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을 움직인 <박쥐>의 날개짓 배우 송강호
칸을 움직인 <박쥐>의 날개짓 배우 송강호
  • 이승우
  • 승인 20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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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부는 장면은 꼭 기억해달라” / 이승우




[인터뷰365 이승우]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형제나 다름없는 가장 정다운 친구이자 최상의 동료인 송강호에게 영광을 바친다”며 모든 공을 송강호에 돌렸다.
<박쥐>에서 신부 역을 맡은 송강호는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2007년 <밀양>,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9년 <박쥐> 등 출연작이 4년 연속 칸 초청을 받았고, 올해에는 남우주연상이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터였다. 하지만 송강호는 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굉장한 영광이지만 솔직히 <박쥐>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싶다”는 말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바 있다.
칸에서도 동행한 딸을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고, 길에서 만나는 유명감독들이 되려 싸인을 요청할 때마다 부끄러워하며 특유의 미소로 화답했던 송강호.
프랑스로 떠나기 전 햇살 좋은 카페 테라스에서 만난 송강호는 아직은 떠나보내기 싫다는 ‘박쥐’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10년간 기다려온 시나리오였다고 들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으면서 들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다르긴 하다. 본인의 손에 의해 타인의 생명이 좌우된다는 점에선 같은 맥락의 캐릭터지만 그때 상현은 신부가 아니라 의사였다. 최종 시나리오는 작년에 중국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찍을 때 팩스로 받았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영화로 만들었을 때의 느낌까지 모두가 틀리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고급스러운 것 같다. 독특한 느낌도 들고.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 ‘사랑’이란 테마가 이렇게 강렬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좀 강하지 않나. 완성되고 나서는 애절하고 부드럽고, 약간 뭉클하기까지 하다.

박찬욱 감독과는 여러 번 작업했지만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 자체만 봐서는 더욱 강렬한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불륜코드가 들어가서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넌센스적인 상황이나 파격적인 노출, 또 인간의 구원을 다루는 진지함까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점이 <박쥐>의 특별함이자 장점이다. 혹자는 전혀 다른 영화들이 한 영화에 몰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런 균일하지 않은 <박쥐>의 느낌이 나는 너무 좋다.

사실 송강호가 뱀파이어라는 설정이 좀 넌센스처럼 보여 지긴 했다.
게다가 내 생애 첫 베드신이었다.(웃음) 내가 벗는다고 없던 섹시함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치정멜로이다 보니,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겉모습이 너무 튈 것 같았다. 하지만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고, 상현이란 캐릭터가 가진 특별함을 뒤집어 보는데 의의를 두자는 편한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박 감독님하고 생각이 통했다.

전작인 <괴물>이나 <우아한 세계>, <밀양>에서 보여준 연기가 소시민들의 가진 리얼리즘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면, <박쥐>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설정부터가 판타지적이다.
예를 든 전작들의 경우 현장의 생동감을 살리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박쥐>는 단 한번의 애드리브 없이 촬영한 영화다.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걸 올인 했던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와 대사가 살짝 바뀐 부분은 있다. 하지만 장르가 틀리니 전혀 다른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연기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영화에 대한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는 편이다.

크랭크 업이 된 후 후반 작업 시간이 유난히 길었지 않나.
촬영 끝나고 6개월간 공을 들였다. 음악이나 색감이 다른 영화보다 더 손가는 게 많았다. 사실 배우들은 후반 작업할 때 별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작품에 애정이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 각별해서인지, 그 6개월 동안 박 감독님 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계속 <박쥐>에 매진했다.



한 작품이 끝나면 특히 결혼한 배우들은 쉬면서 가정생활에 매진하지 않나.
글쎄... 딸이 올해 열살 됐다. 학교 다니니깐 이제 나랑 안 논다.(웃음) 워낙 바깥일을 하니까 사실 시간이 있어도 등 하교 도와주는 것뿐이다. 위가 아들인데, 4년 차이 난다. 내가 형제로 자라서인지, 남매가 더 나은 것 같다. 남자끼리는 싸우기만 하고.

가장이 아닌 배우로서 고민을 많이 했을 작품이기도 하다. 수위 높은 노출 신으로 화제가 됐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독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선택이었고, 후회는 없다. 자신을 신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현의 심리가 정말 이해되더라. 누가 진정한 순교자인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신이기도 하고.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영화라면 <박쥐>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박쥐>는 어떤 영화인가를 묻는 거였다. 그 질문에 항상 사랑영화라고 대답해 왔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박쥐>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사회적으로 정의된 도덕과 삶의 질문들이 녹아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그걸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영화를 보는 행위를 막아서는 것 같다.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박쥐>가 지닌 장점과 지향점을 그냥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가 뭐 이래?’라고 생각하다가도 ‘아, 영화다운 영화 한편 봤구나’ 싶은 관객들도 있는 것 아니겠나.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상대 여배우인 김옥빈에 대한 극찬이 남다르다.
절대 과장하거나 미사여구를 한 게 아닌데 유독 극찬했다는 표현을 많이 쓰더라. 내 개인적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박찬욱 감독부터 나까지 옥빈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한 걸로 보도됐다. 사실 그건 약간의 선입견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감독님이나 나나 느낌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지, 특별하게 코멘트하지 않았다. 그건 배우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과장되게 말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나 역시 그냥 옥빈이에 대한 소감을 말했을 뿐이다.

김옥빈에 대해 칭찬을 했다는 것은 대 선배인 송강호 앞에서 긴장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왜 긴장하지 않았겠나. 부담과 긴장도 엄청났겠지만 그만큼 자신있게 <박쥐>에 뛰어든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이 또 부담감 안 느끼고 연기하게 만들어주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김옥빈도 주위 우려와 다르게 정말 잘 적응하고 전혀 부담감 없이 연기했다.

