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윈슬렛의 미진한 혁명 ‘레볼루셔너리 로드’
케이트 윈슬렛의 미진한 혁명 ‘레볼루셔너리 로드’
  • 김다인
  • 승인 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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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만난 미스 앤 미스터 타이타닉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대체로, 영화를 배우 때문에 보지는 않는다. 대신 감독이 누구인가를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예외다. 개봉중인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출연 배우 케이트 윈슬렛 때문에 보게 됐다. ‘타이타닉’ 이후 간간이 영화를 통해 볼 때마다 케이트 윈슬렛은 제대로 커가는 배우의 포스를 감지케 했다.

그 케이트 윈슬렛이 이 영화에 대해 미국 방송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오와 10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 너무 반가웠다. 우리 둘 다 이마에 주름이 그대로 잡혀있다며 좋아했다.”

상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타이타닉’ 이후 10년 만의 공연이었다. 보톡스 주사로 얼굴 표정을 잃어버린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과는 달리, 두 배우는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자연스러운 나이 그대로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기뻐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타이타닉’ 이후 10년 동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마틴 스콜세지 영화 등을 통해 성장해왔고 케이트 윈슬렛도 몇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만큼 돋보이는 필모그라피를 만들어왔다.

그 두 배우가 이마에 주름을 잡아가며 연기를 하는 영화가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한편의 소극장 연극 같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소극장에서 보는 연극 같은 영화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에까지 이른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결혼 7년째에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아담한 하얀 집을 마련한다. 그 집이 있는 곳이 레볼루셔너리 로드 115번지다. 그러니까 영화 제목인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프랭크 부부가 사는 곳의 주소이자 에이프릴이 추구하는 ‘혁명의 길’을 중첩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남매를 두고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을 이룬 프랭크 부부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배우가 되고자 했으나 썩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에이프릴은 일상에서 탈출해 변화를 갖고자 한다. 에이프릴은 남편 프랭크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가자고, 그곳에서 프랭크는 젊은 시절 꿈꿔오던 것을 다시 시작하고 생활은 자기가 취직해 해결하겠노라고 제안을 한다. 솔깃하던 프랭크는 그러나 직장에서 새삼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게 되자 파리행을 접는다. 낙담한 에이프릴은 12주가 된 세 번째 아이를 스스로 유산시키고 결국 삶을 마감한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이처럼 단순하다.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 세대의 어느 부부이건 겪을 만한 일을 소재로 했고 결말도 파격이나 도발과는 거리가 멀다.

도입부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간략하게 처리되고, 세월을 껑충 건너뛰어 결혼한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대판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서야 영화 타이틀이 등장한다. 이같은 편집으로 봐도, 이 영화의 연출의도는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에 있다.

갈등의 원인은 현재의 일상이다. 에이프릴의 대사에 따른다면 ‘본질을 질식시키는 생활’이다.

직장 여직원과 바람도 피우면서 하루하루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던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이 말에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는 곧 회사를 그만둔다고 휘파람을 불며 직장 동료들에게 예고까지 하지만 승진 기회가 주어지자 에이프릴과의 약속을 깬다. 결국 에이프릴의 레볼루션(혁명)은 완성되지 못한다. 완성되지 못한 혁명이니 불발쿠데타에 불과한 것이다.



프랭크의 약속 파기에 주변은 안도한다. 회사 동료들은 물론이고 이웃집 부부들도 파리에 가려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라며 ‘간다 해도 여전히 똑같은 생활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가지 않기를 잘했다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며 일상에 안주하고 있는 이들은 에이프릴의 도전에 부러움과 불안함을 동시에 보내다가 그것이 좌절되자 안도감을 감추지 않는다. 절망하는 것은 에이프릴과 그들 부부의 파리행을 응원했던 부동산 중개업자 헬렌의 아들 존뿐이다. 존은 수학자이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결말은 예상한 대로 비극적이다. 에이프릴의 죽음으로 혁명은 이뤄지지 못하고 프랭크의 가정은 파괴된다. 처음에는 이 프랭크 부부를 선망의 대상으로 보던 주변 사람들은 때를 만난 듯이 이들 부부를 조롱하고 프랭크 부부가 살았던 레볼루셔너리 로드 115번지 하얀 집에는 새로운 젊은 부부가 주인이 된다. 그 부부가 혁명을 이룰지 쿠데타로 끝날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에이프릴, 당신은 왜 그랬소?


