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기초연기의 결실 ‘찌질이 정교빈’ 배우 변우민
15년 기초연기의 결실 ‘찌질이 정교빈’ 배우 변우민
  • 김우성
  • 승인 200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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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영화, 그중에서 다큐멘터리”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몇 해 전부터 '막장드라마'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 평생 겪을까 말까한 에피소드가 수십 분에 한 번씩 벌어지곤 한다.

요즈음 ‘막장 드라마‘로 불리며 매일 저녁 높은 시청률로 주부들 지지를 받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SBS 일일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아내의 유혹>은 드라마의 리듬을 이전보다 몇배속 빠르게 했다는 점에서, 또 매회 다른 사건이 벌어지는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는 점에서 이전의 드라마와 차별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김용건, 김동현, 윤미라, 정애리, 금보라, 최준용, 장서희, 변우민, 김서형 등 베테랑들의 호연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 가운데서도 변우민의 '찌질이 남편' 연기는 모 통신사 광고에까지 인용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MBC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 이후 2년여 만에 드라마로 컴백한 변우민으로서는 컴백 홈런을 친 셈이다.


SBS 일산 탄현제작센터에서 <아내의 유혹> 촬영 중간 짬을 내 가진 변우민과의 인터뷰는 긴박하게 주어진 시간과 달리 느긋하게 진행됐다. 꾸밈없고 천천히 말하는 그의 화법 때문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제작진이 촬영을 재촉하는 가운데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연기관을 진지하게 풀어냈다.



최근 <내조의 여왕>으로 컴백한 김남주와 연인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남자대탐험>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요! 남자 얘기. <남자대탐험>. 여기 오세강 감독이잖아요.(웃음) 제가 <아내의 유혹>을 하게 된 것도 이 형(오세강 감독) 때문에 하는 거예요. 이 형과 작품으로 인연을 맺은 게 <남자대탐험>이거든요.


오 감독과는 몇편이나 드라마를 같이 했나요?

다섯 편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서로 얼굴만 봐도 아는 거지. 저한테는 친형 같은 존재예요. 실제로 제 친형하고 친구고.(웃음) 예전에 서울대 문리대 3인방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우리 형, 한 명이 오세강 감독, 그리고 또 한 명이 지금 <아내의 유혹> 고흥식 CP... 이렇게 세 사람이 친구예요.


그럼 친형도 방송계에 종사하나요.

아니요. 친형은 지금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고요. 저는 이 두 형들이 방송계로 올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그저 대학 때 얼굴 많이 보던 형들이었죠. 그래서 이 형들과 작품을 하면 묵시적인 신뢰감이라고 할까요. 믿음이 있어요. 또 캐스팅에 있어서도 제가 하지 못할 역할에 대해서는 절대 캐스팅을 안 하겠다는 서로의 약속도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해요. 이번에도 '이번 역할은 네가 확실히 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하기에 "나 진짜 이거 할 수 있겠냐. 못하겠다"라고 했었어요. 하하. 다짜고짜 '해봐라'하면서 친형 같은 사람이 협박하는데 어쩌겠어요. 믿고 했죠.


역할은 부담스러워도 편하게 시작했겠어요.

그럼요. 여기 스탭들도 옛날 <남자대탐험> 스탭들 그대로거든요.


<남자대탐험>은 정말 재밌는 드라마였어요. 그때 조연들까지 다 기억나요.

이 친구도 있었잖아요. 여기(아내의 유혹) '구강재'로 나오는 최준용. 당시 준용이가 제 친구 역할이었고 성현아씨도 나왔잖아요. <남자대탐험>에서 성현아씨 캐릭터가 지금의 오영실씨예요. 어리숙하고 졸졸 쫓아다니고.(웃음)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반 즈음 박상원씨와 함께 출연한 드라마도 있었지요?

(반색하며) 서울시나위! 송지나 작가가 쓴 거예요. 제가 드라마를 계속 하게 된 이유가 송지나 작가 때문이에요. 처음 시작한 드라마(세노야)의 작가가 송 작가였어요. 첫 작품 끝나고 저에게 '너 계속 해봐라' 하면서 권유를 했고, 그래서 출연한 두 번째 드라마가 <서울시나위>예요. 역시 송 작가 작품이고요.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다가 지프차 훔쳐서 무작정 떠난다는 내용의, 우리나라 최초의 로드무비였어요.

맞아요, <서울 시나위>. 박상원씨와 둘이서 지프차 타고 다니던 모습이 멋졌어요.

