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우팅을 내지르는 힙합퍼 - 프레드 더스트
샤우팅을 내지르는 힙합퍼 - 프레드 더스트
  • 이근형
  • 승인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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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아티스트에서 전방위 엔터테이너로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림프 비즈킷의 2집 Significant Other의 수록곡 9 Teen 90 Nine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은, 한참 랩 메탈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다음 등장하는 의외의 노래다. 그것도 정식 녹음실에서 노래 부른 게 아니라, 마치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멀리서나마 따온 것처럼 귀에 확연히 들어오진 않는다. 노래 역시 우리에게 너무 생소한, 이름조차 낯선 My Billygoat라는 노래다.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림프 비즈킷의 남성적 이미지와 정확히 배치되는, 콧소리 섞인 여성의 보컬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띵가띵가 거리며 My Billygoat를 부르는 그 이름 모를 여성이 바로 프레드 더스트의 친어머니, 애니타 더스트다. 프레드 더스트가 재미삼아 샘플링으로 삽입한 듯하다.


마치 영국의 인기 여가수 다이도 (Dido) 의 음색과 비슷한 애니타 더스트도 음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전 남편도 가수였다고. 그렇게 윌리엄 프레데릭 더스트 (William Frederick Durst) 는 1970년 8월 20일 미국 노스캐롤리아나 주의 가스토니아 (Gastonia) 에서 아티스트 집안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 일에 종사하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밀접한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애니타 더스트와 이혼했고, 이후 애니타 더스트는 빌 이라는 남자와 재혼했다. 이 당시 프레드 더스트의 나이는 겨우 두 살이었다. 사실 프레드 더스트 집안이 잘 사는 것도 아니었고, 애니타 더스트와 빌은 교회 옥상에서 세들어 사는 ‘하루살이’ 였다.


그렇지만 프레드 더스트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음악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마땅히 벌어먹을 것도 없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브레이크 댄스 그룹에 가입하며 춤을 익히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힙합 뮤직에 대해 도가 텄다. 랩핑 및 힙합 댄스와 작사 등을 친구들과 배우고 또 그것을 길거리에서 뽐내며 음악인의 꿈을 차차 키워나갔다. 더불어 프레드 더스트는 블랙 플래그 (Black Flag) 같은 얼터너티브 록이나 메탈리카 같은 헤비메탈에도 푹 빠져서, 힙합과 록음악을 동시에 좋아하는 기호가 생겼다. 어쩌면 유년기 시절의 이런 경험들이 하이브리드 장르인 랩 메탈이 곧 프레드 더스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복동생 코리 더스트 (Cory Durst) 역시 자신의 형과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해군, 타투 아티스트에서 월드 스타의 자리까지


프레드 더스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첫 번째 아내와 20살에 결혼했다. 그렇게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린 다음, 어떤 동기 부여에 따라 미 해군에 입대를 결심하게 되었다. 프레드 더스트가 록 스타들 중에서 특이한 이력을 지닌 리스트에 자주 오르곤 하는데, 프레드 더스트의 해군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등 그는 분명 해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의 프레드 더스트는 살이 좀 많이 찐 듯하지만, 해군 복무 당시에는 날카로운 턱선과 다부진 근육을 자랑하였었다. (물론 지금도 덩치가 크긴 하다) 하지만 프레드 더스트의 군 복무는 오래 가지 못했고, 그러면서 첫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딸 하나를 가졌는데, 그 딸은 프레드 더스트가 양육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후 프레드 더스트는 미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시 자신의 고향인 노스 캐롤라이나 주로 돌아왔고,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대표적인 도시 잭슨빌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잭슨빌의 길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힙합 크루에 가입해, 자신이 유년기 시절부터 닦았던 랩핑 실력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마음먹고 제대로 힙합 뮤직을 크루에서 배운 그는, 랩 경연 대회에 나가 ‘힙합 고수’ 들과 경쟁할 만큼 수준급의 랩퍼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음악을 하기 위한 자본이었고,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문신 기술을 배워 타투 아티스트로 벌어먹게 되었다.


