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노래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블런트
‘경험’을 노래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블런트
  • 이근형
  • 승인 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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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정규앨범으로 세계 포크의 중심에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사랑을 하며, 이별의 아픔을 겪고...’ 사랑의 단순한 도식이다. ‘의욕을 갖고 무언가에 도전을 했는데,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여건 탓을 하다가 결국 좌절의 벽 앞에서 뒤돌아서고...’ 좀 더 포괄적 의미의 일상공식이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인생이다.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과 작용, 나아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기록하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서부터 음악이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음악(音樂)의 기원 자체가 풍요를 빌게 하는 주문, 그리고 수렵생활 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태초부터 음악은 곧 인생이었다.
물론 음악인들 중에서 신비론이나, 판타지 등에 기인해 곡을 쓰는 사람도 많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록 쪽인데, 특히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에서 많았다. 딥 퍼플과 레인보우의 리치 블랙모어는 고대 유럽 설화를 바탕으로 장황한 판타지를 그려냈으며, 영국이 자랑하는 슈퍼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은 이보다 더 확장해서 유럽 설화뿐만 아니라 미래시대의 기계문명이 인간에게 해악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곡을 쓰기도 했다. 이런 경우 역시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음악계의 끊임없는 콘텐츠 생산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대개의 싱어송라이터, 작곡, 작사가에게서 보이는 성향은 일상의 경험, 즉 인생이다. 일찍이 대한민국 최고의 발라드 가수 반열에 오른 윤종신은 “경험 없이는 음악을 만들 수 없다.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이것은 단지 그때 그 상황에서 일종의 클리셰를 발언한 것이고, 전 세계 모든 메이저, 마이너 음악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음악가들은 일부러 경험을 창조하곤 한다. 멀리 여행을 떠나서 노트에다가 ‘여행지에서의 상념’에 대해 수두룩 적어오거나,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지고 난 후의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을 곡의 주제로 만들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음악계에서는 더더욱 경험에서 비롯되는 콘텐츠를 심히 필요로 한다.


제임스 블런트 그는 누구인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제임스 블런트는 2004년에야 가요계에 데뷔했고 이제 정규 앨범 두 장을 발표했을 뿐이다. 할리우드 바닥에서 여자친구와 연애를 즐겼다는 등의 타블로이드판 정보를 덧붙여야만 그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는 제임스 블런트가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제프 버클리, 엘리엇 스미스 등 영미권의 포크 가수들의 명맥을 잇는 차세대 주자로 올라섰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놀랍기만한 제임스 블런트의 ‘경험’에 대해 다시금 조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대대로 뼈대 굵은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 시절 음악을 틀 수 있는 기계는 아버지 자동차의 CD 플레이어가 전부였고, 보유하고 있던 음반은 아버지가 드라이브 하면서 듣는 3장의 앨범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이 그의 ‘음악에 대한 세세한 터치’, 그리고 ‘사물을 자세히 꿰뚫는 관찰’ 을 키웠다고 할 수 있겠다. 몸속에서 음악에 대한 끼가 넘쳐흐르던 제임스 블런트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했지만, 그 열악한 상황은 그가 남들보다 몇 십배는 더 음악을 갈망하게 된 완벽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제임스 블런트는 자신이 다루는 음악에 대해 서투른 법이 없다. 음악의 소중함을 잘 아는 것이다.



제임스 블런트는 또 영국 근위기병대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관할 아래 코소보 분쟁 지역으로 파병,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약 4년간 복무한 적이 있다. 이 사실 역시 너무 뻔한 클리셰이기 때문에 자세히 다루진 않겠지만,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몸으로 부딪혔기에 그의 노래에 공격적인 멜로디 혹은 선정적 가사는 없다. 폭력성과 세계의 전쟁화에 대해 강하게 성토하는 노래 ‘No Bravery’로 울분을 토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평화주의 신조에, ‘폭력의 끝’에서 목격한 경험은 제임스 블런트 고유의 소프트 포크를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앨범 수록곡에 고스란히 집어넣었다. 대부분 직접 몸으로 부딪힌 것들이어서 내용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평단에서는 이렇게 군인 출신의 비범한 출신성분과, 유년기 시절의 열악한 환경,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볼 줄 아는 능력 등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결국 제임스 블런트가 늦은 데뷔에도 불구하고 월드 스타의 위치에 오른 것은, 얼마나 경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양질의 노래를 만들었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던 것이다.


