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은 다큐고 ‘소리’는 드라마다
‘워낭’은 다큐고 ‘소리’는 드라마다
  • 김다인
  • 승인 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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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관객 틈에 끼어 본 영화 ‘워낭소리’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울림이 커서 소리 따라 가봤다.

독립영화가 일반 극장 개봉에서 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으니 대단한 화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수요일 3시20분 압구정CGV 4관. 7개관에서 상영하다가 확대 상영을 하는 바람에 광화문까지 가지 않아도 좋았다. 광화문에 있는, 약간은 은밀하고 독립적인 자아들이 모여드는 영화공간 씨네큐브가 이런 영화 보는 데는 딱이지만,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한 시간에서 삼십분으로 줄이는 경제성을 택했다.

상영시간 오분 전쯤 들어간 극장 안은 유달랐다.

육십쯤 돼보이는 아주머니 부대 여나믄명, 흰 머리 드문드문한 어머니와 딸, 베레모를 점잖게 쓰고 혼자 온 할아버지 등, 거의 다 들어찬 객석의 구성은 흡사 시니어 모임 같았다. 젊은 커플들은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여태까지 수많은 극장에 가서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런 객석 구성은 처음이었다.

극장 안 연배와 관계없이 영화 상영 전 광고는 한껏 젊었다. 가수 이효리가 소주는 흔들어 마시는 것이라고 윙크하는 바람에, 영화 끝나고 나가서 누구랑 한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이윽고 극장 안은 ‘워낭소리’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소, 그리고 할머니


2007년 1월 경북 봉화 청량사. 노부부가 석탑 앞에 앉아 죽은 소의 넋을 위로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시간은 2년 전으로 돌아가 모내기를 시작하는 봄부터 추수를 끝낸 겨울까지 사계절을 그대로 담아낸다.

2005년 4월 79세 할아버지와 71세 할머니가 농사를 짓고 사는 산골. 거기에 늙은 소 한 마리가 이들의 일꾼으로 30년째 함께 살고 있다. 소의 나이는 마흔살. 늙고 야위어 허리뼈와 엉치뼈가 흡사 낙타의 등처럼 튀어나온 소다.

소가 잘 먹지 않고 설사를 한다는 말에 들른 수의사는 소가 이제는 너무 늙었다며 길어야 일년을 더 살 거라고 진단을 내린다.

늙은 소가 일년밖에 못 산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우시장에 가서 새끼 밴 암소를 사온다. 하지만 아기 낳기 전까지는 상전이라 일을 시키기는커녕 외양간 독차지까지 한다.

인간과 가축이라는 점은 달라도 똑같은 ‘노동DNA'를 지니고 있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는 눈만 뜨면 함께 나가 논 농사 밭 농사를 짓는다.

한쪽 다리가 심하게 야위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소는 더없는 일꾼이자 발이다. 소가 끌면 할아버지가 쟁기질을 하고 소가 끄는 수레를 야윈 할아버지가 올라타고 이동한다.



할아버지는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꼴을 베고 밭을 맨다. 옆논에서는 농약을 쳐도 소 먹을 꼴에 농약 들어가면 안된다고 약도 안치는 황소 고집이다. 그런저런 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늙은 소의 걸음은 쉬어가는 일이 잦아진다.

결국 2006년 12월 늙은 소는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장판으로 둘러쳐진 외양간에서 머리를 내민 채 숨을 거둔다.
소와 할아버지 주위를 늘 맴돌고 있는 할머니는 이 영화의 내레이터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는 거의 말이 없는 대신 ‘씩씩한’ 할머니는 연신 드센 경상도 사투리로 팔자타령을 한다. 할머니의 넋두리 덕에 이 노부부의 자식이 9남매이며 소 덕에 농사 지어 다 공부 시켰고 할아버지 한쪽 다리가 저리 야윈 것은 어렸을 때 침을 잘 못 맞은 탓이며 몸이 안좋은데도 눈만 뜨면 일하러 나가는 것은 어려서 남의 집 살이 8년 하는 동안 몸에 밴 습성 탓이라는 등등의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늙은 소 때문에 당신의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이 내내 못마땅하다. ‘일은 황소만큼 부려먹고 (몸에 좋은) 민들레는 소를 주는 할아버지’에 대해 장탄식을 늘어놓으며 소가 죽어야 자신의 팔자가 펼 거라는 등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할머니의 장타령은 자막으로 처리되어 간간이 웃음을 끌어내는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이 된다.



다큐가 만들어내는 드라마


‘워낭소리’는 감성적인 다큐멘터리다.

감성적이라는 것과 다큐멘터리는 자칫 충돌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있는 사실 그대로 찍는 다큐의 특성을 감성적인 앵글이나 촬영이 더하거나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부분은 카메라 앵글에서 감추지 않고 드러난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흐릿한 할아버지의 눈과 충혈된 듯한 소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화면을 보고 있자면 자연 인생이나 축생이나 똑같이 슬퍼진다. 이같은 클로즈업 화면에 관객들은 각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감성을 대입해 슬프기도 하고 허무해하기도 한다. 피사체를 어떤 앵글로 어떤 거리에서 얼마의 시간으로 잡는가는 찍는 주체가 피사체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 또는 그 화면을 보는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편집 또한 마찬가지다. 소를 몰아가며 논 일을 하는 할아버지 뒤로 기계로 모내기 작업을 하는 이웃이 보인다. 코뚜레와 워낭에 매어있는 소의 모습 다음 화면은 들판에서 아무런 신체적 제약 없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소떼를 보여준다. 이같은 교차편집은 소의 현재, 그 신세의 안타까움을 극대화시키는 감성적인 방법이다.