프레드 더스트에게 있어서 타투 아티스트 입문은, 세계적인 록 스타가 되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프레드 더스트는 꼼꼼하고 섬세한, 그리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지닌 타투 아티스트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잭슨빌에서는 물론이고, 멀리 미국 서부에서 프레드 더스트로부터 타투를 새기기 위해 원정을 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 중 하나가 세계적인 랩 메탈 밴드 콘 (Korn) 의 베이시스트 필디 (Fieldy) 였다. 필디는 프레드 더스트의 타투 실력 및 그가 잭슨빌에서 꽤나 유명한 랩퍼라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그에게 “우리가 이끌어 줄테니 록그룹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떠느냐” 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그것이 림프 비즈킷의 결성 계기였다.


그리하여 프레드 더스트는 웨스 볼랜드 (리드 기타), 샘 리버스 (베이스), 존 오토 (드럼) DJ 리설 (턴테이블링) 로 이뤄진 림프 비즈킷이라는 5인조 뉴 메탈 밴드를 결성했다. 림프 비즈킷은 뉴 메탈의 후발 주자인만큼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현명한 선배들이 필요했다. 앞서 언급했던 콘, 그리고 데프톤즈가 바로 림프 비즈킷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래서 프레드 더스트는 림프 비즈킷 1집 Three Dollar Bill Y'All의 수록곡 Indigo Flow에서 그들의 선처를 감사해하는 랩 가사를 삽입하기도 했다. 아무튼 두 밴드의 도움에 의해 언더그라운드 무대 및 이 밴드들의 오프닝 게스트로 출연하며 록계 인사들과 통성명을 거쳤다. 또한 뉴 메탈 밴드인만큼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잦은 교류가 있었다.


림프 비즈킷은 앞서 언급했듯이 1997년 1집 Three Dollar Bill Y'All을 발매하며 록계에 데뷔했고, 이 앨범에서는 하드코어 사운드와 랩 메탈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평단의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역시 판매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기록을 점했다. 이 기세를 몰아 프레드 더스트는 언더그라운드 시절 친분을 쌓은 록계, 힙합계 슈퍼스타들을 대거 투입시켜서 1999년 2집 Significant Other를 만드는데 자문을 구했고, 록계와 힙합계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십시일반 했기에 이 작품은 20세기말 최고의 록 명반으로 등극하며 림프 비즈킷을 일약 세계적 스타덤에 올려놓게 했다. 평단에서는 프레드 더스트가 타투 아티스트를 하며 길러낸 사람들과의 친화력, 그리고 인맥을 다루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곧 림프 비즈킷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평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Significant Other 앨범에 DJ 프리미어, 스캇 와일랜드, 메소드 맨, 에미넴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스타 아티스트들이 프레드 더스트의 인맥에 의해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림프 비즈킷은 2000년 3집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 Dog Flavored Water로 다시 한번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랩 메탈의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뛰어나면 언제든 정상 자리를 독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렸다. 거기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의 메인스트림 자리에 오른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을 프레드 더스트가 굉장히 잘 다루었으므로 (그는 블로그 및 마이스페이스를 꾸준히 운영하는 네티즌이기도 하다), 인터넷 세상에 림프 비즈킷 음악을 공유하는 경로를 만들어 소위 말하는 인터넷 시장도 림프 비즈킷이 점령하게 되었다. 그는 공유 프로그램 냅스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냅스터를 적극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인터넷 세상을 차치하더라도 림프 비즈킷 트렌드는 2000년대 초반을 뜨겁게 장식했고, 현재까지도 림프 비즈킷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웨스 볼랜드와의 불화 및 림프 비즈킷의 추락


록 역사에 있어서 리드 보컬과 리드 기타의 트러블은 늘상 있는 보통의 일이었고, 그것이 림프 비즈킷에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림프 비즈킷 내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당연 프레드 더스트였으나, 리드 기타 웨스 볼랜드가 차지하는 부분 역시 굉장히 컸다. 웨스 볼랜드는 프레드 더스트와 함께 언론 앞에서 투 샷을 받으며 림프 비즈킷의 의사나 메시지 등을 전달하는 인물이었고, 림프 비즈킷의 신명나는 랩 메탈에 있어서 힙합 뮤직의 바운스를 느끼는 동시에 메탈 특유의 파워풀한 기타를 들려주는 중요한 파트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프레드 더스트와 웨스 볼랜드가 사실상 림프 비즈킷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는데, 두 사람 모두 다 아우라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분명 누구 하나는 져주는 척 하면서 2인자의 자리에 가있어야 했다. 물론 초반기에서 중반기까지는 웨스 볼랜드가 2인자였다. 그렇지만 림프 비즈킷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이제는 전 세계 어딜 가도 그들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적었기에 당연 그 안에서 이권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웨스 볼랜드는 “림프 비즈킷와 프레드 더스트는 돈만 밝히는 밴드다”라고 화를 내며 2000년 3집 발매 이후 팀을 나가버렸다. 프레드 더스트는 이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림프 비즈킷 리드 기타 공개 모집’ 을 내걸 정도였으니, 두 사람의 사이에서 분명 무언가 트러블이 존재했다.


