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를 향한 열정의 무한도전 강광배 감독
봅슬레이를 향한 열정의 무한도전 강광배 감독
  • 유성희
  • 승인 200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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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벤쿠버올림픽에 반드시 출전하겠습니다”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2008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아메리카컵 2차 대회에서 한국 팀이 사상 첫 국제대회 동메달을 획득할 때 전국민은 놀랐다. 전용 봅슬레이가 없어 500달러를 주고 빌린 봅슬레이에 태극기를 붙이고 출전한 그들을 향해 놀라움과 격려와 미안함을 합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 봅슬레이의 중심에는 선수 겸 감독 강광배(37. 강원도청)씨가 있다. 훈련할 경기장 하나 없이 아스팔트 위에서 연습하며 팀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강 감독의 모습과 봅슬레이를 어떻게 타는 건지는 얼마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접한 바 있다. 일본 전지 훈련에서 강 감독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훈련 모습은 ‘무한도전’의 예능인들마저 선수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강광배 감독은 대학시절, 알파인 스키선수로 활약하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인한 부상으로 스키를 그만둔 후 썰매종목인 루지로 재기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뒤 1999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스켈레톤에 입문해 2년 동안 오스트리아 선수로 뛰었다. 2002년에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2회 연속 출전해 20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으며 2003년부터 봅슬레이로 전향해 활약하고 있다.

현재 강 감독은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그의 현재진행형 고군분투기를 들어봤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쿨러닝’ 보셨나요?

봤죠. ‘쿨러닝’을 보면서 봅슬레이가 어떤 종목인지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는 왜 봅슬레이가 없을까?’ 생각했죠.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육상선수 출신 선수들의 실화잖아요. 작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들이 사실은 군인이었답니다. 그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존 모건이라는 배우가 현재 봅슬레이 프로듀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어요. 그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로 올림픽에 출전하려고 군인들을 선발한거라고 하더라고요. 드라이버(봅슬레이 조종자)는 실제 헬리콥터 조종사였고요. 영화로 제작하면서 육상선수 출신 선수들로 시나리오를 수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듣는 이야기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웃음)


봅슬레이가 여전히 국내에서 생소한 스포츠입니다. 봅슬레이는 어떤 스포츠인가요?

자동차 경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격렬한 스포츠라는 점에서 동계올림픽 F1(포물러1) 경기와 비유되곤 합니다. 봅슬레이 썰매는 엔진은 들어가 있지 않지만 속력을 단축시키기 위한 공기저항을 감안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과학 그 자체입니다. 2인승 4인승 종목으로 단체경기이다 보니 호흡도 잘 맞아야 합니다. 스타트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선수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썰매를 힘껏 밀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코스를 잘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이때는 드라이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코스는 보통 14개에서 20개 정도의 코스가 있는데 실수가 있게 되면 그만큼 속력이 줄어드니까 모든 코스를 끝까지 잘 타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처음 봅슬레이 탔을 때 기억하세요?

2002년 오스트리아 유학하면서 스켈레톤 선수로 활동하고 있을 때인데 봅슬레이 하던 친구가 태워준다기에 2인승을 처음 타게 됐습니다. 제가 루지와 스켈레톤을 했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고, 스타트 할 때 같이 밀어주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니까 청룡열차 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처음 타본 사람들 중에는 구토증상 일으키기도 하고, 빠른 속도에 겁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두려움이 있었다면 운동을 못했겠죠.


봅슬레이 부상은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경기하면서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적는 언제였습니까?

루지와 스켈레톤는 전복되면 썰매와 선수가 분리 되지만 봅슬레이가 전복되면 썰매에 깔린 채로 내려가게 되어 부상의 정도가 큽니다. 봅슬레이를 타면서 저 또한 수없이 전복됐는데 이번 미국 레이크플레시티 대회에는 심하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 실수로 전복됐는데 썰매 밖으로 어깨부위까지 나온 상태로 내려가게 된 겁니다. 봅슬레이가 전복되면 4명의 선수가 똑같이 썰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수 한 명이 많이 들어간 만큼 나머지 선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부상이 발생되는 거죠. 근데 썰매가 뒤집히면서 이놈들이 먼저 싹 들어 간 거야. 하하. 저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 거죠. 썰매가 전복되면서 공포심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120km 속력으로 달리다 전복됐는데 이리저리 쓸리면서 내려오다가 반대쪽으로 틀어지는 코스에서 머리가 끼면서 멈췄습니다. 그 충격으로 반 의식을 잃었는데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저는 목뼈가 다 나간 줄 알았습니다.(웃음)



사고를 당하면 봅슬레이를 다시 타기 두렵지 않나요?

