각이 좀 떨어지는 것이.(웃음) 진심은 깊어지는데 감각은 확실히 딸린다. 그래서 감각에 있어서는 예전만큼 확신하진 않는다. 20대 때는 내 감각이 곧 트렌드였고,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다. 내가 청바지 모델만 7년 했을 때다. 거짓말이 아니라 뭘 보려 하지 않아도 머리에 무언가가 쫙 떠오르곤 했었다. 요새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감각이 떨어졌다. 힘이 빠지는 대신 깊이는 더해진 것 같아 위로 삼고 있다.

시나리오의 진정성을 많이 보고 작품을 골랐는데 요즘 들어서는 감독인 것 같다.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연기의 70%를 차지하는 게 바로 캐릭터니까. ‘대부’의 말론 브랜도가 최고였다고 한다면, 다른 영화에서 그가 최선을 다해 연기를 안한 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졸작에서도 연기를 잘 했을 테지만 확연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건 맡은 캐릭터 때문이라고 본다. 그걸 선택하는 게 바로 배우의 몫이다.


최근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제작되는 영화들을 보고 흔히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요즘 영화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

영화계 성공 타율은 많이 올라갔지만 너무 알짜배기 영화만 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다. 얼핏 봐서 잘 될 것 같은 영화만 제작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약간 무난한 영화들에서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다. 제작되는 영화 편수가 적어져서인지 감독들을 배출하는 창구도 좁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유명감독에 일류 배우가 맞물려야지만 투자가 되니까 신인들이 나설 무대도 작아지고.


데뷔 후 24년이 흘렀다. 가끔은 배우가 아닌 다른 삶을 꿈꿀 때도 있을 텐데, 만약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가.

배우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관객들이 나를 인정해 줄 때다. 내가 의도한 대로 따라와 줄 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행복할 때는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러 와주는 순간이다. 관객이 배우한테 2시간을 위임해준 건데, 그걸 천만 명이 본 셈이면 2천만 시간이지 않은가. 2천만 시간은 평생 경험해 볼 수 없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관객이 행복해 하고 나를 인정해줄 때가 최고의 보람이다.

다시 태어나면? 단순하게 생각하고 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감정 노동을 하다 보니까 가뜩이나 예민한 사람이 더 예민해져서 가끔 고달프다. 자연과 밀접한 곳에 살면서 자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한국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그건 나도 모른다. 배우에게 있어서 위치는 관객들이 어디 있어라 지정해 주는 곳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 같다. 솔직히 요즘의 박중훈을 보면, 90년대 잘 나가는 배우였고, 그러다 2000년대 할리우드 진출 가냐 마냐 하고. 한동안 지겹다 슬럼프다 하다가 그러나 영화 ‘라디오 스타’가 잘 되면서 부활했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러다가 ‘해운대’에서는 기대보다 못하다고들 하고. 이건 나한테도 던지는 말이자 다짐이지만 나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고 싶다. 24년간 일하면서, 남들의 말을 무시하면 독불장군이고 그걸 너무 받아들여도 위축되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를 지켜 가는 게 중요한 거다. 객관화를 하고 바라보되, 선을 지키는 것. 몇 년 뒤에 오늘을 이야기 할 때 ‘해운대’ 때의 일을 추억하며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거다. 지금의 내 위치는 모르지만 그 때는 알 수 있겠지. 지금 뛰는 내 위치는 가늠할 수 없지만 나중에 보면 몇 킬로미터에서 어떻게 뛰고 있었는지 아는 마라톤 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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