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온 반(半)한국인 무라타 회장
후쿠시마에서 온 반(半)한국인 무라타 회장
  • 김두호
  • 승인 20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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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일본사람이지만 절반은 한국인이오”

【인터뷰365 김두호】무라타 슈이치(63) 씨는 일본에서 비영리법인체로 운영되고 있는 한일문화교류촉진회 회장이다. 한국과 일본 국민들의 진정한 친선과 민간차원의 문화교류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그를 두고 그의 나라 사람들이 “당신은 일본사람이지만 절반은 한국인”으로 단정을 내린 지는 15년 전쯤 된다. 그가 살고 있는 후쿠시마가 지난해 지진과 방사능 피해로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을 오가면서 두 나라 사람들의 교류를 위해 봉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리타 회장의 한일 문화교류 활동은 친선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정분 없이 주고받는 의례적인 활동과는 다르다. 교류 목표가 매우 인간적이고 순수하다. 상대 국민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과 정성을 심어가는 진정성 있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우선 자기 나라에서 사용하는 명함에서부터 그는 한일 친선 교류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고 있다. 일본에서 창립되어 현재 자신이 이끌어가는 단체의 공식명칭이 ‘한일문화교류촉진회(Korea Japan Cultural Exchange Association)로 되어 있다. 그들 입장에서 당연히 ’일·한‘(日·韓)으로 시작되어야함에도 ’한·일‘(韓·日)로 머리 이름을 사용한다.

일본인 단체 회원과 한국을 방문한 것을 포함해 자신이 지난 10여년간 한국을 방문한 횟수가 100회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인들에게 우정 깊은 일본인으로 인연을 시작한 것은 연기인 최불암 씨가 이끈 ‘웰컴 투 코리아’란 단체를 만나면서 비롯된다. 그의 단체 회원들이 전세기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얼마전 자연재해와 방사능에 의한 인공재해까지 겹쳐 사기가 떨어진 후쿠시마 지역 회원들을 위해 한국 영화제 등 문화행사를 유치하려는 계획으로 한국에 온 그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최불암 만나면서 민간 교류 앞장

후쿠시마를 방문한 최불암 씨와 한국인 친선 방문단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대지진은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난 피해지역의 최근 근황을 전해 달라.
후쿠오카는 한국인들도 잘 알고 있지만 후쿠시마는 지진으로 유명해진 것같다.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경제적인 여건은 우려할 단계를 지나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개개인에게 정부의 지원수당도 지급되고 지역 재건을 위한 대책도 단계적으로 실현되고 있지만 가장 큰 고민은 꿈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심리적 사기문제에 있다. 충격이 너무 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충격의 공황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발생한 원전사고의 후유증도 불행한 일이었다.
후쿠시마가 여전히 방사능 오염지역처럼 인식되어 더욱 불행한 일이지만 현지의 사정은 그로인해 우려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현지 주민보다 바깥에서 더 불안감을 느끼고 오염지역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 물론 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km 지역까지는 폐쇄된 공간으로 야생 동물이나 살고 있고 황폐화 되어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후쿠시마 현의 중심도시 고리야마시는 사고지역에서 60km 떨어져 있다. 산악을 넘어서야 한다. 방사능 오염도란 것도 지역간의 기후 환경 변화에 따라 수치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도쿄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사고지역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농산물까지 불신을 받는다는 점들이 극복해야할 과제가 되고 있다. 두려운 것은 바로 그러한 선입견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살고 있는 집부터 무너지고 부서졌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떤 표현으로도 불가능하다. 다시 되새긴다는 것은 정말 고통이다. 재난이 발생한 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유소가 폐쇄되고 차량의 연료 공급이 끊어져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걷는 길밖에 없었던 점이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조금 전에 말했지만 후쿠시마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 삶에 대한 희망의 생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지역을 위해 모두가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을 추진하려고 한다. 사실 나의 단체가 지진이 나기 직전 고리야마시에서 대대적인 한국 축제를 준비하다가 접어야했다. 사고는 3월에 발생했는데 두 달 뒤인 작년 5월 12일로 행사 날짜를 정해 한국 요리, K팝 공연 등 연예인 무대, 농악 등 민속놀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했었다.

다시 그 공연을 준비하는가?
우선 소규모 한국 영화제를 개최하는 계획부터 마련했다.


후쿠시마에서 무라타 회장 부부(가운데)와 함께 한 연기인 박은수(왼쪽) 이경진

한일문화교류촉진회의 창립 유래를 알고 싶다.
1998년에 발족했지만 한국의 ‘웰컴 투 코리아’라는 단체를 이끌던 연기인 최불암 씨를 알게 된 것은 15년 전쯤 된다. 그 단체가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관광 유치사업을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도쿄의 지인을 통해 소개 받은 최불암 씨와 만나면서 우리는 금방 친숙해졌다. 그 전에도 내가 여행사를 운영해 한국을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지한(知韓)에서 친한(親韓)으로 나의 마음이 바뀌게 된 것은 ‘웰컴 투 코리아’를 통해 본격적으로 회원 교류를 주관하면서 비롯된다.

