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문제적 인간 연산 (17)
'왕의 남자' 문제적 인간 연산 (17)
  • 김다인
  • 승인 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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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박혀있는 알짜상식 풀어내기 / 김다인



#17 연산, 돌아갈 곳은 녹수뿐

[인터뷰365 김다인] 조작된 비방문으로 인해 장생이 눈에 인두 지짐을 당하고 공길은 인형놀이 중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연산군은 천하디천한 광대들의 이같은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연산 :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공길을 보며) “왜, 왜!”

연산,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손으로 창살을 드르르르- 훑으며. 그가 간 곳은 녹수의 방. 연산은 야단맞을 것을 각오한 어린아이의 얼굴 표정으로 녹수의 열두폭 치마 속으로 몸을 들인다.

연산 : “연회를 열자, 처선아! 처선아!”



자신이 처선을 내친 사실조차 기억 못하는지, 연산은 환관 처선을 부른다. 연산의 외침은 아무 대답 없이 긴 복도의 정적을 따라 메아리로 흩어진다. 이 장면 다음에 처선이 목매 자살한 장면이 이어진다.


생각포인트
=연산군은 폭군인가, 문제적 인간인가?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은 폭군의 대명사로 불려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극화되고 있는 왕이기도 하다. 연산군은 성종의 장남으로, 성종이 죽은 후 왕위에 올랐는데, 무오사화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성종의 업적을 이어 무난한 통치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에 주력하고 인재 확보에 힘썼으며 사가독서제(유능한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는 제도)를 다시 실시해 학문 풍토를 조성했다. 하지만 중신들의 세력 다툼에 시달리고 거기에 생모인 폐비 윤씨와 관련된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정치에서 손을 놓고 향락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폐위됐다. <금삼의 피>가 폭군으로서의 연산군을 조명한 것이라면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작, 연출 이윤택 1995년 초연)은 비명횡사한 생모를 그리는 연산군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tip
=연산군과 칼리쿨라, 네로
권력을 쥔 왕이 광기에 사로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연산군 못지않은 예를 로마시대의 두 왕 칼리쿨라와 네로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 제3대 황제 칼리쿨라(재위 37-41, 본명 가이우스 케사르, 칼리쿨라는 작은 군화라는 뜻으로 그의 별명이다)는 자신을 살아있는 신이라고 착각하며 지냈다. 자신이 인간세계로 나온 신이라는 착각 속에 빠진 칼리쿨라는 자신의 세 여동생과 관계를 갖는 근친상간을 서슴지 않았으며 독재정치와 광포한 행동을 했다. 결국 왕이 된 지 5년 만에 근위대 장교에게 암살됐다. 희대의 광기어린 왕으로 불리는 칼리쿨라를 모델로 프랑스의 유명 작가 카뮈는 <칼리쿨라>라는 희곡을 집필했다. 1945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 희곡의 근저는 그가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등의 책에서 줄곧 탐구해온 인간의 부조리에 관한 시점이다. 카뮈는 칼리쿨라의 삶을 통해 권력을 지키려 애쓰는 황제가 결국 그 노력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칼리쿨라 황제의 변태적인 행동은 브라질의 틴토 브라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말콤 맥도웰, 피터 오툴 등 쟁쟁한 연기자가 출연한 영화지만 노골적인 장면, 혐오스런 장면이 많다. 국내에는 91년에야 개봉이 가능했는데 총 4시간 분량 가운데 40분이 잘렸다.
또 한 명의 로마 황제 네로(로마 5대 황제, 재위 54-68)는 그야말로 폭군의 대명사지만, 재위 초기에는 다양한 정책을 펴는 등 정치를 잘했다. 16세에 황제에 오른 네로는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의 도움으로 해방된 노예를 중용하고 매관매직을 없애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점차 포악해져 결국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의붓동생 등을 살해했다. 64년에 로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화재가 발생하자 이를 그리스도교인들의 짓이라고 하여 그리스도교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결국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를 탈출하다가 자살했다. 하지만 네로는 그리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여 하프를 연주하거나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에는 불타는 로마시를 보는 네로를 언급한 구절이 등장한다.

=장녹수와 장희빈
국내 드라마에서 많이 다룬 조선조 후궁 가운데 한 사람이 장희빈이다. 일반적으로 장희빈과 장녹수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두 사람은 출신부터가 다르다.
장녹수(?~1506)는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양반 장한필과 노비인 어미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분은 어미를 따르는 법이라 녹수는 천민계급이었다. 연산군의 숙부인 제안대군의 여종으로 있다가 제안대군의 집에 들른 연산군의 눈에 들어 입궐, 후궁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후 연산군을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쥐고 실세로 군림, 품계는 종4품인 숙용까지 올라갔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은 장녹수를 잡아 단칼에 목을 베었고 군중들은 그 시체에 돌을 던졌다. 만일 장녹수가 천민 출신이 아니라 양반집 규수였다면 이같은 즉결처형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녹수보다 100여년 후에 이름을 드러내는 장희빈(?~ 1701)은 숙종의 후궁이었다. 왕비의 시녀로 있다가 숙종의 눈에 들어 숙원으로 봉해졌으며 이후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세자가 되자 정1품 빈이 됐다. 왕비가 죽자 숙종은 어린 왕비 인현왕후를 맞아들였는데, 당파싸움의 와중에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장희빈은 중전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인현왕후가 복귀하자 다시 빈으로 강등되었다. 인현왕후가 얼마 되지 않아 죽자 다시 중전의 자리를 노리던 중 왕후의 죽음을 기원했다는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사약을 받고 죽었다.



‘시네마 스터디’는 국내외 잘 알려진 영화를 텍스트로 해서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 상식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문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잡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아주 쉽고 재미있게요. 워낙은 중학생들이 재미있게 논술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냥 영화를 통해 일반 상식 얻기 또는 영화 재미있게 뜯어보기로 여겨도 될 것입니다. 첫 번째 공부는 영화 <왕의 남자>를 텍스트로 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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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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