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을 빼닮은 록커-그레이엄 보넷
제임스 딘을 빼닮은 록커-그레이엄 보넷
  • 이근형
  • 승인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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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세토 창법의 명곡 Since You Been Gone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전성시대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코디를 잘 생각해보자. 치렁치렁하게 기른 머리에다가 가죽 재킷을 입고, 손에는 아대를 하나 걸치고 록 스피릿에 충만하여 전율의 액션을 취하는 그들.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그 강렬함만큼이나 그것을 하는 사람들의 복장 역시 터프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록 아티스트들은 이런 터프한 복장과 치렁치렁 기른 머리를 ‘록 스피릿의 일환’ 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록 뮤직을 행하는 사람들의 철칙이라 생각하여 모두들 그 규칙을 따르는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하드 록과 헤비메탈을 하는 보컬인데도 이 바닥에서 ‘록 스피릿’의 하나를 지키지 않고 소위 말하는 삐딱선(?) 을 탔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기르지도, 그리고 무대 위에서 가죽 재킷을 입지도 않았다. 짧게 친 머리에 구레나룻을 강조하고, 포마드를 발라 약간 느끼함이 곁들여진 전형적인 남성 헤어컷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록 무대에 어울리지 않게 셔츠에다가 재킷을 정갈하게 입고, 바지 역시 깔끔하게 워싱된 청바지 아니면 면바지였다. 여기에 레이밴 선글라스까지 착용해주니, 이건 무슨 하드 록 보컬이 아니라 영화배우 혹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을 하는 솔로 가수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빗나가듯, 그는 분명 레인보우, 미하엘 쉥커 그룹(MSG), 알카트라즈 등을 거친 록 보컬이다.


바로 이 글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영국 출신의 ‘신사 록커’ 그레이엄 보넷(Graham Bonnet) 을 일컫는 말이다. 그레이엄 보넷이 만약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특이한 사정을 더하지 않고 깔끔하게 입고 나왔더라면, 세계적으로 그것이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무언가 아주 특별한 요소가 더해진다.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남자 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 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호남형 얼굴에다가 오똑 선 코, 그리고 넓은 이마와 우수에 찬 듯한 눈빛은 더할 나위 없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포마드를 발라 처리한 짧은 헤어컷, 게다가 머리 색깔 역시 제임스 딘과 흡사하니 마치 ‘제임스 딘 닮은 사람 경연대회’ 참가자를 보는 듯하다. 마침 그레이엄 보넷은 무대 위에서 제임스 딘처럼 청바지 코디만 고집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레이엄 보넷 역시 제임스 딘을 따라하는 건지는 몰라도, 록커이기 이전에 배우로서도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1070년대 즈음에 영국의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가상의 록밴드를 만들어서 좌충우돌 성공기를 다루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그레이엄 보넷은 여기서 주인공을 맡으며 코믹한 연기로 당시 영국인들의 배꼽을 강타했다. 또한 그레이엄 보넷이 레인보우 밴드 재직 시절에, 레인보우가 제작하는 뮤직비디오마다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 사랑에 갈망하고 또 그 사이에 멋진 포즈를 취하는 전형적인(?) 80년대 스타일의 남자 연기를 뽐냈다. 그래서 팬들은 이를 두고 “제임스 딘의 부활” 이라고 위트있는 대답을 했고, 요 근래에 와서는 해외 팬들 사이에서 “그레이엄 보넷 젊은 시절이 마치 짐 캐리 같다” 며 실실 웃기도 한다. 그럼 좋게 이야기해서 제임스 딘 닮은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짐 캐리인가.



블루스 록 듀오 마블스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 픽업되기까지


그레이엄 보넷은 1947년 12월 23일, 영국의 스케그네스에서 태어났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며 자라난 소년은 예술, 음악에 관심 있었고, 다른 영국인들과는 다르게 축구 같은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1964년, 호주에서 건너온 뮤지션 트레버 고든(Trevor Gordon) 을 만나면서, 둘이서 블루스 록 듀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레이엄 보넷은 영국인, 트레버 고든은 호주인이었기에 트레버 고든이 “호주에서 음악을 만들면 거기서도 인지도를 넓힐 수 있다” 라는 말에 그레이엄 보넷은 흔쾌히 찬성하여 마블스(The Marbles) 로 팀 이름을 만들고 호주에 가서 음악 작업에 착수했다.