그런데도 감성과 사실이 이 영화에서는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가 연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그날 저녁 우연찮게도 KBS TV 마감뉴스 시간에 이충렬 감독 인터뷰를 보게 됐다. 이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아버지와 소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며 오래 된 일소와 소 주인 할아버지를 수소문해서 3년 동안 촬영한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몸이 좀 불편하신 분이면 어떨까 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말을 듣자면 이 영화는 출발부터 감성적으로 기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처음 논 갈고 밭 갈 때보다 추수를 할 때 훨씬 앙상하게 말라버린 소를 보는 일은 심히 마음이 안좋다. 거기에 구부정한 몸에 앙상한 다리로 기어코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의 “(머리가) 아파, 아파”하는 단발성 말들은 그 말이 소의 말인 것 같게도 한다.

거기에 타령조처럼 얽히는 할머니의 투박하고 거칠 것 없는 말들은 흡사 고수의 장단처럼 드라마를 형성해준다. 소의 목에 달려있는 워낭은 거기 있는 사실(다큐멘터리)이지만 그것이 움직이면서 들리는 소리(소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은 소박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별다른 치장없이 진행되던 영화에서 그러나 읍내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 앞을 소달구지를 타고 나란히 가는 장면 등은 인공적으로 보인다. 추석날 가족들이 떠들썩하게 몰려와 소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도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안방에서 ‘인간극장’ 보듯


노부부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로 또 한 편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다. 노년기에 외롭게 지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집 살림을 하면서 나누는 사랑--육체적인 사랑을 포함한--이 그려져 있다.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영화가 상영된 극장에는 젊은 관객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인들의 사랑이라? 뭔소리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노부부의 은밀한 방안 사랑은 사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끔 헛기침을 하게 만드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워낭소리’에는 그런 쑥스러움은 없다. 대신 연민--세대를 막론하고 지닐 법한--이 있다. 그 연민은 할아버지와 소에게 동시적으로 향하는 것이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놓아드려야 할 것 같은 가책도 있다.

객석 구성이 남다른 만큼 영화 중간중간 넣어지는 추임새도 달랐다.

뒤에 앉은 한 아주머니는 영화 초입에 논물에 웬 곤충이 떠있자. “저거 물방개다”라고 옆 뒤 앞 사람들에게 친절히 알려주고 소를 놓고 “팔아”하는 할머니와 “안팔아” 하는 할아버지의 대사가 반복되자, 극장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안방인 듯 “팔아! 안팔아!”를 소리 높여 외치는 할머니도 계셨다. 머리 아픈 할아버지와 뼈가 드러난 소를 보고 번갈아 혀를 차는 단체 관람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영화 내내 계속되던 추임새는 소가 눈물을 흘리자 뚝 끊어졌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옆자리의 딸은 분주하게 안경 속으로 손을 넣어 눈물을 닦는 눈치다.

거의 거실에 모여 공중파TV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것이 이 영화의 관객몰이 포인트이기도 하다.

영화가 젊은이들의 향유물이라 여겨 그 근처에 가는 것도 쑥스러웠던 중장년층들의 감정속도에 모처럼 맞춰진 영화인 것이다. 요즘 대부분 영화가 MTV 수준의 커트와 편집으로 ‘정신 사나운 데’ 비해 이 영화는 소의 걸음처럼 할아버지의 걸음처럼 천천히 여유있게 보면 되기 때문이다.




공연히 슬프기 싫어서


‘워낭소리’가 수십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이의를 달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단조롭고 평면적인 것은 아쉽다. 이 감독의 말대로라면 3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인데 그 시간이 조금 더 세밀하고 다각적으로 화면에 나타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40년을 일만 해온 소가 곧 죽어간다는 것에 시각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소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소가 하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쪽 다리를 거의 못쓰고 귀도 안들리고 머리가 아프다는 할아버지는 애처로움의 결정체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의 일상을 공연히 안쓰럽게 볼 권리는 이 다큐를 촬영한 사람에게도 관객에게도 없다. 인간이든 가축이든 자기의 시간을 자기답게 소진하고 생을 마감해가는 것이 왜 이리 일방적으로 불쌍해 보여야 하는 것인가. 그건 소에 대해서는 ‘사람’의 시각으로,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의 시각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 인간이든 가축이든 원래 태어나고 죽는 게 슬픈 거야, 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공명(共鳴)이 얕다.

‘워낭소리’를 보고 울었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필자도 극장 옆 콩다방에서 냅킨 몇장을 슬쩍 가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보는 동안 울기보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 냅킨은 혹시 하는 생각에, 다음 사람을 위해 의자 팔걸이 음료수 놓는 곳에 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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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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