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판 보멀의 짧고도 길었던 바르샤 시절
마르크 판 보멀의 짧고도 길었던 바르샤 시절
  • 이근형
  • 승인 200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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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새로운 모험 시작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마르크 페터르 헤르투다 안드레아스 판 보멀, 바로 마르크 판 보멀(Mark van Bommel)의 본명이다. 그는 1977년 마스브라흐트에서 태어났고, 1992년까지 고향 유스 클럽 RKVV 마스브라흐트에서 축구를 시작해서, 네덜란드 하부리그의 포르투나 시타르트로 이적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네덜란드 최고 명문 중 하나인 PSV 에인트호번에 둥지를 틀게 된다. 판 보멀은 1999년 스위스의 그라스호퍼에서 이적한 스위스산 젊은 중앙 미드필더 요한 포겔을 만나게 되는데, 이후 두 사람은 PSV 에인트호번의 대표적인 더블 볼란테로 주목받게 된다.


필립 코퀴가 PSV 에인트호번 11명 선수들의 주장이라면, 판 보멀은 사실상 두 번째 주장이나 다름없었다. 코퀴가 앞에서 끌어주는 리더라면, 판 보멀은 뒤에서 나머지 선수들을 잘 챙겨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라운드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판 보멀은 중앙 미드필더와 앵커로서, 중원 하부에서 상대방 공격을 차단하고 미드필드진에게 패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대방 선수들을 잘라내야 하는 궂은 일을 맡았기 때문에, 파울 횟수도 꽤나 많은 그였다.

PSV 에인트호번의 주축 미드필더가 된 판 보멀은 PSV 재직 기간 동안 총 3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요한 크루이프컵을 차지하게 된다. 판 보멀은 특히 우리나라 축구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인데,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히딩크 감독(현 러시아 대표팀) 에 이끌려 에인트호번에 새 둥지를 틀었던 박지성 선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 선수(도르트문트) 가 PSV 클럽의 실질적 리더인 판 보멀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처음 경험하는 유럽 생활을 접하는 두 한국 선수에게 판 보멀은 팀의 주축답게 정신적으로 많은 원조를 해줬다. 그리고 2003년 피스컵 축구대회에서도 PSV 에인트호번을 이끌고 방한, 1회 대회 첫 타이틀을 따냈다.


판 보멀이 본격적으로 세계 축구계에 주목을 받았던 때는 역시 04-05 챔피언스리그 대회가 아닐까 한다. 케주만과 아르연 로번을 각각 첼시로 이적시키고도, 그 누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갖췄던 PSV 에인트호번은, 판 보멀과 필립 코퀴, 그리고 포겔로 이어지는 막강한 중원진과 한창 물오른 날개 요원 박지성 선수, 왼쪽 사이드백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영표 선수의 활약으로 조별리그를 넘어 토너먼트에 기어코 진출했다. 토너먼트에서도 16강의 AS 모나코, 8강의 올림피크 리옹을 각각 제압하면서 마침내 4강까지 진출했다. 특히 4강전 PSV 에인트호번과 AC 밀란의 경기는 우리나라 축구 팬들이 꼽는 명 경기 중의 하나로 '클래식 매치' 이미지로 굳혀졌다.



결국 PSV 에인트호번은 결승 문턱에서 아쉽게 AC 밀란에게 결승행 티켓을 내줬지만,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불굴의 정신은 많은 축구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마침 PSV 에인트호번은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04-05 시즌 에레디비지에 타이틀을 석권하게 되었고, FA컵 타이틀까지 거머쥐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네덜란드 클럽들의 관행대로 PSV의 주요 스타들이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 그리고 보우마는 한국 선수들의 불모지인 프리미어리그로 떠났고, 요한 포겔은 AC 밀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판 보멀도 짐을 꾸렸다. 그의 도착지는 다름 아닌 '카탈루냐의 상징' FC 바르셀로나였다.



등번호 17번, 리그 24경기 출전, 챔스 및 리그 우승


판 보멀은 레이카르트 바르셀로나 감독과 바르셀로나 수뇌부들과 함께 클럽 사무실에서 공식 입단식을 가졌다. 그리고 판 보멀은 아직 새로운 바르셀로나 유니폼이 나오지 않아서, 이전 유니폼인 04-05 시즌 홈 저지를 입고서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는 등번호 17번을 부여받았고, 바르셀로나 팬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실력파 미드필더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서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도 등장하고, PSV 에인트호번에서 최고의 나날들을 보냈던 판 보멀이었기 때문에, 분명 그의 가세는 바르셀로나에겐 호재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판 보멀에게는 강력한 라이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애지중지 모시고 있는 중앙 미드필더 이니에스타, 그리고 중원에서 커버링해주는 능력과 함께 날카로운 킥력까지 갖춘 만능 자원 사비 에르난데스, 거기다가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는 멕시코 축구 중추 라파엘 마르케스가 있었다.