림프 비즈킷은 결국 같은 랩 메탈 계열 출신인 꽃미남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미스를 불러들이며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마이크 스미스의 기타는 웨스 볼랜드가 들려주는 익사이팅한 사운드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무언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기타 리프에서 강한 파워를 얻는 록그룹 림프 비즈킷은 힘을 잃어, 4집 Results May Vary를 흥행 실패와 인지도 하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되었다. 프레드 더스트를 비롯한 멤버들도 이 앨범을 두고 결코 좋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당사자의 의견과 팬들의 의견은 동일했다. 최악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림프 비즈킷은 현재 이렇게 그 누구도 열광하지 않는 초라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물론 2005년 웨스 볼랜드가 재가입하여 The Unquestionable Truth, Part 1을 내놨지만 결국 그것은 5~6개 트랙이 담긴 EP 앨범에 불과했다.



림프 비즈킷 이외의 시장을 개척한 프레드 더스트


프레드 더스트와 나머지 림프 비즈킷의 멤버들은 차기작을 준비한다고 광고하지만, 결국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프레드 더스트는 예전부터 자신이 관심있어 했던 분야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가가는 도전을 결심했고, 현재 그 도전 몇 개는 본 궤도로 오르면서 프레드 더스트가 전방위 엔터테이너로 이름을 떨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먼저 프레드 더스트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매니지먼트 기획사다. 프레드 더스트는 림프 비즈킷 소속사 인터스코프 레코즈에 간부로 취임했던 그 기억을 되살려,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산하의 플립 레코즈의 대표가 되었다. 그래서 플립 레코즈를 이끌고 신인 밴드 육성 및 뮤직비디오 연출을 기획했다.



프레드 더스트의 손에서 자란 밴드들 중 가장 유명한 밴드는 역시 미국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하드 록그룹 스테인드(Staind) 다. 스테인드는 최근 2008년 앨범 The Illusion Of Progress를 발매, Believe라는 곡으로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며 히트의 가도를 달렸다. 또한 프레드 더스트가 키운 밴드 중에 그런지 록밴드 퍼들 오브 머드(Puddle Of Mudd) 도 있는데, 이 밴드는 림프 비즈킷이 자기네 앨범의 속지에다가 광고를 실을만큼 전격적으로 홍보에 나선 바가 있다. 프레드 더스트는 앞서 언급한 두 밴드 외에도 여러 아티스트를 육성하며 그들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매니지먼트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록계의 인맥과 연계를 시켜서 빠른 데뷔를 도우기도 했다.


프레드 더스트는 연예 매니지먼트 외에도 영화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감독 및 영화배우로도 분야를 확장했다. 영화 <쥬랜더> (2001) 에서는 엑스트라로 출연했으며, 림프 비즈킷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영화배우 폴리 쇼어(Pauly Shore) 의 모큐멘터리 영화 <폴리 쇼어 이즈 데드> (2003) 에도 출연하였다. 우리에게는 정지훈(비) 의 출연작으로 잘 알려진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 시사회에도 프레드 더스트가 등장, 인터뷰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각종 영화 축제에서도 그는 만방으로 뛰어다니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만큼 그는 영화에도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딱히 대표작을 내놓을 만큼 성공하진 못했지만 영화계에서도 지분을 냈다. 림프 비즈킷 노래 Behind Blue Eyes의 뮤직비디오에는 연출과 주인공을 각각 맡기도.


