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 야망 가진 캐나다 장관보좌관 아그네스 김
국제정치에 야망 가진 캐나다 장관보좌관 아그네스 김
  • 김두호
  • 승인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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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 출전한 정력적인 활동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캐나다 정부의 이민 및 다문화부장관 보좌관으로 재직중인 아그네스 김(Agnes J M Kim 한국명 김정민) 씨는 전도유망한 25살의 재 캐나다 동포 여성이다. 어린 시절 피겨선수로 시작해 고교생 때는 클라리넷 연주와 치어리더 활동을 하고 대학생이 된 뒤에 미스캐나다를 선발하는 미인대회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이력이 있다.

자신이 바라고 하고 싶은 일에 맹렬한 실천력으로 꿈을 성취해온 이 만만치 않은 처녀는 캐나다 명문 오타와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한걸음씩 이상적인 여성 국제정치가의 꿈을 향해 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보수당 상원의원(캐나다는 선거로 뽑는 하원의원과 달리 상원의원은 연방정부의 임명직)이 된 연아 마틴(한국명 김연아 44) 씨와 함께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2009 세계 한인 차세대 대회>에 참석차 모국을 찾은 아그네스 김 씨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원대하고 무거운 포부를 가졌지만 느낌이 부드럽고 선이 고운 아가씨였다.



당신의 간단한 경력 소개를 보고 놀랐다. 정치학 전공에 장관 보좌관, 미스캐나다에 출전 경력도 있고. 현 직함은 장관보좌관인가?

그렇다. 이민정책을 관장하는 이민 및 다문화부장관 보좌관이다. 교통정보통신부장관 보좌관을 하다가 지난 2월에 옮겨와 제이슨 케니 다문화부장관의 일을 돕고 있다.


그곳 장관의 보좌관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내가 수행하는 일은 장관의 모든 일정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장관은 최소한 일주일에 20여개 행사에 초청받거나 참석하게 된다. 시간이 겹치는 일도 있고 꼭 참석해야하는 지의 여부나 행사 비중도 판단해야한다. 또 참석해서 만나야할 사람들과 나눌 대화나 연설까지도 챙겨야 한다. 때로는 장관을 수행해서 현장안내도 맡게 된다. 매일 아침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보좌관인 내가 그날의 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함께 근무하는 보좌관은 몇 사람인가?

모두 14명 정도인데 각자 맡고 있는 임무가 다르다. 나의 임무는 앞서 말한, 공식 스케쥴 관리들이다.


보좌관은 공개 채용을 통해서인가, 추천이나 임명에서 비롯되는가?

소속 장관이 필요에 의해서 요청하고 임명한다.




미스캐나다로 출전해 준결승 무대까지 진출한 경력이 특색있게 눈에 뜨인다. 대학시절 때의 얘기인가?

대학 졸업 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국회의원 비서로 있을 때 주변사람들의 추천과 권유로 미스캐나다 선발대회에 출전한 일이 있다. 그곳 상원의원도 후원을 해서 지망을 했지만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정치가가 꿈이었나?

아니다. 오타와대학에 입학할 때의 희망은 뉴스프로를 진행하는 똑똑한 여자 앵커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도중에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꾼 계기가 왔다. 캐나다 전역에서 15명의 대학생이 선발되어 상원에서 일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2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정치활동에 매력을 느껴 학과를 옮겼다. 그러나 지금은 캐나다 국내 정치보다 외교관이 되어 국제무대에서 일하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다.


언제 이민을 간 것인가?

초등학교 3학년을 앞둔 8살 때였다. 내가 다닌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초등학교 이름을 잊었다. 그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다.


어릴 때 배운 우리말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토록 한 부모님 덕분이다. 또 우리말을 안 잊어버리게 글쓰기를 시키셨고 한국에서 가져온 CD로 드라마도 많이 보았다. 교회에서 한국어 예배를 보고 만나는 한국인도 서로 한국말을 사용했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가?

우리 가족은 아버지(김수동 58)와 어머니(김명주 53) 그리고 언니(김정아 28)와 나까지 4명이다. 한국에 계실 때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셨고 이민 가신 후에는 10여 년간 밴쿠버에서 장난감 점포를 운영하셨다.


