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아 원 모어 타임~’ 쥬얼리 탈퇴 후 뮤지컬 배우로 성공
‘조민아 원 모어 타임~’ 쥬얼리 탈퇴 후 뮤지컬 배우로 성공
  • 김선
  • 승인 200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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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연예인이나 하란 소리에 펑펑 울어” / 김선



[인터뷰365 김선] 그룹 쥬얼리는 2008년 ‘원 모어 타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박정아 서인영 등이 무대를 누비는 가운데 원년 멤버 조민아는 없었다.

조민아는 탄탄한 앞길이 보장된 쥬얼리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뮤지컬 배우를 선택했다. 그의 탈퇴 후 새 멤버로 재결성된 쥬얼리는 화려하게 거듭 났고 조민아라는 이름은 잊혀져갔다. 오롯이 혼자가 된 조민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근황을 물어보는 횟수가 줄어들 즈음, 네 편의 뮤지컬 작품을 통해 연기력과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2008년. 조민아는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그토록 원하던 뮤지컬 <렌트>공연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뮤지컬로 바꾼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의 갈등과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조민아는 최정원, 소냐, 정선아의 뒤를 이어 AIDS환자이며 약물중독인 댄서 미미 역을 맡았다.

9일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행복해 보이는 조민아를 만났다.



지난해 출연한 뮤지컬 <온에어>때 보다 살이 빠진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3kg정도 더 나갔다. 더블 캐스팅이 아닌 원 캐스팅이어서 근 석 달간 혼자 공연을 이끌어가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살을 찌웠다. 우선 버텨야 하니깐. 공연이 끝나니 바로 원래 체형으로 돌아오더라. <온에어> 끝나자마자 쉬지 않고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시작했고 또 <렌트> 연습도 하다 보니 살이 빠진 거다.


그동안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주로 해왔는데 <렌트>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그동안 뮤지컬 <그리스>는 여섯 번 제의 받았고, <올슉업> 한국 초연 당시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면 쥬얼리의 유명세를 업고 TV드라마로 진출했을 지도 모른다. 난 연기적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관객들과의 피드백을 많이 주고받고 싶었다. 그래서 소극장 뮤지컬을 선택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수가 뮤지컬 쪽으로 넘어와서 연기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뮤지컬 배우로 인정해달라”는 백 마디 말보다 연기로 먼저 보여드리는 게 낫겠지 싶었다. 그래서 연기를 쌓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소극장 창작물을 고집해왔다.

친하게 지내던 뮤지컬 배우 김법래 씨가 출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지방공연을 우연히 보게 됐다. 대극장 공연이었기 때문에 배우들로부터 느껴지는 감동이 소극장보다 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 마치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는 듯 배우들의 표정이 살아있었다. 공연을 본 후 개인적으로 라이선스 뮤지컬 무대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뮤지컬 <렌트>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가.

3년 전 오리지널 <렌트> 공연이 담긴 몇 분짜리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봤다. 당시엔 어떤 작품인지 몰랐다가 이후 <렌트> 뮤지컬 넘버가 담긴 CD를 선물 받았다. 이내 음악에 빠져들었고 미미 역에 ‘꽂히게’ 됐다.



뮤지컬 <렌트>는 1996년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토니상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4개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2000년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거의 매년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데, 조승우 남경주 최정원 전수경 주원성 소냐 등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렌트>의 오디션 경쟁이 치열해 3차례 걸친 오디션 끝에 발탁됐다고 들었다.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아서 전화기에 대고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주변 사람이 쳐다볼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마냥 행복하고 기뻤다. 하지만 곧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다. 캐스팅 된 다음날부터 잠을 못 잤다. 칼에 찔리고,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악몽의 나날이 계속됐다. 미미 캐릭터에 너무 빠져 있다 보니 마치 내가 미미가 된 것과 같은 혼동을 했던 것이다. 무섭고 불안하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고. 마치 미미의 심리 상황과 똑같이 전개됐다.


이제 공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은 건가.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 악몽도 즐기기 시작했다. 칼에 찔릴 것 같으면 옆구리를 살짝 빼거나 절벽에서 떨어질 때 좀 편하게 떨어지도록 하는 여유? 하하하. 사실 처음엔 그런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꿈에서 못 깨어 날까봐. 그리고 밤에는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다. 결국 미미역에 더블 캐스팅된 명석언니(고명석)에게 새벽 1시에 전화를 했다. 밤이 되면 너무 무섭다고. 하지만 언니도 2007년 공연 당시 그런 일을 겪었다고 위로 해주더라. 내가 역할에 너무 빠져서 그런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동료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과정은 어떤가?

서로간의 끈끈한 우정은 말이나 행동에서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것 같다. 뮤지컬 작업을 하며 늘 좋았지만, 이렇게 동료애가 넘치는 건 처음이다. 연습이 너무 힘들어 배우들이 함께 안고 운 적이 있었다. 매일 한명씩 동료들에게 응원문자를 보내다가 어느 날 다들 너무 지쳐 있길래 단체문자를 보냈는데 19명 모두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출연 배우들이 총 20명인데 1명이 빠져서 서운해 했는데 글쎄 생각해 보니 그 한 명이 나였다. 하하하. 그날 너무 행복하고 뿌듯했다.


