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3)
‘타이타닉’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3)
  • 김다인
  • 승인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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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박혀있는 알짜상식 풀어내기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브록 로벳이 이끄는 탐사팀은 마침내 ‘대양의 심장’이 들어있다고 믿어온 금고를 인양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금고 속에는 다이아몬드는 없고 대신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건 젊은 여자의 나신을 그린 그림이 있을 뿐이다. 그 광경을 TV로 보던 고운 모습의 할머니 로즈가 탐사팀을 찾아온다.

“유명세나 타려는 수작이지, 아나스타샤 공주처럼.”

탐사팀원의 볼멘소리다.

귀족 행차처럼 금붕어 어항까지 대동한 101세 할머니 로즈가 탐사팀을 방문하자 탐사팀에 의해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얘기된다.

“1792년 루이 16세의 왕관에 박혀있던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그의 처형과 함께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대양의 심장’이라는 다이아몬드인데,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에 경쟁도 안됐다.”

“피츠버그의 철강 부호 아들이 약혼자 주려고 구입했는데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했다.”



tip

=아나스타샤 미스터리

러시아의 공주 아나스타샤 미스터리는 반세기를 넘게 계속되어온 세계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1920년 한 여인이 베를린에서 자살하려다 구출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고 어떤 신분증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이 여인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1921년 이 여인은 자신이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말했고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황실 측근과 황실 친척들이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총살 현장에서 옷에 박힌 보석 때문에 극적으로 살아나 친절한 독일 병사의 도움으로 베를린까지 오게 됐다고 그간의 과정을 횡설수설 말했다. 황실 사람들은 그녀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자신의 이름이 안나 앤더슨이라고 밝힌 그 여인은 1938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재판을 했는데 이 재판은 1970년까지 끌었다. 이 재판과정에서 사람들은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점점 믿게 됐는데, 이 재판에서 결국 그 여인이 패했다. 패소 이유는 그녀가 아나스타샤임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앤더슨이 아나스타샤가 아니라는 확증 또한 없었다.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믿는 일부 황실 지지자들에 의해 앤더슨은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으며 1984년 폐렴에 사망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미국의 부호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앤더슨의 사체는 화장됐다.

실제의 아나스타샤 공주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4녀 1남 가운데 넷째딸로 1901년 6월에 태어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니콜라이 2세는 전장에 나가 군대를 지휘했고 이에 아나스타샤의 어머니 알렉산드리아 황후는 라스푸틴에 의지하며 내정을 지휘했다. 하지만 패전 양상을 띠게 되자 케렌스키가 이끄는 멘세비키(공산당 소수파, 수정주의 표방)에 의한 2월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1917년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공산당 다수파)가 10월혁명을 일으켜 황제 일가는 시베리아로 옮겨져 1918년 혁명군에 의해 무참하게 사살됐다. 황제 일가의 시신은 폐광으로 옮겨졌다.

앤더슨이 아나스타샤인가, 더 나아가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는 과연 죽었는가의 미스터리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과학적인 논의가 시작될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개방되기 시작한 소련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옐친 시대가 열리고 왕가 일가의 시신의 발굴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발굴을 마친 후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자들이 초청되어 시신 확인작업을 도왔다. 이때에도 미국 법의학자와 소련 법의학자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묻힌 시신이 모두 11구였다는 기록에 반해 발굴 시신은 9구였기 때문이다. 미국 법의학팀은 발굴 시신 가운데 아나스타샤와 황태자 알렉세이의 사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소련 의학팀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소련 팀의 의견보다는 미국 팀의 의견을 더 믿고 싶어했고 앤더슨이 아나스타샤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이 미스터리가 완전히 풀린 것은 DNA 대조라는 획기적인 과학적 방법이 개발된 후였다. 앤더슨은 이미 화장된 후였으나 다행히도 죽기 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때 제거했던 조직이 남아있어 DNA를 추출할 수 있었다. 이 DNA와 발굴된 황제 일가의 여성 시신에서 추출한 DNA를 대조한 결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앤더슨은 누구인가. 생존시에도 앤더슨이 폴란드의 공장 노동자 프란체스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황실 지지자들은 그 증언을 한 사람이 반대파에 매수되었다고 일축해 버렸다. 독일에 살고 있던 프란체스카의 외조카의 혈액을 얻어 앤더슨의 DNA와 대조한 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로써 1920년부터 반세기 넘게 계속되어온 아나스타샤 미스터리는 그 답을 얻었다. 하지만 앤더슨, 아니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한 덕에 생전에 지지자들로부터 예우를 받았으며, 현대판 신데렐라처럼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았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1774년 프랑스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는 16세이던 1770년 당시 14세이던 오스트리아의 왕녀 마리 앙트와네트와 정략결혼했다. 루이 16세는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왕으로 알려져 난세에는 적합지 않았다. 결국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을 계기로 발발된 프랑스 혁명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후 머물고 있던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옮겨졌다. 1791년 일가와 함께 국외로 탈출하려다 들켜 감옥에 유폐됐다가 1793년 길로틴(단두대)에 처형됐다.

루이 16세보다 7개월 늦게 역시 길로틴 처형을 당한 마리 앙트와네트는 아름다움과 사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프랑스혁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앙트와네트 왕비의 호화로운 생활을 꼽고 있다. 백성들이 빵을 먹지 못하고 잇다는 말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는 그 진위를 떠나 유명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앙트와네트가 국가간의 이해타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마리 앙트와네트를 둘러싼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은 앙트와네트 왕비가 2,800캐럿짜리 목걸이를 사고도 그 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18세기 최대의 스캔들로 꼽힌다, 이 사건은 프랑스 혁명 발발을 촉진시켰다는데, 이 역시 앙트와네트는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라는 설이 있다.

루이 16세는 알려진 바와는 달리 길로틴 처형 당시 국왕으로서의 당당한 면모를 유지했다는데, 처형 당시 루이 16세가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가 2004년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이 스카프는 그저 얼룩이 묻어있는 행주쯤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나 프랑스 대혁명과 연관지어 역사적인 유물로 여겨져 무려 7만유로(약 1억원)에 팔렸다. 이 스카프를 낙찰받은 사람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나폴레옹 황제가 입었던 셔츠는 6만유로 정도였다고 한다.



‘시네마 스터디’는 국내외 잘 알려진 영화를 텍스트로 해서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 상식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문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잡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아주 쉽고 재미있게요. 워낙은 중학생들이 재미있게 논술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냥 영화를 통해 일반 상식 얻기 또는 영화 재미있게 뜯어보기로 여겨도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스터디 <왕의 남자>에 이어 이번에는 <타이타닉>을 텍스트로 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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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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