영화 내내 에이프릴의 공간은 ‘닫힌’ 공간이다. 집안이거나 차 안이거나 클럽 안이다. 에이프릴은 프랭크를 배웅할 때도 집 현관 이상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에이프릴이 열린 공간으로 나오는 것은 파리행을 결정하고 프랭크, 존과 함께 뛰어가는 숲길, 이웃집 남자와 ‘번개 외도’를 하게 된 동기가 만들어지는 주차장, 그리고 파리행이 좌절됐을 때 집 밖으로 뛰쳐나올 때다.

그러니 영화는 거의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닫힌 공간에서 대화 또는 싸움을 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의 연기력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이같은 패턴의 영화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영화가 진지할 수도 지루할 수도 있다.

케이트 윈슬렛은 권태와 짜증이 돋은 30대 주부 연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일상에 길들여진 가장 연기를 하는 간간이 미숙한 소년의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의 합을 맞춘다. 마치 소극장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들 같다.

하지만 변화와 정착의 대립이라는 대주제를 설득력있게 해줄 소소한 장치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프랭크 부부의 대립이나 싸움은 다소 모호하게 다가온다. 감독은 프랭크의 지속적인 외도나 에이프릴의 순간적인 외도 등을 가볍게 묘사하고 지나간다.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에이프릴이 파리로 가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존재의 이유다.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이런 생활에서 질식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랭크가 “내 본질이 뭔데?”라고 묻자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고, 진정한 남자였다”라고 답한다.

난감하다. 부부간의 구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이 질식당하고 있는 문제라니, 이건 철학적인 사유 아닌가. 드라마적인 이유는 배제되고 대사는 사뭇 심오해서 에이프릴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니 잘 이해가 안간다는 말이 솔직하다. 게다가 남편은 꿈꾸던 자기 일을 하게 하고 자신은 돈을 버는 것이 과연 에이프릴의 본질인지도 의문이 든다. 에이프릴의 꿈은 배우였다는 건 알겠는데, 프랭크의 꿈은 뭐였나.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반가웠던 ‘미저리’ 아줌마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미국 중산층의 위선 가득한 생활을 그려낸 ‘아메리칸 뷰티’(1999)를 연출해 2000년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했던 샘 멘데스다. 시대 배경만 다를 뿐 같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연속성을 가지는 작품인데, 영화를 본 반향은 ‘아메리칸 뷰티’를 따라가지 못한다. 영화 초반의 강렬한 드라이브가 마지막까지 관통하지 못해 밀도가 다소 떨어지면서 에이프릴의 죽음에 썩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시대가 1950년대라고 해도, 초반에 보여준 에이프릴의 독립적인 생각과 태도, 더 나아가 철학적인 사유에 견준다면 다분히 상투적인 결말이다.

프랭크 부부를 둘러싼 이웃으로 두 부부가 등장하는데, 가부장적인 남편 솁 앞에서 맥을 못추는 아내 밀리, 부동산 중개업자 헬렌 부부가 그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부부의 삶이 좀더 심도있게 그려졌다면 ‘중산층 일상의 위선’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중 헬렌 역을 맡은 배우는 ‘미저리’의 광기어린 간호사 아줌마 캐시 베이츠다. 오랜만에 영화로 봤는데 의외로 개성 없는 역이라 실망하려던 차, 영화 마지막에 ‘미저리’적 내공을 보여준다. 프랭크 부부가 살던 집을 새 단장해서 젊은 부부에게 판 헬렌은 남편에게 “프랭크 부부는 짜증나는 부부였다. 집을 험하게 써서 안팔렸다”는 등 험담을 한다. 한때 프랭크 부부와 친해지기 위해 상냥하고 친절한 웃음을 보였던 헬렌의 얼굴에 이 순간 웃음기가 싹 가시고 차가워지는데, 이때 캐시 베이츠의 ‘미저리 연기’가 순간적으로 나온다. 반가웠다.


이 영화를 본 것은 평일 낮이었는데 의외로 중년 관객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중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 세 사람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여성1 “난 ‘타이타닉‘에 나온 배우 둘이 나오는 줄 알았데, 여자는 아니네” 여성2 “맞잖아? 둘 다?” 여성3 “아냐, 여자배우는. 거기서(’타이타닉‘)는 볼살이 퉁퉁했는데 여기 배우는 허리가 쏙 들어간 게 날씬하잖아?”

그분들의 대화에 비집고 들어가 그 배우가 그 배우라고 말해줄 만큼 오지랖이 넓지 못했던 게 아직까지 마음이 쓰인다. 어쨌든, 케이트 윈슬렛의 변신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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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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