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광대들의 살판 (1)
‘왕의 남자’ 광대들의 살판 (1)
  • 김다인
  • 승인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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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박혀있는 알짜상식 풀어내기 / 김다인




#오프닝-영화의 마지막인 장생의 줄타는 장면


[인터뷰365 김다인] 장생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패를 첨 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어떨결에 궁에 와서는...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 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 보고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 보고...

공길 “저 겁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눈깔도 없는 놈이 게가 어디라고 거길 올라가 섰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저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공길 “네놈이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장생 “자, 이승의 왕인 내가 한번 놀아볼 것인데, 이 모습을 한번 보면 저승에 가서도

못 잊으니 잘 봐라, 이년아.“

-궁 후원 연회장에서 눈먼 장생과 공길이 줄을 타며 주고받는 대사 중에서



##1 살판나게 시작하자


영화를 여는 것은 광대들의 신나는 놀이판. 신나는 풍물소리에 맞춰 광대들의 오방색 깃발이 나부낀다. 대청마루에는 기름진 얼굴의 양반이 앉아있고 구경꾼들은 광대패 주위에 빙 둘러서 있다. 광대들이 살판과 버나를 하고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운다. 풍물놀이가 끝나면 말뚝이탈을 쓴 장생과 각시탈을 쓴 공길이 나온다. 둘이 질펀한 말을 주고받다가 장생의 능숙한 줄타기가 이어진다. 줄을 타던 장생, 광대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양반과 귀엣말을 하는 모습을 보자 화난 얼굴로 줄에서 떨어져 버린다.



tip

=무표정의 표정-광대 탈

광대들이 쓰는 탈은 무표정하다. 하지만 극중 상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가진다. 저잣거리에서 놀 때는 신명나게 웃는 표정으로 보여졌던 탈이 궁궐에 들어와 연산군 앞에서 놀이판을 펼칠 때 광대들의 불안과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표정으로 보여진다. 이는 관중들이 극중 전개에 따라 탈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장생은 말뚝이탈을, 공길은 각시탈을 쓴다. 말뚝이는 말고삐를 매는 말뚝을 관리하는 천민층으로 탈춤에 등장하는 하인을 일컫는다. 탈춤에서 말뚝은 양반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역을 맡는다. 각시탈은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에 나오는 각시탈이 대표적이다.


=살판나는 재주들

우리말에 ‘살판나다’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의 국어사전적인 뜻은 ‘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겨 생활이 좋아지다,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되다’는 뜻의 동사다. ‘살판’은 또 광대가 몸을 날려 넘는 땅재주를 칭한다. 마치 오늘날의 텀블링처럼 앞으로 혹은 뒤로 넘는 재주를 뜻하는데 워낙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살판이라 불린다. 남사당놀이는 살판 외에도 풍물(일종의 농악), 버나(대접 돌리기), 어름(줄타기), 덧뵈기(탈 쓰고 하는 놀이), 덜미(민속인형극 꼭두각시놀음) 등 6종목으로 이뤄진다.

놀이판에서 풍악을 주도하는 것은 꽹과리, 북, 장고와 징이다. 오늘날의 사물놀이 구성인 것이다. ‘사물’(四物)은 원래 불교 예식에 쓰이는 범종, 운판, 목어, 법고 등을 뜻하는데 이것이 민간에서는 위의 4가지 타악기로 전용되어 쓰여지고 있다. 네 가지 타악기로 이뤄진 연주를 사물놀이라 칭하게 된 것은 1978년이다. 당시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린 ‘공간 전통의 밤’ 공연에서 김덕수 등 젊은 국악인 4명이 모여 타악 연주한 것을 시발로 이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김덕수 등은 어린 시절부터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그 놀이를 익힌 사람들로, 사물놀이는 남사당을 통해 이어져온 전통음악을 건강하게 부분계승한 것이다.


‘시네마 스터디’는 국내외 잘 알려진 영화를 텍스트로 해서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 상식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문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잡학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아주 쉽고 재미있게요. 워낙은 중학생들이 재미있게 논술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냥 영화를 통해 일반 상식 얻기 또는 영화 재미있게 뜯어보기로 여겨도 될 것입니다. 첫 번째 공부는 영화 <왕의 남자>를 텍스트로 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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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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