마블스는 음악 작업하는 데 있어서, 대 선배인 비지스(Bee Gees) 가 우연찮게 인연이 닿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며 히트 가도의 꿈을 꾸고 있었다. 꿈만 같게도, 비지스의 멤버 배리 깁과 모리스 깁이 그레이엄 보넷과 트레버 고든의 보컬을 테스트 해주거나, 작곡 및 작사를 도와준 것이었다. 비지스라는 최고의 밴드의 도움에 날개를 달은 마블스는 1968년, 싱글곡 Only One Woman을 내놨다. 이 곡은 1968년 영국 싱글 차트에서 최종 5위를 기록하며 선전했고, 호주에서도 역시 Only One Woman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당시 마블스의 Only One Woman의 라이브 무대를 동영상 사이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레이엄 보넷의 부드러운 가창력과 달콤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하지만 마블스는 해외 평단으로부터 “딱 한 곡만 히트하고 져버린” 그룹으로 저평가 되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당시 리치 블랙모어가 이끌던 슈퍼 밴드 레인보우가 로니 제임스 디오(Dio) 를 내쫓고 새로운 보컬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레이엄 보넷이 그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지스의 도움으로 딱 한 번 히트한 마블스는 그레이엄 보넷의 탈퇴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레이엄 보넷은 긴 웨이브 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스포티한 남성 헤어컷으로 단장하고 깔끔한 셔츠에 재킷을 차려입었다. 레이밴 선글라스 딱 끼고, 이전에 들려줬던 보컬 음색과는 전혀 다른 팔세토 창법으로 리치 블랙모어 앞에 섰다. 리치 블랙모어는 합격 통보를 내렸고, 블루스 록의 그레이엄 보넷은 더이상 없었다. 헤비메탈 슈퍼스타 그레이엄 보넷만이 정답이었다.



레인보우를 대중적인 밴드로 만들게 해준 인물, 그레이엄 보넷


그레이엄 보넷은 1978년 레인보우에 합류했다. 마침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시절 자신과 함께 음악을 했던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를 데려왔고, 실력파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 역시 레인보우 명함을 달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리치 블랙모어, 그레이엄 보넷, 코지 파웰, 돈 에어리, 그리고 로저 글로버로 레인보우가 재무장했다. 이를 두고 평단에서는 “리치 블랙모어가 희대의 보컬 디오를 떠나보냈으므로, 복귀가 힘들 듯” 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헤비메탈 역사를 다시 쓸 철혈 보컬 그레이엄 보넷의 정체를 모르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레이엄 보넷은 레인보우 오디션장에서 파장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그레이엄 보넷의 팔세토 창법은 지금껏 헤비메탈계에서 듣던 샤우팅이나 그로울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치 용이 불을 뿜듯 듣는 이의 귀를 뜨겁게 달구는 듯한, 그러니까 문장으로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출력의 보컬 능력이었다. 근데 더 놀라운 것은, 팔세토 창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시키며 똑바른 발음법으로 가사를 읊는다는 것이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사실 그레이엄 보넷의 ‘전혀 록가수답잖은’ 복장과 헤어스타일이 싫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팔세토 창법에 반해서 계속 레인보우 멤버로 두고 있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멤버 선별에 있어서 냉정한 잣대를 내리는 리치 블랙모어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레이엄 보넷은, 결국 앨범 판매고와 순위로 보답해주었다.


그레이엄 보넷과 함께 한 레인보우의 4집 Down To Earth(1979) 는 그레이엄 보넷의 놀라운 창법과 프로듀서까지 역임한 로저 글로버의 현란한 수정 작업에 의해 레인보우 밴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상업적 앨범의 자리에 등극했다. 그 전까지 레인보우는 본거지 영국 이외에 유럽 지역, 일본에 지분을 내던 그룹이었지만, 그레이엄 보넷의 창법과 팝 록 장르로 점철된 Down To Earth로 인해 미국 무대까지 발을 넓히며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레이엄 보넷의 창법은 꼭 팔세토로만 볼게 아니라, 1980년대를 목전에 둔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음색이었기에 레인보우가 돈벌이를 위한 ‘팝 록 장르로의 선회’ 에 딱 제격이었다.