전작 <달고나>(2006), <사랑은 비를 타고>(2007) ,<온에어>(2008) ,<김종욱 찾기>(2008) 등에서 보여줬던 순수하고 발랄한 모습에 비해 <렌트>의 ‘미미’는 꽤 파격적인 변신이다. 의상노출도 꽤 있고.

미미가 되기 위해선 미미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미는 내 로망이었다. 아까도 말했듯 <렌트>란 공연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미미란 역할이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미미가 되고픈 열망이 너무 컸는지 나는 캐스팅 된 날부터 미미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내가 미미라면 어떨까’가 아니라 ‘나는 미미’ 라고 생각했으니.


미미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지 않는가. 에이즈 환자며 약물 중독 댄서인 미미 역할을 위해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관객들에게 미미의 세세한 손떨림 까지도 보여드리고 싶다. 면역성이 떨어졌을 때 몸의 떨림을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 가서 간호사분들에게 이것저것 여쭤보기도 했고 에이즈 말기 동영상을 어렵게 구해 보기도 했다. 미미의 직업이 댄서이다 보니 일부러 가수 동영상들도 찾아 봤다. 인영이(서인영)나 효리언니(이효리), 손담비 씨 등. 부러울 정도로 춤을 잘 추더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본인 것 같다. 대본을 계속 읽으며 내가 찾아내지 못했던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극장에 가서도 항상 대본을 놓지 않는다. 배우는 언제나 긴장감과 배역에 대한 존경심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무대와 배역에 익숙해지면 마지막 공연에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로서 무감각해진다고 할까. 그래서 항상 대본을 보면서 처음 내가 대본을 받았을 때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대에 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가수 출신으로 뮤지컬 무대에 섰을 때 주위의 시선이 곱지 만은 않았을 텐데.

방송에서 넘어 온 연예인에 대해 공연계의 벽이 크게 느껴졌다. 기대치는 높은데 벽은 높고 방송시절보다 수입도 적고. 그래서 포기하는 걸 많이 봤다. 난 모든 걸 다 버리고 바닥에서 시작해야 했다. 더 이상 쥬얼리로서 무대에 선 것이 아니었고, 단지 신인배우에 지나지 않았기에. 지금이야 신경을 쓰진 않지만 초반엔 정말 가수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쥬얼리라는 전적이 무대에서는 해로 작용하기도 했으니깐.

뮤지컬 데뷔작 <달고나>에 출연할 때 굴욕사건도 많았다. 뮤지컬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동료 배우들과 함께 있는데 한 배우분이 ‘너 가서 연예인이나 해. 연예인이라고 와가지고 무대에서 뭐하는 짓이야’라고 화를 내더라. 그 말에 펑펑 울었다. 그 이후엔 무대에 서는 것조차 너무 두려웠다.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좌절감이 나를 짓눌렀다. 함께 힘이 되어주는 멤버들도 내 곁엔 없었고... 더욱이 그 당시 소속사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혈혈단신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쥬얼리를 벗는 것도 내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안하면 아무것도 못해나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미 얼굴이 이미 알려진 상태라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도 선뜻 못하는 처지고. 정말 막막했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본 적 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 한 아이스크림 체인점에 갔다. 그해 까지 방송을 했었기 때문에 거기 점원이 ‘요즘 노래 안하냐’고 알아보더라. 그 바람에 묻지도 못하고 아이스크림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하하하. 이후 ‘더 버리자. 쥬얼리를 인정하되 아집을 버리자’고 굳게 다짐했다.



쥬얼리 얘기가 나온 김에 탈퇴 당시 속사정이 궁금하다. 당시 인기 정상 그룹이지 않았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합류하게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했던 연기에 대한 열망은 버릴 수 없었다. (조민아는 홍익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역 연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쥬얼리에 합류하기 전까지 ‘TV는 사랑을 싣고’, ‘이야기 속으로’등의 재연 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 등에 출연했다.) 결국 쥬얼리 재계약 기간이 다가왔고 계약을 할 것인지, 새로운 도전에 설 것인지 고민이 됐다. 소속사에 계속 남았다면 라디오DJ와 드라마 출연을 할 기회가 주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즈음에 우연히 연극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의 대본을 보게 됐고 ‘이 길이 내 길이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누가 봐도 선택은 쥬얼리의 잔류였기에, 내가 무대를 선택했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넌 쥬얼리에서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내 선택을 믿었다. 내가 한창 힘들어할 때 쥬얼리 동료 멤버인 인영이와 정아언니(박정아)는 내 편이 되어 주었다. 하고 싶은 연기를 하라며 함께 울어주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음반을 낼 시점과 맞물려 연기를 포기했던 내 모습을 보고 같이 속상해 줬던 멤버들이었다. (2001년 데뷔한 쥬얼리는 2006년 이지현과 조민아의 탈퇴 이후 기존 멤버 박정아, 서인영에 하주연과 김은정이 새롭게 가세했다)


당시 조민아의 탈퇴로 해체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글쎄... 나로 인해 해체된다는 이야기는 회사 내에서는 없었다. 이야기가 와전돼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새롭게 결성된 쥬얼리를 보니 어떻던가.

