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의 캐릭터를 자기 몸에 심는 배우 허준호
맹독의 캐릭터를 자기 몸에 심는 배우 허준호
  • 조현진
  • 승인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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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작자가 된 해모수와의 만남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양재동의 한전아트센터에선 <해어화>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었다. 요즘 가히 뮤지컬 열풍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어화>는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는 뮤지컬이 아닌 순수한 국내 연극인들과 분야별 스탭들의 노력으로 만든 순수 국산 뮤지컬 이었고 초연이었다. 이 공연의 현장에 허준호는 서 있었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가 서있는 자리가 윤복희, 홍경인과 함께 무대가 아니라 극장앞 광장이라는 차이일 뿐이었다. 그렇다. 이 공연에서 허준호에게 부여된 배역은 바로 ‘제작자’였던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설적 배우였던 아버지 ‘허장강’의 이름을 딴 주식회사 ‘장강’의 대표이사 이자, 뮤지컬 <해어화>의 제작자 허준호와의 만남은 그 한전아트센터 앞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공연 축하한다. 제작자로써의 데뷔도 축하하고.

고맙다. 연기자로 설 때는 몰랐는데 제작자가 되어보니 매일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도, 티켓박스에 관객들이 지갑을 들고 줄을 서는 것도 너무나 새롭고,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로.


<해어화>가 당신의 첫 제작 작품인가?

그렇다. ‘장강’의 첫 작품이고, <해어화>로써도 초연이다. 지난 8월3일 막을 올려서 10월 중순까지 일단은 간다.


작품의 반응은 어떤가?

반응은 아주 좋다. 전문가들 평점도 4.5점이나 나왔고. 보신 관객도 아주 즐거워 한다. 단지 좀 아쉬운 건 상황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당 경선에다, 탈레반, 신정아, 날씨에 나라상황이 너무 어수선하지 않은가? 이러니 어디 맘 편하게 공연 보러 오시겠냐? 그런 상황도 고려해서 작품을 올렸어야 하는데 초보 제작자다보니... 그래도 작품은 건졌다. 배우들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초연으로써는 대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분명히 가능성을 봤다. <해어화>는 처음부터 대학로나 한국 뮤지컬하고 싸우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다. 해외로 나가려는 시도였고 그 시작의 첫발을 내딛었다는 것에 힘이 생긴다. 작품으로는 분명히 칭찬을 받았으니까. 이제부턴 제작자인 내 책임이다. 돈 갚으면서 더욱 무대를 잘 만들어 가야지.


그 말은 이제 본격적인 제작자의 삶을 시작한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이다. 아버지 이름 걸고 만든 회사다.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도, 크게 한껀 하고 빠지려는 생각이 아니라는 거다. 아버지가 영화만 250여편 정도 하셨다. 내 생애에 그 만큼 작품을 만들진 알 수 없지만 우선 목표는 그 만큼 쉼 없이 작품을 만드는 거다. 정말 문화의 크고 긴 강 ‘장강’ 같은 셀 수 없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허준호는 1964년 생이다. 그는 86년도에 개봉한 이규형 감독의 데뷔작 <청, 블루스케치>로 연예계에 등장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둘.이 영화를 찍고 그는 바로 군대에 갔었다. 우연이겠지만 그리고 스물 두해가 지났다. 22살에 데뷔한 청년은 이제 22년차의 중견배우가 된 것이다.



생각보다 참 오래되었다.

따져보니 그러네? 정말 벌써 20년이 지났군.


그러게. 그 사이 허준호는 참 안 변하면서도 많이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난 다행이 당신의 데뷔작인 <청,블루스케치>를 봤던 관객인데 그 영화에서 당신은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 였었다. 그런데 그 이후 당신은 ‘악역의 대명사’가 되었다가 요즘은 ‘호감가는 배우 허준호’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그런가?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 감사하지. 배우로써 힘도 생기고. 그런데 그런 말이라면 ‘잘 변했다.’라고 말하면 되지, ‘참 안 변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래서 물은거다. 분명히 지난 22년간 아주 큰 변신에 성공한 배우임에도 어쩐지 당신은 늘 한결같아 보여서 말이다. 사실 답을 가지고 물은 질문인데... 나 개인적으로는 허준호가 ‘곁에 오래두고 보니 어쩐지 신뢰가 가는 사람’으로 읽힌다. 웃기건, 나쁜 말을 하건, 눈물을 흘리건 이젠 다 믿을 만하다는 거지.

