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제플린 흑인 음악의 완결판, 허니드리퍼스
레드 제플린 흑인 음악의 완결판, 허니드리퍼스
  • 이근형
  • 승인 200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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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계에 충격 던진 복고풍 흑인 음악 밴드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레드 제플린의 전체적인 음악적 기원이 바로 흑인 음악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곧 록음악의 원초적인 모습을 레드 제플린이 조금이나마 밝히는 것과 동일하다. 사실 록음악도 엄연히 흑인 음악에서 파생된, 그러니까 로큰롤 (Rock And Roll) 의 그보다 더 이전의 태생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기타 리프 (riff) 역시 흑인 음악에서 기타의 반복 악절을 차용한 것으로서, 우리가 잘 아는 록음악의 하드코어적인 면을 뺀다면 분명한 것은 흑인 음악의 뼈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레드 제플린의 밴드 기원을 전후로 해서 파악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레드 제플린은 록의 교과서다.


그런 증거 하나, 먼저 레드 제플린은 1집 Led Zeppelin 시절부터 그토록 흑인 음악에 갈구했었다. 기본적으로 레드 제플린은 이 작품에서 하드 록 및 헤비메탈의 형태를 띠며 강성한 세션을 들려줬지만, 결국 남는 것은 You Shook Me, 그리고 I Can't Quit You Baby였다. 이 작품에서부터 레드 제플린이 흑인 음악에 갈구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다음 작품 Led Zeppelin II에서 증거를 또다시 제시하면 된다. The Lemon Song, Bring It On Home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 2집이 헤비메탈의 교과서라며 반박하는 자들에게는? 그럼 레드 제플린이 본격적으로 ‘블루스 록’ 을 표방하고 나선 Led Zeppelin III에서 증거를 대면 된다.


이렇게 레드 제플린은 매 앨범마다 블루스의 신기원을 꿈꿨으며, 그러면서 레드 제플린은 록음악의 근원이 되는 블루스에 초점을 두는지라 ‘베이스에 탄탄한 그룹’ 으로 맹위를 떨칠 수 있게 되었고, 곧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매번 록음악의 교과서로 편찬되었던 것이다. 그냥 단순히 이야기해서, 헤드뱅잉을 즐기는 록음악 마니아들, 그리고 그루브에 초점을 두는 흑인 음악 마니아 모두 레드 제플린의 팬이 되었다라고 말하면 편할 것이다. 거기다가 로버트 플랜트나 존 보넘 역시 레드 제플린 결성 전에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블루스 록에 정통했다는 점, 그리고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기타 리프 및 멜로디 제조에 있어서 블루스 같은 흑인 음악을 자주 들춰본다는 점에서 ‘레드 제플린의 흑인 음악’ 이 최종 완성되는 셈이다.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가 우리들에게 남긴 음악은, 결국 정확히 이야기해서 하드 록, 헤비메탈, 포크 록, 그리고 블루스 록이다. 이 공식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그 나라의 평단 모두 다 공통적으로 입장을 표하는 식이며 (물론 레드 제플린이 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 월드 뮤직에 손을 뻗었다는 사실은 의견이 갈린다), 레드 제플린이 빼놓지 않고 챙겼던 장르, 그리고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의 그루브감을 살리기 위해 블루스로 하여금 그들만의 무기로 만들었다는 것 역시 공통적이다. 한마디로 레드 제플린에게 있어 블루스는 평생 숙원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지하다시피 레드 제플린은 1980년 해체되었고, 더이상 ‘블루스 사업’ 을 벌일 수 없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그리고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기의 드러머 존 보넘은 1980년 음주 후 식도 이상으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1980년대 활동도 못해보고, 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레드 제플린은 공중분해되어 지금까지 ‘다시는 일으킬 수 없는 이야기’ 로 전해지고 있다. 어차피 존 보넘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레드 제플린이 아니었다. 어찌하여 그의 파워 드러밍 없이 레드 제플린의 고출력 하드 록 사운드가 완성된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 레드 제플린은 앞서 언급했던, 그토록 연구하고 싶었던 흑인 음악을 도중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에 있어서 존 보넘이 없는 것은 결국 해체를 의미한다며 손을 뗐고, 그것은 사실상 모든 멤버들의 의견과 동일했다. 로버트 플랜트, 존 폴 존스, 그리고 지미 페이지 모두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때, 이제 막 슬럼프를 털고 일어나서 다시 그루브감 넘치는 보컬을 가지게 된 로버트 플랜트는, 레드 제플린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1970년대 후반기를 자신의 친아들 사망, 그리고 위험한 부상을 겪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낸 로버트 플랜트가, 이제 막 일어나서 1979년 앨범 In Through The Out Door로 재기를 노렸는데, 레드 제플린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로버트 플랜트는 각오를 하고 지미 페이지에게 동의를 구했다. “다시 시작하자!”


