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
  • 임정진
  • 승인 200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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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2. 칠뜨기 떴다, 돗대 감춰라!


천재는 옷을 갈아입고 오느라 그만 학교 배지를 달고 오지 못했다. 그 바람에 족제비 같은 선도부에 들켜 운동장을 가로질러 토끼뜀을 뛰어야 했다.

「I see pal.」

해방된 천재는 투덜거리며 우선 화장실로 들어갔다. 단골손님 세 명이 벌써 연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천재도 얼른 한 칸을 차지하고 들어가 가방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천재는 담배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피우기 시작했다.

「아- 으- 호. 돗대는 더 맛있단 말야. 오늘은 누구한테 빈대 좀 붙어서 한 세 개비만 얻으면 정말 째지겠네.」

천재가 하루의 담배 소모량을 상상하는 사이 옆 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야 누구 팔팔 골드 없냐? 라이트는 싱거워서 말야. 은혜 잊지 않으마.」

천재가 들어 있는 화장실 문을 누가 두들겼다.

「기다려.」

「야, 한 번만 빨자.」

천재는 험악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놀구 있네. 돛대 주는 병신도 봤냐. 능력 없으면 끊어.」

천재는 천천히 담배 맛을 음미했다. 밖에서 또 누군가가 소리쳤다.

「시간 다 돼가. 빨리 돌려. 조례 시간에 늦어서 효자손 당하기 싫다.」

둥글게 깎은 긴 봉을 목 뒤로 쓱 집어넣어 등뼈를 지그시 누르면서 훑어 내려가는 벌을 천재네 학교에서는 효자손이라 불렀다. 천재는 효자손을 생각하니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힘껏 담배를 빨았다.

그때 밖에서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 학생 주임인 박길호 선생님이 불시의 습격을 한 것이었다. 박 선생은 소변기 앞에 섰던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한 후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칠뜨기 떴따아---.」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리며 학생들이 튀어 나왔다. 문도와 촉새는 한 칸 안에서 동시에 먼저 나오려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달중, 종섭까지 넷이 학생 주임 선생님을 보고 놀라 꼿꼿이 서 있도록 천재는 나오지 않았다.

「짜식들, 뭐가 그렇게 급해.」

천재는 선생님이 복도 끝에 나타났다는 소리인 줄 알고 다른 학생보다 한 박자 늦게 문을 열고 나섰다가 그만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끈질기기로 유명한 칠뜨기 박 선생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나 처음 봐? 이리 와 서.」

천재는 박 선생의 말이 이끌리듯 종섭의 뒤에 섰다.

「아---- 해봐.」

「아」

맨 앞에 섰던 달중은 조심스럽게 ‘아’ 했다. 다행히 연기가 나지 않았다.

「가봐.」

달중은 신이 나서 춤을 추며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모두 아----.」

촉새도 종섭도 문도도 연기가 나지 않는데 유독 천재만 연기를 쏟아 냈다.

「이거 완전히 굴뚝이잖아.」

박 선생은 천재의 머리를 쿵 소리가 나도록 쥐어박았다. 순간 종이 울렸다. 박 선생은 다른 아이들에게 가보라고 한 후 천재에게는 1시간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다짐을 한 뒤 보내 주었다. 천재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교실로 향했다.

(젠장. 담배 피는 놈이 한두 놈이야. 반에서 1/3은 하루 반 갑 피우는 골초들인데 재수없게 나 같은 놈만 걸린다니까. 기호품도 맘대로 사용 못 하는 게, 이게 어느 나라 법이야. 아니, 무슨 개뼉다귀 같은 교칙이야. 본드나 히로뽕보다 휠씬 낫지. 오락실보다 훨씬 경제적이지. 술 먹으면 싸우지만 담배 피울 땐 평화롭잖아. 얼마나 좋아. 그리고 누가 교실에서 피운대? 비 흡연자에게 방해될까 봐 변소 구석 아니면 뒷산 구석에서 신사적으로 피우는데 말야, 이거 이렇게 구박해도 되는 거야?)

궁시렁 궁시렁대며 교실 뒷문을 열고 천재가 들어가자 동시에 담임선생님은 앞문을 열고 들어섰다.




