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논쟁 접경에서 보수우파를 대변해온 작가 이문열
좌우논쟁 접경에서 보수우파를 대변해온 작가 이문열
  • 김두호
  • 승인 200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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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 대의민주정치가 위기에 놓여 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이문열 작가(61)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그가 발표한 다양한 장르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16개 언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도 문명(文名)이 알려진 정력적이고 역량있는 작가다.

그런 그가 어느 때부터인가 좌우 또는 진보 보수로 패가 갈린 지식층 사회와 언론, 정치문화권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복판으로 나와 보수층의 목소리를 토하기 시작했다. 분단과 이념적인 우리 사회의 갈등까지 소재로 즐겨 선택했던 그의 문학성으로 볼 때 자신의 평소 우파적이고 보수적인 이념과 소신을 드러낸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독자를 가진 인기 소설가의 목소리는 파장이 넓고 울림도 크다. 그로인해 진보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에는 그들 세력으로부터 불편한 인물로 경계를 받기도 했고 한때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9일 그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에 초청된 자리에서 이 시대의 사회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과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했다.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등장하는 소수의 그때 그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착시현상을 주도하고 다수를 조작하며 다수결의 원칙과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불복 세력으로 구조화되어 국가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 날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기자는 관훈클럽 회원으로 참석해 이날 회원들과 나눈 대화와 그의 강연 내용을 듣고 정리했다. 앞머리의 글은 이 작가의 강연 내용이다.



지친 대의민주정과 불복(不服)의 구조화

누구나 다 아는 일, 그래서 논의가 끝난 것으로 간주되는 일들을 다시 한번 곰곰이 따져보는 것도 때로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대의민주정치의 요체가 되는 다수결의 원리와 대의제도도 그런 일들이 될 것입니다.

다수결이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구성원 집단간의 물리적 충돌(최종적으로는 유혈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고안이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그런 고안을 해낸 인간이 참으로 신통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칙(經驗則)에 따르면 집단간의 물리적인 투쟁의 승패는 대개 구성원의 머릿수에 좌우되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의사결정에서 지지하는 구성원의 머릿수만 파악해보면 물리적으로 힘을 행사해보지 않고도 어떤 의사를 따라야할 지를 미리 헤아릴 수 있습니다. 곧 다수 구성원이 지지하는 의사를 그 사회나 집단의 의사로 간주함으로써 물리적 충돌에서의 ‘비극적 소모(消耗)’를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더욱 감동적인 것은 다수결이 완전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인간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 원리를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에 수용하여 일찍부터 많은 피와 눈물과 고통을 절약해왔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이 절대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면, 7명과 3명이 싸워도 반드시 7명 쪽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물며 51명과 49명의 싸움 같은 경우에서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념아래 다수가 이긴다는 의제(擬制) 또는 간주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민주정치에서 대의제로 전환한 과정을 돌아보는 것도 단순한 회고취미 이상의 유익함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정의 고향인 아테네의 경우,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거주민 열명 가운데 하나 남짓인 자유시민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 사안마다 수시로 광장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게 될 때 직접투표에 참석하는 것은 다시 그 자유시민 대여섯 가운데 하나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관리들이 모아들여 채운 머릿수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곧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전체 거주민의 3%내외, 자유민의 10% 남짓으로서, 양 뿐만 아니라 질도 보장되지 않은 의사결정 집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그와 같은 직접 민주정체 아래 이루어지는 다수결의 초라한 실체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참여비율이 낮은 까닭도 우리를 잠깐 멈추어 생각하게 하는 데가 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것은 시민의식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정치참여가 아테네의 생산성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곧 의사결정권집단의 5분의 일 이상이 직접적인 참여를 위해 광장에서 빈둥거리면 도시국가를 지탱할 생산체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거의 상시(常時)적으로 광장에 나와 있으면서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했던 자유민 다섯 가운데 하나가 그 질을 의심받은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입니다. 노예와 토지와 생산수단을 가진 시민이 상시적으로 광장에 머물며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포기하고 모여든 일부를 뺀 나머지 광장에 상주하는 참여자는 거기 나오지 못한 건전한 동료시민들의 의사를 대표할만한 자질을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런 불합리한 의사결정에 시달리던 아테네 사람들은 오래잖아 임기를 가진 대표를 뽑아 그에게 자신의 결정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곧 몇 달 또는 몇 년에 한번씩 투표하여 분별 있고 사려 깊은 동료에게 자신을 대신해 투표할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상시적인 직접참여의 부담을 덜고 자신은 생산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여기서도 감동은 그런 전환의 효율성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들의 대의제(代議制)에 대한 믿음입니다. 위임한 동료가 언제나 성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대리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선의를 기대하는 쪽이 직접민주정의 폐해나 불합리보다 더 유리하다는 걸 믿은 것입니다.



