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유적지에서 국제조각전 준비하는 조각가 최금화
구석기 유적지에서 국제조각전 준비하는 조각가 최금화
  • 김두호
  • 승인 200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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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가 이태리 남자보다 더 좋은 까닭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구석기시대 주먹도끼가 출토된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21세기의 조각가들이 모여 돌의 예술제인 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생태, 자연, 환경’을 주제로 오는 8월 다양한 프로그램의 국제조각축제를 기획하고 준비 중인 최금화(48) 조각가를 만났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곧장 이탈리아의 명문 카라라국립미술원에 유학해 12년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현지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국제미술전에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아낸 작가다. 서로 다른 인간의 개성을 배우의 이미지에 연계시킨 다양한 캐릭터의 소재에 천착해온 창작 작품들은 국내는 물론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미술관이나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사랑하던 카라라의 대리석 분진을 향기처럼 마시며 살았고, 돌덩이를 떡 주무르듯이 다루는 두 손을 가지고 여전히 형체와 이미지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른 수천갈래의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조각 공구를 쥔 그의 가늘고 흰 두 손에 의해 아무것도 아닌 돌덩어리에서 아름다운 미술이 태어난다.

대학 강의와 창작활동, 각종 행사와 공연시설물의 미술 디자인 자문 등으로 빼곡한 일정에는 인터뷰 시간이 낄 자리가 없었다. 결국 주말이면 그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상리에 있는 허브빌리지의 아트 스튜디오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강이 내려다보이고 하늘엔 조각달이 떠 있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은?

조각을 비롯한 미술 작품을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한다. 주말이 되면 소풍 오듯이 달려와 이틀간 머물며 일한다. 경관도 수려하지만 공기가 한없이 맑은 곳이다.



8월에 개최될 국제조각심포지엄은 어떤 내용의 행사인가?

개최 장소는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가 출토된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관광지인 한탄강 유원지이다. 까마득한 선사시대 조상들이 돌도끼를 만들던 자리에서 이 시대의 조각가들이 역시 돌을 소재로 ‘생태, 자연, 환경’의 주제와 관련해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행사다.

연천군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후원으로 연천조각가협회(회장 최금화)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청소년들에게 체험교육의 현장이 되도록 제작과정을 그대로 오픈하고 또 ‘구석기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와 사진전도 계획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조각가들이 참가하는가?

한국에서 나와 이수홍(홍익대교수) 최인수(서울대) 이정훈(상명대) 김준(한국전통문화학교) 씨 등의 작가들이 참가하고 일본의 이시카와(큐슈대), 베트남의 부이 헤이슨(호치민시립대), 이탈리아의 맛싸리(카라라국립미술원), 미국의 제쎄 세리스버리, 대만의 임문해 조각가 등 6개국 1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에 조각 소재로 활용되는 돌은 어떤 돌인가?

작품의 주제와 행사내용을 감안해 국내서 채석한 돌을 활용한다. 우리나라에도 대리석이 나오긴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은 화강석이다.


대리석이나 화강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돌은 생산지에 따라 질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세계적으로 건축이나 조각용 석재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 이탈리아 대리석이다. 돌의 예술인 조각미술의 화려한 역사도 풍부하고 질 좋은 대리석의 생산지 덕분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돌은 주로 화강석인데 포천과 익산돌이 유명하다. 화강석은 입자가 굵고 단단하지만 깨어지면 유리조각처럼 부서진다. 반대로 이탈리아 대리석은 입자가 오밀조밀 곱고 결도 있고 부드러우며 충격을 받아도 깨어지기보다 멍이 든다. 대리석 결의 반대 방향으로 망치질을 하면 멍만 드는 경우가 많다. 다른 물건과 충돌했을 때는 대리석보다 화강석이 강하다.



이탈리아 대리석 이야기가 재미있다. 로마의 문화가 만들어진 이탈리아라면 조각예술의 본고장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이탈리아 대리석의 메카로 알려진 카라라에서 12년간 머물면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대리석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또 돌먼지를 공기처럼 마시며 살았다. 카라라의 대리석은 미켈란젤로가 애용하던 돌이다. 그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의 돌을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스타뚜아리오’로 일컫는 카라라의 흰 우유빛 대리석을 가장 좋아했다.

