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에서 ‘웃찾사’보다 유명한 ‘봉찾사’의 류중천 회장
봉화에서 ‘웃찾사’보다 유명한 ‘봉찾사’의 류중천 회장
  • 김두호
  • 승인 200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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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나누려 2천명이 봉찾사에 모였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오지로 소문난 경북 봉화 산골에는 SBS 개그프로그램 ‘웃찾사’ 보다 ‘봉찾사(동호인 모임 ‘봉화를 찾는 사람들’의 약칭)‘가 더 유명하다. Daum 동호인 카페를 통해 이 모임에 가입한 회원이 2천명을 넘어 섰다. 봉찾사의 출범 슬로건은 ‘정(情)을 만들고 정을 나누며 살자’다. 절반은 봉화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절반은 봉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외지 사람들이다. 강원도 회원도 있고 제주도 사람도 있다.


모임을 처음 제안하고 발기한 주인공이 류중천 시인(52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이다. 그도 봉화에 살지만 이주민이고 부산 사람이다. 모임에 회장은 없고 다섯 명의 운영지킴이가 있다고 하지만, 회원들은 창립자인 류 시인을 회장으로 인정하고 그의 산골집을 고향집 삼아 모여든다. 온라인으로 인연이 됐지만 정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거나 주말이면 전국도처에서 회원들이 봉화로 모여들어 회장댁은 가마솥에 밥을 한다. 차츰 귀농을 한 사람도 나타나고 땅을 임대해 주말농사를 짓는 도시 회원도 늘어나고 있다.


‘웃찾사’는 웃음을 제공하지만 ‘봉찾사’는 처음 만나도 서로가 형제자매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회원들 서로가 가슴을 열어 정을 제공해준다. 회원 수가 간단치 않다. 2천명이 대다수 기혼층이어서 가족까지 포함하면 5천여 명이 넘는다. 도시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며 틈틈이 고향이나 자연을 그리워하고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봉화가 마음의 고향이 된 것이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솔숲을 흔들어대는 겨울밤,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작된 봉찾사 인터뷰는 서울에 살다가 역시 고향도 아닌 봉화군 물야면 압동리에 이주한 채희백 회원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부인 김종례 씨와 봉화 콩으로 토속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김종례 순재래식 된장’을 봉화의 명물로 성공시킨 봉찾사 지역회원이다. 몇몇 운영요원들이 모인자리였지만 이야기는 카페지기 류중천 회장과 나누었다.



모임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가?

2007년 1월 3일이다. 그날 봉찾사 Daum 카페를 오픈했다. 여행을 좋아해 신문잡지나 인터넷에 글을 많이 썼다. 그러다가 ‘이문열 문학관’ 등 전국의 문학관 기행을 다니다가 청정한 봉화의 자연정취에 반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정착까지 하게 됐다. 주인이 도시로 떠나고 없는 빈집을 수리해 있는 그대로 살 집을 만들었다.

봉찾사는 거창한 계획이나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생각 없이 그저 봉화를 찾아다니는 재미를 혼자 즐기기가 아까워 자랑하다가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이 그리우면 함께 정을 나누며 살자고 제안한 것이다.


전국에는 청정한 농촌이 많이 있다. 봉화도 소문난 곳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거리가 너무 먼 것이 흠인 것 같다.

제주도에서도 회원들이 찾아온다. 봉화는 자연경관보다는 공기와 물이 전혀 오염되지 않았다는 데 특별함이 있다. 물론 아무리 오고 싶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볼 일이 없으면 일부러 찾아오기는 힘들다. 그래서 정을 만들어 서로 나누며 살자고 한 것이다. 아직은 우리 집을 목적지로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 명예고 돈이고 다 부질없는 거다. 그러나 그리워하고 나누며 살 정은 있어야 한다. 정을 둘 곳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

봉찾사에 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가져오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고 정만 가지고 오라고 말한다.




지금 회원은 몇 명이며 어떤 사람들인가?

2천명을 넘어섰다. 나이는 20대에서 70대까지 다채롭다. 직업도 공무원 변호사 의사도 있고 사업이나 회사원 학생 등 모든 직종이 망라되어 있다. 초기에는 7백여 명 정도의 회원을 모집했는데 제한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꾸준히 늘어났다. 회원들은 봉화와 연고가 없는 분이 절반 이상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태국의 동포회원도 있다.


회원들이 카페지기인 회장댁(봉화군 춘양면)으로 찾아온다는데 많은 손님을 어떻게 뒷바라지 하는가? 봉찾사의 정기 모임이 있는가?

한 달에 평균 50여 명이 찾아온다. 대접하는 데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 가족이 먹는 밥상 위에 나물 반찬과 밥만 더 얹어놓으면 된다. 어쩌다 모임을 벌이면 가마솥에 밥을 할 때도 있다. 1년에 3∼4회 회원들의 큰 모임을 마련한다. 지난 1월 3일에는 우리 동네가 있는 춘양에서 2주년 기념 모임을 가졌다. 전국에서 60여 분이 오셨다. 이날 귀농한 분의 살아가는 이야기, 농사일을 하며 고생한 회원의 체험담, 귀촌을 꿈꾸는 도시회원들의 소망 이야기로 하루 종일 정담과 보람을 나누었다.


