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0)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0)
  • 유지형
  • 승인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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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20) 활동사진


[인터뷰365 유지형] 조선의 첫 영화 <월하의 맹서>이후 조선의 영화계는 본격 영화제작의 시대에 돌입한다. 그것도 관객을 상대로 한 극장개봉용 극영화이다.

사실 백남의 영화는 저축 장려를 위한 무료 홍보영화였다. 이 영화 이후, 빠르게 급류를 탄 조선의 영화는 여기 저기 우수죽순처럼 영화제작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영화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처음 영화제작에 관여한 사람들은 일찍 영화에 눈을 뜬 일본사람들이었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이 <희락관>이라는 극장을 경영하던 하야카와 고슈란 사람이다. 이 사람이 1923년 <동아문화협회>라는 영화사를 만들고 창립 작품으로 뜻밖에도 우리 고전소설인 <춘향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다년간 흥행계에 몸 담았던 그는 한국인의 정서와 영화애호가들의 심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전라도 남원까지 내려가 로케이션으로 찍어 온 이 영화는 이도령에는 조선극장의 미남변사 김조성. 춘향 역에는 장안기생으로 이름을 날린 김선초가 출연하였다. 감독이 일본사람이기에 조선의 고전명작을 제대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해 12월 황금관에서 개봉을 하자 의외로 인기를 끌어 흥행적으로 대 성공을 하였다. 비록 일본인이 만든 영화지만 이 영화는 최초의 조선 극영화로 기록되는 우화를 낳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사람의 힘으로 <춘향전>이 만들어 지자, 단성사 사주인 박승필은 극장 내 영화부를 만들어 민족자본을 동원하여 조선 시네마토그라피의 기린아 이필우를 최초의 촬영기사로 등용하고 영사기사 출신의 극장 지배인인 박정현을 감독으로 내세워 <장화홍련전>을 만들어 흥행몰이에 들어간다.

박승필은 이미 오래 전, 극단 <신극좌>를 이끌던 김도산을 시켜 <의리적구토>의 연쇄극을 통해 단편이지만, 조선 최초로 활동사진을 만들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김도산의 사망으로 비극적 미완으로 중단된 <국경>의 실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경험은 그가 얼마나 조선에 활동사진을 만들려는 열정이 들어 나는 대목이다.

이제, 비로소 조선의 자본으로 조선 사람들이 만든 본격 조선영화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장화홍련전>인 것이다.

서울에서 만든 두 편의 영화가 대성공을 하자, 이번에는 부산에서 총포상을 하는 나데 오도이치 라는 일본인이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를 차려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그 작품이 <해의 비곡>이다.

그동안, 백남은 당분간 영화와 연극 일에 손을 떼고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역사소설 <대도전>을 집필하며 기약 없는 칩거에 들어간다.

<대도전>은 고려 말 나라가 극도로 혼란에 빠지고 신돈과 공민왕이 시해되는 역사적 배경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무룡이라는 의적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왕을 비롯한 부패한 집권층을 타도하고 민중을 그들의 탄압에서 해방시키는 과정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필법으로 독자들의 인기 속에 절찬리 연재 중이었다.

<민중극단>이 비공식이지만 해체된 모양이 되자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종화는 <무대예술연구회>라는 극단을 따라 부산으로 간다. 부산에서의 <오! 무정><월광곡>등을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렸으니 연극흥행은 실패로 돌아가고 종화와 단원들 대부분이 숙박비를 못내 여관에 잡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종화는 어떻게든 차비라도 마련해 서울로 돌아 갈 작정으로 무작정 본정 거리를 걷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달려오며

“안 상! 안 상!”

큰소리로 종화를 부른다.

“안 상 이라니?”

이곳 부산에서 날 일본식 호칭인 안 상! 이라며 부를 사람이 없을 텐데 하고 돌아보니 몇 년 전 백남 선생님과 부산에 와서 만났던 남천사의 승려 다카사 간조 이었다.

다카사는 짧은 머리에 승복을 벗고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니? 다카사 스님이 아니십니까?”

더욱 반가운 것은 종화 이다. 종화는 그를 승려로 알고 있기에 정중히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며

“스님은 무슨? 하여튼 안상을 만나서 반갑소. 나와 이야기 좀 합시다.”

무작정 종화의 소매를 잡아끌며 근처 빙과점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빙과점 테이블에 앉자마자 주문한 빙수가 나오기도 전에 다카사가 대뜸 하는 말이

“안 상! 나를 좀 도와주셔야 겠소.”

