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sh로 유명한 딥 퍼플 1기 이야기
Hush로 유명한 딥 퍼플 1기 이야기
  • 이근형
  • 승인 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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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지해서 대중이 몰라줬던 음악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나나나~나나나~나나나~” 후렴구로 익히 알려진 Hush라는 노래는 대체적으로 팝송을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주 불려지곤 한다. 그런데 이 곡의 정확한 주인이나 출처는 아쉽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 출신의 사이키델릭 록그룹 쿨라 셰이커(Kula Shaker) 의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Hush의 정확한 출처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딥 퍼플의 노래라고 주장한다. 물론 두 부류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정확한 출처는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포크록 가수 조 사우스 (Joe South) 의 것이다.


사실 조 사우스의 Hush는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다. 원곡의 소스가 너무 오래된 이유가 바로 그 탓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조 사우스의 Hush보다도 딥 퍼플이 그것을 리메이크한 버전을 Hush의 정확한 주인으로 많이 보는 편이다. 이런 추세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Hush의 노래는 딥 퍼플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편이니, 딥 퍼플의 히트 레퍼토리 중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근데 이 곡이(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언 길런이 부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이언 길런은 딥 퍼플이 Hush를 연주할 때 딥 퍼플 소속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당시 딥 퍼플은 헤비메탈을 하는 밴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고정 멤버 리치 블랙모어(기타) 는 Hush를 연주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궁금하다면, 우리는 딥 퍼플 1기의 시절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광고 배경음악으로 다시 수면 위로 부상,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인상적인 후렴구의 노래 Hush의 딥 퍼플 1기 시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딥 퍼플 1기 시절은 어쩌면 우리가 잘 아는 딥 퍼플 2기(헤비메탈), 딥 퍼플 3기(블루스 록) 보다 음악적으로 더 고차원적인 성향을 지닌 시기라고 평가해야할 것만 같다.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진지한 음악을 해왔으니 말이다.



딥 퍼플의 탄생, 그리고 1기


1967년, 전설적인 록그룹 서처스(The Searchers) 의 드러머 크리스 커티스는 영국 허트포드셔에서 연예기획사를 하나 차리고, 신인 밴드를 육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밴드 매니지먼트 관계자와 합심하여 기획사를 만든 다음, 자기네들의 첫 밴드 멤버를 모으는데 노력했다. 그래서 이 신인 밴드 모집 공고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사람은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 있는 키보디스트 존 로드 (Jon Lord) 였다. 그 다음, 아웃로즈(The Outlaws) 등의 밴드를 거치며 기타를 연주했던 리치 블랙모어가 두 번째로 가입했다. 리치 블랙모어는 마침 당시 독일 함부르크의 클럽가에서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던 때였다.



팀 이름은 처음엔 기획자 크리스 커티스에 의해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라운드어바웃의 주도권이 리치 블랙모어로 잡히자, 리치 블랙모어는 자신의 친할머니가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딥 퍼플(Deep Purple) 로 팀 이름을 개명했다. 이후 베이시스트 닉 심퍼, 보컬 로드 에번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관계자들의 호평을 이끈 실력파 드러머 이언 페이스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딥 퍼플 1기가 마침내 완성되었고, 이들은 1년 후 1968년 데뷔작 Shades Of Deep Purple을 내놨다.


딥 퍼플 초창기 시절은, 그들이 20대 초중반의 나이인 만큼 말끔한 외모와 패션을 앞세워 이미지 메이킹에도 신경을 썼다. 사실 어떻게 보면 딥 퍼플 1기 시절이 가장 그들의 외모적 면에서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 조각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리치 블랙모어의 미모는 절정이었고, 깔끔한 호남형의 외모를 자랑하는 보컬 로드 에번스는 딥 퍼플의 포토 세션에서 중앙 자리를 차지하는 등 리치 블랙모어와 함께 빛나는 얼굴을 자랑했다. 미소년 스타일의 앳된 얼굴의 드러머 이언 페이스도 역시 인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신인 밴드 딥 퍼플의 외적인 요소였고, 음악적으로는 값진 결과물을 낳았다.