드라마 상에서도 직접 운전을 해야 했기에 초창기 우리나라 레이서들에게 찾아가 6개월 간 연수를 받았어요. 그때 배운 걸로 지프차 직접 정비해가면서 끌고 다녔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정말 산꼭대기서부터 바다 끝까지 전국을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길이 잘 뻗어있을 때가 아니어서 고생도 심했겠네요.

그런 게 오히려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촬영 중 만난 사람들도 드라마인 줄 모르고.. 진짜 재밌었어요.(웃음)


동승한 박상원씨는 점잖은 캐릭터였죠?

사실 캐릭터가 달랐었어요. 원래대로라면 상원이 형이 까불어야 하는데, 그 형이 그걸 못해요. 하하. 그래서 제가 까부는 걸로 바꿨죠. 당시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었어요. 양아치라는 캐릭터가.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해를 못했어요. 그때는 정석을 벗어나는 게 없었잖아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쇼킹하게 받아들여졌죠. 지금 <아내의 유혹>도 그래요. 정석을 벗어나는 게 말이죠.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예요. 당연한 건 정석이 아니다!(웃음)


배우로서 <아내의 유혹>에 대해 어떤 매력을 느끼는 지 물으려 했는데, 바로 알겠네요.

하하. '일일드라마라고 하면 당연히 이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아내의 유혹>에는 그런 게 없어요.


예전에 반항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청춘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아내의 유혹>으로 정교빈 캐릭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졌는데요.

찌질이가 됐죠. 하하하. '어?'하는 반응들이었어요. 망가져서 왔으니까.


그로 인해 '청춘' 변우민은 이제 완전히 끝난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은 없었나요?

저는 오히려 청춘이라는, 청춘스타라는 개념이 저에게서 빨리 없어지길 바랐었어요. 그때는 어서 청년이라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였죠. 그런데 최근에 '저 사람이 저렇게 나이 많을 줄은 몰랐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특히 젊은 팬들이 해주는 그 말이 어떤 의미냐면 '나이'라는 포장이 없을 때 그들은 그냥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연기자 스스로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아내의 유혹> 성공비결은 뭔가요?

일일드라마에서 당연시하는 세 가지가 없어요. 첫째, 굉장히 스피디하게 전개돼요. 또 '일일드라마의 캐릭터는 이럴 것이다'싶은 전형적 캐릭터가 없고요. 마지막으로 '일일드라마는 당연히 이런 결말일 것이다'라는 게 없어요. 룰을 뒤집어엎은 거죠.


제작진과의 인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음..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해야 되는데요. 저에게 연기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 항상 "배우는 15년 뒤가 한 살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 철칙이 뭐였냐면 '내가 15년 동안은 무조건 기초만 한다. 원리 원칙대로 기초만 한다'였어요. 기초 없이 시작했다가 무너지는 배우들이 많잖아요. 처음에는 개성있게 잘 가다가도 그 다음을 받쳐줄 게 없으니까 무너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15년 동안 죽어라고 기초연기만 했어요. 15년이 지나고부터,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부터 첫 변화를 주기 시작한 거예요. 만약 제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 1년 반만 트레이닝 했다고 한다면 길어야 3년 밖에 못 갔을 거예요. 그러나 15년을 공부하고 다져왔기 때문에 앞으로 30년을 연기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다른 건 자신 없지만 이제 연기만큼은 자신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너무나 많아요.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죠. 지금까지 보여드린 게 제 전부가 아니에요. 앞으로 변화할 캐릭터가 무궁무진해요. 다음 작품은 3개월 후에 20에서 25킬로그램 감량하고 아주 독한 인간으로 또 나오거든요. 그것 말고도 지적장애인 역할도 준비하고 있고요.



정교빈 역을 해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처음엔 '이거 정말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은 했어도 결정한 뒤에는 가정사에 약간이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 213명을 인터뷰 해나갔어요. 두 달 동안 직접 만나보고 전화통화도 해서 리서치를 한 거예요. 원래 정교빈이라는 캐릭터가 지금 방송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독했어요. 그런데 악역이라고 해서 막 질러대고 목소리 굵고. 이런 건 절대 아니다 싶었죠. 작가가 설정한 인물에 제가 ‘찌질이’를 가미했어요. 사고치고 문제가 많은 인물들에게서는 요즘같은 공동화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최근에 살인마 주변 사람들 인터뷰한 내용 보면 '어? 그 사람 되게 착했는데?' '잘 도와줬는데?' 다들 그래요. 정교빈이 악역이라고 해서 그냥 내질러 버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늘 옆집에 사는 평범한 남자 같아야겠구나. 잘난 척도, 착한 척도 좀 하고 여자만 보면 좋아하면서 서비스도 잘해줘야겠다. 또 속은 무지무지 겁이 많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연쇄살인 범죄자도 자기 얼굴 드러나니까 기가 팍 죽었잖아요. 자녀들 걱정하면서 말이죠. 겉으로는 악한 짓을 자행하면서 속은 약하다는 게 통계적으로 발견됐어요.