전설적 뮤지션 린다페리를 만나다

포크 팝(혹은 Pop folk), 그리고 포크 록 같은 어쿠스틱 장르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음악가의 경험에서 그 콘텐츠를 많이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최소한 포크라는 장르 쪽에서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들은 자기가 지닌 사상을 노래했고, 마음에 안 드는 사회에 대해 일침 했으며, 일상에서 겪은 경험으로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포크 록의 황제 밥 딜런이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을 향해 속사포 같은 일침을 놓은 것은 곧 포크 록의 정신이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포크 록 아티스트들은 체제 하에서 똑같이 움직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을 확장하여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망적 태도를 음악 속에 녹여 넣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런 포크 록 아티스트의 노래에서는 직설적인 가사보다 우회적으로 돌리는 ‘비유법’을 적절히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더러 그중에는 ‘스트레이트 요법’을 쓰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포크 록의 특징을 볼 때, 제임스 블런트는 ‘21세기형 포크 스타’가 원하는 조건에 아주 잘 부합하고 있다. 이제 더는 순수한 사랑을 찾을 수 없는 전 세계 음악 주제의 트렌드 속에서 제임스 블런트는 한발 물러서서 다시 포크 록의 전성시대를 꿈꾸는 듯하다. 이런 점들은 자칫하다간 메이저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으나, 제임스 블런트는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며 동시대에 데이미언 라이스 등과 함께 꿋꿋이 지조를 지켰으니 더는 반문을 달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포크 록으로 전 세계 차트 1위를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능력이 뛰어나면 장르는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미국의 전설적인 여성 포크, 얼터너티브 록밴드 ‘포넌블론즈’의 주력 멤버 린다 페리는 이제 막 녹음 세션을 가지려고 하는 제임스 블런트를 단박에 알아봤다. 2004년에야 제임스 블런트라는 브랜드 네임을 발표하고 얼굴을 내민 그에게 이런 전설적 아티스트가 음악적으로 반했다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미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린다 페리는 자신의 소속사 커스터드 레코즈에 제임스 블런트를 불러들였고, 직접 프로듀싱까지 맡아주는 든든한 지원을 해주며 제임스 블런트의 1집 ‘Back To Bedlam’이 베스트, 스테디셀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같은 시기 전 세계 언론들은 제임스 블런트가 린다 페리라는 슈퍼스타와 손을 맞잡은 것보다는,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그가 영국군이었다는 것 그리고 유년기 시절의 음악에 대한 엄청난 갈망에 대해 더욱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제임스 블런트에게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그가 오랜 기간 축적한 경험이었다. 린다 페리 역시 경험에서 비롯된 음악으로 데뷔를 하려했던 ‘인재’ 제임스 블런트를 알아본 것이다. 포크 록 아티스트로서 많은 경험을 골라서 곡을 써가는 패턴은 아주 이상적인 형태다.


두 장의 정규앨범으로 세계 포크의 중심에 서다

제임스 블런트는 1집 ‘Back To Bedlam’을 두고 “나는 음악에 있어 경험을 중요시 여기는 편인데, 특히 데뷔작은 그냥 소소한 일상에 불과할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떠한가. 영국에서 제일 빨리 팔린 앨범 중 하나이며,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쉼표’를 찍고 자연친화적 삶을 살자는 아주 건설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수작 아니었던가. 역시 이것도 제임스 블런트가 음악을 소중히 여기고, ‘진짜 음악’ 이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했던 추출물이며, 전쟁의 현장에서 얻은 인생의 숭고함에 대한 깨달음일 것이다.
제임스 블런트의 2집 ‘All The Lost Souls’의 앨범 재킷은 여러 사진들이 조각조각 한 몸을 이루며 결국 제임스 블런트의 얼굴 사진을 형상화한 것이다. 역시 이것도 경험의 산물인 사진을 통해 "수천가지의 경험이 All The Lost Souls를 만들어냈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해준다. ‘All The Lost Souls’의 타이틀곡 ‘1973’은 1974년에 태어난 제임스 블런트에게 있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제임스 블런트는 마치 1973년도에 청춘을 보낸 사람처럼 옛 것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고 경험에 대해 노래한다.
제임스 블런트를 세계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본작이자, 제임스 블런트하면 딱 떠오르는 노래 ‘You're Beautiful(1집 Back To Bedlam)’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또 어떤가. 어느 날 그는 지하철에서 옛여자친구(본인 스스로도 확실치는 않다고 했지만, 직감적으로는 그때 그 여자친구가 맞다고 한다)가 다른 남자와 함께 다정하게 걷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그녀를 보며 느껴지는 복잡미묘한 감정 을 노래로 옮긴 것이 바로 ‘You're Beautiful’이다.



제임스 블런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경험의 중요성’ 을 강하게 피력한다. 2집 수록곡 ‘1973’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이 1974년생이므로 1973년의 이야기들을 경험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주제를 잡고 노래를 전개시키며 “옛날 친구들과의 소중한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뜻을 내비친다. 그리고 비록 좋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옛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 대해 ‘미치도록 붙잡고 싶은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면’ 정말 실감나는 러브송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굳이 거창한 주제를 머리 싸매며 생각하지 않아도, 이렇게 경험을 통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임스 블런트는 ‘경험의 중요성’ 이란 주제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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