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위 공직자의 구속 90일 체험일지] ⑥ 천군만마의 힘을 주는 가족들의 편지
[어느 고위 공직자의 구속 90일 체험일지] ⑥ 천군만마의 힘을 주는 가족들의 편지
  • 편집실
  • 승인 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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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위 공직자의 구속 90일 체험일지>를 연재하면서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일생을 공직생활에 바친 한 분야의 성공한 고위공직자가 쓴 감방 체험일지를 인터뷰365가 독점 연재합니다. 공직을 떠난 어느 날 하루아침에 검찰의 소환을 받고 구속 수사를 받아 90일간 자유를 잃어버린 필자가 그로부터 겪게 된 참담한 고통의 시간을 낱낱이 기록으로 옮긴 내용을 사실 그대로 공개합니다.
명예를 얻는 시간은 평생이 걸리지만 잃는 것은 순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90일간의 구속 체험일지는 인간이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국민 교범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365】나는 편지를 쓴 적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오래 됐다. 기껏해야 연하장에 새해 덕담정도 추가하는 것과 E-mail로 주고 받는 것 외에는 없었다.


구치소에 들어오고 나서 매일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접견 와서 10분간 면회가 짧은지 못다 한 말들을 다시 접견 편지에 담아서 나에게 넣어주고 간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서 가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 귀한 편지를 매일 기다리게 되었다. 받은 편지들은 하나 하나 귀한 보물처럼 간직하였다.


나도 이제 답장을 해볼까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발신 주소를 ‘서울구치소’라고 써야 하니 영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하루 이틀 미루다가 아예 나갈 때까지 편지 안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는 9살 손녀 녀석이 영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이 녀석은 아들과 며느리가 내가 눈 떨림 증세 때문에 수술차 병원에 장기 입원하였다고 속여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병문안을 왜 어른들만 가느냐고 원망도 하고 의심도 한단다. 답장을 기다리는 손녀에게도 편지를 쓸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구치소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서함 번호로 보낸다는 것을 알고 첫 편지를 손녀에게만 썼다.


구치소 생활 90일간 매일 가족의 편지를 받았고 영등포교도소로 이감 간 동료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나도 답장을 해주었다. 또 옛 부하와 춘천에 계시는 어느 목사님한테도 편지를 받았다. 구치소에서도 E-mail로도 서신을 받을 수가 있다. 나도 E-mail을 등록하였더니 아들, 딸, 사위가 E-mail로 긴 사연을 보내왔다. 그러나 수용자들은 E-mail을 받을 수만 있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 보낼 수는 없다.


방 동료 중 한사람은 미국 유학간 아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E-mail을 보내왔다. 정보화의 힘을 더욱 실감하였다.


아들의 편지(Ⅰ)
아버지, 못난 아들 인사드립니다.
오늘 면회가 처음 된다기에 엄마만 빼고 다 왔었는데 검찰 조사 받으러 가셔서 못 뵈옵고 이 글만 남기고 갑니다.
아버지의 공직 생활 40년 한 점 부끄럼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저로써는 이해가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이니까 모든 게 분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버지 생각만 하면 한없이 눈물만 납니다. 그러나 이번 아버지 일로 온 가족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빨리 나오셔서 우리 가족 모두 하나 된 행복을 나누어야겠습니다.
같은 방에 계신 분들한테 인사드리고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버님과 잘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은혜 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건강유의하시고 잘 견뎌주세요!
밖에서 못난 아들이 힘껏 뛰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들 올림

아들의 편지(Ⅱ)
오늘 오후에 아버지 첫 공판을 하는데 매우 긴장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동안 어떻게 준비 했는지 생각도 나면서 한편으로는 후회도 많이 됩니다. 저희가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살아가면서 후회 하지 말고 살자는 의미에서 “주자의 열가지 후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후회한다. (불효부모 사후회)
2. 가족에게 친절히 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후회한다. (불친가족 소후회)
3. 젊을 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소불근학 노후회)
4.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후회한다. (안불사난 패후회)
5. 부유할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하게 된 후 후회한다. (부불검용 빈후회)
6. 봄에 밭 갈고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 (춘불경종 추후회)
7. 담장을 미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 맞은 후에 후회한다. (불치원장 도후회)
8. 이성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후에 후회한다. (색불근신 병후회)
9. 술 취해서 망언한 것은, 술 깨고 난 후에 후회한다. (취중망언 성후회)
10. 손님을 잘 대접하지 않으면, 손님이 떠난 후에 후회한다. (부접빈객 거후회)
제가 명심해야 할 10가지 마음가짐 자세이고 특히나 1번, 2번, 3번, 4번, 5번은 가슴속 깊이 세기며 명심하고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드시 살아가면서 후회는 하겠지만 크게 후회하지 않고 제가 추진한 일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살피면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겠습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신지요. 좋은 마음으로 오후 2시에 재판장에서 뵙겠습니다. 아버지를 아는 모든 분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파이팅!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올림

아들의 편지(Ⅲ)
아버지!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어록 중에서 좋은 문구가 있어서 글 올려 드립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300척의 적을 막았다.
옮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정말 한글 한글이 저한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순신 장군처럼 정말 훌륭하게 생활 하셨습니다. 반드시 이순신 장군처럼 오해와 의심, 고통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시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이 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벌써 한주가 지났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컨디션 유지 하세요!