회원 교류라면?
교환 친선 방문단이 때로는 한 차례에 100여 명씩 방문하는 때가 있었다. 우리 일본 방문단은 언젠가 전세기를 타고 대거 광주를 찾아가기도 했다.

당신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몇 번째인가?
기록해 두지 않았고 헤아릴 수가 없다. 아마 100번도 훨씬 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안동

지금도 최불암 씨와 친분을 나누는가?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후쿠시마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고 좋아한다. 그를 생각하니 문득 웃기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신이 배우니까 나도 한국 영화에 한번 출연시켜 줄 수 있느냐고 농담을 했더니 그는 대뜸 일제강점기에 나쁜 짓을 한 일본인 악역으로 당신을 출연 시켜주겠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하하하.
그를 통해 많은 한국의 연예인들을 알게 되었다. 탤런트 강부자, 임현식, 이경진 , 박은수, 신영희(국악인) 씨 등 많다. 지금도 일본에 오는 분들이 나를 찾고 있다. 나는 한국 손님이 찾을 때마다 아주 반갑게 달려가 맞이한다. 만나면 해피하다.

스스로를 친(親)한국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한 가지를 예로 든다면?
나는 한일친선 교류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 먼저 한국인의 입장을 생각한다. 한일문화교류촉진회의 명칭도 내 소신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을 바라 볼 때도 과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각에서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반대편의 인물인 한국의 이순신 장군 쪽에서도 느끼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물을 눈여겨보고 새롭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가?
한국영화나 TV드라마 DVD를 쉬지 않고 꾸준히 본다. <대장금>을 비롯해 <바람의 나라> <동이> < 해신> <허준> 등 모두 보았다. 어떤 때는 같은 인물이 너무 자주 등장해 한국은 연기자 수가 너무 적다고 오해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는 묘한 게 있다. 우리 아내와 드라마를 보며 훌쩍훌쩍 울 때가 많은데 내용은 너무 뻔한 얘기들이다. 어디로 흘러가고 전개되는지 뻔히 알면서 눈물이 나오게 한다. 그게 매력이다.


안동을 찾은 무라타 회장과 한일문화교류촉진회 일본 회원들

지금도 여행사를 경영하는가?
아니다. 한일문화교류촉진회에 전념하면서 사업을 정리했다. 지금은 대형 유통기업의 주주로 있어서 개인적인 사업은 꾸준히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이력을 소개해 달라.
나는 고리야마에서 태어난 토박이 후쿠시마 사람이다. 고교까지 이곳에서 다니고 대학은 도쿄로 가서 호세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여행사에 근무했다. 하와이지사에서 4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한 때 여행사를 설립했던 것이 한일 문화교류 사업에 도움이 됐고 이제 한일 친선활동에 내 마지막 애정을 쏟고 있다.

당신이 가 본 한국의 여러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
일본의 교토 같은 도시 안동이다. 한국인의 숨결과 유서 깊은 역사의 발자취가 도처에 숨 쉬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는 일본에서 벚꽃화가로 알려진 하시모도 히로키 화백의 작품 전시회를 내가 주선해 안동에서 개최했다. 나는 덕분에 좋아하는 안동에서 장기 체류할 수 있었다. 하외 마을에는 내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다. 그동안 다섯 번 이상을 간 것 같다. 해마다 개최되는 탈 축제도 인상 깊게 구경했다.
또 보령의 머드축제도 특색이 있고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하동의 자연 풍광도 너무 마음에 든다. 부지런히 그런 곳을 일본에 전하는 것이 나의 일과다.

한일 민간 친선 교류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경제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면 진정한 친선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돈으로 맺은 친구는 돈 문제로 결국 멀어질 수 있다. 나는 안동 같은 곳을 방문하면 우리 회원들과 한국인들이 함깨 어울려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돈을 안 쓰고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서로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고 생각하는 것부터 버려야 오래도록 따뜻한 우정의 교류가 이어진다고 본다.

스스로를 반(半)한국인으로 인정하고 한일 친선사업에 헌신하고 있는 무라타 회장

당신은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좋은 점만 얘기했다. 고쳐야할 점을 발견한 적은 없는가?
내가 만난 한국인들이 모두 좋았다. 아직 나쁜 점을 발견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는 것 아닌가? 나는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가는 것보다 서울로 오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남은 인생이 길지 않다. 그동안 후쿠시마에 한국을 심고 한국에 후쿠시마의 인정을 심고 싶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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