레인보우는 Down To Earth 성공으로 월드 투어를 펼치며 흥행 가도를 달렸고, 레인보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앨범에서 듣던 그 무시무시한 팔세토 창법의 그레이엄 보넷이 실제로 리치 블랙모어와 한 무대를 같이 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보넷은 리치 블랙모어의 신들린 기타 연주와 함께 앨범 수록곡 All Night Long, Since You Been Gone, Lost In Hollywood 등을 부르며 환상적인 공연을 만들어냈다. 언론 및 팬들의 반응은 동일했다. 먼저 전혀 록가수답잖은 패션의 사나이가 듣도보도 못한 팔세토 창법을 구사하는 것, 그리고 더해서 그레이엄 보넷의 빛나는 외모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흥분을 자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그레이엄 보넷은 공연의 열기가 더 뜨거워지면 재킷을 벗어던지고 관중들과 호흡하는 등, 신사처럼 생긴 사람이 보여주는 의외의 퍼포먼스는 레인보우의 자랑거리였다.



MSG, 알카트라즈, 임펠리테리... 가는 곳마다 헤비메탈 슈퍼밴드


레인보우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엔터테이너 그레이엄 보넷,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각종 세계적 록 페스티벌이 레인보우를 섭외하려고 안달이 났다. 레인보우의 얼굴 마담 제대로 한 그레이엄 보넷은, 그러나 얼마 가지 않고 리치 블랙모어와 결별했다. 리치 블랙모어가 폭행을 했다느니 등의 루머가 떠돌았지만, 그레이엄 보넷은 1990년대 어느 인터뷰에서 “리치 블랙모어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일축하며 루머를 잠식시켰다. 아직도 그레이엄 보넷은 자기 인생의 최고의 콘서트를 “레인보우와 함께 한 ‘몬스터스 오브 록 페스티벌’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레이엄 보넷은 레인보우와 깔끔하게 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이후 그레이엄 보넷은 기타리스트 미하엘 쉥커가 이끄는 미하엘 쉥커 그룹(MSG) 에 들어가 1982년 밴드의 4집 앨범 Assault Attack을 녹음했다. 마침 레인보우의 드러머 코지 파웰도 MSG에 가입했고, 그레이엄 보넷과 코지 파웰이라는 슈퍼스타를 영입한 미하엘 쉥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밴드 초창기의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그레이엄 보넷이 1981년 솔로 앨범 발매 직후 MSG에 들어간 것은, 록계가 모두 탐스러운 존재 그레이엄 보넷을 눈여겨봤다는 증거이고, 그레이엄 보넷은 이것을 계기로 당시 잘 나가던 록그룹은 죄다 한번씩 찔러보는(?) 여유로움을 보였다. 그레이엄 보넷은 MSG와 딱 한 번 음악 작업을 한 후, 1983년 스웨덴 국보급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알카트라즈(Alcatrazz) 밴드를 만들었다.


철혈 보컬 그레이엄 보넷과 기타 제왕 잉베이 말름스틴의 만남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알카트라즈 결성은, 후세에 잉베이 말름스틴의 걸작 중 하나로 고평가 될 만큼, 음악적 작업의 원활함과 라이브 무대에서의 흥행이라는 쾌속 엔진을 달고 히트 가도를 달렸다. 알카트라즈는 1집 No Parole From Rock 'n' Roll (1983) 을 내놨고, Island In The Sun이라는 히트곡으로 각광받았다. 알카트라즈는 1984년, 라이브 실황 앨범 Live Sentence로 다시한번 흥행의 맛을 보았고, 3집 Disturbing The Peace에서는 잉베이 말름스틴이 탈퇴한 자리를 기타계의 거장 스티브 바이 (Steve Vai)가 메워 그레이엄 보넷 / 스티브 바이 최강 조합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7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Only One Woman 리메이크 버전을 담은 알카트라즈 정규 3집 Dangerous Games(1986) 를 끝으로, 알카트라즈는 해체되었다.


