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아침이슬에 젖은 양희은의 청춘 시절
[그때 그 인터뷰] 아침이슬에 젖은 양희은의 청춘 시절
  • 김두호
  • 승인 200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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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만나야지 맞선은 질색이에요”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최근 KBS-1TV <콘서트 7080>제작팀이 40, 50대 남녀 네티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불후의 명곡’을 조사한 결과 양희은의 노래 <아침 이슬>(김민기 작사 작곡)이 1위에 뽑혔다고 발표했다. 이제 이순(耳順)을 몇 걸음 앞에 둔 포크송의 대모 양희은(56)의 20대 시절은 <아침이슬>에 흠뻑 젖어 있던 인기와 청춘의 중천기(中天期)였다.


1971년 봄, 통기타를 가슴에 끌어안고 맑고 고운 목소리로 <아침이슬>을 부르며 나타난 스물한 살 양희은은 그 후 35살에 결혼해 미국에서 살기도 했으나 1993년에 돌아와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금년에 <내님의 사랑은>을 타이틀 곡으로 한 열여덟 번째 앨범도 내놓았다. CF와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콘서트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여기까지 온 그의 삶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았다. 부른 노래가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에 걸려들어 금지곡이 되기도 했고 1982년에는 암으로 수술과 투병생활을 하는 힘든 고비도 있었다. 연기를 감칠맛 나게 잘하는 동생 양희경(탤런트 겸 뮤지컬배우)과 의좋은 자매로도 소문난 양희은이 스물아홉 때인 1980년에 고백한 이야기를 옮겨보았다. <아침이슬>을 비롯해 <세노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사람> 등 데뷔 후 9년간 1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라디오 음악프로의 팝DJ로 바쁘게 살 때였다.


아파트(옥인 아파트)로 이사 온 기분이 어떤가? 고가구 등 장식품들이 주인의 고상한 취향을 느끼게 한다.

조그마한 아파트이지만 내가 처음 마련한 집이다. 삭월세 전셋집은 이제 이가 갈린다. 장식품들이 비싸게 보이지만 큰 돈 안들이고 꾸민 것들이다. 미술대 나온 언니들이 예쁘게 집을 꾸미고 살아서 자문을 얻어 나도 한번 모아둔 골동품을 활용해 보았다. 고상하게 보인다니 인테리어에 성공한 것 같다.


옷차림이 아주 편해 보인다.

집에서는 아무거나 걸치고 산다. 잠옷이 제일 편하다. 우리 집은 남자가 없으니까 옷차림에 신경 안쓰고 산다. 그래서 누가 찾아온다고 하면 아주 불편하게 생각된다.



점점 체중이 늘어나는 것 같다. 특별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가?

72kg을 넘어서고 있다. 해마다 4∼5kg이 늘었다. 원래 깡마른 체격이었다. 하루에 라면 하나 끓여먹고 온종일 뛰어다니다보면 별이 보일 정도로 현기증이 날 때도 있었다. 영양실조가 되다시피 몸이 약해지자 어머니가 들기름에 계란 하나씩을 보양식으로 매끼 먹게 하셨는데 글쎄 그게 식욕을 높이고 체력을 돋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밥맛이 좋아 하루 일곱 끼를 먹기도 했다.


체중 때문에 고민거리가 생긴 건 아닌가?

고민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몸이 무거워진 탓인지 게을러지고 움직이는 게 싫을 때가 많다. 결국 더 살이 찌고 옷도 맞는 게 없어서 그냥 편한 옷을 걸치고 다닌다. 좋은 점은 성격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신경질 부릴 일도 느긋하게 생각되고 잘 먹고 잘 자니 여유가 생긴다.


그런 느긋한 성격의 여자가 남자들에게 편하게 느껴지는 호감형이다. 어떤 스타일의 남자가 좋은가?

우리 가족을 보면 주변에 좋아하는 남자가 별로 없다. 친척으로 외항선을 타는 외삼촌이 한 분 계신데 그래서인지 남자는 마음씨가 바다 같고 기사처럼 씩씩한 사람이 멋있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실제 남자들을 만나보면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남자나 여자나 별 차이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해심이나 포용력은 여자가 더 넓을지 모른다.


멋있게 연애를 한 경험이 있는가? 없다면 어떤 사랑이 멋있다고 생각하는가?

멋있게 좋은 관계로 교제해 본 남자 친구가 없다. 친해 보려고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어도 서로 무게를 잡게 되면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친해지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멋있는 사랑이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서로 베푸는 사랑이 아닐까?