두렵죠. 그때만큼은 정말 봅슬레이가 타기 싫더라고요. 예전에 전복됐을 때는 내 실수였기 때문에 약이 올랐어요. 근데 이번에는 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치니까 겁이 나더라고요. 근데 이틀 지나니까 또 타고 싶던데요. 저는 선수 겸 지도자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됩니다. 우리 선수들이 배워가는 과정인데 제가 전복됐다고 포기한다면 선수들 의지만 상실시키죠.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선수들도 강해진 모습을 보여줬고요.


순간의 실수가 자칫 위험한 사고로 이어져 욕심내면 오히려 위험하겠네요.

그럼요. 시합 전 제 자신이나 선수들에게 잘 뛰라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음을 비우라고 항상 얘기하죠. 근데 그 마음을 비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운동한 선수들에게 마음을 비우라고 주문하면 항상 이 말이 새롭게 느껴진답니다.



동계올림픽 썰매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세 종목으로 나뉜다. 봅슬레이는 강철제 썰매로 활주하는 경기로 출발선까지 평탄부의 도움닫기로 평균시속 130~140km로 스피드를 낸다. 남녀 2인승과 남자4인승 세 종목으로 나뉘며, 드라이버(조종자)와 브레이크맨(제동자), 푸셔(4인승 경기에서 2,3번째로 타는 선수)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켈레톤은 봅슬레이에서 추가된 종목으로써 머리를 정면으로 향한 채 엎드린 자세에서 활주용 썰매를 타고 얼음 주로(走路)를 내려오는 경주이다. 각각 남녀 1인승경기가 있으며, 1928년과 1948년 장크트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위험하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54년 만에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루지는 나무나 쇠로 만든 썰매를 누워서 타는 경주로 남녀1인승 남자2인승 경기가 있다. 핸들은 없고 가죽으로 된 고삐를 손목으로 당기고 발목으로 누르면서 조종한다. 브레이크가 없으므로 골인한 후의 코스는 오르막으로 만들어져 있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FIBT)과 루지 국제루지연맹(FIL)으로 나눠져 있다.



한국 사람이 봅슬레이 하는데 장점이 있습니까?

썰매종목이 비인기 종목이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땐 우리나라 최고 인기스포츠가 아닌가 싶어요. 썰매 안타본 사람이 어디 있어요.(웃음) 한국스키의 역사가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보행이 목적이었고, 이후에 차츰 수렵과 이동수단의 역할로 범위가 넓어진 거죠. 썰매가 우리의 정서와 밀접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시골에서 자랐단 사람이라면 누구나 썰매를 다 타봤잖아요. 저 또한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처음 탔을 때는 어린 시절, 정서가 살아나는 듯해 정말 재밌다고 느꼈어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요?

스타트가 부족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다 느린 건데, 우리가 스피드는 빠르기 때문에 스타트만 세계랭킹 10위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브레이크맨들은 몸집이 괴물 같은데 순간의 집중력을 위해서 선수 대기실에서 자기 몸을 때려가면서 기합을 넣는 모습을 보면 정말 엄청납니다.


스피드를 내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몸이 오히려 날렵해야 하지 않나요?

아니예요. 혼자 뛰려면 몸이 날렵한 게 유리하지만 170kg의 봅슬레이를 밀고 뛰려면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치고는 제 체형이 큰 편이지만 유럽 선수들의 평균 체형이 저와 같습니다. 힘 있는 선수들을 선발해서 부족한 스타트를 채워야합니다.


전직 육상선수, 역도선수, 보디빌더 출신, 현역 장대높이뛰기 선수 등 선수들의 이력이 다양합니다.

처음 선수 선발을 할 때는 제가 학교에 강의 나가면서 관심 있는 선수들 몇 명을 꼬신 겁니다.(웃음) 근데 기량이 좋은 선수들은 스카우트하기가 참 힘들어요. 종목을 전향할 때는 실업팀이 보장된다던지 올림픽 출전의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봅슬레이를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자 선수들의 경우엔 태릉에 있을 때 역도국가대표 코치에게서 부탁해 은퇴한 선수들을 소개받기도 했습니다. 선발된 선수들에게는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 없는지’ ‘올 때 친구도 같이 데리고 오라’는 식으로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봅슬레이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군요.