알카트라즈를 빠져나온 그레이엄 보넷은 지금까지 리치 블랙모어, 미하엘 쉥커, 잉베이 말름스틴, 스티브 바이 등 최고의 기타리스트와 함께 하며 헤비메탈 슈퍼밴드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새로운 터전 (이미 그는 덴마크 헤비메탈 밴드 프리티 메이즈와 손잡은 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차세대 기타리스트와의 협연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기 막 록계에 입문하여 속주 기타의 차세대 주자로 이름난 크리스 임펠리테리(Impellitteri) 를 만나게 되었고, 곧이어 임펠리테리 밴드의 2기 멤버로 들어와 그레이엄 보넷 / 임펠리테리 조합을 이루었다. 이 조합은 신구 스타간의 만남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임펠리테리 밴드는 거기에 부응하여 1집 Stand In Line을 발매, 그레이엄 보넷의 팔세토 창법과 속주 기타가 더해진 네오클래식 메탈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1990년대까지 그레이엄 보넷은 레인보우에서 얻은 지명도와 인기에 힘입어 헤비메탈의 전성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기록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겨우 1979년에 록계에 모습을 내민 그레이엄 보넷이 3년도 채 안되는 적응 기간을 두고 금방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 그것도 오로지 헤비메탈 슈퍼밴드를 고집하며 그레이엄 보넷이라는 이름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그의 팔세토 창법은 결코 레인보우의 리치 블랙모어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었고, 넓게 이야기해서 헤비메탈이 필요로 하는 시원시원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쭉쭉 뻗어나가는 창법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록 뮤지션 치고 너무 많은 거침이 있었다고 비판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레이엄 보넷은 다양한 밴드 경험으로 전성기 시절 커리어가 화려하기 그지없다.



힘을 잃은 그레이엄 보넷 커리어 후반기... 그리고 지금


그레이엄 보넷은 잘 알려졌다시피 친일 / 친일파 (Chinilpa)와 다른 개념- 아티스트다. MSG 시절의 앨범 Assault Attack의 수록곡 Samurai, 그리고 알카트라즈 1집이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며 알카트라즈가 일본 단독 공연을 펼치며 성공한 점, 그리고 알카트라즈 앨범 Dangerous Games가 재패니즈 록 스타일에 입각한 점 등 여러가지를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그레이엄 보넷은 자신의 솔로 앨범을 영국, 미국 등지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정식 발매하여 호평을 받았고, 임펠리테리 시절에도 어김없이 밴드를 이끌고 일본을 찾았다. 그만큼 일본 대중음악계와 그레이엄 보넷의 관계는 친하다. 2001년에는 일본 헤비메탈 밴드 앤섬(Anthem) 의 피처링 보컬로도 잠시 활약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레이엄 보넷의 1990년대 이후의 커리어는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활동’ 외에는 그다지 뚜렷한 것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평단이 말하길 “그레이엄 보넷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음악성이 아니라, 뛰어난 록 아티스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리고 “무리한 팔세토 창법으로 나중에까지 그것을 이어오지 못하는 사태 초래” 로 보고 있다. 게다가 몇 번의 미국 시장 진출 이후로 계속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무대를 고집했던 것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다. 대개 세계적 록그룹들은 일본 무대를 사랑하지만, 그 곳을 찍고 더 높이 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레이엄 보넷과 차원이 다르다.


그레이엄 보넷은 솔로 앨범을 연차적으로 발매했지만, 역시나 1980년대 초반 1집 Line Up만큼의 히트를 치지 못했다. 그는 솔로 앨범에서 팝 록, 하드 록, 블루스 록 등을 선보였지만 아무도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솔로 활동 시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18번 히트곡 Since You Been Gone, 그리고 마블스 시절의 노래 Only One Woman을 부르곤 했었다. 어찌 보면 안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레이엄 보넷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2000년에는 1980년대의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자는 의미로 임펠리테리와 만남을 가지고 임펠리테리 작품 System X를 내놨지만, 이것은 음악성 떨어진 임펠리테리와 하락세의 그레이엄 보넷이 만난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럼에도 그레이엄 보넷은 굴하지 않고 새로운 솔로 프로젝트 구상 및 이탈리아 록계까지 지분을 넓히며 생명을 연장했다. 이탈리아 아티스트 마테오 필리피니(Filippini) 와 힘을 합쳐 만든 노래 Not Dead Yet은 제목 그대로 “난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그레이엄 보넷은 에디 반 헤일런(판 할런) 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미국의 하드 록그룹 태즈 테일러 밴드(Taz Taylor Band) 에 가입하여 2007년까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무대를 누볐다. 그리고 현재에는 다시 솔로 활동을 벌이며 꾸준히 음악 작업 및 라이브 무대를 가지고 있다. 이제 그레이엄 보넷은 어느새 63세 즈음으로 접어드는 이순의 나이이고, 록계에서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이 정도 되는 록 스타들은 아직까지도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할 법한데, 그레이엄 보넷은 앞서 언급했듯이 음악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은 마치 우리나라의 이야기처럼, 거의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각종 행사에서의 그레이엄 보넷의 이야기라면 다르다. 그는 최근 2008년 호주, 핀란드의 ‘클래식 메탈 팬들을 위한 록 페스티벌’ 등에 모습을 드러내 여전히 팔세토 창법으로 Since You Been Gone을 부른다.


