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에 숟가락 얹다 만 ‘그림자살인’
밥상 위에 숟가락 얹다 만 ‘그림자살인’
  • 김다인
  • 승인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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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연기를 보는 맛은 일품이지만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게임과 영화를 연결해 홍보하다 ‘혼쭐’(?)이 난 영화 ‘그림자살인’은 평점 2.22 영화일까. 궁금했다.

이미 다 아는 얘기지만,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인기 프로게이머인 홍진호와 같다고 홍보하는 바람에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영화게시판에 게이머 홍진호를 상징하는 ‘2’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결국 영화에 대한 평점까지 2,22를 만드는 바람에 홍진호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인터뷰를 통해 ‘자제’를 요청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최초로 탐정이 주인공’이라는 영화 ‘그림자살인’은 매력과 엉성함이 뒤섞인 영화다. 기본기는 되어있지만 세기(細技)가 부족하다. 탐정물의 기본이 되는 구성과 반전은 있으나 중간중간 어설프고 산만한 점들이 눈에 띈다.


들판에 있는 시신을 의생 장광수가 외발수레에 싣고 가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시체와 살인은 탐정물의 기본이므로 기본에 충실한 출발이다.

좁은 골목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무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 불륜 추적 전문 탐정 홍진호다. 의뢰인 남자에게 여자의 불륜 현장을 렌즈를 통해 확인까지 시켜주는 친절한 홍 탐정은 이어 불륜남녀를 덮치는 의뢰인까지 앵글에 넣어 신문사에 팔아먹는다.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신문사와 연관되어있는 캐릭터이니 홍 탐정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의생 장광수와 홍 탐정이 엮이는 것은 광수가 해부용으로 가져간 시신이 권력자인 내무대신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다. 광수는 살인 누명을 쓸까봐 홍 탐정에게 진범을 잡아달라고 사건을 의뢰한다. 어려운 사건은 절대 맡지 않는 홍 탐정은 5백원을 준다는 말에 승낙을 한다. 그 5백원은 미국으로 가는 배삯인 것이다. 이래서 셜록 홈즈와 왓슨 콤비가 탄생한다.

수사차 시장통을 걷던 두 사람은 미행자를 발견하고 추격에 들어간다.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지붕으로 뛰어오르고 창을 박차고 뛰어다닌다. 익숙한 액션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봤고 성룡 주연 홍콩영화에서 단골로 나오는 추격 장면이지만 짜임새 있고 힘 넘치게 찍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도망가는 미행자를 인력거를 타고 쫓는다? 머리 나쁜 사람이라도 두 사람 탄 인력거를 인력거꾼 혼자 끄는 것이 당연 느리다는 건 알 수 있다. 다양한 추격전을 보여주려는 의도겠지만 현실감은 떨어진다.

이후 홍 탐정이 내무대신 아들 살해 현장에서 모루히네라는 아편가루를 발견하고 아편굴을 찾아 내무대신 아들 행적을 추궁하는 가운데 또 한 사람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경무국장이다. 경무국장의 살인 현장은 직접 보여져 범인 얼굴이 노출된다. 범인은 서커스단 단장. 정체는 노출됐으니 범행 동기가 관람의 핵심이 된다.

수사망을 좁혀가는 동안 홍 탐정의 조력자가 또 한 사람 등장한다. 발명을 즐기는 사대부 집안 여성 순덕으로 홍 탐정에게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물건을 개발해준다. 청진기 비슷한 것으로 남의 말 엿듣는 데 필요한 은청기, 고춧가루 스프레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공헌도’는 미미하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때 Q가 발명한 신무기들을 써서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말이다. 그나마 경무국장 시신의 입에서 발견된 천조각에 꽃무늬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순덕이 보람을 느끼게 된 게 다행이다.