아들 올림

딸의 편지(Ⅰ)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보고 싶은 아빠에게..
아빠! 날씨도 쌀쌀해지고 밤도 길어지고 계절 탓인지 부쩍 더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빠가 감기 안 걸리고 몸 조심하시는 것 같아 한결 맘이 편해요. 토요일 날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면 주말이 왜 이렇게 더디게만 가는지 예전에 주말이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더니 요즘은 길게만 느껴요.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게 정말 모든 걸 지치고 느리게만 만들어 버리나 봐요.
제가 이제껏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며 동경의 대상이 된게 뭔지 아세요? 그건 아빠의 명예가 아닌 우리 집이 부자여도 아닌 바로 아빠. 엄마가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아껴주시고 그것이 저희한테까지 내려와서 자식들이 과학자도 아닌 대통령도 아닌 자신의 부모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며 사랑하는 그 마음을 모두들 부러워했어요.
이런 부모님께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 저 자신에 대해 너무 실망스럽고 자책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후회 뿐 이예요. 얼마나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릴지는 자신할 순 없지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어요. 이 맘은 엄마도 오빠도 우리 가족 다 마찬가지겠지요..
그래도 아빠! 전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고 또 제일 사랑해요.
이번에 만날 때는 유리벽이 아닌 진짜 아빠 얼굴에 뽀뽀 할게요.
아빠, 사랑해요. 건강조심하세요.


사랑하는 딸 올림

딸의 편지(Ⅲ)
오늘은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이네요. 36주년인가?
서로 같이 할 순 없어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만은 더 깊고 애틋하니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두 분 사랑하며 살아오신 것만큼 저희들도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 가야하는 데 그것이 정말 어려운 인생 숙제인 것 같아요. 저희들도 아빠, 엄마를 본보기로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요.
정말 아빠의 투철한 정신력이 아니면 아마 그곳에서 굉장히 힘드셨을 거에요. 이제껏 잘해 주셨으니 아빠 말씀처럼 말년 제대 군인처럼 시간은 더디게 가시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재충전의 시간이라 생각하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의 힘든 이 시간들이 나중에 더 큰 무언가로 다시 돌아 올 거에요. 그러나 너무 힘들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참아 주세요.
오늘 결혼기념일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엄마 곁에 돌아오셨을 때 근사한 결혼기념일 파티 해드릴 게요. 끝으로 엄마가 아빠 많이 사랑한데요. 그리고 보고 싶데요. 아빤 좋겠어요. 뽀 뽀


아빠를 사랑하는 딸 올림


사위의 편지
시간이 멈춘 듯했었는데, 그래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님의 빈자리에 적응을 한 듯 느껴졌는데, 다시 한번 빈자리의 허전함을 알고 슬픔에 잠기곤 하는 것 같습니다.
구치소에서 아침 일찍 도착해서 접견을 신청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닳게 합니다. 어떤 일로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접견을 오는 가족들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조금 죄송스럽지만 이번 아버님 일로 가족이 똘똘 뭉쳐지는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각자의 생활에 정신없이 살아갔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실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건강에만 유의하시면서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버님을 제일 존경하는 사위 올림

며느리의 편지
아버님. 지내시기는 괜찮으신지요. 고생이 많으실 줄 압니다.
저희에세 편하게 보이시려는 아버님 모습이 너무 많이 아픕니다. 역시, 아버님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님이 안계신 집이 너무 공허하고 허전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해드린 것 하나 없이 못한 것만 생각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윤정이, 소정이는 학원 잘 다니고 있고 윤정이가 EWAS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일등을 했어요. 할아버지 오시면 일등상 달라고 벼르고 있으면서 할아버지 눈병 빨리 좋아지시라고 기도를 하고 있어요.
아버님, 저 시집와서 편지 주신 것 어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신랑보다 더 저에게 정신적인 지주이신 아버님이 안계시니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고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집 걱정 하시 마시고 건강 잘 챙기시고 빨리 집에 오시도록 기도 많이 할게요.

아버님을 사랑하는 큰 딸 올림


아버지란.... (작자 미상의 글)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들어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육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아 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던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지마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우리가 이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님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륳한 분이셨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님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웃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도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님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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