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사형수 상담해 온 교화위원 양순자
30년간 사형수 상담해 온 교화위원 양순자
  • 유성희
  • 승인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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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반성안한 사형수 박한상”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지난 30년간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형수들을 상담해 온 양순자 선생(70). 그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의와 군부대 강연을 통해 사형수들을 만나며 경험했던 죽음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전파하고 있다.


교도소 교화위원은 종교인들 가운데 2년에 한번 법무부 장관의 위촉을 받은 사람으로 구성된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통해 서울구치소 교환위원의 제안을 받은 그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자원을 했다. 5,60대가 대부분인 교화위원 중에서 그는 1977년 37살이라는 나이에 서울구치소 최연소 교화위원이 되었다.


그가 상담한 사형수들 중에는 유독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많았다. 오휘웅 사건(1974년), 골동품상 주인을 살해한 금당사건의 박철웅(1979년), 돈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1994년) 등을 만나 상담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만났던 사형수들 이야기를 토대로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교화위원이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어서 오빠를 잃으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이 죽음에 대한 동경으로 번지기까지 했어요. 살아계신 어머니 때문에 책임감은 강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항상 세상 살기 싫은 마음이 컸어요.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내 마음 같지 않은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어요. 마침 교회를 통해 사형수 교화위원 제의가 들어왔는데 ‘사형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집행을 기다릴까’ 알고 싶어서 자원을 했어요.


사형수들과 상담을 하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는 죽음을 향해 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혼돈을 겪게 되요. 그래서 일반인들보다는 주로 종교인들이 상담을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면서 도움을 주게 되지요. 일주일에 한번씩 1시간 정도의 상담이 이루어지는데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도 부르면서 상담을 했습니다. 사형수들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걸 듣고 그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지요.


지금까지 몇 명의 사형수를 만났죠?

교화위원은 자신이 맡은 사형수의 형이 집행이 될 때까지 한 명의 사형수만을 만나기 때문에 30년 동안 8명의 사형수들을 만났어요.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는 짧게는2~3년에서 길게는 5~8년 넘게 걸리기 때문에 한사람과 오랫동안 상담을 하게 됩니다.



죄명을 알고 사형수를 대면할 때 두려움이 앞서지 않았나요?

교무과에서 전해준 정보를 통해 굵직한 대강의 죄명은 알게 되지만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아요. 너무 자세히 알게 되면 상담자로서 힘든 부분이 많아요. 변호사나 기자들이 찾아와 사형수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건 없는지 물어올 때가 있는데 내가 오히려 그들보다 정보가 없어요. 상담할 때 사형수 자신도 죄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지은 죄는 땅에 묻고 싶은 법이니까요.


사형집행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형수들이 많이 변하겠지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법정에서 선고가 떨어지기까지 대부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사형선고가 떨어진 다음에서야 엄청난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게 되요. 이후에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정신적으로 정상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기회만 생기면 자해하려 들고 자살을 시도하려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큰 사고 나기 십상이에요. 그때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독방에 감금을 시키고, 교화위원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때가 사형수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평정을 찾고 상담을 통해 죽음을 향해 가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지금은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예전에는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사형집행이 이루어졌어요. 가을이 접어들면서부터 사형수들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가기 시작합니다. 죽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전혀 교화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나요?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저지른 박한상에게는 두손 두발 다 들었어요. 6년 동안 상담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부모를 살해하고도 반성은커녕 빠져나갈 생각만 하면서 범행을 끝끝내 부인했어요. 사형수들을 상담하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동정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박한상만큼은 지금도 용서할 수가 없어요. 결국 상담을 포기해버렸어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상담한다는 사실을 별로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교도소 봉사를 한다고 하면 ‘그 죽일놈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냐’고 질타를 해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 그렇지는 않은데 범죄자들 가운데 80% 정도는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아요. 어느날 갑자기 잘못해서 사형수가 된 경우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들을 만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사형대를 향해서 걸어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우리가 부모님 밑에서 사랑 받으며 자랄 때 내 이웃의 누군가는 불행하게 살아와 사형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형수들을 만나며 일상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의 뉴스를 접하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나한테는 저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 이라고 대부분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는 죽음이 오는 줄은 알면서 정작 죽음은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막상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이 오면 느껴지는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예요. 사형수들과 긴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나 자신이 사형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행동할 때가 있어요. 잠깐 외출할 때도 집안정리 다해놓고 현관에 서서 꼭 마지막인 것처럼 집안을 둘러보고 나오곤 해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사형수들이 남겼던 말이라든지,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나요?

사형집행은 1급 비밀이라 성직자와 의무관만 하루 전날 통보를 받게 되요. 사형집행일은 숨도 못 쉬는 날이에요. 사형장과 면회실은 같은 길로 통하는데 사형장으로 방향이 갈리게 되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물을 쏟기도 하고, 억울하다고 발악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금당사건 박철웅의 경우는 첫만남부터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잊을 수가 없어요. 잘생긴 외모로 여자를 상대하는 데는 도가 텄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데 혼자 세 사람을 살해해 자기 집 정원에 묻어놓고 그 집에서 3개월이나 지낸 범죄자였어요. 이 사람을 어떻게 감당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나이를 물어보니 나보다 9개월 아래더라고요. ‘누나’라고 못 박으면서 기선을 잡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박철웅이 열성적인 종교인이 되어 말썽꾼인 재소자들을 통제하는 전도사로 나섰어요. 죄를 뉘우치고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박철웅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저런 모습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고 해요.


사형수들은 대개 어떤 공통점이 있죠?

사형수가 되면 가족관계는 대개 해체되기 때문에 집 걱정을 많이 해요. 또 하나는 지나간 잘못에 대한 후회를 하는데 그들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스러운 게 후회라는 걸 느껴요. 정말 후회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견이 여전히 팽팽한데, 개인적인 의견은 어느 쪽인지요.

처음에는 사형에 대해 반대를 했지만 지금은 100% 반대는 아니에요. 사형폐지를 반대하고 일어난 사람들이 거의 다 종교인들인데 신앙의 양심에서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피해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용서는 그들로부터 가능하다고 봅니다. 유태인 학살에 희생당해 가족을 잃은 한 여인이 이제는 가해자들을 용서한다고 말한 이후에 우연히 부모를 죽인 당사자를 만났을 때 심장이 멈춰버리는 고통을 느꼈다고 해요. 사형폐지는 하기는 하되, 피해자들의 용서가 없는 한 함부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사형수들을 교화해오며 얻은 삶의 교훈이 있다면요?

나는 죽고 싶어서 사형수를 만나러 교도소에 갔어요. 사형수들은 언제 형이 집행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죽음을 경험하며 살고 있어요.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무엇이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운지를 알게 됐어요. ‘사형만 면하게 해준다면 죽는 날까지 살과 뼈가 가루가 되도록 좋은 일만 하고 가겠다’는 그들 앞에서, 죽고 싶다는 내 생각은 사치였어요. 그렇게 용서를 빌어도 그들에게 사형이 정지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고는 산다는 게 절체절명의 사실이란 걸 깨달았죠. 우리의 인생은 다 어둡고 괴로워요. 어둠을 물리치는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닌 자그마한 성냥불빛이에요. 자그마한 성냥불빛 하나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시련 앞에서 나약한 마음을 먹는 일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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