소수가 다수로 보이게 한 인터넷 착시현상


지극히 자조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태평양 전쟁에 승리하여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군장(軍裝)에 묻어온 독립을 부여받은 것처럼 독립 후의 정체(政體)도 그들의 지정을 받았습니다. 아주 자주적으로 말해도, 미군의 후원아래 대한민국을 세운 우리 한반도 남반부는 북반부의 정체와 대척의 의미가 있는 대의민주제를 우리의 정체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국 후 60년 우리 헌법은 여러 차례 손질되었으나, 다수결의 원리와 대의제도가 근본적으로 부인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대의민주정은 지쳐있고,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에 직면해있습니다. 오랫동안 은밀하게 우리 대의민주정의 지반을 침식해온 직접참여의 유혹과 대의제 다수결에 대한 의심은 이제 불복의 구조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위문화는 어떤 면에서는 직접적인 참여욕구의 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미군정에 이은 건국초기부터 시위문화에 침윤되고 있었고, 제1공화국의 독재와 제2공화국의 무능을 경험하면서 그 전통은 두께를 더해갔습니다. 그러다가 군사정권으로 시작한 제3공화국의 정당성과 정통성 결여는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을 관행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곧 권위주의체제의 반사이익으로 우리 시위문화는 때로 정의까지 독점하며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제5공화국 말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일상적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때맞춰 나타난 인터넷 광장은 직접참여의 욕구를 폭발적으로 확대시켰습니다. 기술적으로는 4천만을 일시에 그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그 광장을 선점한 소수는 억눌려 있던 직접참여의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일찍이 우리 경험에서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착시를 활용한 여론조작과 다수위장은 집단지성이란 허구를 만들어내었으며, 감각으로 수용한 정보의 파편들을 지성으로 착각한 사팔뜨기 지식인들은 마침내 대의민주정의 폐지까지 공공연히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보다 섬뜩한 것은 대의제의 다수결에 대한 불복의 구조화 과정입니다. 대의민주정체의 다수결에 대한 불복의 유혹은 모든 다수결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가졌습니다. 인간의 절대평등이 전제되지 않는 한 패배한 소수들의 의심을 면할 길 없는 그 태생적 한계 때문입니다. 패배한 소수들일수록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신하고 누구나 한 표씩 행사하는 다수결을 부당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들은 셋이라도 멍청한 일곱을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하는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 같은 것입니다.

대의제 다수결의 불완전성에 대한 보완장치로만 오해될 수도 있는 흐릿한 법률조항들도 불복의 유혹을 키운듯합니다. 사람들은 대의제민주정에서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다수당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위임한 것은 아니며, 그들이 불법이나 부정을 저지를 때는 불복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남아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일부 사람들은 다수당의 정책 방향이 자신의 그것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불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까지 합니다. 또한 국민소환제도와 마찬가지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비롯하여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를 촉진하는 여러 제도들이 바로 대의민주정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집회결사의 자유나 다중의 위력에 기초한 시위의 보장이 바로 대의민주정의 약점 보완을 넘어, 대의민주제의 다수결에 대한 합법적인 불복의 수단으로 부여되었다는 해석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을 고집하는 경우, 불법이나 부정의 기준을 어디에 두며, 정책방향의 정당성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에 따라 여러 가지 난점이 생길 것입니다. 만일 자의적인 기준이 남용되고, 정당성 판단의 주체가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재단하는 경우, 거기서 비롯된 불복은 무책임과 혼란으로 직결될 것입니다.

대의민주정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서 불복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저항권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 헌법체계가 수용하고 있는 법률제도는 아니며, 설령 저항권이 인정된다 해도 불복의 유혹이 일 때마다 그 비상한 권리를 끌어들이다 보면, 정작 거기에 의지해야할 때 그 권리는 아무것도 막아줄 수 없는 넝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교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은 불복세력