자. 이제 범인은 밝혀졌고 증거도 확보됐다. 서커스 단장이 묘기에 사용하는 칼이 내무대신 시신의 칼자국과 똑같고 단장 방에 있는 꽃무늬 옷에 뚫려있는 구멍도 경무국장 입에 있던 천조각과 똑같다. 그렇다면 살해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화 초반 복선으로 깔려있다. 서커스 단장 억관이 경무국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경무국장은 “회춘을 하기 위해 추잡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추잡한 일이란 서커스단의 어린 여자아이를 성적 노리개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자기도 어리지만 더 어린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서커스 단원 여자아이. 홍 탐정에게 동생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던 여자아이가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하고 뛰어가는 모습이 찍힌다. 흑백으로 인화된 그 사진, 그리고 공중곡예 중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자살을 꾀하는 장면 등은 강렬하다.

이어서 회심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홍 탐정이 살인범을 잡았다고 여긴 순간 똑같이 생긴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서커스 단장이 일란성 쌍둥이인 것이다. 형은 일본인 고위 간부에게 아이들을 팔아 모루히네를 얻었고 동생은 그 간부들을 응징한 것이다. 쌍둥이라니, 예상치 못한 설정으로 탐정물의 히든 카드인 반전에 성공하며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홍 탐정은 어린 여자애를 탐하려던 경무총감으로 미끼를 놓고 총감을 죽이러 온 쌍둥이 동생 응관과 일전을 벌인다. 그때 갑자기 불이 꺼지고 암흑 속에서 자신을 덮치려는 응관에게 홍 탐정은 사진 플래시를 터뜨리며 총을 쏜다. 이 허무함. ‘양들의 침묵’에서, 어둠 속에 이리저리 총을 겨누던 조디 포스터를 향해 적외선 안경을 쓰고 다가가는 안소니 홉킨스를 보는 긴장감이나 있었는데. 대체 홍 탐정은 응관과 몸싸움을 하고 다리에 칼도 맞는 와중에 언제 카메라 플래시는 챙겨 들고 있었더란 말인가.

허무 개그를 본 것처럼 맥이 풀리는 가운데 마지막 치장이 길다. 미국으로 불륜 남녀 사진 찍으러 가겠다던 홍 탐정은 갑자기 안젤리나 졸리의 휴머니즘을 본받아 서커스 단원 소녀들을 돌보기 위해 남겠다 하고 난데없이 순덕 여사가 의학공부를 하겠다고 배를 탄다. 그리고 홍 탐정이 응관을 쫓아다니는 동안 보이지도 않던 장광수가 다시 나타나 장터국수를 함께 먹는다. 이어 두 사람이 고종황제의 부르심을 받고 헤이그 밀사로 파견된다는 결말. 이 또한 예상치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미 밥상에 내려놓은 숟가락을 다시 들게 하는 묘약이 되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돋보인 것은 황정민의 연기다. 건들거리는 불량 탐정 역을 힘 빼고 연기하다가 영화 말미에 범인을 단죄할 때는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준 강렬한 포스를 내뿜는다. 새삼 좋은 연기자라는 걸 알게 한다. 반면 역시 연기 내공이 만만치 않은 류덕환은 그 연기 그릇에 못미치는 역할을 맡은 것 같아 아쉽다. 황정민과의 연기 앙상블은 좋았지만 감독이 조금 더 류덕환의 의생 캐릭터에 힘을 실어줘 ‘머리’를 쓰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외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는 나오다가 만 엄지원이 순덕 역을 단아하게 해내 자기 몫의 분량에 등장했고 순사부장 오영달 역의 오달수도 웃지 않으면서 웃음을 주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호랑이 ‘범’자에 개 ‘구’자가 이상하다 하여 범인으로 몬다든가 또 개 ‘구’자가 아닌 입 ‘구’자로 밝혀진다는 등의 설정은 오달수가 책임질 코미디의 영역이 아니다. 억관과 응관의 일인이역을 맡은 배우 윤제문은 선이 굵다. 음악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돼 있어 영화 관람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았지만 자연광을 효과적으로 쓴 조명이나 촬영은 인상적이다.


‘그림자살인’은 장난으로라도 2자로 시작되는 평점을 받을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5점 만점에 5점을 받을 영화도 아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탐정이 등장한대서, 그 탐정 이름이 인기 게이머와 같다 해서 볼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영화에는 보기 드문 추리영화라는 점에서는 시선을 줄 만하다. 하지만 추리와 코미디를 섞으려는 노력 대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처럼 관객들과의 머리싸움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웃기보다는 감탄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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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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