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스러운’ 이상은이 되기 위한 20년
‘이상은스러운’ 이상은이 되기 위한 20년
  • 유성희
  • 승인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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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에는 다시 이십대가 될 것 같다”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십대에 가수로 출발한 이상은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지닌 뮤지션이고 그림 그리는 화가, 글 쓰는 작가이며 여행가이기도 하다.

이상은은 1988년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했다. 유달리 껑충하게 큰 키에 소년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는 노래 ‘담다디’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담다디’는 80년대의 관념적인 노랫말과 단가조의 멜로디를 바꿔놓은 문화적 충격이었고 그의 인기는 영화 <굿모닝 대통령>에 출연할 정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날 이상은은 돌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음악적 성숙을 위해 일본으로 간 것이다. 다시 미국과 영국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완성해갔다. 20년 동안 13개의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여행에세이집도 펴냈다.

방송에 출연하기보다는 콘서트를 통해 교감하기를 즐기는 이상은은 오는 11월 8일에 ‘천변풍경1930’이라는 테마로 다섯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릴레이 공연을 갖는다. 공연 얘기를 시작으로, 이상은의 20년에 대해 들어보았다.



공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컨디션은 어떠십니까.

계속 감기를 앓다가 오늘에서야 기운을 차렸어요. 오늘 연습을 해보니 잘되던데요. (웃음) 크고 작은 공연을 함께 해온 팀과의 작업이라 그런지 떨리는 마음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공연 준비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지내셨습니까.

런던에 대한 여행기 책을 준비 중이어서 2주일 동안 여행을 마치고, 며칠 전에 돌아왔어요. 근래에 글쓰는 일을 의뢰받게 되어서 외국에 나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올해 초, 파리에 가서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를 만나 직접 인터뷰 하고 왔어요. 그녀에 대한 글과 그림을 그려 잡지에 실었는데, 재밌는 일이었어요. 공연을 하러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고요. 일이란 게 한번 발동이 걸리면 몰리기도 하잖아요. 인터뷰의 경우 제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설프기 때문에 약간은 바보스러울 수 있는 점들을 캐치하신 것 같아요. 인터뷰 대상에게 너무 솔직하게 물어보는 순진함? ‘이상은 쟤는 특이한 짓을 많이 하니까 쟤 어때?’(웃음)




옛날 얘기부터 할까요, ‘담다디’로 한창 인기를 얻을 때 돌연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18살 데뷔할 때의 꿈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였어요. 예쁘게 옷 입고 메이크업하고 노래를 하는 게 신이 났지만, 한편으론 아이돌 가수로 지낸다는 게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고민에 빠졌어요.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왔던 인생의 고민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결과였어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밤의 디스크 쇼’ 라디오 진행을 맡으면서부터였어요.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음악을 듣게 되고, 음악을 사랑하는 피디 선생님이나 게스트로 나오셨던 진짜 음악을 하는 선배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방송을 하며 스타만 되면 다 되는 줄 알던 저로서는 일종의 충격이었어요. 특히 들국화, 한영애 선배님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제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 적도 많았어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동경의 대상들을 마음에 품고,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나기로 마음먹은 거죠.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을 텐데요.

힘들다기보다는 저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었어요. 싱어송라이터를 키우는 음반회사로 들어가 레코딩 하는 방법, 곡 쓰는 방법 등 자신만의 세계가 담긴 음악을 창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정말 한영애 선배님처럼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점점 제 방식을 찾아 나가다 보니 좀 더 좋은 회사와 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때때로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또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일본에서의 음악적 커리어는 어느 정도였나요?

제가 일본에서 대중음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대중적인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어요. 소위 말해 음악을 하는 전문가들, 매니아들,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공연을 할 때는 30,40대 장년층도 많이 좋아해주셨고요. ‘한국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구나’ 소리를 들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내가 이곳에 와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자랑스런 생각도 들었죠.


음악작업은 어떻게 하나요?

저는 환경이 굉장히 중요해요.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작업을 하는 타입은 절대 못되는데, 그건 저의 일상과 현실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가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물론 일상을 노래하는 음악도 있지만, 저는 제 음악을 들었을 때 늘 느껴오던 익숙함이 아닌 새롭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주말 오후 들른 미술관처럼 특별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느낌으로요.



여행을 많이 다니잖아요. 이상은의 음악에 있어 여행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일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여행을 통해 영감을 많이 받고 있죠. 이번 달 핸드폰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등등 주변에 널린 현실적인 고민들에서 빠져 나올 수 있잖아요.(웃음) 하지만 여행을 하면 나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답게 생겼구나 등 늘 보아오던 것도 새롭게 느낄 수 있어요. 일상적인 자아랑 거리를 많이 둔 공간에 있다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본인만의 세계관이랄까 철학이 있다면요?

글쎄요... 오히려 거창한 철학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제가 ‘하자센터’를 참 좋아해요. 그곳은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 친구들이 다니는 일종의 대안교육 센터인데, 실제로는 비상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에요. 그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깨닫게 하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수업을 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굳이 ‘철학’이라는 단어를 규정지을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면 되겠구나’ 느끼고 있어요. 주변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요. 거창한 철학을 읊지 않아도 내 꿈과 가야할 길을 잘 걸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지금도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게 제 유년시절을 정말 아이답게 보낼 수 있도록 잘 지켜주신 점이에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제 성적표를 보지 않으셨어요. 꼴찌를 해도 좋으니 밖에 나가 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웃음) 학교 가서 수업도 안 듣고 만화책만 열심히 봐서 비록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이긴 했지만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하루는 연극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네 나이에 뭔가를 하려고 하면 어른이 되어서 제대로 자신을 끌고 나가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그때 가졌던 ‘어린이의 마음’으로 지금 음악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열심히 놀았더니 중학교 올라가서는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던데요.(웃음)



올해로 데뷔한 지 20주년이 되는데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해온 게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시간이 흘렀다’ 정도...(웃음) 음반을 꼬박꼬박 내기는 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중간 중간 여행도 다니고, 열심히 놀았어요. 덕분에 돈은 많이 못 벌었어요.(웃음) 그런데 제 자신은 잘 지킨 것 같아요.



이제 곧 사십대가 될 텐데, 십대 이십대 삼십대와는 무엇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나요?

십대에 데뷔를 하고, 이십대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 보고 싶었어요. 끝까지 가보고, 온몸이 피투성이 됐을 때 돌아왔어요. 그리곤 삼십대가 되어 그래 그건 의미가 없었다고(웃음) 깨달았어요. 이십대에 얻었던 것들을 통해 소통하던 시기가 삼십대였던 것 같아요. 곧 사십대를 맞이할 텐데 제 생각에는 다시 이십대처럼 되지 않을까. 대신 이십대 때와 같이 피투성이가 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잘 찾아낼 수 있겠죠. 사십대에는 정말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공력(功力)을 동원해서 다 해볼 생각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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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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