다수에 대한 오해와 착시도 대의민주정의 다수결에 대한 불복의 유혹을 키운 듯합니다. 특히 인터넷 광장의 착시현상은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고, 익명성 뒤에 숨은 조작은 터무니없는 소수에게 대표성을 안겨주어 다수로 혼동하게 만듭니다. 단언하건대, 전일적인 직업과 게을리 할 수 없는 전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붙어 앉아 그 광장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하지만 또한 하루 종일 인터넷 광장 속에 살다가 가끔씩 일상으로 외출 나오면서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는 사람 또한 그렇게 많지는 못할 것입니다. 댓글 속에서 서로 비아냥거리듯 일당 받는 알바(아르바이트생)들도 있겠지만 그들 또한 그리 수는 많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광장을 장악하고 다수를 위장하는 것은 대개 그들입니다. 건전한 일상에서 틈틈이 그 광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결코 다수를 조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터넷 광장을 통해 불려나온 촛불시위의 군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밤늦도록 또는 밤새껏 경찰의 물 대포와 맞서거나 몸싸움을 하다가 다음날 직장에 나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그 여러 날 밤을 내리 촛불을 들고 나선 사람도 그리 많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그토록 다수로 비친 것은 대의제 다수결(대선과 총선)에 대한 불복이 거기에 집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다수가 아니라, 몇 달 전에 있었던 대선 불복세력이 그 사안을 계기로 한곳에 모여 다수를 조작한 것일 뿐입니다.

따져보면 우리 대의민주정의 불복이 구조화되는 과정에는 우리 현대사 특유의 피로가 묻어있기도 합니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의 불행한 유산은 이른바 문민정부가 와도 불복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고, 국민정부 탄생 때부터 새로운 현상이 된 5%미만의 득표율차이는 그 유혹을 한층 더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이른 바 참여정부시절이 되면 불복은 이제 구조화의 기미마저 보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어떤 입법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을 때, 당시의 야당 의원들이 대표부터 중진까지 모두 그 시위대에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을 보고 짐작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아니 걱정했을 것입니다. 의회에서 대의권을 행사하라고 뽑힌 그들이 의회를 비워놓고 총선에 불복하는 시위대에 합세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당이 된 당시 야당은 결국 온전히 그 법안을 저지하지도 못했으면서 대의제 다수결이 부여한 의회의 입법권에 정면으로 불복한 선례만 남긴 셈입니다. 몇 년 뒤에 자신들도 집권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불복이 상시(常時)적인 구조로 자리 잡은 것은 지금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같습니다. 오랜 불복의 경력을 가진 ‘그때 그 사람들’과 지난 10년 동안 신 기득권층으로서의 단맛을 즐긴 사람들, 그리고 지난 정권이 정성을 들여 기른 일부 시민단체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의회를 뛰쳐나온 야당의원들이 그 앞장을 섬으로써, 이제 불복은 정교하고도 견고한 구조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촛불마당은 상시적으로 열려 있고, 구실만 생기면 자동적으로 작동합니다. 불복의 카르텔은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격려하며 지켜줍니다. 예를 들면, 지난시절의 단맛을 지키려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일부 방송은 낯간지럽게 촛불을 격려하고 부추기며, 촛불은 또 촛불대로 그 방송을 지켜주려고 시청 앞 광장과 그 방송사 주위를 분주하게 오락가락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불복의 대상은 이 정권이 아니라 이 나라 헌법체계의 근간인 대의민주제입니다. 그 구조화된 불복으로 대선을 통해 뽑힌 대통령의 통치권은 백일도 안돼 퇴진의 요구에 부딪히며 불구가 되고, 그가 내건 공약들은 촛불에 그슬려 잿더미만 남게 될 판이 되었습니다. 지난 총선의 다수결에 따라 여당에게 넘긴 입법권도 그 완강한 불복의 구조에 걸려들어 무력화되었으며, 검찰의 기소권과 법원의 판결권까지도 촛불의 승인을 받아야할 처지에 이른 것입니다.



정권의 결단으로 불복 해소하라


하지만 저는 이 논의로 정치적인 시비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불복의 구조화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그른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지를 판단하는 어려운 일을 떠맡을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다만 우리 헌법체계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체(政體)에 정면으로 불복하는 구조로 비틀거리는 이 나라 통치권과 갈수록 낭비와 비효율성에 빠져드는 정치 현실을 함께 냉정하게 돌아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복의 구조화로 지친 대의민주정은 종종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는 역사적 경험이 저를 거기서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 국가 사회주의(나치스)의 출현은 지친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의민주정체가 산출한 기형아이며 일본군국주의도 불복에 허물어진 대정(大正) 데모크라시의 불행한 유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중남미의 포퓰리즘을 지친 현대의 대의민주제에 대한 불복의 구조화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만약 그런 역사적 경험들이 우리에게서도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면 지금 이대로의 상태에서라도 치유를 강구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존립까지 위협하고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먼저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국민통합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보다 상위의 공동선(公同善)을 개발하여 불복을 조장해온 자질구레한 대의를 압도할 수 있다면, 분열을 봉합하고 불복이 구조화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분열의 골이 너무 깊고, 그 원인이 된 상충하는 대의들을 압도할 공동선도 쉽게 개발될 성 싶지 않아, 이 방안은 자칫 공허한 구호로 그치고 말 공산이 커 보입니다.

