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고전이 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인터뷰
[그때 그 인터뷰] 고전이 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인터뷰
  • 김두호
  • 승인 20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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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 때 그를 다시 기억해 본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한국 현대 기업경제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다. 그는 오래전 고인이 됐지만 그가 창업한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은 여전히 대한민국 기업을 대표하면서 세계적인 대기업의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미국과 한국을 포함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금융 불안과 경제 위기로 신경이 곤두 서 있다.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제 성장률이 뒷걸음질 치는 힘든 시대에 탁월한 경영철학으로 흔들리지 않는 재벌기업의 중심에서 살았던 ‘원조 CEO’ 삼성 이병철 회장의 이야기를 다시 돌이켜 보았다.


그는 1977년 8월, 67세 때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그곳 경제주간지(日經 비즈니스)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영 특장인 인재활용과 후계자 문제 등 경영철학 전반에 대해 아주 소상하게 고백했다. 국내 매체들이 그때 그의 인터뷰 내용을 옮겨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으로 아들 3형제 중 막내 이건희 씨(전 삼성전자회장)를 후계 총수로 지목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인터뷰 중 지금의 CEO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관심사가 될 만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중화학공업이 경제발전의 과제


지금 한국의 경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세계 저널리즘의 그러한 평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평가가 좀 과합니다.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세계가 경계할 만큼 신장한 건 아닙니다. 석유쇼크 이래 세계주요국의 경제가 침체했기 때문에 한국의 성장이 돋보인 거겠죠. 저임금으로 열심히 일해 온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해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긴 후 해마다 40∼50%씩 수출을 늘리기는 힘겨울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경영자들에게 경계심을 일으킬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원인을 근면성과 저임금에 있다고 봐도 되는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경계할 정도의 성장은 아닙니다. 지금은 공장시설을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저임금으로 수출에 집착해왔습니다. 그러나 연간 수출총액이 100억 달러가 넘어서면 수출하려해도 물건이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파느냐가 문제지요.

이제까지는 섬유가 주력상품이었고 전기제품이 겨우 궤도에 오르려는 형편입니다. 앞으로 한 단계 규모를 늘리기 위해 우리 경제의 중화학공업화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과감한 대규모 투자가 가장 중요한 과제지요.


삼성그룹은 설탕 섬유 등 소비재부터 사업을 일으켰는데 중화학공업 진출은 순조롭습니까?

처음부터 소비물자만 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당시 우리 경제 정세로 봐서 수입소비재를 국내 생산품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섬유나 설탕부터 시작했지만 12년 전 세계최대 규모의 연산 36만 톤 비료공장도 세웠어요. 뒤에 소련(현재의 러시아)이 흉내내서 같은 규모의 비료공장을 만들었지만 생산코스트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세계 최저입니다.

지금은 소비재와 함께 중화학공업이 필요한 시기에 맞추어 중공업, 조선, 건설 등 5개 회사를 설립했어요.





내가 가진 주식은 삼성 전체의 5%


삼성그룹도 한국 경제발전 단계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말씀인지요?

전환은 우리가 가장 빠르지 않았나 봅니다. 삼성은 지난 25년 동안 국가 총세수입의 2.5∼3.5%를 부담해왔습니다. 1개 그룹으로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산고는 항상 GNP의 4% 정도 차지했는데 사업전개를 사회의 수요 변화에 한걸음 앞서 온 증거지요.


삼성그룹은 28개 회사인데 그룹 각사의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거의 모든 기업이 주식을 공개했으니까 내가 가진 주식은 그룹 전체에서 5%도 안됩니다. 아들이 5% 정도, 임원들의 주식까지 합해도 전체의 30%가 안됩니다. 나머지는 사원들과 일반주주, 외국인 주주들의 것입니다.


삼성물산의 회장 직함만 가지고 계신데 그룹의 경영은 어떻게 하십니까?

각사의 사장회의가 1주에 한두 차례 열려 거기서 그룹 전체의 원칙적인 경영방침을 정합니다. 나는 1년에 한두 번 사장회의에 얼굴을 비치고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아주 맡겨버립니다. 내가 하는 일은 1년간 전체 회사의 경영목표를 정하는 회의에 나가 내 나름의 목표와 의견을 말하는 정도입니다.

