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누비는 금융전략가 J.P.모건 부사장 김수진
세계를 누비는 금융전략가 J.P.모건 부사장 김수진
  • 김두호
  • 승인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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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정치학, 컬럼비아대 MBA출신 M&A전문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미국의 종합금융투자은행 J.P.모건의 런던법인 부사장으로 활동하는 재미동포 크리스티나 수진 김(한국명 김수진 33) 씨에게는 할 일은 많고 세계는 좁다. 파라과이 이민동포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뒤 브라질과 홍콩에서 금융투자분야 사업 활동을 했고 지금은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다.


뉴욕에 본사가 있는 J.P.모건은 1838년에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투자기업이다. 창립자인 미국의 사업가 조지 피바디가 런던에 개점한 상업은행이 기초가 된 유래가 있어서 런던지사는 모건 직원들이 긍지를 느끼게 하는 근무처다. ‘2009 세계 한인 차세대대회’ 참석 등 모국 방문의 짧은 일정 속에서 <인터뷰365>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준 그녀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느낀 인상은 국경과 인종의 벽을 깨트리고 세계를 무대로 마구 날아다니는 언더우먼 같았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 크리스티나 수진 김의 꿈이고 인생관이다. 파라과이에서 미국으로, 그녀의 가족은 한국을 떠난 후 두 차례나 이주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밝게,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시원시원하고 속이 툭 트인 사람을 두고 화끈하다는 말을 한다. 당신의 첫 느낌이 그런 사람 같다.

하하하. 좋게 보았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겠다. 인터뷰 사진은 아주 예쁘게 나온 것을 실어주기 바란다.


대개 이주한 동포들은 영문 이름에 한국 성명을 약자로 넣지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크리스티나 수진 김’(Cristina Soo Jin Kim)은 누가 지은 이름인가?

아버지가 작명했다. 나는 19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의 고향은 한국이지만 나의 고향은 파라과이인 셈이다.


가족은 언제 이민을 가셨는가?

내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73년이다. 서울에서 건축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김태웅 69)는 어머니(김미자 64), 나에게 조부모님이신 부모님까지 모시고 모두 함께 파라과이로 가셨다. 그곳에서 양계농장을 경영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4살 많은 언니가 한사람 있다.


남미의 파라과이라면 정말 먼 나라다. 언제까지 그곳에서 살았는가?

내가 14살 되던 해까지 살았다. 우리 가족이 이민 올 무렵 남미로 개척이민을 오신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순시온에도 외롭지 않을 만큼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성당이나 학교에서 동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양계장을 하시기 전에는 점포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미국으로 다시 이주를 하게 된 동기는?

우리 자매의 교육문제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셨다. 1990년 미국 뉴욕의 퀸스로 이주해 아버지는 블루클린에서 스포츠화 점포를 운영하셨다. 나는 중학교 과정인 8학년에 입학해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이어서 과학고인 블롱스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예일대 정치학과를 다녔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금융비즈니스 쪽으로 진로를 바꾼 건가?

많은 생각을 했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미국에서 해볼 만한 가장 화려한 직업인은 금융 전문가라는 판단을 했다. 2004년에 컬럼비아대학원 MBA를 다닌 것도 나의 새로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 후 줄곧 J.P.Morgan에서 근무했는가?

아니다. 첫 일자리는 한국에서도 투자활동을 해 잘 알려진 메릴린치 뉴욕지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남미국가와 아시아 유럽지역의 투자컨설팅에 참여했다. 기업의 인수 합병문제(M &A)도 내 전문분야였다. 나는 스페인어권에서 자라 다른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잘한다. 그로인해 브라질지사로 파견근무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상파울루에서 2년6개월간 근무하며 브라질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의 투자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줄곧 혼자서 생활했는가?

그럼 미혼인데 누구랑 사나? 그곳에 있는 동안 별도로 숙소를 마련하지 않고 호텔에서 살았다. 혼자 생활할 때는 아파트나 주택보다 호텔이 편리하다.


엄청난 생활비가 들지 않는가? 도대체 연봉이 얼마인가?