그 다음은 불복세력의 자제입니다. 자신들에게도 집권의 기회는 남아있고, 그때 다시 반신불수의 권력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도 우리 정치문화에서 불복이 구조화하는 막아야 한다는 각성이 있다면 그들의 자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각성으로 한 순간에 해소하기에는 불복의 구조화가 너무 견고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 이는 불복을 넘어 승리의 확신까지 품고 이 정권에게 전면적인 투항을 권고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는 마지막 방안은 정권의 결단입니다. 적극적으로는, 확고한 자기방어의 의지로 대의민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체계를 수호할 효율적인 수단과 방도를 찾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의민주제가 이미 용도 폐기된 정체원리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헌법 개정으로 자폭하고 새로운 헌법체계에 따라 형성된 정권에게 모든 것을 이양하는 것도 해볼 만한 결단이 될 것입니다. 해놓고 보아도 하나같이 가망 없어 암울해지는 제안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정치통로가 막히다 보니까 직접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당론이나 청와대 뜻에 얽매인 그런 체제에서 벗어나 국민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가, 그런 의견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결론 부분에서 거칠게 말했습니다만, 우리 법체계를 바꾸고 제도를 바꾸어서 직접참여 혹은 불복을 합법화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구조는 이대로 두고 불복을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서 우리의 헌법체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도 지난 5월 시청 앞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안이면 늘 예측되는 아까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사람들, 또 인터넷 광장에서 착시와 오해를 일으킨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양성에 대해서 별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때 제가 현장에 없어서 다양성을 실감하지 못했는지 그건 한번 뒤돌아보겠습니다.


촛불 시위를 이끈 세력이 국민다수가 아니라 대선 불복세력이라고 주장하신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그런 견해에 국민 다수가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지요?

조금 전에 제가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만 다양성보다는 반복적인 패턴, 언제나 그런 종류의 사안이 있으면 텔레비전 앞에 비치는 사람들이 늘 등장하고 또 마지막에 다수들이 뒤로 물러나면 무슨 종교계 사람이 나오는데 역시 또 ‘그때 그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사안에서 국민적 다수를 확인할 수가 없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권이 결단을 내든지, 아니면 '대의민주제가 용도 폐기된 정체원리'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헌법개정으로 자폭하고 새 헌법에 따라 형성된 정권에 모든 것을 이양하라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셨습니다. 만일 새 헌법체계가 만들어진다면 근간이 무엇이 될 수 있으며 국민들이 동의할 것으로 보는지요?

끝에 덧붙인 저의 제안 같은데. 사실 지금 정권이 우유부단하다고 말해야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빈정대는 부분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의민주제가 이제 용도 폐기 된 것이냐는 우려를 꺼냈다가도 윗사람이 나와서 한마디 하면 쑥 들어가 버리는 사항을 보고 제가 빈정거리는 의미로 덧붙였습니다. 자폭의 단계는 다수를 위장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주장대로 만들어진 세계로 우리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헌법 개정이라는 말은 민감한 사안입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연임제와 관련된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 논지하고 맥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통령 임기에 대한 부분은 고려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날 보편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등장한 인터넷에 대해서 대의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이 구축되고,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는 소수의 꾼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서 다수인 것처럼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요?

우리 경험에 없던 사태이기 때문에 대안보다는 그냥 하나의 예측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광장의 시대이고, 그것이 경험이 없는 광장이긴 하지만 지난 시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광장들이 정화되었던 과정을 보면 언젠가는 정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또 인위적으로 재편하고 통제해야 할 수단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저로서 별로 아이디어가 없는 셈입니다. 다만, 얼마 전에 인터넷 실명제법이라고 해서 논쟁하는 걸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새로운 법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통제를 할 수 있다지만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이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이 실제로 영향을 주고 피해를 주는 범위에 맞게 새로 제정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불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불복은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해서 참여정부에서 구조화 됐고 상징적이 된 것이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을 끊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지난번 대통령 탄핵의 경우 저는 그것을 불복의 구조화라고 보지 않고 오히려 대의민주제도에 충실한 합법적인 결정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국회탄핵권이라는 것은 대의민주제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탄핵을 불복의 구조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다음에 그 고리를 누가 먼저 끊느냐는 사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진 자가 양보해야하고 있는 자가 내놔야 하는 것이 요구되겠지만 현실정치에서 잘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자조적으로 말했습니다.