2인승 봅슬레이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각자 스켈레톤을 하고 있습니다. 스켈레톤 선수들에게 추천을 해 시켜봤는데 쉽지가 않았죠. 많이 뒤집어지고 다쳤습니다. 6번을 탔는데 5번을 뒤집어졌으니 선수들이 얼마나 겁을 먹었겠어요. 제 욕심이 너무 앞섰다 싶었죠.


감독과 선수를 병행하면서 다른 나라 코치진으로부터 의견을 물어보며 여기저기 귀동냥 눈동냥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에게 외국인 코치는 다 제 코치진과 마찬가지입니다. 썰매를 타고나면 내려왔던 코스를 걸어 올라가면서 코스를 익힙니다. 그 중간 중간에 코치들이 서 있는데 선수들은 각자 자신들의 코치에게로 가 조언을 듣습니다. 모두가 경쟁자이다 보니 자기 선수 외에는 다른 선수들에게는 코치를 해주지 않는데 저는 무조건 가서 물어봤어요. 미국 코치에게 가서 ‘혹시 내가 타는 것 보지 않았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못봤다면서 일부러 안 알려줍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물어볼 때부터는 조언을 해주는데, 혼자인 저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인 이유도 있지만 선생님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공부하는 학생이 질문하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 학생이 참 예뻐 보이잖아요. 이제는 코치들이 저에게 먼저 와서 코치를 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적이 좋았을 때는 그들이 같이 기뻐해주기도 했겠네요.

그럼요. 지금은 어느 경기장을 가든 외국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고, 우리 선수들을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하니 고맙죠. 국제대회 나가면 일본 선수들은 조용히 있는 반면, 우리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과 얘기하면서 허물없이 지냅니다. 전지훈련 나가면 선수들에게 훈련 외에 오전에는 영어공부를 시키는데 운동 중에도 일부러 외국인 코치들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외국인 코치진이나 선수들과 친해지면서 도움을 받으니 경기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죠.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94년 스키 선수로 부상을 입으면서 루지로 전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걸 보면 제 경우엔 운이 많이 작용했어요. 운동선수라면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보는 게 꿈 아니겠습니까. 사실 제 스키실력은 국가대표 할 정도는 못되었어요. 뭐든 하다보면 자기 한계를 느낄 때가 있잖아요.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스키를 그만두고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로는 최고가 돼보자’ 생각을 했죠. 그때 마침 부상을 입었는데 크게 다칠 일이 아니었는데 무릎 십자인대파열로 장애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운동하기 힘들 거라는 진단을 받고는 절망에 빠졌죠. 6개월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우연히 루지 선수 선발공고를 봤는데 누워서 타는 썰매종목이니 무릎 부상과는 관련이 없겠다 싶어 이건 내 종목이다 싶었죠. 그렇게 루지를 배워서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 나가 제 꿈인 국가대표를 이뤘습니다. 스키는 죽어라 해도 될까 말까 했는데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웃음) 돌이켜보면 부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루지를 하면서 또 한번의 역경을 겪었는데 세대교체를 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대표 선수 3명 모두 퇴출을 당한 겁니다. 당시 제 나이가 24살, 후배 두 명이 22살, 20살이었는데 억울한 경우였죠. 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한 뒤 외국 선수들보다 실력도 많이 뒤떨어지고 우리나라에서 훈련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 정황상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그때 도착한지 3개월 만에 한꺼번에 시련이 닥쳤는데 국내 루지연맹으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선수 제명을 통보 받았고, 무릎 부상을 당하며 병원에 입원하게 됐어요. 비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러다간 한국으로 쫓겨날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제 모든 꿈을 접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엄습하면서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마침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꿈자리가 좋지 않다고 별일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머니들에겐 그런 직감이 있잖아요. 그때의 상황을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 어머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더라고요.(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우는 내색 비추지 않고 전화를 끊고는 이대로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렇게 마음을 독하게 먹으니 그 모든 시련들이 우습게 느껴지더라고요. 모든 문제를 이 악물고 해결하는 6개월 동안 자신감이 많이 회복되면서 또 다른 인생의 길 스켈레톤을 찾게 되었습니다.




루지를 못 타게 되면서 스켈레톤으로 전향한 거군요.