그렇게 말해준다면 매우 땡큐하다. 당신뿐 아니라 많은 대중이 날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이 보다 행복할 순 없을거다.



이게 오늘 인터뷰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부분이다. 우리세대에 당신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늘 착한 안성기나, 늘 멋진 정우성이랑은 다르니까. 그리고 뭐라던 간에 대중에게 스타는 그 한 이미지에 대한 로망이고, 소비성 상품인데... 당신은 그 한계를 쉽게 점프하면서 온 것 같다는 거다. 맞나? 맞다면 비결은 뭘까?

간단하다. 참았던 거다. 연습한 거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작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를 골라주기를 빌었던 거다. 우선 그렇게 작품을 만나면 그것을 나에게 심는 도전의 반복이었다. 악역이면 악하게, 선한 역이면 선하게, 웃긴 역이면 웃기게 말이다. 이건 훈련이나 재능은 아닌 듯 하다. 어쩌면 250여편을 하신 아버지를 보고 자란 영향이겠지. 당신 말대로 어떤 벽을 넘지 못한다면 대중에게 배우는 소모성 상품일 뿐이다. 존 웨인이 이것저것 하더라도 대중은 그를 ‘서부의 총잡이’로만 기억하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버지는 존 웨인보다 위대한 배우였다고 나는 믿는다. 그 분이 그 대중의 벽을 넘지 못하셨더라면 결코 250여편의 영화에 나오실 수 없었을 거다. 그 순간 한 작품, 한 캐릭터가 아니라 ‘허장강’이라는 하나의 대배우가 관객에서 옮겨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배우가 대중의 요구를 넘어 대중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순간이지. 나에겐 감사하게도 이 벽을 넘은 아버지가 있었다. 맛있는 음식점의 비밀 재료창고처럼 나에겐 이 아버지의 노하우가 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에게 전해 받은 이 비법으로 나는 대중과 관계하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아버지보다는 한참 서툴지만.


그 레시피를 좀 소개해 줄 수 없나? 혼자만 먹지 말고 조금만 나눠달라. 하하.

이게 내 밑천인데... 공짜로 줄 순 없다. 하하. 그냥 실체만 말한다면 이런거다. 캐릭터에 내가 동화되는게 아니라, 캐릭터를 내 몸에 심는 거다. 예를 들자면 ‘살인자’ 란 캐릭터를 만나면 허준호가 살인자가 되는게 아니라, 살인자를 허준호로 만드는 거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


아니. 조금 어렵다.

어렵지 않다. ‘나’는 실존하는 실체다. 밥 먹고 똥도 싼다. 그걸 무시하고 캐릭터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 해봤자 ‘흉내’이지 완전한 일치가 아닌 거다. 그러니까 그 캐릭터를 나에게 맞추는 거다. 말 그대로하면 진짜 ‘살인자 허준호’가 되는 거지. ‘난 사람을 죽인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살기 시작하는 거다. 지난번에 했던 영화 <중천>에서처럼 아내와 딸을 죽인 지나친 캐릭터를 맡으면 그러니까 너무나 고통스럽다. 난 정말로 아내와 딸을 죽인 사람이 되어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운전을 하다가도 경찰서 앞으론 지나가지 않는 삶을 살다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 살인자가 허준호가 되어서 나올 수 있는 거다.


조금만 상상을 해봐도 참 고통스럽겠다.

고통스럽지. 내 몸에 악당의 병균이 들어온 거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현실과 캐릭터를 착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캐릭터가 내 현실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그래서 악역을 할 때는 아주 예민해진다. 진짜 나쁜 놈이 되고.




악역을 할 때는 악당의 병균을 몸에 심는다는 허준호. 그래.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허준호의 그 ‘자발적 고통’ 덕분에 우리는 허준호의 연기에서 캐릭터와 허준호의 본 모습 모두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탈과 얼굴을 한꺼번에 보듯이 말이다. 그것이 허준호의 특별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그는 몸 안에 어떤 ‘캐릭터의 균’을 넣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캐릭터인가?

지금? 제작자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겠지. 염려의 캐릭터다. 관객이 얼마나 올까 염려하고, 평론가들 뭐라고 쓸지 염려하고... 끓어도 참고. 무대를 올려보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하나님 잘 믿는 캐릭터가 되려고도 노력하고 있고.


하나님? 원래 독실한 불교신자 아니었나?

