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를 향한 ‘기록적인’ 일편단심, 대학생 허성호
윤봉길 의사를 향한 ‘기록적인’ 일편단심, 대학생 허성호
  • 유성희
  • 승인 20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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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도 잘못 기재, 픽션도 많아”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윤봉길 의사가 던진 것은 도시락 폭탄이 아니다.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으로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현장에서 던진 건 물통 폭탄이다” “폭탄에 맞은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즉사하지 않았고 1개월 뒤에 사망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봉길 의사 관련된 기록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며 최근 윤봉길 전기 ‘B.K. STORY’(한국방송출판)를 펴낸 저자 허성호 (28)는 대학생이다. ‘윤봉길 신봉자’임과 동시에 ‘윤봉길학(學)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교과서에 소개된 윤 의사 의거 관련된 오류까지 찾아내며 이번 책을 썼다. 나이는 이십대지만 6살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윤 의사 유적지 탐방을 시작해 20여 년간 오로지 윤 의사의 발자취를 추적해온 집념의 ‘베테랑’이다.

 

윤봉길 의사의 출생비화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의 기록을 집대성한 대학생 기록 작가 허성호를 그가 재학 중인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수많은 독립투사 중 윤봉길 의사에 특히 매료된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훌륭한 분이 많지만, 윤봉길 의사는 의혈 독립투쟁사에서 가장 커다란 효과를 거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윤 의사 의거 당시 나이가 불과 스물다섯이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아내와 자식을 모두 버리고 ‘자유’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잃은 것이 가장 많은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중ㆍ고교 시절부터 막연히 계획하고 있다가 재작년 이웃집 꼬마 재민이(9세)의 어린이날 선물로 윤봉길 의사 전기를 사주려고 서점에 가서 읽어보니 책 한 권당 오류가 평균 스무 개 이상 나오더라. 결국 선물을 하지 못하고 그 즉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이듬해가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이었는데 그 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재민이를 위해서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재민이는 ‘B.K.Story’를 읽었나?

아직 읽지 못했다. 처음에는 재민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써나갔는데 재민이가 항상 초등학생도 아닐 것이고, 또 너무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책을 쓰다보면 잘못된 역사적 오류들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애초의 집필의도와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난이도로 조정하게 됐다. 정작 재민이는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재민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가서 재민이와 친구들에게 윤봉길 의사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이야기로 들려줬다.

 

 

허성호씨는 집필 과정에서 현재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윤 의사 주요 전기에서 총153개의 오류내용을 발견했고, 20여 개의 새로운 사실을 찾아냈다. 많은 서적에서 윤 의사가 체포 직후 조사과정에서 ‘함구’로 일관했다고 쓰고 있는데, 허씨는 일본군 외무성 문서를 통해 윤 의사가 신분을 알 수 없는 인물의 이름을 대면서 교란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덕에 김구 선생 등 임정 요인들이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또 일부 전기에는 윤봉길 의사가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만세! 윤봉길은 폭탄을 던진 후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외치다 당당하게 체포”됐다고 기술돼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그는 주장한다.

윤봉길 의사는 물통 폭탄을 던지자마자 일본 헌병에게 체포됐으므로 만세를 외칠 만한 여유가 없었고 또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어떠한 공식문서나 신문기사에서도 만세를 외치는 동작은 기술된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의거 다음날이 될 때까지 많은 언론매체에서 윤봉길 의사를 중국인으로 착각하였다. 따라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는 서술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작가의 픽션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는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허씨는 서적마다 제각각이었던 윤 의사 유해 호송 경로를 사료 분석을 통해 최초로 정리하기도 했다.


 

 

 

 

 

 


‘B.K. Story’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여타 역사서나 위인전들도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과장한 내용이 많다. 본인 역시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가.

집필과정에서 그러한 순간이 많이 찾아왔는데 애초 다짐이 사료에 근거하지 않는 글은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유족들의 증언과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정보들만을 모았다. 윤봉길 의사의 친조카이신 윤주 선생님께서 “책을 쓰려는 용기는 가상하나, 절대 윤봉길 의사를 미화시키지 말라”며 나에게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셨다. 이제까지 책들의 오류를 바로 잡는다는 결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에 만전을 기했다. 기존의 위인전에 오류가 많은 이유는 기존 서적에 나온 오류를 베껴 쓰다 보니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다.

 

어떤 사료들을 참고한 건가.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고등학교 재학 중에 이미 윤봉길 의사 전기에 참고할 자료들은 거의 다 소장 하고 있었다. 윤 의사 친필서적 등 미처 수집하지 못한 자료는 유가족의 증언을 통해 도움 받았고, 국내 윤 의사 관련 자료 최대 보유자로 알려져 있는 윤주 선생님으로부터 부족한 자료를 보충 받았다. 윤 의사 고향인 충남 예산을 10여 차례 방문해 현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많은 자료들은 어떻게 수집했나?