반장 준식이가 경례를 마치고 앉자 담임은 반갑지 않은 소식을 두 가지나 전해 주었다.

「내일 장학사가 온다. 그래서 대청소하는 관계로 첫 시간 학급회의 취소되고 한 시간씩 당겨서 수업한다. 두 시간 동안 청소하니까 자기 맡은 구역을 완벽하게 끝내 놓도록. 그리고 방위성금 2천원씩 내일까지 내도록 하지. 뭐 질질 끌면서 받으면 걷는 오빠 귀찮고 돈 없어지기도 하니까. 자, 그만.」

남학생들이 앉은 1,2,3분단에서도 여학생들이 앉은 4,5,6분단에서도 동시에 <어----> 소리가 나왔다. 동서진영이 이렇게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경우였다.

창수는 친구들의 한숨이 방위성금보다 대청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수의 한숨은 반대였다. 아버지 월급으로는 월세에다, 쌀값, 부식비 대기도 언제나 빠듯했다. 어머니가 파출부해서 번 돈으로 그나마 적금도 좀 붓고 식구들 옷도 가끔 사 입는 형편이지만 어머니는 하루 일 나갔다 오면 이틀을 끙끙 앓는 약골이었다. 창수는 자기 학비만은 신문 배달로 충당하려고 애써왔다. 그런데 학비 외에도 들어가는 돈이 수월찮았다. 환경미화한다고 천 원, 청소 도구 개비한다고 5백원, 방위성금, 불우이웃 돕기 성금, 보충수업비, 참고서비, 부교재대, 복사비, 스승의 날 선물 값... 사소한 명목으로 조금씩 걷어 가는 돈이 창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운동화 사려고 모으고 있는 돈에서 2천 원을 꺼내야 할 판이었다.


담임이 나가고 나서 첫 시간 시작까지는 한 8분의 여유가 있었다. 봉구는 옆 분단에 앉은 은주의 뒤꼭지를 쳐다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벌써 며칠째 망설이는 중이었다. 2학년이되어서 좋은 건 은주같이 예쁜 여학생과 한반에서 같은 공기를 숨쉰다는 사실뿐이었다. 은주가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은 들었으니 일단 은주의 호감을 사려면 지적인 면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제일 물어 보기 만만한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그러나 막상 은주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분한 얼굴로 국어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은주의 옆모습을 힐끗힐끗 훔쳐보자니 가슴이 더욱 두근거려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봉구는 우선 심호흡을 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은주야, 기다려라, 봉구가 간다.)

봉구는 마음속으로 은주에게 소리를 지른 후 문제집을 들고 은주에게로 다가섰다. 그런데 중배가 갑자기, 불쑥, 느닷없이, 돌연히, 우악스럽게 나타나 소꿉동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은주야> 하면서 은주 앞자리에 덜컥 앉아 버렸다. 그러더니 두 사람은 진지하게 책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봉구는 단추구멍 같은 눈이 더욱 옆으로 찢어지는 느낌을 자각했다.(어~렵쇼. 저 새끼, 낸 밥에 침 뱉네. 어휴, 저걸. 순진한 은주가 저런 소도둑에게 넘어가다니.)

심통이 잔뜩 난 봉구는 은주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는 바로 나, 봉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기껏 취한 행동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중배와 은주 곁을 왔다갔다하며 괜스레 책상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다.

책을 들여다보던 은주와 중배는 뭔가 심상치 않은 사태임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뱅뱅 돌고 있는 봉구에게 두 사람은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은주는 약간 놀라 새침한 눈길이었고 중배는 못마땅해 째려보는 표정이었다. 둘이 동시에 봉구를 쳐다보자 봉구는 머쓱해져서 반장을 찾았다.

「반장, 방위성금 오늘 내도 되냐?」

반장은 봉구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자 깜짝 놀랐다.

「내일 내. 한꺼번에 싹 걷게. 난 뭐 수금원이냐? 수금하다 내 청춘이 다 간다, 다 가. 방위성금도 온라인으로 부치던지, 지로용지로 내게 하든지 할 것이지. 귀찮아 죽겠다, 젠장.」

봉구는 반장의 대답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자기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첫 시간 시작종이 울려 은주와의 랑데부는 잠시 보류 해야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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