맞다. 그랬었다. <마리아 마리아>에서 예수 역할 하면서 예수님께 관심이 생겼다. 어쩌면 그 예수 캐릭터의 병균이 내게 들어온 건지도...하하. 아무튼 그 이후에 자동차 사고를 크게 냈었는데 그때 하나님을 경험한 것 같다. 복희 엄마(그는 윤복희를 이렇게 불렀다.)가 내 인도자이고 멘토가 된다.


제작자 캐릭터에, 크리스챤 캐릭터만이 아니지 않나? 영화 <신기전>과 드라마<로비스트>도 있을텐데.

<신기전>은 다행이 어제 촬영이 끝났으니까 그 캐릭터는 이제 몸에서 빼는 중이고...<로비스트>는 진행중이다. 냉혈한인 무기거래 로비스트인 ‘제임스 리’라는 역할이다. 그래서 요즘 제일 우려하는 것은 ‘냉혈한. 크리스챤. 공연 제작자’로 보일까에 대한 염려다.


하하.

하하. <로비스트>는 소재가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무기거래상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는데 요즘은 있지도 않은 무기를 ‘어떻게 잘 파나?’하는 궁리 속에서 산다.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고...뭐 그렇다.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드라마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뮤지컬, 영화, 방송의 큰 형님이다. 후배들의 문제를 말 할 수 있는 입장인데.

아니. 그런 말 하는 거 싫어한다. 그냥 그 친구들이 자기 방식대로 잘 살고, 나는 내 방식대로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고 극단 만든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공연과 내 방식에 동의하는 친구들하고 작업하려고.



그렇다면 허준호의 방식이란 뭔가?

프리(Free)다. 다 자유로운 거. 나도 자유롭고 당신도 자유로운 거. 서로 괴롭히지 않는 것. 하고 싶은 거, 만들고 싶은 거 만들고... 그러다가 보면 좋은 작품도, 좋지 않은 작품도 풍성하게 나오는 거. 그런 속에서 걸작도 나올 테지.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 <디 워>도 대다수의 언론과 평론가들이 3류라고 했지만 그게 7백만 관객이 상 들었다는 건 그 작품을 평가하는 객석의 다른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관객과 작품이 커뮤니케이션 된 거다. 이게 제작자로써 내 시각이다. 잘 만들되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관객의 돈이 안 아깝게 한다는 원칙은 분명히 고수 해야지. 나는 그 접점을 찾는 거다. 그게 아니면 오래 못 간다. 물론 나는 그런 일을 돈으로 해결할 능력은 없으니 몸으로 때우면서 가는 거지만.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오래하는 거... 그게 내 철학이고 방식이다.


이야기의 뉘앙스에서 뮤지컬만이 아니라 더 큰 야심도 보인다.

그렇다. 우선 ‘장강 엔터테인먼트’는 뮤지컬로 시작하지만 영화와 방송도 기회가 되면 할 거다. 그러기 위해선 이 <해어와>가 먼저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많이 보러 오셔야 한다. 내가 홍보를 많이 못했고, 마케팅 같은 걸 잘 모른다.


그럼 여기서 아예 본격적으로 한번 홍보를 해라. 뮤지컬 <해어화>는 어떤 작품인가?

엇갈린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일패기생’이 되려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축으로 복수와 사랑이 그려진다. 드라마는 아주 재미있다. 외국 뮤지컬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윤복희, 홍경인씨등이 출연하고 10월 중순까지 양재동에 있는 ‘한전 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를 만든 90년대 대표적 대중가요 작곡가인 하광훈이 <해어화>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

그렇다. 하광훈은 내 군대 내무반의 한 달 고참이었다. 군대에서 친구가 돼서 지금까지 온거다. <해어화>는 그때 내무반에서 광훈이랑 이야기 하면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다. 그땐 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정말 ‘드림스 컴 트루’가 된거지.




요즘 허준호의 일과는 집-촬영장-공연장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술도 끊었다고 한다. 겨우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하는 바쁜 일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가정은?

그냥 혼자 산다. 빈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지. 기도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게 다행이다. 그래서 일까? 이 공연 딱 300만원 가지고 시작한 거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갔다. 이게 기적 아닐까? 내가 무슨 작품에 많이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밤무대 서는 것도 아닌데 필요할 때마다 제작비가 채워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일 기적을 경험하고 산다. 아직은 혼자 살 생각이지만... 모르지. 또 어떤 기적이 생길런지.



분명히 허준호는 변했다. 물론 그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객석에 있는 관객과 시청자들이었다. 그의 변화 때문에 ‘악당 허준호’가 호감 가는 인물로 변하는 ‘기적’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나 또한 허준호가 기다리고 만나 벌어질 그 앞날의 기적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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