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미키 ‘레슬러’ 루크
오 마이 갓, 미키 ‘레슬러’ 루크
  • 김다인
  • 승인 200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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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버린 얼굴, 되살아난 연기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80년대 ‘나쁜 남자’가 돌아왔다.

영화 ‘나인 앤 하프 위크’에서 섹시한 뉴요커 존을 연기해 뭇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미키 루크가 레슬러가 되어 돌아왔다. 상처 가득한 얼굴로.

‘더 레슬러’를 본 지금 세대들은 주인공 로빈슨을 연기한 배우 미키 루크의 ‘리얼한 연기’를 보겠지만 그와 함께 청춘시절을 보낸 이들은 ‘리얼한 상처’를 보게 되는 영화다.

80년대 로맨틱 영화의 리더 리처드 기어가 ‘사관과 신사’ 등에서 여성을 배려하는 긍정적인 남성상을 대변했다면 미키 루크는 여성을 지배하는 나쁜 남성상을 대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섹스와 연관돼 있었다. 그래서 더욱 묘했고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후 미키 루크는 3류 에로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복서로 전향했다는 풍문과 성형수술에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로 가끔 사진이 올라오는 정도였다. 그 사진들에서 미키 루크는 마이클 잭슨 다음 가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배우 미키 루크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지금 그가 레슬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요커 존은 가고 레슬러 램이 오다


퍼머를 한 긴 금발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미키 루크의 뒷모습을 한동안 따라가다가 처음 정면 모습이 나오는 순간, ‘오 마이 갓’ 이었다. 그 옛날 미키 루크의 모습은 없었다. 어두우면서도 샤프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연약한 뉴요커의 얼굴은 완전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이목구비는 성형의 후유증인 듯 제각각 부풀거나 내려앉았으며 거기에 살까지 찌운 탓에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나인 앤 하프 위크’나 ‘엔젤 하트’ 등의 영화에서 봐왔던 미키 루크 대신 ‘미키 루크의 눈을 약간 닮은’ 연기자에게 익숙해지는 데는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키 루크의 2005년작 ‘신시티’를 미리 봐두어 쇼크를 줄이는 건데 그랬다.

감독도 그 부작용을 의식한 듯 초반 두 번의 피 튀기는 레슬링 시합을 보여줌으로써 미키 루크 대신 로빈슨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레슬링 시합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하는 국제적 시합 외에 대부분은 사전 시나리오에 입각한 쇼에 가깝다는 것은 알고 있는 터. 하지만 ‘스테이플러 찍기’ 쇼는 보던 중 잔인한 것이었다.

선수끼리 어떤 ‘쇼’를 할 것인가 합을 맞추는 장면에 이어 그것의 실전까지 이어지는데, 첫 번째 시합에서는 로빈슨이 면도날을 손을 감은 테이프 속에 숨기고 있다가 관중들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 슬쩍 꺼내 자신의 이마를 긋는다. 그러고는 로프에 이마를 쾅쾅 부딪혀 이마에 낭자한 피가 흐르게 한다. 피를 본 관중들을 열광하고 쇼는 성황리에 끝난다.



스테이플러가 등장하는 것은 두 번째 시합. 두 레슬러가 서로 마주 앉아 따귀를 때리더니 급기야는 스테이플러로 몸을 찍는 끔찍한 장면을 연출한다. 서류를 흐트러지지 않게 찍는 스테이플러로 등이나 가슴 심지어는 눈 주변까지 찍어댄다.

두 번째 시합은 선수대기실에서 로빈슨이 몸에 박힌 스테이플러 알을 하나씩 뽑아내는 장면과 경기장면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데, 왜 이런 기교를 썼는지 의아했다. 자, 이 스테이플러 알은 이렇게 찍은 것이라오, 라고 친절하게 경기장면을 잘라 넣어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다.

랜디 ‘더 램’ 로빈슨은 현란한 기교로 관중을 사로잡던 80년대 스타 레슬링 챔피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승부를 가리는 레슬링 시합이 아니라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한 쇼에 출연한다. 주말에는 레슬링 쇼로. 주중에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도 아닌 트레일러 세를 근근이 내고 사는 처지다. 유일한 낙은 일을 끝내고 가는 길에 스트립 클럽에 들러 스트리퍼 캐시디와 얘기를 나누고 맥주 한잔 하는 것이다.

스테이플러 시합 이후 로빈슨은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의사로부터 레슬링을 그만두라는 경고를 받는다. 링을 떠날 마음을 다진 로빈슨은 링 밖 세계에서 살고자 두 여인에게 마음을 기울인다. 하나는 젊은 날 버렸던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이든 스트리퍼 캐시디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하지만 연정을 품고 있던 스트리퍼는 그를 손님 이상으로 여기지 않으려 하고 딸을 찾아가 관계 개선을 하려 하나 그것도 마음 같지 않다. 결국 그는 다시 사각의 링으로 돌아가 레슬링 시합에 나선다.



젊었을 때 막 살지 말아야 돼, 아무렴


이 영화는 레슬러 로빈슨의 참회록이자 배우 미키 루크의 참회록이다.

로빈슨의 대사 가운데 “젊은 날 막 살아서 지금 고통 받는다”는 것은 로빈슨에게나 미키 루크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를 고통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로 미키 루크는 골든글로브나 시카고비평가협회, 런던비평가협회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상의 공증이 아니더라도, 직접 레슬링을 배우고 몸을 키워 대역없이 시합을 해내는 그의 노력은 영화에서 성실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베테랑답게 연기는 묵직하다.

하지만 그 외의 영화적 장치들은 단순하다. 딸과의 갈등이 풀어지다가 다시 더 큰 갈등이 생겨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이 지극히 표피적이며 스트리퍼의 생활도 스트립 클럽 내에 한정돼 있어 깊이가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등장은 링 밖으로 나오려는 로빈슨의 안간힘의 대상으로 부각되기보다는 다시 링 안으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제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마지막 시합이 영화 초반부의 두 시합보다 밀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쉽다. 또 로빈슨을 둘러싼 다른 레슬러들의 애환 등이 적절하게 삽입됐다면 영화가 더 촘촘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영화에는 미키 루크 외에 또 한 명의 ‘왕년의 배우’가 출연한다. 스트리퍼로 출연하는 마리사 토메이로, 1993년 ‘나의 사촌 비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했지만 이후 국내에 알려진 영화 경력은 별로 없다. 어언 퇴물 스트리퍼 역이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는 것에 세월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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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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