신입생 판 보멀은 FC 바르셀로나의 04-05 시즌 리그 우승과 팀의 상승세의 주 원인인 탄탄한 미드필드 라인 속에서, 어쩌면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결코 최고가 아님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판 보멀 자신이 걸어온 길은, 네덜란드 프로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으며, 그 자신이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중앙 미드필더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교과서'였다. 하지만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있는 바르셀로나에 와서는,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즐비했었다. 주전 자리 선점은 판 보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수뇌부는 냉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 보멀은 05-06 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24경기에 출장했다. 그리고 두 골을 터트렸는데, 판 보멀은 자신이 나오는 경기는 반드시 팀 동료들과 멋진 패싱 게임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있어서 팀의 마스코트 호나우지뉴 (AC 밀란), 그리고 공격진의 리오넬 메시, 지윌리(PSG), 에투 등은 사실상 판 보멀과 끈끈한 관계를 맺진 못했지만, 판 보멀은 자신에게 출장 기회가 주어지면 이들과 최대한 하나가 되려고 애썼다. 백업 요원이지만, 결코 기회가 아예 안주어지는 '전력외 대상' 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조금 더 힘을 낼 때마다 바르셀로나라는 거대한 함선은 더 훌륭한 모터를 달고 순항할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 FC 바르셀로나의 05-06 챔피언스리그 타이틀 석권과, 04-05 시즌에 이은 프리메라리가 정복으로 결과를 낳았다.


판 보멀은 05-06 시즌 바르셀로나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석권에 있어서 결코 '주역'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출장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나중에는 이니에스타와 사비가 공격형 미드필더 데쿠 (첼시)와 짝을 맞춰서 바르셀로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 뻔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중원 하부에서 늘 하던 데로 궂은일을 도맡았다. 상대편 공격을 잘라주기, 그리고 거친 커버링으로 2선 차단, 거기에 활발한 패싱 게임으로 물꼬를 터는 플레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05-06 챔피언스리그 우승 기념 파티에서, 판 보멀은 바르셀로나 동료들과 함께 우승 자축 세레모니를 마음껏 즐길 자격이 충분히 주어졌다.


05-06 프리메라리가 타이틀, 그리고 05-06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은 판 보멀의 개인 커리어에 고대로 적혀졌다. 판 보멀은 바르셀로나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오는 경기마다 최고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마르코 판 바스턴 전직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은 주저없이 판 보멀을 2006 독일 월드컵 네덜란드 대표팀에 승선시켰고, 판 보멀은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비록 판 보멀은 일명 '뉘른베르크 사태' 라고 불리우는 독일 월드컵 16강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경기 폭력 사건에 휘말려 이후 A매치 출장 정지를 받았지만 말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새로 쓰이는 '판 보멀의 모험'


2006 독일 월드컵 직후, 06-07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판 보멀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번 무대는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그것도 독일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주전 확보 불가능은, 절정일 때 한창 뛰어야할 판 보멀에게 있어서 안 좋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는 바이에른 뮌헨행을 결정지었다. 마침 바이에른 뮌헨은 '선장' 미하엘 발라크를 첼시로 떠나보냈고, 윙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보는 브라질의 제 호베르투도 잠시 산투스로 떠났기 때문에 중원 자원 구하기가 일차적 문제였다. 그래서 판 보멀의 뮌헨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판 보멀은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잠시 겪었던 '백업 선수' 에서 벗어나, 마치 PSV 에인트호번 시절을 떠올릴만큼 자주 분데스리가 및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판 보멀의 06-07 시즌 바이에른 뮌헨 시절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 하면, 역시 06-07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를 택할 수 있겠다. 그는 1-3으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지고 있는 가운데, 종료 직전에 굉장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뽑아 스코어를 3-2로 만들어 놨다. 그것은 다음 2차전에서 뮌헨이 레알 마드리드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 골을 넣고 '욕설 세레모니'를 펼쳐, 구설수에 올랐지만 말이다.


판 보멀은, 결코 바르셀로나에서 실패한 선수가 아니었다. 주전급이라고 칭할 수는 없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1년간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수련을 거쳤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발견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발라크의 공백을 잘 막고,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라는 칭찬과 함께 판 보멀에게 <06-07 시즌 바이에른 뮌헨 올해의 선수상>을 부여했다. 게다가 07-08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이었던 올리버 칸 골키퍼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 바이에른 뮌헨은 판 보멀에게 차기 주장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뮌헨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다. ‘한때 바르샤 일원’ 이었던 바이에른 뮌헨 주장 판 보멀에게 있어서 바르셀로나는 05-06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05-06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아름다운 추억 한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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