탈퇴 후 한 동안 음악프로를 안 봤다.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음악프로 보면 끄라고 하고. 우연히 새로운 멤버로 구성된 쥬얼리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케이블의 한 프로에서 보게 됐다.


울었나.

처음에는 나도 울 줄 알았다. 하지만 멍하더라. 어디에 얻어맞은 것처럼. 마치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 것 같은데 난 지금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니깐. 하지만 눈물은 안 났다. ‘아, 내 가슴에 한 꺼풀 껍질이 씌워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음악프로를 잘 보는가.

잘 본다. 얼마 전 내 핸드폰 벨소리 곡도 새롭게 결성된 쥬얼리 인기곡 ‘원 모어 타임’이었다. 하하하. 내가 탈퇴한 이후 쥬얼리가 잘 안됐다면 죄책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쥬얼리가 잘 돼서 기분이 좋다.


쥬얼리 시절이 그리웠던 적은 없었나.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시간에 관객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을 때 그 짧은 느낌은 가수로 노래를 부르던 3분가량의 느낌과 비슷하다. 이럴 때 가끔씩 가수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한 번도 내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해 본 적은 없다.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자’라는 신념을 갖고 가수로 활동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때 후회가 조금이라도 남았더라면 지금 음악프로를 보면서 울었을 것이다. 쥬얼리 시절엔 돈도 많이 벌었고, 늘 벤을 타고 다녔고, 외국 갈 때 경호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교통을 애용하고, 사람들이 조민아라는 이름을 잊어간다. 하지만 세상과 어울리며 내가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 어떤가.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모자 쓰고 얼굴을 좀 가리고 창밖만 바라본다. 전화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사인해달라고 하는 학생들에게 조용히 사인도 해주고... 대중교통을 접하면서 사람들과 익숙해지다 보니 얻는 것들이 너무 많다. 새로운 세상에 있는 듯 한 느낌이랄까. 연기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내가 남들과 너무 다르면 그 감정을 이해 못할 것 같더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배우가 이해할 줄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쥬얼리 탈퇴 당시 집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나서는 것에 대해.

사실 엄마의 어렸을 적 꿈이 가수이셨다. 그랬기에 내가 가수 활동을 계속 하길 원하셨다. 뮤지컬 배우로 나설 때도 반대를 하셨으니깐. 뮤지컬 활동을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지니 걱정도 많이 하셨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엄마와 말다툼이 있었다. 1~2주간 얘기도 안했다.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까웠나보다. 나에게 <렌트>는 다음 작품을 못하게 되더라도, 혹 돈을 안 받더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가는 뮤지컬이다. 내가 원하는 배역에 캐스팅 됐고 내 꿈을 펼칠 기회가 왔는데 이 기회를 잃으면 상실감이 너무 클 것 같더라. 누구에게나 기회는 많이 오지 않으니깐... (울먹거리며) 그래서 엄마에게 날 믿어달라고, 이번 작품만 꼭 하게 해달라며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허락을 하신 건가?

그렇다. 집에서 연습하면 엄마가 꿀물을 가져다주신다. 대신 한 가지 약속했다. 내년에 대학교에 복학하기로.


그동안 출연했던 공연에 엄마가 많이 보러 오셨나?

어떤 공연이든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을 꼭 보러 오셨다. 여느 다른 부모님처럼 잘한다 잘한다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팔짱을 끼고 첫 공연을 보신 후 집에서 ‘너 점점 나아지는 거지?’라고 말씀하신다. 공연 중간쯤 오셔서는 박수를 치시고, 마지막 공연 때는 ‘잘하더라. 수고했어’ 이렇게 한 말씀하신다. 하하하. 제일 객관적이고 까칠하신 분이 바로 엄마다. 가수 활동 할 때도 라이브 공연 녹화해서 나중에 다시 보고 못하는 부분 고치라고 말씀하셨다.



연기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할 가능성은 있는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뮤지컬을 선택한 건 결코 아니다.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일이 생겨도 뮤지컬은 꾸준히 계속 할 것이다.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장르마다 시스템이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노력은 필수일 것이다.

한번 버렸기 때문에 다시 나를 버릴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이 스스로를 믿게 해주는 요인이다. 비록 많이 부족한 나지만 ‘나’를 믿기 때문에 항상 당당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부족하면 채워나가며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앞으로 계획은?

3년 정도 뮤지컬을 하면서 발자국을 찍고 있는 단계라 다작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 작품 한 작품 천천히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올해 <렌트>에 이어 뮤지컬에 출연할 것 같고 방송으로도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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