곧 30대로 접어든다. 결혼 적령기를 넘어 선 걸로 볼 수 있는데 언제 결혼할 생각인가?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가고 있다는 처지가 맞다. 안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 속에서 분주하게 살며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인관계가 단조롭고 실속이 없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빤하다. 선후배 가수와 방송 프로듀서와 스태프들, 하루일과가 끝나면 가족뿐이다. 얼굴이 알려져 처신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소개를 받아 맞선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맞선은 질색이다. 자연스럽게 만나 인연이 되면 결혼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나처럼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온 사람은 나보다 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을 바라는데 그런 남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는 어떤 때인가? 한동안 무대에 서지 않고 방송 일만 하는 이유는?

나는 지금 결혼보다 일과 활동문제에 깊은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이름이나 인기에 매달려 끌려 다니는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나의 생활방식 등 내 스스로를 찾고 싶은 고민을 많이 했다. 가수 양희은이라는 퍼블릭한 이미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지 내가 던진 게 아니다. 그것만을 생각했다면 이 작은 아파트에서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살롱에서 노래할 때보면 사람들이 신곡은 싫어한다. 그냥 라디오에서 흔하게 나오는 내 히트송만을 요청한다. 정작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따로 있지만 통하지가 않는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데 앵무새처럼 같은 노래만 반복하는 게 싫어서 한동안 노래를 접은 것이다. 10여 년간 나가던 업소출연을 그만두고 DJ 활동만 하고 있다.


가수가 인기나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일찍부터 자신의 문제를 혼자서 고민하고 스스로 해결하는데 익숙해서인지 고집이나 자존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 보인다.

고집이나 자존심을 앞세운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내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참선공부와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때가 있다. 어려움을 겪을 때 변화와 성장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살려고 노력한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동기나 자신에게 음악적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

아무래도 통기타일 것이다. 미국의 통기타와 음악...그리고 창식(가수 송창식)이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요계에서 자신의 활동비중이나 인기 등 현재의 위상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모르겠다. 지금은 직업가수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개인의 근본적인 문제들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활동에서 과연 내가 쌓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내세울 게 없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느끼고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내 개인의 생각이 별개라고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인기라는 껍질 속에 들어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내 스스로 분석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DJ 활동에는 만족하고 있는가?

어떤 일이든지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재미가 떨어지고 신명이 나지 않는 것 아닌가. 또 방송국 스튜디오는 환기가 잘 안되어 거기서 매일 3시간씩 생방송을 하게 되니까 몸이 피곤함을 자주 느낀다.


앞으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

유행을 생각하지 않고 삶의 진실에 뿌리를 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 노래는 일종의 의미와 긍지 같은 것이 많이 깔려있는 탓인지 발표될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다. 지금 아무 작업도 하지 않는 이유에도 그게 한몫 들어 있다.


남자 선배가수들에게 형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직도 귀에 설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는가?

나도 처음에는 그 말이 어색하게 들려 목구멍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사용해보니 아주 친근감이 있고 편하게 느껴져 좋더라. 지금은 많이들 그렇게 호칭한다.


살면서 서운했던 일이나 울어 본 일은 없는가?

사랑 때문에 울어보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울었다면 우리 집안일 때문에 울어 본 일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덜렁거리는 겉보기와 달리 아주 여성적인 데가 있어서 속상하면 혼자서 잘 운다. 그러나 남 앞에서 울거나 슬픈 티를 내지 않는 성격이다.

서운한 때는 동생 희경이가 가족도 별로 없는 집을 떠나 시집갈 때였다. 시집보내고 정말 허전하고 허탈했다.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다. 주량이 어느 정도 인가? 어떤 때 마시나?

지난해부터 끊었다. 그전엔 양을 측정하지 못할 만큼 마셨다. 그것도 독주를 마셔댔다. 그렇게 내가 마시는 것은 자학에서 비롯된 홧술 같았다. 친구들이 너는 왜 슬플 때면 술로 달래느냐고 핀잔을 했다. 전에 살던 동네 부근에 잘 가는 술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마시고 집에 가는 동안 엉엉 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집 앞에서는 뚝 그친다. 어머니 상심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양희은의 <아침이슬>에 젖은 20대말의 삶은 인기 연예인 세계의 속성과 순수를 지향하는 자신과의 갈등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육군대령 집안의 귀염둥이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 결별한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은 경기여중고와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모범생이었다. 송창식을 만나 포크송에 눈이 뜨고 김민기의 버려둔 악보를 들고 새벽공기 같이 청량한 목소리로 발표한 노래가 <아침 이슬>이다. 이 시대 중년 세대들이 ‘불후의 명곡’ 1위로 선정한 노래라고 발표했지만 그 노래는 또 체류탄 연기 속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의 추억 속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애창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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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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