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나의 풍토적 건축에 대하여
[건축 에세이] 나의 풍토적 건축에 대하여
  • 류춘수
  • 승인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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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이 풍토성 결정하는 중요 요인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삶의 행위와 정서는 개체나 한정된 지역마다, 그리고 나라와 시대에 따라 상이하며 또한 변화한다. 그러기에 건축가는 건축주와 건물의 용도, 대지 조건이라는 가장 기초 단위의 특수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이웃과 도시, 나라와 민족으로 확산되는 총체적 의미의 「풍토성」을 시간에 따른 변화 즉, 역사적 안목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이 「행위와 정서의 특수성」은 건축가가 임의로 정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임에도 주관적 조형의지의 고집만으로 그 기능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면 좋은 건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문학에도 소박한 단편이나 구성이 복잡한 장편소설, 서정시와 산문, 수필 등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건축 또한 「행위(기능)」가 최우선 과제인 병원이나 호텔, 「정서」가 보다 큰 관심이 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있다. 그리고 대규모 건축이나 공장처럼 기술적 과제가 주요 이슈인 건축 등으로 구별될 수 있으며, 서정적인 소규모 주택도 있다. 건축가마다 경험과 취향의 정도에 따른 전문성이 없지 않으나, 내 생각으로 건축가는 어떤 종류와 규모의 건축에도 기능성, 조형성, 기술성을 때와 장소에 따라 가장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행위, 정서, 기술로 구별될 수 있는 지역적 풍토성이 세계화되는 현대에는 각 지역성을 포개어 놓고 보면 동질적 공유의 범위가 더욱 넓고 짙어짐을 알 수 있다. 즉 문명의 보편성이 확산됨으로써, 옛날에는 나라와 지역마다 뚜렷이 구별되던 통일된 조형 양식도, 그리고 개개인 건축가마다의 다양한 개성이 표출되고 있다.
한정된 문화권의 지역적 양식이나 정서의 동질성을 풍토성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가시적인 「조형양식의 풍토성」은 붕괴되고 있으며, 지역성은 문화와 전통, 생활양식에 의한 「행위의 동질성」에서 찾아 건축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여전히 김치를 먹고, 방에서는 신발을 벗고 퍼질러 앉기를 좋아한다든지, 설날에는 귀성 행렬로 고속도로가 마비되며, 마중과 배웅 인파가 공항 로비를 가득 메우며 심지어는 예배를 본다든지, 병원 영안실의 독특한 기능 등 이러한 고유 행위를 건축 기능에 수용하는 것이 석탑의 본을 딴 지붕이나 콘크리트 기와집을 짓는 것 보다는 올바른 지역성의 수용이라 생각한다.
또한, 수천년 역사를 이어 온 문화민족으로서의 정서적 동질성도 있을 것이다. 중국식의 현란ᆞ웅장함이나, 일본의 단순ᆞ정교하되 날카로운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흰색의 소박ᆞ간결함과 때로는 화려하기도 한 다양한 색상의 강조와, 정교함보다는 질박함을 즐기는 미감이나, 스케일과 비례의 조형감이 풍토와 인정 속에 고유하게 용해되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용도와 기술이 요구되는 건축이든, 이러한 고유의 정서가 반영되면 또한 풍토성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같은 열대지방의 건축에는 단열과 난방이 덜 중요한 대신, 차양시설과 냉방이 중요하다. 지진과 태풍이 많은 일본의 경우 구조설계의 기준이 우리와 다르며, 선회되는 재료도 풍토에 따라 변한다. 이처럼 자연환경이야말로 풍토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모든 훌륭한 건축은 고유한 행위와 문화적 정서를 담으며 자연환경에 적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철저히 지역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지역성의 수용도 좋은 건축의 필요조건일 뿐 완성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풍토성」보다 좁은 개념인 고유한 조건의 장소성, 즉 그 대지, 그 건축주, 그 요구기능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한 「특수해」가 오히려 보편적인 건축의 본성이며, 이것이 곧 붕괴되어 가는 양식의 지역성을 메워주는 세계적 보편성에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즉 철저한 장소성의 확립으로, 수용된 풍토성과 더불어 마침내 충분조건인 세계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결국, 완성에 이른 최고의 작품은 주어진 특수조건(context)의 객관적 분석 논리를 바탕으로 한 특수해이며 동시에 전통적 고유 행위와 정서가 용해되어 있는 지역적 풍토성과, 확산되어 가는 인류의 보편적 세계성이 모두 충족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의 건축의 목표이며, 이해이며, 또한 설계의 방식이다.
오래 전 「진주문화회관」 현상안에서 김중업 선생의 모뉴멘탈한 「전통적」형태보다는 주변 등고선의 철저한 분석으로 기능과 조형 스케일을 「그곳」에 맞게 다듬은 나의 설계방식이나 결과는 여전히 옳았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원안과 동일한 조형을 전혀 다른 대지에 옮길 수 있다는 건축을 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모뉴멘탈한 건축은 「특수해」가 아니며, 지역성의 용해나 기능ᆞ구조ᆞ조형이 합일해야 하는 교과서적 보편성의 논리가 보이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삼하리 주택」은 최소한 조적조의 평지붕 조형보다는 그 땅, 그 건축주, 그 마을에 맞으며, 작은 공간을 크고 다양하게 쓰고 싶은 「행위」가 수용되었고, 크기와 색상과 조형이 우리의 정서에 접근하도록 노력했으며, 구조와 재료의 사용법이 보편적 건축론에 어긋나지 않도록 힘쓴 것이다.
「한계령 휴게소」와 「강촌휴게소」는 지형과 주변 경관에 합목적으로 놓이며,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른 판매ᆞ관리의 변화기능(행위)을 수용하며, 구조방식과 재료의 사용이 보편성 이상의 혁신을 시도하고, 동시에 그 풍토에 가장 적당한 건축이 되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에서 뿌리 깊게 영향 받은 나의 건축의 시각적, 정서적 풍토성을 이제부터는 형태가 아닌 「보다나은 창조적 공간(Beyond space)」에 융합(fuse into one)하여 새로운 세계성의 확보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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