쓰고 남을 만큼 받는다. 하하하. 지금 영국에서는 주택을 마련해 지내고 있다.


브라질에서 다시 어디로 간 것인가?

3년 가까이 머물자 남미(남아메리카)를 떠나고 싶었다. 회사나 주변사람들에게 ‘크리스티나 하면 남미통’이라는 인식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컬럼비아대학원 MBA를 할 때 세계적인 화장품메이커 에스티로더 CEO의 리더십특강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 국제 금융분야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이 기회의 땅이라는 지적이었다. 나는 우선 자신감에 생겼다. 아시아 인종이므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시아라는 것 때문이었다. 결심이 서자 내 전문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J.P.Morgan으로 근무지를 옮겨가며 아시아 파견을 지망했다. 처음에는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생각했다가 생활과 활동에 다양성이 많은 홍콩으로 바꾸었다.


꿈을 꿈으로 돌리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놀랍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앉아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홍콩의 2년6개월은 참으로 힘들고 한편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일벌레가 됐다. 서울과 싱가포르 중국을 오가면서 새벽까지 전화를 걸었고 휴일도 없는 일과가 반복됐다. 그럴수록 나의 에너지는 폭발한다. 일에 중독이 된 시간이 행복하니까.


홍콩에서는 얼마나 살았나?

그곳에서도 2년6개월이었다. 아마도 그 기간이 내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하는 주기성 기간인지 모르겠다. 그쯤에서 지루함이 느껴지고 다시 새로운 나라와 도시가 그리워지니까. 그래서 유럽을 그리워했고 생각대로 런던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혼자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하고 사는 것이 이젠 익숙해졌겠다.

가방 몇 개에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듯이 홀가분하게 떠난다. 미지의 나라와 도시를 향해 새로운 기대감을 가지고 떠나지만 낯선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다소 두려움도 따른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에는 정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스스로의 성격 덕분이 아닌가?

부모님에게 배운 정신이 인생을 멋있게 사는 것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배우고 하고 싶은 일도 여자라고 위축되지 말고 무엇이든 이루어가며 즐겁고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가 딸들에게 일러준 지침이다. 한국을 떠나 파라과이의 거친 땅을 개척하고 다시 딸의 장래를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이 나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신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 덕분에 성장기간 부러움 없이 공부를 한 것처럼 보인다.

틀린 느낌은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동포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을 하는 편인데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비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며 느낀 사회 특성이나 경험담을 듣고 싶다.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인간의 감정은 어디서나 서로 통하고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사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파라과이나 브라질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심성이 착하고 돈이 없어도 낙천적이고 즐기며 사는 기분파가 많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 같은 곳에서 살아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을 추며 인생을 엔조이할 줄 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국가다. 목표를 정해 달리면 원대한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보장이 된 나라로 틀이 잡혀 있다. 사업가가 되던 정치가가 되던.

홍콩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비즈니스 문화를 꽃피운 곳처럼 느껴졌다. 다른 아시안 국가와 달리 예의와 격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과거 영국의 보수적인 전통문화가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런던은 유럽의 중심도시답게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들어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엉켜 돌아간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수준도 가치를 느끼게 한다. 생활자체가 문화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식생활도 멋과 격조를 중요시 하는 곳이다.


부사장이라면 어떤 일을 하는가?

내 직책은 J.P.Morgan의 런던법인체에서 투자은행전략그룹 부사장이다. 투자 전략과 관련된 내 전문 분야의 일을 맡고 있다.


결혼은?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 동안 그쪽으로 눈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일생을 함께할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부는 함께 살며 삶을 공유하는 것인데 멋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크리스티나 수진 김은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났던 개척 이민동포의 정신을 물려받은 담대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한국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파라과이 출생의 이민 2세대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배운 한국어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구사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게 만드는 정돈된 화술과 친근감을 주는 표정은 고급 비즈니스 세계에서 체득한 인품처럼 보였다. 33살 처녀 크리스티나 수진 김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7백만을 넘어선 우리나라 해외 동포사회에서 자랑스러운 꿈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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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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