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무대 지키는 ‘우리들의 짱가’ 김봉환
뮤지컬 무대 지키는 ‘우리들의 짱가’ 김봉환
  • 서영석
  • 승인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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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그리고 아내의 한쪽 눈이 되는 것”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부드럽고 폭넓은 성량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김봉환을 만났다.

김봉환(55)은 금세기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 2006년부터 여주인공 엠마의 아버지인 백작 역을 완벽하게 소화, 그 명성을 확인하는 명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스위니 토드’ '브로드웨이 42번가' '사운드 오브 뮤직' '오페라의 유령' '올슉업' 등에 출연했다.

김봉환은 한국 뮤지컬계 초창기 멤버로 현장에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한국 뮤지컬의 태동기였던 1978년 작곡가 고 최창권 제작, 작곡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로 출발,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한국에서 공연된 거의 모든 대형 뮤지컬에 출연했다. 파리장을 방불케 하는 핸섬한 외모와 특유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김봉환은 무대에서 자신이 빛나기보다는 그로 인해 다른 배우들이 빛을 발하게 하는 배우다. 공연 전날 어린 배우들과 같이 몸을 풀던 중 운동기구가 날아와 입이 찢어져 20여 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지장을 줄 수 없다는 각오로 무대에 섰다는 뮤지컬계의 맏형이다.

‘지킬 앤 하이드’ 공연 2시간 전, 모든 배우들과 스탭들이 공연 준비에 분주하지만 배우 중 가장 고참인 그는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추스른다. 그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뮤지컬 최고의 배우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나이가 많다는 말씀인가요? 요즘 젊은 뮤지컬 배우들 중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본격적으로 뮤지컬 입문을 하신 작품은 무엇인지요.

1988년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 역을 연극배우 고인배씨와 더블캐스팅 되면서부터라고 해야겠네요. 그때 나는 노래를, 고인배씨는 연기를 서로 지도하면서 거의 매일 새벽 3-4시까지 맹렬히 파고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열정이었어요. 내 역할만이 아닌 거의 모든 배역을 분석해가며 조화와 앙상블 연기, 외형만이 아닌 내면의 세계를 속속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때는 집에 쌀이 떨어진 줄도 몰랐어요. 그 철없는 남편을 바라보는 집사람의 심정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마구마구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에게, “지금의 당신 모습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은 그 길”이라고 격려하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어요.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텐데요.

처음부터 뮤지컬을 하지는 않았지요. 노래는 어릴 적부터 워낙 좋아했어요. 5살 때 처음으로 배운 노래는 샹송이었는데, 그것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고는 주절주절 부르고 다녀 어른들을 놀라게 했죠. 아직도 그 노래를 외우고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노래와 관련된, 특히 가수가 되고 싶었지요. 1973년 KBS배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에서 주말, 월말 연속 장원으로 전국연말결선에 올라 장원으로 입상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육군합창단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제대 후 바로 1977년 KBS합창단(가무단)에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안하셨나요?

KBS합창단 활동을 하다가 정식으로 가수 데뷔도 했지요. 1984년 듀엣 ‘딱따구리 앙상블’을 조직해서 활동을 했는데 특히 FM을 즐기는 이들에게 잔잔한 사랑을 받았어요. 요즘도 매년 여름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등 내가 부른 노래가 방송을 통해 나오면 희미하게나마 웃기도 하지요. 조금 알려진 노래로는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외에도 ‘지울 수 없는 사랑’ ‘행복은 G장조’ 등이 있습니다.

계속 가수나 방송 활동을 했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뮤지컬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아예 접었습니다. 방송이나 가수는 할 만큼 했다할까, 길이 아니었다 할까. 방송은 배우가 아니라 KBS-TV 유치원의 더블 MC 및 동요아저씨로 근 10년을 했어요.


어쩐지 낯이 꽤 익었다 했어요. 얼굴도 그렇지만 목소리도 낯설지 않은데요?