실제로는 19년 차이다.
영화 보면 알겠지만 나이차가 그다지 표가 나진 않는다. 성숙한 유부녀로 나온다. 폭이 넓은 거다. 나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연기를 했다는 거니까. 김옥빈이라는 배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뛰어난 거라도 할 수 있고.

필모그라피를 보면 초반 영화들에서는 코믹한 연기를 많이 하다가 진중한 연기로 성공적 전향을 한 케이스다. 애초 연극에서 영화로 건너올 때는 어떤 생각을 했나.
이런 식의 유명세를 얻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일을 어떻게 예상하고 살겠나. 사실 나는 영화 자체가 오래 전부터 꿈이었다던지, 영화배우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냥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연극을 처음 시작하고 배우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지, 연극 경력을 쌓아서 영화로 진출하고, TV로 나가 스타가 돼야겠단 생각을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웃음) 근데 영화자체가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 같다. 스스로 노력한다던지 다가가려고 하진 않았다. 영화를 하고 나서는 좋은 작품과 좋은 감독 배우들을 만났고, 어떻게 보면 그런 것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요즘도 술자리를 많이 갖는 편인가? 아무래도 신부 역할이다 보니, 술을 많이 못했을 것 같은데...
내 취미가 설렁설렁 촬영장을 누비면서 사람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거였는데 요즘에는 많이 못 마신다. 예전엔 진짜 많이 마셨다. 마흔이 넘으니 심적으로는 여전히 많이 먹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간다. 그래서 요즘엔 적당히 마시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신부를 맡았어도 촬영 끝나고 가볍게 둘러앉아서 먹긴 했었다. 이제 밤새도록 마시고 그런 시기는 지났으니까.

의외로 사제복이 잘 어울리더라.
그러게.(웃음) 옷 자체가 어색하진 않았다. 영화 속에서 양복을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 사실 사제복이라서 좀 이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입어지더라.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건 리얼리티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상현이란 캐릭터에서 가장 살리고 싶었던 사실성은 뭐였나.
요즘엔 리얼리티보다 느낌인 것 같다. 배우가 느끼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지시를 하더라도 연기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감독이 먼저 디렉션을 해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가 없다. 머리로 계산을 하게 되고, 아무래도 어색해진다. 좋은 연기는 스스로 느껴야 된다. 그래서 상현에게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을 살리고자 애썼다. 상현은 피를 갈망해도 살인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신부니까 도덕성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종교적 신념에 빠진 뱀파이어라는 설정에 녹아들고자 애썼다.

차라리 <남극일기>처럼 몸이 힘든 게 나은가.
한국영화에 없었던 새로운 영화이고, 내 스스로도 처음 해본 영화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 있게 연기하는 게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설사 나에게는 생소하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신부나 뱀파이어 같은 상황에 다가가야지, 소극적으로 다가갔다면 <박쥐>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송강호에게도 연기가 안 되는 순간이 있나.
물론이다.

<박쥐>에서는 어떤 부분이 안됐나.
초반에 리코더를 부는 장면이다. 그게 아주 사연이 많다.(웃음) 원래 시나리오에는 실제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안일하게 본 거지. 흉내만 내면 사운드 입히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흉내도 원곡을 연주해 봐야 손가락이 맞는 건데, 너무 쉽게 봤던 거다.

감독님에게 혼났겠다.
혼났다. 그래서 죽도록 연습을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갔더니, 그게 너무 가짜라는 게 표가 나더라. 그래서 선생님께 사사를 받고 겨우 오케이를 받았다. 그때 진짜 많은 생각이 스쳤다. 스태프들이 모두 나를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대기 한 건데 ‘내가 안일하게 준비하는 바람에 일을 망쳤구나’란 생각에 부끄러웠다. 현장에서 연습하느라 너무 고생한 기억이 난다.

이제 상현에게서 좀 벗어난 것 같나.
나는 <박쥐>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이름을 참 좋아한다. ‘태주’라는 이름이 좀 남자 같지 않나. 솔직히 ‘주’만 보면 여자지만, 앞에 ‘태’가 붙어서 인물 자체가 신비롭고 모호하게 나온 것 같다. 예를 들어 순자나 영미라고 했으면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하는 거지. 반면 상현은 진짜 옆집에 살던 친구 같은 이름이다. 모범생 같은 반듯한 이미지고. 왠지 항상 옆에 있을 것 같다.



와이어 연기도 경험했다.
거기에 대해서도 긴 사연이 있다. 사실 난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라 밤 촬영이 아주 고역이다. 부산에서 그것도 엄청나게 추운 밤 와이어를 타야 되는데, 진짜 아프고 너무 힘들었다. 나중엔 쓸려서 피가 다 나고, 벽에 부딪혀서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다. 와이어가 쉬운 촬영은 아닌 것 같다. 극중 맡은 역할은 밤에만 활동하는 뱀파이어인데, 나는 밤엔 거의 죽은 듯 있으니. 몇 배로 더 힘들었다. 반면에 박찬욱 감독과 옥빈이는 아주 날아다녔다. 둘 다 저녁형인간이어서.(웃음)

영어 제목이 바뀐 걸로 알고 있다.
국내 제목은 10년 전부터 <박쥐>였고, 영어는 원래 'Night Evil'이었다. 악마는 살아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지었는데, 칸에 가게 되면서 'Thirst'로 수정됐다. 갈증이라는 뜻이니, 더 잘 맞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이 장면 하나만은 꼭 보라고 한다면.
리코더 장면.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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