그렇죠. 루지는 제 의지대로 그만둔 게 아니었어요. 스켈레톤은 담당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시작했는데 당시 스켈레톤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54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부활하면서 저에겐 다시 국가대표의 꿈을 꿀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우리나라에는 스켈레톤 연맹이 없어서 오스트리아 소속 선수로 뛰었는데 루지를 탔던 경험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배우게 됐습니다. 대학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오스트리아 신문에도 실렸는데 제 별명이 ‘코리아 번개’였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오스트리아 선수로 뛰다보니 내 나라 선수로 뛰지 못한다는 게 안되겠다 싶어 국제연맹에 문의를 한 후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승인을 받아 정식 가입을 했습니다. 국제연맹에서 몇 년 동안은 제가 회장인 줄 알았어요. 혼자 총회에 참석하고 선수로 뛰면서 자비로 움직이니까 주위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느꼈는지 국제연맹에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오스트리아 팀에서는 대회 출전할 때면 같은 차에 저를 태워주기도 했는데 제 입장에서는 경비를 줄일 수 있어 고마웠죠. 어딜 가든 잘하는 팀 선수들이 항상 시끌벅적 하잖아요. 오스트리아는 세계 최고의 팀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면서 기죽을 일은 없었죠.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위원회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2002년 솔트레이트시티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출전하면서 당시 올림픽 신문 1면 표지에 실리게 됐습니다. 코치 없이 혼자 올림픽에 참가한 제 상황에 관심을 가졌던 기자가 취재를 하게 된 건데 그 기사를 대한체육회 직원들이 보게 된 거죠. 고생 많았다며 칭찬을 하셨는데, 그때 2010년 평창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대한체육회 단장님께서 저를 추천한 겁니다.


평창 일을 계기로 강원도청과 인연이 닿은 거로군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려 했는데 강원도청에서 팀을 만들어 주신겁니다. 스켈레톤은 저 혼자인데 강원도청에서는 팀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봅슬레이로 팀을 만들겠다고 제안을 했죠. 루지 국가대표로 함께 훈련했던 이기로, 이용 선수를 영입하면서 2개월 만에 팀을 구성하게 됐습니다.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까지 우리나라 썰매종목의 개척자이니 만큼 무엇보다 자부심이 클 것 같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요.

그렇죠. 국제대회에서 3위를 한건 처음이었으니까 조금씩 희망이 보입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이후에 국내 봅슬레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지원하는 선수들 또한 많아졌습니다. 아직 국내여건은 어렵지만 이제는 좋은 성적을 내는 일 밖에 없지요. 1차 목표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일인데 아시아에 주어지는 1장의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겨야 합니다. 동계올림픽을 두 번 유치하고 기반 시설이 좋은 일본에 비해서 저희가 같은 수준의 경기를 펼치고 있으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시설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 않나요?

물론 경기장 없는 종목으로는 국내에서 봅슬레이가 유일하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시작했지 않습니까. 8월에는 스타트 연습장이 완공되고, 단지 국내에 경기장이 없을 뿐인데 그 많은 예산을 들여가면서까지 경기장을 만드는 건 저도 반대합니다. 제가 좋아해서 시작했던 운동을 한발 한발 다가간다는 느낌에 뿌듯합니다.


아무래도 가족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됐을 것 같은데요. 가족 얘기가 궁금합니다.

아내는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2006년 스켈레톤 선수시절 연합뉴스 기자였던 아내가 저를 취재하게 되면서 만나게 됐어요. 봅슬레이 트랙을 걸어올라 가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추운 날씨에 옷을 얇게 입고 와서 꼬치꼬치 물어보며 취재를 하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안쓰럽더라고요.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저보다 스켈레톤이 멋있었다고 하던데요. 하하. 남편으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제 운동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이해를 해주니까 미안한 구석이 많아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이 1년 남짓 남았습니다.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10월부터 2009-2010 대회 시즌에 들어가게 됩니다. 12월까지 시즌 잘 마치고, 트랙타고 올림픽 나가는 게 계획이죠. 운동선수라면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을 꿈꾸는데 저 또한 그 꿈을 꾸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아직 올림픽 메달이 없으니 계속해서 달리는 거죠. 하하. 올림픽에 출전해서 깜짝 놀랄 성적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목표입니다.




오는 10월부터 월드컵, 아메리카컵, 유럽컵 국제대회 시즌이 시작된다. 2010년 1월 17일까지 7개 대회의 포인트를 합산해 국가랭킹 17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 배당된 1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려면 일본과의 경쟁은 필수적이다. 이에 강광배 감독은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출전권 확보를 목표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현역 선수로만 뛰게 되었다. 감독 직함을 벗고 선수로 복귀한 그와 국가대표 선수들은 6월부터 본격적인 하계 훈련에 돌입한다. 그들의 봅슬레이가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질주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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