각 회사의 사장들은 평상 업무에 관해 일절 상의하러 오지 않습니다. 중요한 문제, 이를테면 새 회사의 창립이나 거액의 차관 도입, 외국과 공동 투자를 하는 따위의 사안일 때는 나를 만나러 옵니다. 보통 생산물량의 결정이나 부동산 구입이나 판매 등은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합니다. 그런 걸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각사의 사장인사도 사장회의에서 정하고 나의 의견을 들으러옵니다. 대부분 그 결정대로 됩니다.



내가 뽑는 사원은 재능보다 인품 중요시


기업 경영은 전적으로 일임하지만 사원 채용에는 반드시 참석해 직접 면접을 보신다는 데 그건 회장님의 중요한 임무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원의 공개 채용은 삼성물산이 국내에서 처음 실시했는데 그때부터 나의 신념은 ‘기업이란, 사업이란 곧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일을 하므로 좋은 인재를 모아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재는 재능보다 사람 됨됨이입니다.

1954년부터 공채를 시작해 현재 1기생 중 4∼5명의 사장이 나왔습니다. 젊은 사람은 48살이죠. 지금은 8백명까지 채용하지만 초기에는 40명 뽑는데 4천명이 응모했습니다.


채용시험에서 비중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필기시험을 봅니다만 별로 의미가 없어요. 응모자 95% 이상이 모두 학교 성적이 우수해요. 미국에서도 테스트 방법이 발달하고 있더군요. 삼성에서도 질문사항을 100항목쯤 마련하거나 3∼4명씩 토론을 시켜 보는 등 여러 가지로 파악해 채용 예정수의 2∼3배수를 선발해 면접으로 합격자를 결정합니다. 결국 학력차이가 별로 없으니까 선발기준은 인물본위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을 체크하는 기계는 없고 잠깐 얘기하는 것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나는 우선 건강한 사람인가를 보고 다음에는 인상이 좋은가를 봅니다. 사람의 내면과 인상은 다르다고 하지만 활동적인 사람, 명랑한 사람을 채용합니다.


일본에서도 학력보다 투지가 있고 일에 대한 의욕이 불타는 사람, 예컨대 운동선수가 좋다는 경영자도 많습니다.

우리는 운동은 전혀 채용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지능과 스포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요.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청탁입니다. 아무리 부탁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단지 점수가 동점자의 경우 간부의 추천여부를 감안하지만 점수 차이가 있으면 특혜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전쟁 전 일본의 재벌에서는 본사에서 채용되고 훈련된 사람이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삼성그룹도 모기업인 삼성물산에 배속된 사람들이 핵심 엘리트들입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신입 사원은 각자의 희망을 감안해서 각사에 배치합니다. 다만 삼성물산 비서실은 70∼80명의 인원을 두고 있는데 우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룹 전체의 통계나 자료를 모아 그룹의 방침을 다듬습니다. 그러나 비서실 사람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선 제일모직에 배치되었다가 몇 년 뒤 삼성전자로 옮기는 식의 그룹내 교류는 본인의 희망과 회사의 방침이 조화를 이뤄 활발합니다.


그룹의 요체가 되는 비서실의 기능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비서실이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룹 각사의 의뢰를 받아 조사 연구를 합니다. 비서실에는 주요 사장들로 구성된 원로원 같은 것이 있어서 각사의 업적평가나 후계자 양성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고 있습니다.





나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


삼성은 한국의 제일의 기업이니까 급료도 많겠지요?

한국에서는 가장 많을 것입니다. 다른 회사들이 우리의 급료를 보고 수준을 정합니다. 어느해는 삼성이 다른 회사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가만 있으니까 6월이 되어도 임금을 안올리더군요. 급료 경쟁은 자신 있는데 우리가 몇 해 동안 교육한 사원의 3분의 1 정도가 달아나는 것입니다. 5년쯤 삼성에 있다가 다른 회사에 과장으로, 과장은 상무로, 부장은 전무로 발탁되어 급료도 훨씬 인상되니 떠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붙잡지 않습니다. 붙잡기로 하면 절반쯤은 붙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곳에 가도 기업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니까 삼성이 그 정도의 배려나 희생은 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삼성그룹이 적자 기업을 내지 않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앞서 얘기했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해온 경영 덕분입니다. 사람을 믿고 양성해온 것입니다.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어요. 사람을 양성해 적재적소에 두어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큰일이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잘되어 간 것이지요. 사장은 실패하면 물러나야 하지만 사장쯤 되면 책임과 신념을 가지고 일해요. 성실하게 하니까 실패할 까닭이 없고 부실기업이 될 수 없지요.