가수로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주제가나 만화영화 주제가를 많이 불러서 그럴 겁니다. 1980년 KBS 드라마 주제곡 ‘풍운’을 불렀고요.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타이틀 주제가, 만화주제가 ‘우주소년 짱가’ ‘정의의 캐산’, ‘우주소년 아톰’ ‘우주소년 위젯트’를 내가 불렀어요.


그 유명한 만화영화 주제가 ‘우주소년 짱가’의 목소리 주인공입니까?

쑥스럽지만 그 노래가 내 대표곡이랄 수도 있지요. 나도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런 노래들이 편하고 익숙해요.


그 외에도 우리들이 잘 모르고 있던 특이한 경력을 소개 한다면요?

‘이집트 왕자’ ‘곰돌이 푸우 시리즈’등 애니메이션 레코딩에도 참가를 했고, KBS 합창단 시절에는 총무와 부지휘를 맡기도 했었지요. 뮤지컬 ‘시집가는 날’ 외 10여 편 음악감독을 했었고, 1997, 8년에는 ‘한여름밤의 꿈’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기도 했어요. 1997년부터 2001년에는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단원 겸 음악감독을 역임했었죠.


김봉환씨는 타고난 배우라는 말들이 많던데요?

내가요? 글쎄, 목소리는 타고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숨은 노력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겠지요. 성악이나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 십번을 때려치우려 했지만 그간의 노력들이 아까워서 버텼죠. 지금이야 천직이고 날 버틸 수 있게 지켜준 분들에게 너무 감사한다는 인사를 올리고 있지만.


지금이야 뮤지컬이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시작 당시에는 전혀 생소한 분야였을 텐데, 어떻게 처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는지요.

1973년 전국아마추어 노래자랑 결선에서 당시 심사위원으로 나오셨던 고 최창권 선생이 뮤지컬을 권했어요. 당대 최고라는 작곡가 선생님이 “당신같이 부드러운 소리의 주인공은 뮤지컬에 가장 적합한 소리다”라고 극찬한 것에 고무되어 시작했어요.


당시라면 연극 관련 모든 분야가 상당히 어려웠을 텐데 방송을 그만두고 뮤지컬에 전념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려웠지요. 아찔하다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로. 하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준 사람이 집사람이었어요. 아내의 적극적 후원으로 용기를 얻어 뮤지컬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불평 없이 뒷바라지를 해 줬어요. 훗날 알았지만 쌀을 됫박(현 시세로 따지면 1Kg 정도짜리 봉지쌀)으로 사먹으면서도 묵묵히 버텨준 아내가 오늘의 이 자리를 만들어 준 일등 공신입니다.


항상 조연으로 주인공을 비춰주는 역을 주로 하시는데?

어차피 뮤지컬은 흥행 위주의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되는 장르이다 보니 이 나이에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이제는 본인도 좀 떠야 되는 거 아닌가요?

모든 종합예술이 그렇지만 뮤지컬 역시 혼자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 보다는 같이 하는 동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절대 좋은 연기와 앙상블을 이룰 수가 없어요. 서로 사랑하고 안아주고 할 수밖에요. 모든 연기자들이 그렇지만 이 나이에 뜬다는 건 좀 그렇지 않겠어요?



전문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기도 한데요.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십니까?

나는 실기 위주의 교육을 합니다. 현장에서 써 먹을 수 있는 살아있는 연기지도랄까. 요즘 학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이론 지식을 해박하지만 정작 무대에서는 아무 것도 할 줄을 몰라요. 알면 행동으로 옮길 줄 알아야 하는데 머리로만 연기를 하지 실제는 엉망입니다. 그래서 현장과 이론이 적절히 조화된 교육이 산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어릴 때 대학 출신들이 거의 없었던 시기에 우스갯소리가 있었어요. 대학 식품영양과를 졸업했다는 인텔리 며느리가 김치를 담그면서 어머니에게 “파와 무를 몇 센티로 잘라요?”라고 물었다가 몇 년을 야단맞았다는.

가수, 뮤지컬 배우, 교수 등 타이틀이 많은데 본인이 가장 아끼는 호칭은?

