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100세 농군 김용기 장로
살아있는 100세 농군 김용기 장로
  • 김두호
  • 승인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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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도는 구국의 기도였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새마을운동의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진 가나안 농군학교의 창립자인 김용기 장로는 1909년에 출생해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다. 1988년에 타계했지만 그가 1962년에 설립한 가나안 농군학교는 생전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어서 ‘가나안 농군학교’하면 김용기 장로가 여전히 건재해 있다는 믿음과 더불어 그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농촌 부흥운동의 계몽가였고 일생을 혁명가적인 기질로 살았다. 훈련소 신병교육 못지않은 규율과 절도, 엄격한 근검 협동정신을 요구하는 농군학교를 이끌었지만 1대1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보통 사람이었다. 살포시 웃는 모습은 이웃집의 조용한 할아버지 같았다.


필자는 1973년 강원도 원주 부근의 신림에 제2 농군학교를 세우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김용기 장로를 만나 인터뷰를 한 일이 있다. 교통편이 불편하던 시절이라 하룻밤을 그곳에 묵는 동안 여명이 트기도 전 어둠의 새벽 산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기도소리를 들었다. 그는 농군학교 학생들이 새벽 5시 기상하기 전 홀로 산중 기도를 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 기도 내용은 모두 나라와 농민을 위한 구국의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체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녕과 번창을 염원하지만 그는 자신과 가족을 떠나 힘들고 고달프게 사는 가난한 농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개척!’이라는 농군학교 구호를 선창하던 김 장로는 혼자서 올리는 기도소리도 별나게 우렁차고 기백이 넘쳤다.


단 한 번이라도 호미자루를 들어 보거나 씨를 뿌려 본 적도 없이 땀의 가치를 입으로만 외치며 사는 사람들에게 생활개혁과 정신개혁을 일깨우며 살았던 김 장로의 삶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아직도 경기도 하남에 있는 제1 가나안 농군학교에는 김 장로가 훈련생들의 잠을 깨우던 산소통으로 만든 개척의 종이 그대로 매달려 있다. 비록 육신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혼은 여전히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새벽종을 치고 있다. 새마을 운동도 불길이 꺼져 있지만 가나안 농군학교는 그의 2세대들이 탄탄하게 운영해 나가고 있다. 거쳐간 훈련생이 70여만명에 이른다. 여전히 치약은 3mm만을 짜서 사용해야 하고 비누도 4번 이상을 문지르지 못하는 검약정신을 실천하는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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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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