다만 일을 시작할 때는 대단히 신중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제지회사를 시작할 때 우선 세계의 수요를 모두 조사해서 인류를 위해 유익한가 해로운가를 생각하고 국가적으로 이익이 되는 지를 검토합니다. 인류에 도움이 되고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면 그 다음에 생산규모를 정합니다. 이어서 사장이 될 사람과 스태프를 정하지요. 그러나 세계정세가 악화되어 몹시 고생한 회사가 있기도 했으나 그럴 때는 다른 회사가 자금이나 사람을 원조합니다.


일본 기업은 아직도 연공서열형 인사가 많은데 삼성은 과감한 실력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연령이나 입사연도를 무시하고 실력본위로 할 생각이지만 아직 완전하게 할 수는 없군요. 그래도 30대 사장도 있고 중역의 평균연령도 40대 중반입니다. 한국 사회는 연장자를 소중히 모시지만 나이가 들어서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만두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30대 40대 팔팔한 사장이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불쌍하지요.


한국에는 미국과 일본 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기업의 경영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일본 기업은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기업으로서는 쓸데없이 급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종업원들의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도 마이너스는 아닙니다. 미국 기업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것은 미국 기업이 흉내 내지 못하는 관습이고 큰 특색입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은 미국과 일본 그 중간을 택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년 따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기업이 하고 있는 사원지주제를 한국에서 최초로 도입한 곳도 삼성입니다.




후계자는 셋째 아들 이건희로 결정


후계자는 정하셨습니까?

네, 정했습니다. 신문 방송쪽의 이사를 하고 있는 셋째 아들 이건희(당시 37세)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좀더 작은 규모라면 위로부터 차례로 맡는 것이 좋겠지만 삼성그룹만한 크기가 되면 역시 능력이 없으면 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장남은 성격으로 봐서 기업에 맞지 않고 둘째 아들은 독립 기업을 운영하는 정도가 적절할 것 같아 세 아들 중 막내로 정했습니다. 말하자면 각자 본인들의 능력에 따라 길이 갈라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기업의 리더나 사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 혼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우선 필요한 것은 지도력이죠. 지도력은 인격 지식 경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울려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경영능력이겠지요. 이러한 원리는 고금동서를 통해서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회장님은 엄청난 부자인 셈인데 마지막으로 금전철학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돈은 너무 많이 있으면 안 좋아요. 괴로운 일이 많아요. 질시 받고 욕을 먹고 우선 필요도 없지요. 아이들에게도 돈을 많이 주진 않아요. 자기 능력으로 벌어야합니다. 경영자금으로서는 주지만 경영능력이 없는데 주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12년 전에 땅이나 주식을 평가해서 총액 180억 원의 재산을 3등분했습니다. 3분의 1은 삼성문화재단에 기부하고, 3분의 1은 임원 등 삼성그룹 공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한편 종업원들을 돕는 기금으로 일부를 돌렸어요. 나머지 3분의 1이 나와 가족들의 생활비로 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병철 회장이 총수로 있을 때의 삼성그룹 기업체(또는 재단)는 다음과 같다.

삼성물산 / 제일제당 / 제일모직 / 제일합섬 / 전주제지 / 중앙개발 / 삼성전자 / 삼성전관 / 삼성정밀 / 삼성코닝 / 삼성전자부품 / 삼성석유화학 / 삼성중공업 / 안국화재 / 동방생명 / 신세계 / 중앙일보 / 동양방송 / 고려병원 / 호텔신라 / 삼성종합건설 / 삼성조선 / 대성중공업 / 삼성미술문화재단 / 성균관대학교 / 한국반도체 / 제일기획 / 삼성공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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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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