앞서 언급한 호주와 핀란드의 그 록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잊혀진, 역사 속의 록 스타들만으로 라인업이 차려진 무대다. 그래서 레인보우, 딥 퍼플 출신의 왕년의 보컬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 도 그레이엄 보넷과 함께 무대에 오르곤 했었다. 그 페스티벌에 모인 팬들 역시 대개가 중년층의 록 마니아들이고, 그러기에 응당 무대의 열기나 공연 문화는 우리가 잘 아는 젊은이들의 축제, 로크 임 파르크 (Rock Im Park)나 후지 록 페스티벌 같은 청춘의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도 그레이엄 보넷은 지속적으로 이런 OB들의 모임에 나가 죽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고, 사람들은 왕년의 스타 그레이엄 보넷에 박수를 쳐준다. 전성기 시절 제임스 딘 못잖은 외모로 이름 날렸던 그, 그래도 아직 록 팬들 마음속엔 그레이엄 보넷은(과장되어 말하자면) 영원한 젊음을 가진 제임스 딘 그 자체다.




그레이엄 보넷의 모든 것 - Since You Been Gone


아전트(Argent) 출신의 록가수 러스 발라드가 내놓은 작품 Since You Been Gone. 이 노래는 레인보우가 1979년 리메이크 하여 Down To Earth 앨범에 넣어두었고, 결국 이 곡은 Down To Earth 앨범의 흥행과 함께 승승장구 하며 레인보우의 상업적 승리에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Since You Been Gone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곡은 그레이엄 보넷 60년 인생의 모든 것이자, 그만의 18번 곡이다. 아무리 퀸 출신의 브라이언 메이가 솔로 작품에서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해도, Since You Been Gone은 오롯이 그레이엄 보넷만의 몫이다.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그레이엄 보넷이 알카트라즈 라이브 앨범 Live Sentence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을 수록하면서 공식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음성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레이엄 보넷이 MSG에 가서부터 라이브 무대에서 Since You Been Gone을 부르며 그만의 'Since You Been Gone 사랑‘ 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레이엄 보넷은 레인보우 탈퇴 후 이 노래를 자신이 가는 곳마다 불러제끼며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팬들은 레인보우 히트곡 Since You Been Gone을 그레이엄 보넷이 다른 밴드에서 연주하는 모습에서 흥미를 느꼈다. 결국 Since You Been Gone은 임펠리테리에 와서는 제목을 약간 바꾼 Since You've Been Gone (1988) 으로 재탄생, 1979년 레인보우 버전과 거의 10년차의 간격을 유지하며 그레이엄 보넷의 역사를 증명케했다.


이제 Since You Been Gone은 미국의 아이돌 여가수 켈리 클락슨의 동명 히트곡 Since You Been Gone 때문에, 마치 힘을 잃은 그레이엄 보넷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고 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이 곡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점, 그리고 록 팬들 사이에서는 언제든지 이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하면 흥얼거리며 노래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드 록의 클래식’ 으로 마음 속 깊이 간직되어있다. 아직도 그레이엄 보넷이 퇴물 가수이고, Since You Been Gone이 철지난 ‘7080 노래’ 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레이엄 보넷의 2007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공연과 2008년 핀란드 공연에서의 Since You Been Gone 동영상을 보여주고 싶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끌어올리며 팔세토 창법으로 Since You Been Gone을 부르는 그레이엄 보넷의 모습에, 감히 ‘명불허전’ 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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