딥 퍼플 1기의 디스코그래피와 음악적 스타일


딥 퍼플 1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1집 Shades Of Deep Purple을 내놓으며 록계에 데뷔했다. 이들은 1집을 만들 때, 아직 음악적인 성숙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유명한 로큰롤 넘버나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록 히트곡들을 리메이크 하며 앨범을 채워나갔다. 1집의 수록곡들을 보면 우리의 눈에 아주 익은 히트곡들이 여럿 있다. 제일 먼저 서두를 장식한 Hush가 있겠고, 비틀즈의 로큰롤 클래식 Help!도 있다. 더불어서 미국 사이키델릭 록의 천재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 Hey Joe 역시 딥 퍼플이 리메이크 했다. 그러나 조금 차별성이 있는 것은, 리치 블랙모어의 헤비한 기타 드라이빙과 존 로드의 수려한 키보드 연주에 있었다. 1집은 수록곡 Hush가 빌보드 차트에서 선전하며 데뷔작 치고 훌륭히 틀어막았다.


같은 해 1968년, 딥 퍼플은 연속해서 2집 The Book Of Taliesyn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도 역시 딥 퍼플은 리메이크 퍼레이드를 이어가며 응고의 시간을 보냈다.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리 싱어 닐 다이아몬드의 명곡 Kentucky Woman을, 1집에 이어 또 비틀즈의 노래 We Can Work It Out을 리메이크 했다. 더해서 비틀즈의 후반기 프로듀서로 유명한 필 스펙터의 노래 River Deep, Mountain High를 리메이크 했다. 이 앨범은 존 로드의 키보드 연주가 곡의 전체적 밑그림을 그리는, 그러니까 가장 영향력 있는 파트였는데, 그만큼 전체적 트랙의 규모가 웅장했고 클래식적 접근이 돋보였다. 하지만 Kentucky Woman에서 리치 블랙모어가 들려준 헤비한 기타 연주는, 마치 존 로드 독주 체제에 반기를 드는 식이었다.


이렇게 딥 퍼플 1기는 해체 직전까지 존 로드의 입김이 상당 작용되는 그룹이었다. 이런 식은 역시 3집 Deep Purple (1969) 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딥 퍼플 팀 이름과 동명 타이틀인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존 로드가 “내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꾸었던 섬뜩한 악몽을 주제로 트랙을 꾸몄다”라고 말한 것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존 로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만큼 그의 클래식적 접근에 의한 키보드 연주가 파트의 8할을 책임지며 굉장히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 그만큼의 키보드 연주가 있었기에 딥 퍼플이 들려주고 싶었던 클래식적인 프로그레시브 록을 잘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앨범은 딥 퍼플 1기 불후의 명작이 되어버린 April이라는 12분대의 대곡과 함께 록 명반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딥 퍼플 1기의 음악적 스타일은 이렇다. 첫 번째, 클래식 음악을 익히며 바하, 엘가 등의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존 로드, 그리고 아웃로즈 등의 밴드를 거치며 하드 록과 로큰롤, 블루스 록을 연주했던 리치 블랙모어 두 사람의 색채가 그대로 묻어났다. 사실상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의 양강 체제였고, 로드 에번스는 그들이 만든 노래를 보컬로 부르는 식에 그쳤다. 그런데도 영향력은 오히려 존 로드에게로 많이 기운 상태였다. 왜냐면 존 로드만이 당시 1960년대 후반 유행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장 도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클래식 접근이 없었더라면 스트링 사운드가 가미된 웅장한 프로그레시브 록도 할 수 없었을 뿐더러, 나중에 딥 퍼플이 로열 필하모닉과 협연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딥 퍼플 1기의 운용 체제는 존 로드의 손에서 이뤄졌다.


두 번째, 존 로드의 작곡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레시브 록 트랙 외의 것들은 죄다 선배격 아티스트들의 히트곡으로 채워나가며 딥 퍼플 자체 내에서의 자질 향상을 꾀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닐 다이아몬드, 조 사우스 등의 선배격 아티스트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며,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로큰롤 등의 기술을 연마해나갔다. 이런 스타일의 곡에선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헤비한 기타 연주가 빛을 발했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리치 블랙모어가 자신 스스로의 기타 사운드 확장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딥 퍼플은 리메이크를 하는 와중에도 대곡 스타일로 꾸며서 러닝 타임을 늘리거나 클래식적 접근을 시도하는 등의 노력으로 자기네들만의 색깔을 유지했다.



