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김수현이 대종상을 거부한 사연
방송작가 김수현이 대종상을 거부한 사연
  • 신일하
  • 승인 200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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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철수 <에미> 연출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김수현은 자신의 삶(작품)을 치열하게 사랑하고, 맛있게 가꾸는 작가다" 지난 14일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열린 기획대담 <김수현을 말한다>에 패널로 참여한 박철수 감독이 김수현 작가에 대해 이처럼 평하고 영화 <에미>와 <눈꽃>을 연출하며 있었던 일화들을 소개했다.

“내일 영상자료원에서 학술포럼 주제 발표 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정리해 놓은 거 볼 수 없을까?"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 기자와 마주친 박감독이 간청에 마지못해 노트북을 꺼내 연결해 줬다. '김수현 단상(斷想)' 형식으로 작성한 원고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었다.


'김수현'하면 상하종횡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천재적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김수현은 40여 년간 소설로 라디오로 영화로 흑백TV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총체적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김수현이 토해 낸 글은 모두가 그 시대의 주장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그야말로 김수현 신드롬이 된다. 따라서 객관적 시각으로 작가 김수현을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부언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김수현에 대해 더 잘 알고 느끼고 있을 터고 또 인터넷정보가 더 풍성하게 김수현을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내 영화 인생에서 비껴 갈 수 없이 한 부분이 된 비하인드가 더 재미있고 새로움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백 컨데 김수현은 내 작가적(?) 자존심과도 관계가 있다.


박감독은 "지금도 작가 김수현의 이름만 빌려와도 돈이 되고 고공시청률이 된다. 때문에 출판사도 방송사도 영화사도 TV연출자도 그 이름을 빌리고 글을 받으려고 줄을 선다. 김수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반드시 연기 잘하는 스타가 되고 작품을 연출하는 PD는 당연히 인기 연출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MBC의 드라마국 PD로 있을 당시 김수현 작가와 드라마 한편을 만들어 보지 못한 것은 불행이었다"며 실토했다.


하지만 박감독은 1985년 영화사 황기성사단 창립 작품 <에미>를 의뢰받으면서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박감독은 MBC <베스트극장>에 출연했던 윤여정의 소개로 김수현 작가를 알았고, 김작가는 영화 <에미>의 시나리오 작업을 쾌히 승낙해 주었다. 시나리오 집필 기간 중 박감독은 서울 평창동 김작가 집을 방문해 작품 방향에 대한 대화(거의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편)를 나누고 김작가가 직접 해주는 정갈한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수현 작가하면 떠오르는 나의 주관적 편린 1. 거실과 통하는 주방으로 햇살이 비껴 떨어지는 가운데 왼손엔 담배를, 오른손으로는 가스 불을 조절하며 음식이 알맞게 익을 때까지 레인지 앞을 떠나지 않고 찬찬이 생각에 잠 긴 채 오래도록 서 있는 뒷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고 근사했다. 이윽고, 공부에 열중해있는 딸을 친구처럼 부르며 2층으로 올라가 딸을 데리고 와 식탁에 앉히기까지. 난 그 모습을 영화 <에미>에서 윤여정씨를 통해 그대로 재현했고 아직도 내가 가장 아끼는 화면 중에 하나로 기억 되고 있다"

박감독은 또 다른 편린에서 김수현은 자신의 삶에 치열하다고 밝히면서,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늘 경이롭고 신비하고 독기까지 뿜어낸다고 표현했다. "끝내 우리는 김수현 덫에 걸리고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러면서 정작 김수현 자신은 그런 우리를 버려 둔 채 냉정하다"고 설명한 박감독은 김수현의 작품은 '디테일함' '일상성 위트' '뿜어져 나오는 독설과 역설과 파괴의 미학'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에미>는 완성되었고 그해 대종상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였지만 "난 김수현 작가에게 형편없는 X감독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시나리오와 거리가 먼 영화가 됐다는 이유였다"며 그동안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그런데다 대종상 심사에서 각본상 수상자로 결정됐는데도 김 작가는 수상을 거부하는 고집을 부려 박감독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후 MBC로 복직, 일하다 1989년 방송을 떠나 충무로 둥지로 돌아온 박감독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김수현 소설 <눈꽃>을 영화화하게 되었다고 술회.

"어느 제작사에서 연출 의뢰를 해왔다. 난 기꺼이 응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윤정희씨와 이미연씨가 모녀 연기를 해 그해 대종상 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가 이 영화를 봤는지조차 난 알 길이 없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난 김수현 작가에게 영원히 X감독으로 남은 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씁쓸한(?) 관계가 되어 있다"

박 감독은 김수현 작가 작품이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여전히 크게 존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면서 "내가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만났던 때는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고 이젠 어느덧 나도 내 인생을 성찰해가면서 살 때에 와있다. 만약 지금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면 X감독이란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라며 회한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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