어렸을 때부터 가보지 않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없을 정도로 부모님께서는 우리 삼남매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 처음으로 윤 의사 관련 자료를 모으게 된 것도 여섯 살 때 윤 의사 생가를 방문해 책자를 구입하면서부터다. 자연스럽게 차츰 윤 의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차원적인 자료 수집은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비교적 방대한 양을 수집할 수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유가족들을 만나고, 사적답사까지 발로 뛰며 쓴 노력이 책에 역력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세간의 시선이 집필의욕을 꺾는 제1의 요소로 작용했다. 윤 의사는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고, 사료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어 그의 일대기에 대해 잘못 됐다는 의심에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숭고한 넋을 가지고, 희생정신을 발휘한 분들에 대한 조명이 부족한 것 같다. ‘대학생이 취업준비 안하고 뭐하느냐’는 시선에는 좀 과격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대학생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태에 이르도록 당신은 무얼 했나”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떠나서 윤봉길 의사의 삶을 추적하는 것이 내 ‘취미’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역사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실행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교 재학 시절 방송사에서 윤 의사 자료를 요청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윤 의사의 ‘연행사진 진위 논란’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논쟁이 촉발됐을 때였다. 논증의 방식이 객관성을 담보 할 수 없는 방식이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든지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해달라는 보도요청을 KBS에 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KBS와 인연이 되어 윤 의사 관련 자료들을 요청 받았고, 지금까지 투고 형식의 원고를 쓰기도 했다.

 

오류를 지적한 책의 제목과 페이지까지 밝혔는데 지적 받은 출판사에서 내용을 수정했거나 혹은 반대로 항의를 받지는 않았나?

그분들이 이 책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윤봉길 연행 사진’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윤 의사 연행사진 진위에 대해 답변하기는 애매한 상황이다. 다만 ‘윤봉길 의사 연행사진이 아니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국내 최고의 인물 전문가들을 비롯, 생전 윤 의사 부인과 친동생들이 ‘사진속의 인물은 윤봉길 의사가 맞다’는 증언이 있었다. 또한 일본 아사히신문에 특종으로 실리는 등 지금까지 나온 사료로는 윤 의사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 속 인물이 윤봉길 의사와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촬영 각도에 따라 사람의 얼굴이 얼마든지 달라 보일 수 있고, 당시의 흐린 날씨 등 카메라 상황을 감안할 때 좀 달라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윤봉길 의사 연행사진 진위 논란’이 하루빨리 규명되었으면 한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윤봉길 의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생활에 있어 변화된 점이 있나?

꿈을 꿔도 윤봉길 의사가 많이 나온다.(웃음) 주로 일제 강점기 배경의 꿈을 많이 꾸는데 엊그제는 열차 안에서 군중들 틈을 비집고 폭탄을 던졌는데 무릎에 부상을 입고 죽을 힘을 다해 뛰쳐나왔다. 폭탄을 던지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또 한번은 폭탄을 던지고 붙잡혀서 나와 가족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꿈도 꾸었다.

 

그만큼 신심을 다해 집필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

꿈에서도 윤 의사를 만나다보니 우리 뿌리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기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됐다. 윤봉길 의사하면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라는 정도로만 알지 않나. 윤 의사는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혁명사를 공부할 뜻을 품고 영어공부에 힘썼던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자유’를 찾아 희생하신 분들이 시공을 초월해 응당한 가치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자녀를 데리고 열심히 독립운동 사적지를 방문한 부모님의 보람이 클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가?

아버지는 일제시대가 끝날 무렵에 태어나셨는데, 아마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셨다면 독립군에 바로 참여하셨을만한 정신을 가진, ‘의’에 죽고 ‘의’에 사는 분이다. 어머니는 내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윤 의사 전기를 출판사 별로 사다주시면서 ‘이거 다 읽어’ 하셨다.(웃음)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는 많은 대화시간을 가졌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아버지, 어머니, 윤봉길 의사 그리고 손기정 선배님이다.

 

 

허성호씨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근황을 세상에 알린 바 있다. 손기정 옹은 그의 양정고 70년 선배. 고등학교 3학년 학생회장이 되던 해, 친구들과 손옹을 찾고자 했지만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어느 기관에서도 손옹의 근황을 알 수 없었다. 결국 손옹이 거주했던 마지막 주소지를 시작으로 여름방학 한 달간을 추적한 끝에 2000년 8월 3일 용인 수지에 사는 손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6일 뒤, 친구들과 함께 손옹의 마라톤 제패 64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고, 이 현장은 KBS 스포츠 뉴스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고3 여름 방학 한 달 동안 공부 대신 손기정 옹을 찾아다녔다고?

그렇지 않아도 동기 6명 중에 1명 빼고 모두 재수했다.(웃음) 찾아가 뵌 손 선배님은 우리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모교 구호와 교가를 불러달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을테니 울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손기정 선배님과 함께 한 시간은 내게 자랑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윤봉길 의사와 손기정 선배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분 모두 25살의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억압받는 조국의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피셨던 그 분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올해 졸업반인데 졸업 후 계획은 어떤가.

기자가 되는 게 꿈이다. 정의를 수호하는데 첨병역할을 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어릴 적에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윤 의사처럼 대단한 인물은 되지 못해도 최소한 윤 의사를 세상에 알리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하는데 조금만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윤봉길 의사처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

사실 지금도 고민이다. 혼자라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결심했을 법도 한데 부모님도 눈에 밟히고, 심지어 우리 꼬마 재민이까지 눈에 밟힌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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