딥 퍼플 1기의 마지막 음악적 성공, April


어느 특정한 계절에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사랑을 받는 노래가 있다. 국내로 치자면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 이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대한민국 만방에 울려 퍼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메탈 밴드 건즈 엔 로제스의 November Rain이 11월을 대표한다. 그리고 더불어 이 곡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딥 퍼플의 April이다. 이 곡은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딥 퍼플의 3대 히트곡 (April, Highway Star, Soldier Of Fortune) 중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으며, 제목과 일치하게 4월달에 라디오 에어플레이계를 꽉 잡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 곡도 우리가 잘 아는 딥 퍼플 2기 시절의 노래라고 잘못 알고 있으며,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April은 딥 퍼플 1기의 음악적 산물이라는 데 있다.


April은 가사 그대로 미국의 전설적 문학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liot)의 작품 <황무지> 의 내용 중 일부분을 가사로 차용한 것으로서, T.S. 엘리엇이 말하고자 하는 “4월은 잔인한 달” 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해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게다가 T.S. 엘리엇의 <황무지> 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아니라, 거기서 각색을 해서 좀 더 유연하게 글을 써내려가 후한 점수를 받기 충분했다. 멜로디의 훌륭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오케스트라단과 딥 퍼플의 협연으로 ‘록과 클래식의 만남’ 을 꾀했고, 존 로드의 전체적 지휘 아래 두 집단이 각자의 파트를 훌륭히 수행했다. 정말 클래식의 일부분처럼, 잠시 세션이 잠잠했다가 다시 본 궤도에 오르는 기교까지 일품이었다.


초반부와 중반부는 너무나도 진지한 클래식적 접근이다. 합창단의 잔잔한 하모니 보컬과 현악단의 섬세한 터치는, 과연 이 곡이 록밴드 딥 퍼플의 곡인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거기에 더욱 더 비장한 맛을 살리기 위해 리치 블랙모어의 일렉트릭 기타 개선가가 들어가, 록과 오케스트라의 전율을 모색했다. 후반부는 최대한 스트링 사운드를 줄이고 로드 에번스의 비장한 보컬로 대변되는 딥 퍼플의 록 타임이다. 이로써 사실상 히트의 가도를 달리지 못했던 딥 퍼플은 April이라는 곡으로 그 설움을 영광으로 되돌려 받았으며, 그렇게 1970년 딥 퍼플 1기는 로드 에번스, 닉 심퍼의 탈퇴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딥 퍼플 1기가 가지는 의미


종합적으로 나열하겠다. 딥 퍼플 1기는 말 그대로 딥 퍼플이라는 슈퍼 밴드의 모체로서, 1968년 결성되어 1970년까지 운용되었다. 햇수로는 3년가량, 그간 내놓은 작품은 차례대로 Shades Of Deep Purple, The Book Of Taliesyn, 그리고 동명 타이틀 Deep Purple이다. 딥 퍼플 1기 역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은 1집의 Hush이며, 작품성 면에서 고평가를 받은 곡은 앞서 언급한 April이었다. 그들은 클래식적 접근으로 대변되는 프로그레시브 록,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을 받은 블루스 록을 주로 연주했다. 1950 ~ 1960년대 스타일의 로큰롤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딥 퍼플 1기는 양강 체제에서 존 로드가 우위를 점하며 그의 리더쉽에 의해 움직였으며, 2기부터 완벽히 팀을 장악할 리치 블랙모어는 그 사이에 자신의 기량을 다지며 존 로드와의 대결에서 역전승을 목표로 삼았다. 사실 존 로드의 체제로 갔었더라면 제일 중요한 딥 퍼플 2기는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1기 시절 리치 블랙모어가 쌓은 내공이 곧 딥 퍼플의 히트 가도의 주원인이다. 왜냐면 지금껏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던 하드 록, 그리고 헤비메탈의 중심에 리치 블랙모어가 있었고, 그가 곧 록 스피릿 충만한 이언 길런이나 로저 글로버를 데려오는데 8할이 되었기 때문이다.


딥 퍼플 1기는 다른 기수들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편이다. 과장되게 말해서 아예 딥 퍼플의 음악적 산물에서 제외되는 설움까지 겪는다. 그것은 곧 딥 퍼플 1기가 너무나도 진지한 음악을 모색했기에 초래된 결과라고 보여지는데, 평단에서는 1960 ~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트렌드에서 딥 퍼플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더욱 무게를 두는 편이다. 비록 대중적으로 터트리진 못했지만, 존 로드의 풍부한 클래식 지식에서 비롯되는 대곡 스타일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진지한 토론을 이끌어낸다. 또한 존 로드의 섬세한 터치에 의해 Anthem(2집 수록곡), One More Rainy Day 같은 슬로우 록 트랙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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