찌질이 성격을 가미했던 게 결과적으로 주효했네요.

그렇죠. 그런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1'이라고 할 때 그냥 '1'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걸 가지고 '2'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연기자는 '1'로 해도 돼요. 하지만 배우는 '2'로 만들어야만 해요.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스토리 자체는 지독한데 캐릭터 하나하나가 미워할 수 없더라고요.

만들기 나름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실존인물을 가지고 캐릭터를 연구한다면 그 사람에게 가장 근접해야 하는데, <아내의 유혹> 속 캐릭터는 창조적인 인물이잖아요. 그 창조라는 것이 바로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일일드라마는 마라톤이에요.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시작이 잘나갔다고 끝에 가서도 잘나갈 수 없어요. 끝까지 계산을 잘해야 해요. 그 계산을 못하면 캐릭터는 망하는 거예요. <아내의 유혹>도 죽어버린 캐릭터가 몇 사람 있었어요.


<아내의 유혹>이 방송된 후 생활적인 면에서 달라진 점은 없나요?

저는 변한 거 없어요. 가족들 역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 똑같아요. 근데 주위의 반응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 드라마를 하면서 '꺅꺅' 소리를 들어봤어요. 옛날에 듣던 소리 비슷한.(웃음)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달라졌고요.


드라마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많죠. 정교빈이라는 인물 자체가 내가 아니니까. 내가 살아온 인생하고 다르니까 '어휴 이렇게 지독하게 해야 되나'하는 고통이 내 속에서 엄청나게 일어났었죠. 극중 아내를 물에 빠뜨려 쓰러뜨리고 하는데 정말 가슴 아프고 미치겠는 거예요. 왜 이래야 되는지... 하하. 고통의 연속이었죠. 드라마 촬영 내내 항상 ‘삼고’가 있었어요. 세 번의 눈물과 세 번의 고통과 세 번의 고민. 보람찬 삼고였죠.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죠?

기초예요. 기초. 전 무조건 기초였어요. 연극 했다가 뮤지컬 했다가 공부하러 가고.(웃음)


작년에도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실연남녀>라고, 그거 각색까지 하느라고 힘들었어요.


각색까지 했다고요?

원래 제가 작가로 입문했어요. 배우는 하고 싶었는데 말주변이 없었어요.(웃음) 글 쓰는 걸 좋아해요.무지하게 좋아해요.


그러면 앞으로도 글을 써나갈 계획이 있겠어요.

그럼요! 벌써 다섯 편은 완성해 놓았고요. 이제 작품 하나씩 하나씩 출연해야죠. 전에 각색한 작품은 이미 드라마로 방송됐어요. 아이디어나 각색은 제가 다 했는데 그게 실은... 굉장히 잘나간 드라마 중에 하나예요. 하하하. (해당 드라마 작가에게 결례가 된다며 제목을 공개하지 않았다)


연기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했는데... (한참 생각하다가) 오히려 완성을 못했던 이문열 원작의 영화 <들소>가 기억에 남아요. 국내 최초의 선사시대 얘기였거든요. 약 10분 분량 정도 촬영하다가 끝나고 말았어요. 그때 주인공이 박중훈씨하고 저였는데. 소 만들다가 끝났죠. 하하. 이문열 선생님도 뵙고 서울대 교수 등이 고증도 다 해줬는데 너무 아쉬워요. 그동안 실험적인 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건 안 한 편이예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변우민은 1987년 영화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 드라마 <세노야> <서울 시나위> 영화 <청춘시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하얀 비요일>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90년대 초중반을 푸른빛 청춘으로 물들였다. 이후 TV드라마에 전념하며 <아파트> <째즈> <여자만세> <백수탈출> <진주 귀걸이> <있을 때 잘해> 등에 출연해온 그는 틈틈이 작가이자 연기자로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는 중이다.



여유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보내나요.