또한 프레드 더스트는 인터넷 마니아인 동시에 컴퓨터, 가전 게임의 열혈 팬으로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컴퓨터 게임 사업에 대한 진지한 글과 사업 구상 등을 올리며 팬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폭발시키게 했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와 전문적 지식으로 하여금 컴퓨터 게임계에도 현명한 조언자 역할을 하며, 고칠 점은 고치고 보완할 점은 보완하라고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림프 비즈킷은 뉴 메탈 밴드이므로 철저히 트렌드에 민감했고, 그것은 꽤나 짧은 밴드 수명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프레드 더스트는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 전문적으로 다가가며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현재는 영화배우, 영화감독, 컴퓨터 마니아, 매니지먼트 사장 등 다양한 직종을 가지고 있는 전방위 엔터테이너로 발전했다.



할리우드 난봉꾼, 샤우팅을 내지르는 힙합퍼 프레드 더스트


프레드 더스트가 림프 비즈킷 멤버 이외에도 다양한 직종에 몸을 담고 있으니,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성실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으로 알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성실’ 한 것은 맞으나, 심성이나 행동거지만큼은 긍정적으로 용납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프레드 더스트는 툭 하면 할리우드 가십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으로서, 할리우드의 난봉꾼으로 통한다. 사실 뛰어난 능력 빼고는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하는 린제이 로한이나 패리스 힐튼 못잖다. 그는 슬립낫을 비롯한 전현직 록그룹들, 그리고 할리우드 여가수 및 여배우들에 대해 욕설이 담긴 비난을 가하기로 유명했다.


프레드 더스트가 비난에만 능한 게 아니라, 여성 편력 역시 심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패리스 힐튼 등 세계적 여성 스타들과 풍문을 일으킨 바 있으며, 특히 브리트니 스피어스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섹스 비디오까지 유출되며 할리우드 바닥에서 유명한 스캔들을 남긴 바 있다.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브리트니 스피어스 1981년 출생)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데이트를 몇 번 즐겼고, 거기다가 이렇게 비디오가 만방에 알려졌으니 가뜩이나 전 애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불화 및 다른 스타들과 풍문이 자자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리고 여성 편력 심한 프레드 더스트는 할리우드에서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프레드 더스트는 다르다. 아들 댈러스 더스트와 앞서 언급했던 딸 아드리아나 더스트를 키우며 가정을 훌륭히(?) 이끌고 있다.



할리우드 난봉꾼 프레드 더스트가 아무리 여럿 여성 휘어잡고, 대놓고 스타들을 욕한다 하더라도 그의 음악성까지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평단으로부터 림프 비즈킷으로 하여금 “록을 하는 힙합 밴드” 라는 말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것은 곧 힙합과 록음악의 하이브리드 장르인 뉴 메탈을 하는 림프 비즈킷에 있어서 칭찬이라면 대단한 극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뉴 메탈의 가장 큰 요소는 힙합의 그것인데, 프레드 더스트라는 보컬 자체가 술술 넘어가는 랩핑이 강점이며 시각적 흥분을 일으키는 힙합 댄스에 능하니 그 명제는 림프 비즈킷이 충실히 수행했다. 더해서 록 적인 요소가 빠지면 안되는데, 프레드 더스트는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로 대단한 그로울링 능력을 가졌다. 노래 Full Nelson을 들어보면, 랩핑을 던지다가 목의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고음의 샤우팅을 지르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웨스 볼랜드의 출중한 기타 실력, 그리고 역시 프레드 더스트의 이런 ‘힙합과 록을 넘나드는’ 훌륭한 호환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림프 비즈킷이 있었다. 샤우팅을 내지르는 힙합퍼, 이런 상응성이 도저히 보이질 않는 문장은 프레드 더스트를 위한 극찬이 아닐까 싶다. 프레드 더스트는 림프 비즈킷의 생명을 아직까지도 연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으며, 이제 남은 것은 마릴린 맨슨 밴드로 떠난 웨스 볼랜드 없이 두 번째의 도전에 얼마나 성공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림프 비즈킷은 뉴 메탈의 트렌드가 사라진 현재 록계에서 자기네들의 음악이 얼마나 통할지 두려워하며 차기작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웨스 볼랜드의 조합이 이뤄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정말 두려워서일까. 그러기엔 프레드 더스트의 랩핑 능력과 그로울링이 이대로 썩는 것이 너무 아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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