누가 뭐래도 난 뮤지컬 배우입니다. 한때 고생도 많이 했고 같은 작업을 하는 연극인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천직으로 여기는 것은 뮤지컬 배우입니다. 배우로 남고 싶어 서울시뮤지컬단 음악감독직도 버리고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을 봐서 ‘피르맹’ 역을 맡아 배우로 새로 태어났죠. 자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교수, 폼 납니다. 하지만 무대를 버리고 교수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현장 출신인 내가 그러면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도 않을 터이고.


연기자로서 앞으로 욕심이 있다면요?

젊을 때는 열정으로 새로운 분야에 끝없이 탐구를 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맞는 역, 가능한 배역이 욕심나지요. 타고난 천성과 배역이 조화를 이루면 가장 빛나는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킬 앤 하이드’에서 덴버스 경 역이 바로 그런 역할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무대에 서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을 텐데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에비타’ 공연을 할 때, 198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오전이었어요. 집에서 작업을 하던 중 콘크리트 못이 튀어 집사람 왼쪽 눈에 상처를 내는 사고가 있었어요. 눈을 감싸고 방에 들어가는 집사람을 따라가 보니 피가 아니라 검은 무엇이 흘러내리더라고요. 너무 놀라 당시 4살 난 딸을 데리고 세브란스 병원 응접실로 달렸지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병원으로 데려다 준 일밖에, 어떻게 공연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공연을 마치자마자 정신없이 의상과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왼쪽 눈 실명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어요. 추운 겨울, 병원 밖으로 나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호강도 못 시켜주는 남편 주제에 눈까지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자괴감에 미칠 것만 같았어요. 본인도 힘들었겠지만 항상 가슴 저미는 남편의 마음을 그 사람이 아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모질게 마음 먹었어요. 죽는 날까지 아내의 나머지 한쪽 눈이 되어줘야겠다고.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을 만큼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앞으로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오페라 유령’ 후 온 가족이 태국 여행을 갔다 왔어요. 아빠 노릇, 가장 노릇을 처음으로 한 기분이었습니다. 또 아들(김한재, 국악예고 3)이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시험을 봐둔 상태인데 나보다 더 훌륭한 배우가 되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보통은 반대를 많이 하는데, 연예계(?) 2세의 탄생입니까?

연예계라면 좀 그렇고, 배우의 길 특히 뮤지컬 배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본인 역시 타고난 끼가 조금은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 때는 너무 어려웠지만 지금의 공연계가 엄청 좋아졌잖아요. 반대할 이유가 없죠.

노후에는 무슨 일을 하실 건지요?

노후의 계획은 있을 수 없지요. 무대에 서야 하니까. 외람되게도, 너무 거창하지만 무대에서 죽을 수 있는 행운이 날 찾아준다면 여한이 없겠지요. 예술이란 것이 죽는 날까지 완성을 위해 가시밭을 해매는 작업이다보니... 아무도 날 찾는 이가 없으면 집사람과 단둘이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요. 참, 꿈이 하나 있네요. 평생을 배우로 무대에 서다 보니 욕심이랄까? 요즘 아무도 모르게 작곡 공부에 심취해 있는데 욕심이라면 멋진 뮤지컬 작품의 작곡을 해 보고 싶어요.



공연 1시간 전, 분장실에서 연락이 왔다.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와 함께 분장실로 들어갔다.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그는 눈부시게 멋지고 화려한 중세의 백작으로 변해 나타났다. 공연 20분 전을 알리는 무대감독의 콜에 그의 눈에는 서서히 긴장이 서리기 시작한다.

이제 김봉환은 사라졌다. 대신 부드러운 음색이 매혹적인, 여주인공 엠마로 대변되는 젊은 연기자들의 정신적인 아버지 덴버스 경이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김봉환과 헤어지고 문득, 아주 오랜만에 ‘우주소년 짱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로 나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당당하게 지구를 지킨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김봉환은 우리 뮤지컬 무대의 짱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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