지미 페이지 역시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싫었던지 로버트 플랜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짚을 사항, 바로 록 슈퍼스타들의 달콤한 흑인 음악의 향연 허니드리퍼스 (The Honeydrippers) 가 결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80년, 레드 제플린 해체 직후 얼마 안있어 로버트 플랜트는 지미 페이지를 끌어들여서 허니드리퍼스의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근데 허니드리퍼스라는 프로젝트를 그냥 로버트 플랜트 - 지미 페이지 조합으로만 이끈다면 재미가 없을 터. 그래서 이들은 제대로 일을 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초특급 세션맨들이 허니드리퍼스에 속속들이 들어왔다. 레드 제플린 흑인 음악의 완결판 허니드리퍼스가 지금까지도 숱한 화제를 낳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레드 제플린의 출발이자 록음악 역사에 있어서 전설로 통하는 영국 슈퍼 록밴드 야드버즈 (Yardbirds) 가 유명한 이유는, Still I'm Sad 같은 주옥같은 하드 록 넘버들을 배출한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최강 기타 트리오 지미 페이지 - 제프 벡 (Jeff Beck) - 에릭 클랩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당장 ‘영국 3대 기타리스트’ 를 대보라 한다면, 물론 제일 먼저 에릭 클랩턴이 떠오르겠지만, 이후의 이름들이 바로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이다. 이렇게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은 각자 최고인 동시에 블루스에 기원을 둔 것으로 유명한데, 결국 허니드리퍼스는 최강 기타 트리오를 섭외하진 못했지만, 반타작은 해냈다.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이 다시 만난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가 허니드리퍼스의 골격을 세우고, 같이 도울 자리에 지미 페이지가 투입되어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졌다. 그리고나서 제프 벡이 허니드리퍼스에 가입하며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생각해보라.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이 서로 등을 맞대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장엄하게 쭉쭉 뽑아내는 모습에, 그 어떤 록 마니아가 감동을 받지 아니하겠냔 말이다. 거기에 보컬 파트가 로버트 플랜트라면 말 그대로 황홀경이다. 이렇게 해서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의 재결합만으로도 벅찬데 제프 벡까지 들여왔다. 이제 허니드리퍼스에는 나머지 멤버들이 필요했는데, 대표적으로 캐나다 출신의 키보디스트 폴 샤퍼,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재즈 퓨전 드러머 데이브 웨클 (Dave Weckl) 을 불러들였다. 물론 허니드리퍼스 초창기 시절의 드러머는 케빈 오닐이었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앤디 실베스터 (기타), 짐 힉먼 (베이스), 키스 에번스 (색소폰) 등이 가세하여 허니드리퍼스는 거의 12~13명에 이르는 대형 밴드로 멤버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초창기 시절엔 대학가에서 공연을 하거나, 미국에서 EP 앨범을 만드는 등 본격적인 허니드리퍼스의 출범을 위해 힘썼다. 특히 이런 모든 스케줄을 로버트 플랜트가 도맡아 담당하고, 미국에서 EP 앨범을 만들 때 역시 로버트 플랜트가 솔선수범을 한 것을 보면, 결국 로버트 플랜트가 허니드리퍼스의 실상 주인이자, 레드 제플린이 끝내 이루지 못한 흑인 음악의 완결판에 대해 구상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더해서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이라는 희대의 세션맨들로 이뤄졌으니, 녹음을 가질 때 보다 고차원적인 음악적 접근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올스타 밴드의 큰 장점이 아니겠는가.


허니드리퍼스는 앞서 언급했듯이 흑인 음악에 상당히 애정이 깊고, 또한 레드 제플린이 이루고자 했던 도달점을 절반이나마 해내기 위해 로버트 플랜트로부터 만들어진, 알고보면 상당히 의미가 깊은 프로젝트였다. 허니드리퍼스의 프로듀서를 보면, 부연 설명 없이 이름이 이상하게 The Fabulous Brill Brothers (아주 매력적인 넙치 브라더스) 라고 되어있는데, 허니드리퍼스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에 비해, 분명 지미 페이지가 앞장서서 프로듀싱 했는데도 프로듀서명을 장난스럽게 하고자 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목표 달성하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그대로 프로젝트의 막을 내리자는 암묵적인 약속이라고 해석된다.


허니드러퍼스는 13명 정도나 되는 그 많은 멤버들을 데리고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시범적 운영을 거쳤고, 또한 EP 앨범을 만들 정도로 조금만 더 기다리다보면 허니드리퍼스의 이름으로 대단한 앨범 하나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허니드리퍼스는 레드 제플린의 소속사였던 애틀란틱 레코즈와 계약을 맺었고, 도중에 몇몇 멤버들의 교체가 있었지만 사실상 멤버 축소에 따른 효율적인 세션을 이루고자 했으니 허니드리퍼스로서는 최적의 상태였다. 여기에 애틀란틱 레코즈의 창업자, 애틀란틱 레코즈 회장 아흐메트 에르테군 (Ahmet Ertegun) 이 허니드리퍼스에게 무언가 요청을 하게 되며, 허니드리퍼스의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1923년 터키 이스탄불에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적을 따내고 애틀란틱 레코즈를 세운, 터키에서도 유명한 ‘가장 성공한 터키계 미국인’ 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애틀란틱 레코즈를 운영하면서 ‘흑인 음악 지존’ 레이 찰스, 이 글의 주인공 레드 제플린, 그리고 미국 슈퍼 록밴드 미스터빅 (Mr. Big) 등 최고의 아티스트들만 모셔왔다.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이밖에도 수많은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재즈 아티스트 등을 키우면서 이쪽 분야의 최강 레이블로 거듭나는데, 이것은 바로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음악적 취향이 흑인 음악에 있음을 단박에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만큼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흑인 음악 마니아였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쪽에 매진했다.