인터넷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셨는데 본인은 인터넷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며 창작활동에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는지요?

저는 인터넷을 쓰기는 많이 씁니다. 그러나 대단히 즐겨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넷 이메일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4년 전이었지만 최소한 어쩔 수 없을 때 쓰고 즐겨 쓰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문학 활동에서도 인터넷으로 제가 소설을 제일 처음 발표했습니다. 2002년에 이미 인터넷 소설을 발표하고 판매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자신이 쓸 줄 몰라서 부정적인 면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인터넷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여러 불합리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주년이 됩니다. 압도적인 지지로 위임을 받았는데 그 동안의 과정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상황'을 100% 장악 못하고, '상황'에 휘둘리면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능력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춧불 시위, 용산참사라던가 좌파세력의 방해라고 할까 불복종 때문인지 그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하하. 제가 뭐... 세상일이라는 게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겠지요. 설령 그런 것들이 있더라도 능력있고 요령있게 대처하면 훨씬 더 방해가 적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반대로 능력에 문제가 있더라도 사회적 불복이 방해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텐데요. 아마 지금 상황은 이쪽의 능력 부족과 저쪽의 불복이 상충작용을 하는 그런 상황 같습니다.


결국 대의제 민주정치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과제입니다. 직접 민주정치로 가버린다 해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민주정치를 서양에서는 디지털 데모크라시라고 하는데 앞으로 새로운 정치제도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가상 대의민주정치와 관련해서 작품을 하나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사실은 잘 알려졌다시피 제 성향이 새로운 것에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새로운 것에 늘 자신이 없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해 말했지만 제 진심은 지금 있는 것도 잘 조정만 하면 충분히 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구상에 대해서 따로 작품을 만들 만한 생각을 해둔 게 없지만, 앞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착시현상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때 현장에 안계셨기 때문에 오해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 갔을 때 보면 초등학생부터 여고생, 할머니도 계셨고 유모차를 끈 엄마들도 나왔습니다. 착시현상일 수도 있다면 이번 이명박 정부의 탄생 역시 방송이나 언론에서 굉장히 훌륭한 CEO다, 깨끗하다 한 점 부끄럼없다, 그런 말에 착시를 당한 대중들이 너무 많이 찍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 안합니까? 본인의 착시현상에 대해서 의심해 본 적은 없습니까?

인터넷을 통해 서울역이나 시청앞 광장에 모이신 분들이 전부 다 인터넷의 착시현상 때문에 왔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5백만표나 더 많은 표가 몰려간 것이 착시현상이라고... 제가 보기에 그 때 우리 인터넷이나 방송매체가 일방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유리하게 해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시위 현장에 없었지만 오히려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정도 실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조금 전에 말한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나왔다는 것.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작년 5월 9일부터 11일까지 삼일 동안 다른 모임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플라자호텔에 묵으면서 매일 두 시간씩 나가서 초기 촛불시위를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까 시위하는 분 중에 한 7, 80%는 가족단위더군요. 대개 고등학생이 맏이고 중학생이 둘째거나, 중학생이 맏이거나 초등학생이 둘째인 그런 연령층의 가족들이 잔디밭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 같고 그 다음 나머지는 취재진 정당관계, ‘그때 그사람들’이었어요. 그 뒤 6월에 돌아 올 일이 있어 보니까 전혀 구성이 달라져 있더군요. 그래서 성원의 일관성이랄까. 전체적으로 촛불 시위를 다 두고 본다면 그런 것이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최근 용산참사를 연쇄살인사건으로 덮어서 활용하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합당하다고 보는지요? 만약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대응했을지요. 또 하나는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실 이 질문을 제가 근간에 여기저기 서른 곳쯤에서 받았으나 늘 피해왔어요. 사안마다 내가 나서서 말한다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고 또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질문을 받으니 간단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이메일을 보내서 그랬다 하고, 청와대는 개인 생각이었다고 해명 하는데 어쨌든 개인이 했다면 멍청한 짓 혹은 실패한 보필일 것이고, 청와대 차원에서 기획됐다면 그것도 아마 무능의 일종일 겁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지난 정권 때 그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아마 그때 야당이었던 현 여당이 충분히 활용했겠지요. 뭐 지금도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다음에 미네르바는 인터뷰나 언급을 요청받을 때마다 거절한 이유가 똑같습니다. 말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우리의 지성풍토가 한심합니다. 사실 나는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깊이 있게 미네르바 기고를 본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몇몇 전문가들의 얘기에 의하면 그걸 가지고 전 언론이 떠들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과민반응이랄지 이상한 열광을 부끄러워 해야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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