간절하게 읍소한다. 다카사는 40대의 중년이나, 이제 종화는 22살의 새파란 청춘이다. 그런 중년사내가 어린 종화에게 통사정을 한다.

“돕다니요? 무슨 얘기인지 자초지종이나 들어 봅시다.”

“내가 이번에 활동사진을 찍게 되었소. 그것도 감독으로 말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불당에 앉아 염불이나 외던 승려가 영화감독이라니?

몇 년 전, 남천사로 다카사를 찾아 갔을 때, 주지실 그의 방엔 불경 대신 대중 예술지와 영화잡지가 널려 있었다. 그때 그는 백남에게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활동사진 예술을 칭송하였다. 그런 그의 야망이 그를 영화감독으로 만들었고 다카사라는 이름은 버리고 왕필렬이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이제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여튼 안 상이 날 적극 도와야 겼소. 이미 안 상은 백남 선생님과 함께 활동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있지 않소.”

이미, 다카사는 종화가 백남을 도와 활동사진을 찍은 전력까지 다 알고 있다.

이런 우연한 만남으로 해서 종화는 다카사. 아니, 이제 왕필렬 감독의 영화의 협조자로 나선다. 더욱 다행인 것은 이제 자신과 단원들이 여관에 붙잡혀 있는 신세는 면하게 생겼다. 더욱이 종화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왕필렬은

“가만.. 이제 보니 안 상은 정말로 잘생긴 미남이구료. 내가 아직 주연남자의 배역을 못 정 했는데 배역의 역할이 딱 안 상과 동일하담 말이요. 어떻소? 이번 기회에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사실 종화는 오래전부터 배우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신파극의 대부 임성구가 이끄는 <혁신당>의 들어가 소녀 역을 도맡아 할 정도로 어린나이부터 무대경험이 많았다. 이렇게 하여 종화는 얼결에 주역 역할의 배역까지 따내게 된다.

“좋습니다. 그런데 주연 여배우는 누구 입니까?”

“신인여배우를 몇 명 골라 놓기는 했지만 아직 연기라고 하기는 그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어디 마땅한 여배우가 있으면 추천을 해 보시오?”

“그럼... 이월화양은 어떻습니까?”

이월화 라는 말에 다카사는 심마니가 산삼 발견한 듯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월화양은 이미 스타가 아닙니까? 그 유명한 배우가 나 같은 초보 감독의 영화에 출연을 해준답디까?”

이건 겸손한 건지, 비굴한 건지, 왕필렬은 너무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 그만큼 의욕보다는 실력이 뒤져 있다는 증거다.

“제가 정중히 부탁을 한번 해보죠. 대신 출연료는 많이 책정하셔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로써도 영광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저 안 상 만 믿습니다.”

왕필렬은 연신 고개를 숙인다. 종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세상사가 이처럼 쉽게 풀린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일까? 종화는 왕필렬과 헤어진 즉시 우체국으로 달려가 경성부 창성동 월화의 주소로 전보를 친다.

‘영화출연결정 / 부산급래 / 안종화’

월화는 부산에서 온 종화의 전보를 받아 들고 전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동안 일본인 촬영기사와의 추문에 시달리며 한동안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구원처럼 손을 내민 건 박승희의 토월회 이었고 연극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연극도, 사랑도, 또 다른 아픔을 주고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또 다시 고통스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칩거와 은둔의 날들이 조씨의 눈총과 잔소리와 함께 계속 되고 있었다. 다시 인천의 그 카페로 갈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런 매 마른 고통스러운 시기에 종화가 나를 부른다. 그가 또 나를 구원한 것이다. 월화는 창문을 열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달이다!”

오늘따라 월화의 심정을 아는지 둥근달이 높게 떠 있다. 그날 호리전트 위에 비친 인조 달과는 완연히 다른, 밝고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에 떠 있다.

월화는 그 둥근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백남 선생님! 저 월화는 그날 촬영장에서 비록 진짜 달은 아니었지만 인조 달 아래 선생님을 향한 월하의 맹서를 하였답니다. 비록 저의 몸은 오래 전 만신창이로 부서졌지만 저의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만은 오직 선생님을 향해 있을 뿐입니다. 저 달이 오늘도 저렇게 지지 않고 떠 있음으로 해서 저는 언제까지 눈부신 하나의 청춘이랍니다.’

달을 보며 그렇게 간절하게 생각하니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또 다시 새로운 용기가 솟는다. 종화가 고맙고 고맙다. 이제 월화는 더 이상 달을 보고 서 있는 시간이 없다. 월화는 서둘러 부산으로 가는 여장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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