카라라의 대리석은 2천여 년을 캐냈지만 아직도 2천여 년 더 채석할 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한마디로 대리석으로 빚어낸 문화와 예술의 나라다. 살고 있는 집의 화장실 구석까지, 도시의 건물과 거리가 온통 대리석으로 짜여져 있다. 예부터 대리석이 목재보다 흔하고 싼 곳이다.


수천여년을 두고 돌을 채취하는 곳이라면 엄청난 돌산과 황량한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우리도 채석방법이 많이 개선되고 일부 지역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채석 기계를 활용하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해 마구 돌산을 파헤쳐 채석작업을 하는 곳도 남아있다. 이탈리아는 흡사 바위산을 두부모 잘라내듯이 반듯하고 아주 정교하게 단계적으로 잘라낸다. 채석장도 예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돌산을 마구 깨트리거나 황량하게 만들지 않고 차곡차곡 대리석을 규모 있게 빼내 쓴다.


대리석 가루를 공기처럼 마시며 산다면 건강에 후유증은 없는가?

그것도 화강석 가루와 다르다. 화강석 가루는 먹거나 폐에 쌓이면 후유증이 따르지만 대리석 가루는 입자가 황토가루나 분유입자 같이 고와서 몸 밖으로 배출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는 조각 작업을 하면서 마시는 정도는 먹어도 소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조각용 돌은 대리석이 화강석보다 훨씬 이상적이고 작업하기도 쉽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탈리아 대리석이 조각가들에게는 꼭 필요한 돌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입을 해야 하므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작업도 화강석은 물이 나오는 호스를 연결해 그라인더로 돌을 자르고 다듬는 작업이 따르지만 대리석은 물을 공급받지 않고 그대로 마른 톱날로 작업을 하게 된다.




카라라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토스카나지방에 있는 카라라는 피사에서 북쪽으로 40km 거리에 있다. 피렌체에서는 100km 떨어져 있다. 조각을 전공해 우유빛 맑은 결의 대리석이 나오는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85년 곧장 카라라국립미술원에 유학 갔다.

그때만 해도 한국 학생은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온 학생보다 식대 등에서 반값의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 학생들이 자신들은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고급차를 타고 통학을 하고 있다며 한국 학생을 가난한 나라 학생들에게 주는 혜택에서 제외해야한다고 항의해 혜택이 사라진 일이 있다. 그 무렵 나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였지만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버텨나가겠다는 각오로 유학비용을 스스로 해결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은 밤낮없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유학 초기부터 새벽 6시에 일어나 8시 반까지는 별도로 마련한 작업실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9시까지 학교로 달려가 오후 강의가 끝나면 저녁부터 심야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어떤 일을 했는지?

레스토랑의 서빙을 맡았다. 작업장과 학교와 레스토랑을 오가느라 기동성이 필요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나중에는 소형차를 몰고 뛰었다.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비용을 집안에서 송금 받지 않고 직접 벌어 충당했다.

공부를 하며 창작을 위해 별도로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운영하느라 더욱 고달프게 살았다. 밤을 새우고 돌먼지가 묻은 얼굴로 마을에 내려오면 동네사람들이 또 밤을 새웠느냐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런데 유학생비자로 돈을 벌 수 없어 아르바이트가 불안정할 때 레스토랑에 노인 한분이 찾아와 나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물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손님은 주인이 초청한 그 소도시의 시장이었다. 내가 워낙 성실하게 일해 주인이 시장을 초청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다.

그 후 시청에서 공식 초청 개인전을 열 때 다시 시장을 만났는데 그는 한눈에 학생시절의 나를 알아보고 자신의 기쁨처럼 좋아하며 축하해주었다.

발표한 조각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멋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아름다운 인간의 외형을 그려낸 조각이 많다. 그런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동기나 계기가 있는가?