아무래도 꿈과 현실은 다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일자리와 자녀 교육문제 등으로 귀촌을 결행하기가 쉽지 않다. 모임이 만들어진 후 이주한 회원들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 회원과 관계없이 봉화는 귀촌 귀농인구 증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로 알고 있다. 우리 회원들도 꾸준히 상담을 해온다. 이사를 오지 않아도 전원생활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에게 짧은 체험이나 꿈을 만들어 주는 것도 우리 모임이 하는 일이다.


쉬지 않고 찾아오는 회원들을 뒷바라지하려면 부인이 고생하실 것 같다.

도시의 편리한 아파트생활을 하다가 시골로 이주할 때는 나도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설득을 해서 이사를 온 후는 아내가 나보다 봉찾사를 더 사랑하고 더 책임감을 느낀다. 회원들이 올 때마다 웃음과 정을 듬뿍 가져오니 외로울 틈이 없이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아내는 유화를 그리는 화가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애착도 남다른 사람이다.


오늘 자리를 함께 한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

여기 이 댁은 ‘김종래 순재래식 된장’을 만드는 채희백 김종례 부부의 일터이면서 살림집이다. 이 분들도 서울서 사업하다가 고향도 아닌 이곳으로 이주한 분들이다. 공기와 물이 좋아야 메주와 된장의 숙성도 잘되는데 봉화의 명물을 만들어 내는 회원 집에서 5명의 운영 멤버 중 3명이 오늘 저녁 부부동반 모임을 함께한 것이다.

참석하신 분 중에 김계중 회원(52 대한지적공사 봉화지사 근무)만 봉화 토박이다. 다른 분은 봉화와 지연이 없는 사람들이다. 양대석 회원(52 한국폴리텍 3대학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은 부인이 봉화 분이지만 자신은 강원도 출신이다.



근래 기업들이 시골 동네와 자매결연 맺는 캠페인과도 무관하지 않다. 봉찾사처럼 농촌을 사랑하는 모임이 다른 지역에도 필요할 것 같은데.

최근에 경북 의성에서 농업기술상담사로 활동하는 후배가 봉찾사를 벤치마킹해 의찾사를 만든다면서 자문을 요청해왔다.


봉찾사 카페의 운영자(카페지기) 이름은 주실령으로 올라 있다. 회장의 ID 같은데 작명에 어떤 뜻이 들어 있는가?

주실령은 봉화에서 우리 집이 있는 춘양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이 술과 산신령의 합성어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 이름도 다취정(多醉亭)으로 달았다. 자연에 취하고 인정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산다는 뜻을 담았다. 물론 술도 좋아해 술 향기도 품고 있어서 좋았다.


다취정은 이사올 때 그대로의 집인가? 언제 이사를 왔는가?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말 그대로 토담집이다. 주인이 버리고 간 집을 내 손으로 보수를 해서 살고 있다.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다.


그럼 봉찾사 카페는 봉화에 살기 전에 오픈한 것인가?

그렇다. 1년간 운영을 하면서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 회원들에게 봉화의 실정과 새롭고 궁금한 생생한 정보를 현지에서 전해주지 못하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짐을 쌌다.


시를 쓰는 분이라면 전원생활에 대한 미련이나 동경심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강했을 것 같다.

시를 쓰는 일은 생업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일을 하다 보니 <길가다가 문득>이라는 시집 한권밖에 발표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연에 묻혀 살면 보이고 느끼는 것이 모두 시상(詩想)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다. 사는 것이 그대로 시라는 생각 탓인지 지금은 시보다 봉찾사 운영에 몰두해 있다. 하하하.


카페에는 귀촌이나 귀농을 위한 정보와 의견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집짓기나 농산물 먹을거리, 부동산 정보까지 운영지킴이가 쓴 글이 많이 보인다. 모임의 운영에 대한 포부는 어떤 것인가?

회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농촌형 집을 서로 지어 주자는 의견들이 많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우선 우리 회원들이 이곳을 찾아오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봉찾사 쉼터를 마련하는 일이 나에게는 당장의 목표고 꿈이다. 거창하게 전원주택을 짓자는 것이 아니고 내손으로 흙벽돌을 찍고 나무 기둥을 세워서 지을 계획에 있다.



봉찾사 카페에 주실령 카페지기가 올려놓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학창시절에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지만 역시 여운이 남는 글이었다.

그 글을 좋아하다가 봉찾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자…지팡이에 늙은 몸을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 올 줄 안다…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는 날이 그 얼마이랴 / 이제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바라지 않는다....”


술잔을 주고 받으며 취기가 도는 자리에서 봉찾사 카페지기 류중천 시인이 낭송하는 중국의 옛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산골 집 방안을 낭만으로 채운다. 문을 열고 나서니 둥근 달이 뒷산 마루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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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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