마침 애틀란틱 레코즈의 식구들인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가 허니드리퍼스라는 본격 흑인 음악 밴드를 결성하고 있었고, 또한 음악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애틀란틱 레코즈를 찾았으니, 아흐메트 에르테군은 이들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먼저 밴드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1950 ~ 1960년대 흑인 음악 전성시대의 밴드 형태로 이끌 것, 그리고 이 당시 굉장한 히트를 쳤던 블루스 및 재즈 넘버를 연주할 것 말이다. 마침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그리고 제프 벡 모두 다 흑인 음악에 열정이 있었고 (거기다가 음악적 기원도 있고), 허니드리퍼스의 멤버 80퍼센트가 흑인 음악 계열이었기 때문에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이러한 아이디어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결국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꿈은 한번이라도 레드 제플린 멤버들이 정통 흑인 음악을 들고 나오는 것이었고, 공교롭게도 레드 제플린의 꿈 역시 평생 숙원 사업인 흑인 음악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획사 수뇌부의 목적과 그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적 목표가 정확하게 들어맞으면서, 1984년 11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허니드리퍼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 The Honeydrippers : Volume One이 발매되었다. 앨범 재킷에는 프로듀서의 이름이 정확히 게재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그냥 ‘아주 매력적인 넙치 브라더스’ 라고 장난 식으로 써놓고는, 그냥 앨범의 수록곡 5개를 대중들 앞에 평가받겠다는 자세였다. 레드 제플린의 숙원 사업이라는 그런 거창한 거 빼고, 가볍게 흑인 음악과 조우를 했던 것이다.


1번 트랙 I Get A Thrill은 로버트 플랜트의 아찔한 보컬이 압권이다. 사실 아찔한 보컬 하면 으레 섹시 여가수를 떠올리게 하는데, 로버트 플랜트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느 섹시 여가수 못잖은 아찔한, 그리고 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섹시한 보컬을 지녔다. "Oh~ oh ~ oh~" 하며 애드리브를 난사할 때에는, 마치 그의 매력적인 입술이 지그시 감은 눈과 함께 여기저기에 돌출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루디 툼스 (Rudy Toombs) 의 원곡으로서,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의 ‘보컬과 기타의 섹시한 만남’ 이 러닝 타임 내내 줄줄 흐른다. 배킹 보컬의 감칠맛 나는 지원 사격 역시 일품이다.



2번 트랙 Sea Of Love는 빌보드 차트 (어덜트 컨템포러리 부문) 에서 1위를 달린, 허니드리퍼스 최고의 히트곡으로서, 원곡은 잘 알려졌다시피 전설적 블루스 아티스트 필 필립스 (본명 필립 밥티스트) 의 것이다. 평단에서는 리메이크 릴레이 중에서, 허니드리퍼스가 필 필립스의 노래 Sea Of Love를 커버한 것을 ‘역대 최고의 리메이크작’ 중의 하나로 언급한다. 결국 “Do you remember~” 로 시작되는 Sea Of Love가 허니드리퍼스 앨범의 중심 축인 셈이다. 막힘 없이 술술 풀리는 곡 전개력이 특징적. I Got A Woman은 꿍짝꿍짝하는 비트 속에서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고, 배킹 보컬의 드라마틱한 지원 사격에서 애절하게 풀어지는 Young Boy Blues는 애절하다못해 아름다우며, 마지막 트랙 Rockin' At Midnight은 브라스 밴드와 로버트 플랜트의 밀고 당기기가 절묘하다.


이런 식으로 허니드리퍼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The Honeydrippers : Volume One은 흑인 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리고 아르메트 에르테군이 보조를 해주며 완벽히 ‘복고풍의 흑인 음악 밴드 컨셉트’ 로 무장하며 세계 록계에 충격적으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특히나 Sea Of Love가 흑인 음악의 거의 대부분 차트에 상위권으로 등극하며, 허니드리퍼스가 결코 급조된 프로젝트가 아님을 확실히 증명했다. 1989년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사랑의 파도> 의 OST로 Sea Of Love가 삽입되며, 영화 음악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허니드리퍼스는 앨범 발매 후 해체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5개의 음악은 영원하다. 허니드리퍼스가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사망 연도 (2006년) 즈음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가, 그의 사망으로 인해 물거품이 된 것도, 아쉬움 속에서 느껴지는 허니드리퍼스의 범접 불가능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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