서울에서 명지여고를 다녔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전공은 미술이지만 맘껏 하고 싶은 일을 두루 맛보고 싶어서 연극 동아리에 참여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연극배우 활동은 나의 미술인생과 창작활동에 하나의 과제를 던져 준 셈이었다.

인간의 본질이나 이 세상에서의 역할 등 인간이 가진 다양한 캐릭터와 배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들이 제가끔 가지고 태어난 개성과 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해내고자하는 역할, 그 역할들이 상호관계를 가지며 형성되는 스토리텔링이 내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된 것이다. 인간의 개성을 각자 다른 캐릭터를 가진 배우로 연상해 화려한 외모나 모자 등 액세서리와 의상으로 표현 한 것들에 그런 작의가 내포돼 있다.



조각은 한마디로 어떤 예술인가?

작가가 돌덩이 안에 작가의 혼을 불어 넣는 표현 작업이다.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가, 사는 게 무엇인가, 예술이 무엇인가 하고 자문자답하며 정답을 찾지 못해 방황을 할 때가 있지만 나의 작품은 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자식이고 분신이라는 느낌에는 궁금증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 작품을 만들면 인간의 신생아처럼 이름을 정하고 성격을 규정하고 스토리를 가진 인생을 불어넣는다. 나타나지 않지만 그의 운명까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종교가 있는가?

유학생활과 함께 작품 활동에 매달려 살다가 40줄 느지막에 결혼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종교가 없었지만 신의 존재를 믿었다. 결혼 후 남편과 시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찾게 됐다. 좋은 분들을 만나고 종교도 갖게 된 것 등 모든 점에서 행복하다.


재미있는 질문을 하고 싶다. 이탈리아 사람과 한국인의 기질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두나라 남자들의 장단점을 비교한다면?

바깥으로 드러나는 매너에서는 이탈리아 남자들이 우선 돋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서울로 돌아와 자동차를 타고내릴 때 남자들이 당연히 문을 열어줄 것으로 알고 멍청하게 기다리다가 바보가 된 적이 있는데 그런데서 이탈리아 남자들의 매너는 기분이 좋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이나 여자를 위해 배려하는 친절한 양보심 같은 것은 점수를 더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남편감으로는 한국남자가 우위에 있다고 본다. 그들은 귀가 간지럽도록 살살거리지만 변덕이 많다. 거짓말도 태연하게 잘한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정이 많은 것으로는 한국 남자가 돋보인다. 조직의 결속력이나 가족에 대한 보호의식은 그들도 강하다. 마피아의 세계도 의리를 중요시하는 그들 사회의 단면이다.


사실 남자든 여자든 한국인들의 인사예절은 고쳐야할 점이 많다. 누구든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서양인들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대부분 모르는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살 때 습관이 되어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저를 아십니까?” “저를 어디서 보셨습니까?”하며 황당한 반응을 나타내더라. 좀 모자란 여자 취급도 받았다. 하하하.




최금화 조각가는 여유있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자립의지를 실현한 유학시절부터 브레이크 없이 페달만 밟는 일상이 몸에 밴 것 같다. 그는 지금도 여러 곳의 일터와 창작에 몰두하는 철야작업으로 잠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유학중 현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피렌체 비엔날레를 포함, 이탈리아가 개최하는 50여 국제 조각예술제에 참가하면서 그의 손으로 빚은 작품들은 카라라 대리석박물관, 피에트라산타미술관, 팔레르모 월드컵스타디움 등에 전시되어 있다.

1994년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작가 신분으로 미국 로스엔젤리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미국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해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영화부문 안성기, 연극부문 오태석 씨와 함께 미술부문 한국최우수예술가상을 안겨주었다.

1996년 귀국 후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강릉대 수원대 대구가톨릭대 공주교대 등을 오가며 강의와 함께 창작활동을 해왔다. 2002년 월드컵기념 한일예술제, 2005년 한일우정의 해 기념 한일예술제를 비롯한 국내외 예술제에 출품한 작품들은 국내에 있는 외국대사관이나 대전 엑스포단지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작년부터는 인천시가 밀라노시와 협약한 인천경제특구안의 ‘피에라 인천’의 문화예술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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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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