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의 열기가 사라진 ‘퍼블릭 에너미’
‘히트’의 열기가 사라진 ‘퍼블릭 에너미’
  • 김다인
  • 승인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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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 갱단 몰고 나타난 마이클 만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중절모를 쓰고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톰슨기관단총을 든 그들이 돌아왔다.

1995년 영화 ‘히트’로 도시의 총격전에 관한 한 최고로 일컬어졌던 마이클 만 감독이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대신 조니 뎁, 크리스천 베일을 이끌고 1930년대 시카고에 나타났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대 배경은 1930년대다. 1930년대는 대공황의 시기로 ‘위대한 개츠비’의 신사숙녀 대신 시카고 갱 알 카포네가 주름잡았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굿 펠라스’ 등에는 나쁜 남자들의 에너지가 재즈를 타고 흘러넘쳤다.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는 1930년대 미국의 은행 강도 존 딜린저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대형 은행만 털고 고객들의 돈에는 손을 안댄다 해서 ‘로빈 훗’이라고도 불렸다는 존 딜린저에 대해 당시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퍼블릭 에너미(공공의 적) 1호’로 규정짓고 그의 체포에 총력을 기울였다.

영화는 존 딜린저가 석방된 지 8주 만에 재수감되면서 오히려 감옥 안의 동료들을 데리고 탈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존 딜린저 일당은 은행을 털고 도망가며 FBI 민완 수사관 멜빈 퍼비스는 그 뒤를 쫓는다. 그 과정은 상당히 건조하다. ‘히트’에서처럼 수사관과 은행강도 사이의 두뇌 싸움도 없다. 하지만 ‘히트’에서처럼 빼어난 총격전은 있다. ‘히트’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은 없는 것에 실망하고 있는 것에 안도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의 면면들은 화려하다. 몇 년 동안 바다에서 짙은 분장을 하고 해적 노릇에 재미를 붙였던 조니 뎁이 말끔한 얼굴로 존 딜린저를, 배트맨을 연기했던 크리스천 베일이 더 말끔한 얼굴로 멜빈 퍼비스를 연기한다. 그리고 ‘라 비 앙 로즈’에서 에디뜨 삐아프를 연기했던 마리온 꼬띨라르가 존 딜린저의 애인 빌리 역을 연기한다.

조니 뎁은 히피스럽고 자유로웠던 이미지를 다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의 갱스터로 재탄생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감독이 존 딜린저가 로빈 훗 같은 영웅으로 비춰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탓인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존 딜린저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데 인색하다. 빌리와의 짧은 사랑이 전부일 뿐 함께 은행을 터는 동료 갱들에 대해서도 산발적인 묘사가 전부다. ‘히트’에서 로버트 드니로와 발 킬머가 비록 범죄자이지만 관객들에게 이해를 받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조니 뎁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시카고 경찰청 ‘딜린저 전담반’ 사무실에 들어가 벽에 붙어있는 자신의 사진과 기사를 죽 훑어볼 때다. 실제 존 딜린저는 성형수술을 하고 법망을 피했다는데 이때 조니 뎁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동그란 선글라스에 콧수염을 기르고 등장한다. 감독이 왜 굳이 조니 뎁의 이같은 ‘포스’를 배제시킨 채 존 딜린저 연기를 하도록 주문했을까, 의문이 든다.

마리온 꼬띨라르의 연기는 취조실에서 형사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악담을 퍼부을 때의 클로즈업에서 빛난다. 이때 잠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보니 앤 클라이드)처럼 진행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연기는 강렬하다.



퍼비스 역의 크리스천 베일은 영화 내내 거의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초반 프리티 보이를 무참하게 사살할 때 보이던,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봤던 섬뜩함이 그 무표정 밑에 깔려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다면 영화 마지막 ‘퍼비스가 자살했다’는 자막에 좀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퍼블릭 에너미’를 기왕에 만들어졌던 갱스터무비의 과장되고 극적인 공식에서 빼내 건조하고 사실적인 곳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존 딜린저의 퇴장도 그가 마지막으로 보는 영화 ‘맨하탄 드라마’에서 주인공 클라크 게이블이 ‘폼나게’ 퇴장하는 여운에 평범하게 이어붙였다. 영화 속 영화 ‘맨하탄 드라마’는 마이클 만이 뛰어넘고자 했던 갱스터무비의 ‘전형’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만은 숱한 갱스터무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갱이나 그 애인, 그리고 그들을 쫓는 수사관들의 삶이 뭐 그리 대단하거나 극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시종일관 보여주고자 ‘히트’의 열기를 쫙 빼버렸다.

그것이 이 영화가 기대했던 것처럼 ‘쿨’하기는 하나 기대처럼 ‘핫’하지는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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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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