주로 집에 있고요. 요즘 재미 붙인 게 있다면 우리 스탭들하고 모여서 야구하는 거예요. <아내의 유혹> 스탭들끼리 야구팀 만들었어요. 드라마팀이 자기들끼리 단합이 되어서 야구팀 창단하는 건 드물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씩 경기를 하는데 전 그날 아주 기가 살아나요.


얼마 전에는 스탭들을 위해 출연료도 반납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아유.. 뭐 어차피 나중에 적금형태로 받을 텐데.하하. 언제가 받겠지 뭐.. 하하. 얼마나 좋아요 서로 기분 좋고.


같은 연예인 가운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누가 있죠?

개인적으로 요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 있어요. '누구라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잖아요. 물론 방송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사회대중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생각이에요. 어린아이들이 볼 때 지금의 우리가 항상 경상도, 전라도를 분할하듯이 누구편이라는 걸 주입시키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이죠. 창조적인 생각이 없어지는 거예요. 누구를 잘 만나면 내가 성공한다... 이거는 정말 위험해요. 그 생각을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프로그램에서 저에게 섭외가 왔다면 저는 친한 사람 누구냐고 물을 때 이름 없는 개그맨 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로 친해요. 그리고 일곱 살짜리 아역배우랑 친해요. 고생하는 KBS 조연출 친구도 나랑 되게 친해요.(웃음) 기자 한 친구도 서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하고 지내요. 나한테 조언을 많이 해주는 사람은 아랫집에 있는 아줌마, 뭐 그런 식이예요.


인터넷에서 팬들의 반응도 살피는 편인가요?

제가 매체,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리뷰가 나오고 리플이라고 그러나요? 그런 걸 아예 안 봐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건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방법이거든요. 정신분석학에도 있잖아요. 심연을 너무 들여다보면 자기 스스로 악마가 된다고요. 심연이라는 것이 창밖에서 창안을 보는 건데 그러면 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래서는 안 돼요. 그래서 차라리 전 창안에서 창밖을 보는 작업을 많이 해요. 세상은 마라톤이니까 조급증에 자꾸 빠지면 안 돼요.


조용히 선행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망설이다가) 뭐... 저한테는 애기가 세 명 있어요. 하하. 한 20년 됐나? 그 아이들이 일곱 살 때 봤으니 벌써 스물일곱 살이 됐네요. 한 아이는 그때 제가 피아노 사다주면서 배우게 해줬어요. 눈이 보이지 않는 고아였는데 맹아원에서 자랐어요. 매년 어린이날하고 크리스마스는 거기 가서 지냈죠. 시간 남으면 가서 아이들하고 놀고 그렇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얘가 어느 날 피아노 선생님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자기와 똑같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오케스트라도 만들었어요. 눈이 안 보이는 맹인 오케스트라를요. 1년에 한 번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도 해요. 전세계에서 맹인들이 모여서 하는 오케스트라는 여기가 처음일 걸요? 거기서 피아노 선생으로 있어요. 말할 수 없이 뿌듯하죠. 또 한 아이는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도 땄고요... 모르겠어요. 전 아이들하고 노는 게 재밌어요. 드러내고 싶지는 않고 그냥 뭐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웃음)



장기적인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처음 영화를 할 당시 영화사 '황기성사단'의 황기성 사장님(현 서울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께서 저를 따로 불러서 해주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말씀을 지금도 혼자서 간직하고 있는데, 제가 꿈을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영화예요. 매스미디어의 가장 큰 꽃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이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면 다큐멘터리를 할 거예요.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아서 3년에 한 작품 정도씩 제작해 보고 싶어요. 그땐 제가 주인공이 아니겠죠. 자연이 주인공이고 현장이 주인공이고 역사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을 맨 마지막에 할 거고, 그 전단계로 생각하는 게 영화예요. 영화가 종합적이잖아요.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커요.


배우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제가 영화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영화하다가 배가 고파서 드라마를 하게 됐거든요. 지금은 상상을 못하지만 그때는 한국영화를 아무도 안보니까. 관객이 만 명 만오천 명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TV에서 인기를 얻어서 다시 영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중간에 영화계와 연이 끊어졌어요. 그러니까 제가 옛날 분들만 알고 있는 거예요. 황기성, 이춘연, 극동스크린, 옛날에 양재산업 등등. 아참! 정일성 촬영감독님이 저를 데뷔 시켜주셨어요. ‘야 넌 된다’ 그러시면서... 그때의 향수가 잊혀지지 않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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