그곳에서 느끼고 겪은 학교생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이민을 오기 전 7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캐나다로 온 후에도 16살까지 피겨를 했다. 6학년 때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선수권대회에서 2등에 입상한 일도 있다. 8학년부터 11학년까지 반장을 하며 학교신문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음악반에 들어가 클라리넷도 연주했다. 그러면서 각종 경기에서 치어리더로도 활동하며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즐겼다. 공부도 열심히 한 덕분으로 12학년까지 다녀야 하는 고교과정을 10학년 때 월반해 1년 단축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고교까지의 학제가 12년제인가?

7학년까지가 초등학교 과정이고 8학년부터 12학년까지가 중고교 과정이다.


학창시절을 자유롭고 보람있게 보낸 것 같다.

10학년 때 프랑스 낭트로 3개월 간 어학 연수교육을 가서 프랑스어를 익힌 것이 성적에 반영되어 월반을 하게 된 것이다. 고교시절에 각 지역에서 선발한 학생대표에 포함되어 캐나다 정치학습 포럼 행사를 통한 국회의사당 방문도 사회활동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그 가운데 4명을 선발하는 캐나다 학생 대표단에 들게 되어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백악관으로 가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성공한 인물 중에는 어릴 때 만난 정치지도자에게 영향을 받아 관료나 정치를 지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하하,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래도록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취미활동을 하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캐나다의 교육환경이 부럽게 느껴진다.

학생들이 누구에게 구속당하거나 본인의 의사가 무시당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고교 졸업을 1년쯤 앞두고부터 진로를 생각하며 학과 공부를 그에 맞게 선택한다. 대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가 수업시간이다. 그밖에는 음악이나 운동 등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즐긴다. 그러나 대학에 일단 입학하면 다르다.


학업이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가?

누구든 무조건 대학은 가고 봐야한다는 생각은 안한다. 정말 좋아하는 학과를 제대로 선택했다면 전문지식의 습득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해야 된다. 나는 참 행복했던 것이 부모님의 지원으로 학비문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점이다. 그곳은 아무리 가정사정이 좋아도 대학 학비는 스스로 해결한다. 장학금을 받든지 학자금을 융자받든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대학을 다닌다. 나도 그런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어서 대학 2학년 때부터 절반은 장학금의 혜택을 받아내며 다녔다.


장관 보좌관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어떤 계기였나?

오타와대학 졸업 후 1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와 외교관 전문교육 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대학시절 상원에서 일하며 알게 되어 나를 잘 알고 있는 국회의원이 나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해왔다. 지금 어디 사느냐고 물었고 내가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함께 일할 수 있느냐고 제의해 왔다. 그래서 랜디 캠프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되면서 정부쪽과 인연이 된 것이다.


정부쪽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동포들이 많은가?

우리 부처에도 케네디 홍이라는 분이 있고, 외교부장관 보좌관으로 폴 홍이라는 분이 있다. 이번 <2009 세계 한인 차세대대회>에 함께 참가하신 상원의원 연아 마틴 씨도 7세 때 캐나다로 이민 온 서울 출신이다. 과거 밴쿠버에서 하원의원에도 출마를 했던 분이다.


그곳 우리 동포사회의 분위기를 전해달라.

우리 동포만큼 화합이 잘되고 서로 정을 나누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공동체 의식도 높다.


어릴 때 떠나 모국의 지금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캐나다에서 살며 그 나라가 정말 좋은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을 꼽고 싶은가?

의료보험이나 의료시설 환경이 좋은 것 같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어머니가 나에게 숨기고 유방암 수술을 받으셨다. 그것도 몇 차례나 받으셨는데 모두 의료보험과 의료진의 도움으로 완쾌하셨다. 나는 뒤늦게 알았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각종혜택과 사회 환경이 자랑할 만하다.



이민 후 모국방문이 처음인가? 이곳에 친척들이 있는지?

7년 전에 한번 다녀갔다. 서울에 이모 외삼촌댁과 큰아버지댁이 있다. 이번 방문은 일주일 체류예정이다. 아무리 바빠도 행사가 끝나면 모두 찾아뵙고 갈 생각이다.


결혼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해야지만 아직은 없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계셔서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그럼 한국계 남편이 이상적일 수 있겠다.

국적보다 나의 이상형은 야망이 있고 자기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나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성취하며 살아왔다. 어떤 분야든 성공할 수 있고 비전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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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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