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의 정복자 - 토니 아이오미
헤비메탈의 정복자 - 토니 아이오미
  • 이근형
  • 승인 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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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연주하는 환상적인 기타 드라이빙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블랙 새버스 (Black Sabbath) 는 전성기 지나 1980년대 이후의 모습이 기대 이하이긴 해도, 어쨌거나 하드 록과 헤비메탈 계열에서 이들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호불호를 따지지 않고, 존재 자체가 하나의 클래식이다. 여기에 대해 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진정 묻고 싶다. 1970년대 초반, 블루스에서 하드 록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누가 악마 숭배, 반기독교적 정서, 그리고 괴수 전설을 가지고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도전을 했는지 말이다. 이런 무모한 도전 하나만으로도 블랙 새버스는 큰 가치가 있다.


그런 가운데, 블랙 새버스를 이런 신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한 요인 중 하나로 그들의 2집이자 록의 경전 Paranoid (1970) 의 동명 타이틀곡 Paranoid라는 마스터피스를 꼽을 수 있겠다. 이 노래는 비판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평단이라는 집단으로 하여금 “록 역사상 가장 완벽한 멜로디를 지닌 곡” 이라는, 극찬 중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인트로부터 끝부분까지 일정한 박자에 맞춰서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가 순식간에 넓게 퍼져나가는 구성력이 대단하다. 이 곡의 운용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주지하다시피 기타 리프인데, 이 기타 리프를 만든 사람이 바로 블랙 새버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 (Tony Iommi) 다.

보컬 오지 오스본이 괴기하면서도 무표정이 역력한 목소리로 가사를 읊으면, 아이오미의 기타는 그의 보컬을 살금살금 다가오다가 퍼지는 부분에서 어김없이 전개를 풀어주는 게 특징.


그러나 이 곡이 사실 블랙 새버스 내에서 정규 트랙으로 녹음되지 못할 뻔했다는 사실은, 모든 록 팬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Paranoid의 기타 리프를 제작한 토니 아이오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노래의 기타 리프가 너무 문제점이 많다는 이유로 녹음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우리들 같은 록음악 팬들이 듣기에 Paranoid의 단점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많은 후세의 기타리스트들이 Paranoid의 기타 리프를 연마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것을 생각해보면, 블랙 새버스의 이러한 결정(!) 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헤비메탈의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 아이오미가 생각하기에, Paranoid의 기타 리프는 무언가 부족했나보다.



Paranoid라는 곡으로 대변되는 1970년 헤비메탈의 교과서 Paranoid 앨범은 온통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지닌 록 트랙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것들의 특징은 어느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도록 적당히 고음으로 올라가다가 적절한 타이밍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내려찍는 박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실생활에서 듣기에 비교적 안정된 리듬이 타는 상황 (명절에 떡방아를 찧는 리드미컬한 두 박자, 혹은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야구장의 응원가 등) 같은 것이, Paranoid 앨범의 모든 트랙의 골격을 갖추는 기타 리프와 동일하다. 사실 이렇게 음악을 만들기란 상당히 어렵다. 오선지에 수차례 콩나물표를 그려도 안되는 게 멜로디 작업이다. 하지만 블랙 새버스, 특히 아이오미는 쓰는 족족 명작이었다.


Paranoid라는 곡보다도 이 노래를 예로 들면, 왜 아이오미가 헤비메탈의 멜로디 메이커인지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같은 앨범에 들어있는 4번 트랙, Iron Man이다. 이제 확답이 되겠는가. Paranoid야 작품성에 비해 그 짧은 러닝 타임,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과소평가 (?) 때문에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설마 그 위대한 기타 리프의 Iron Man을 어떻게 쉽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모든 록가수들이 Iron Man을 한없이 존경하지만, 국내에서는 록가수 김C가 이 노래를 일컬어 “내가 들었던 록 뮤직 중에 가장 완벽한 기타 리프를 지닌 노래다” 라고 극찬했으니, Iron Man은 우리나라에서도 김C를 대표로 해서 모든 록가수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노래다. 이 노래 역시 토니 아이오미의 환상적인 기타 드라이빙으로 기본 골격을 갖춘다.


아이오미는 Iron Man에서부터 자기가 만드는 기타 리프가 완벽했음을 그제서야 인정한 것일까. 그것 역시 아니다. 그는 1970년대 블랙 새버스의 전성기 시절 이후에도, 블랙 새버스가 1980년대와 1990년대로 넘어가는 절정기 및 쇠퇴기의 시기에도 늘 멜로디 메이킹에 고심했고, 그러면서 그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헤비메탈 멜로디를 꾸준히 개발하였다. 이제 앞으로 소개될 여러 이야기들이, 바로 토니 아이오미의 역사를 짧게나마 소개하는 것이다.



토니 아이오미의 연습 시절 - 블랙 새버스 이전의 시간들


프랭크 앤소니 아이오미 (Frank Anthony Iommi) 는 이탈리아계 영국인이다. 1948년 2월 19일 영국 버밍엄의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가 유년기 시절부터 노동을 해오면서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있는데, 그 시절이 왜 전설로 남아있냐 하면 바로 그의 오른손 검지, 중지 손가락의 장애 때문이다.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오른손의 검지, 중지의 첫 마디를 잃는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타를 잡을 때 왼손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이러한 장애를 딛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왼손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실 중 하나, 바로 토니 아이오미를 주축으로 이뤄진 블랙 새버스의 모체인 어스 (Earth) 라는 그룹이 블루스 록을 구사하던 밴드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음악은 당시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흔하게 메이저 무대로 올라오던 타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블루스 록을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사실 록음악 팬들 중에서 토니 아이오미가 어스 이전에 제스로 툴 (Jethro Tull) 에 잠시 몸담았던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제스로 툴은 영국 블랙풀 출신의 전설적인 아트 록, 하드 록그룹으로서 2003년 최신작을 내놓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록의 산 증인이다. 아이오미가 너무 짧게 활동했기에 제스로 툴 시절이 많이 부각되진 않지만, 어쨌거나 아이오미는 어스와 제스로 툴 두 그룹을 오가며 연습의 시간을 거쳤다.


이렇게 두 그룹의 재직 활동, 그리고 블루스 록에 기반을 둔 어스라는 밴드의 특성은 아이오미를 최고의 기타리스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주었다. 블랙 새버스로 개명한 다음 그들이 첫 작품 Black Sabbath (1970) 부터 헤비메탈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습작의, 준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형 록그룹 제스로 툴에서 몸담으며 배웠던 아트 록 특유의 장대함, 그리고 어스에서 구현했던 블루스 록에 초점을 둔 흑인 음악 특유의 개방적인 마인드와 다양한 스펙트럼은 블랙 새버스 음악의 8할이 되었다. 실례로 블랙 새버스의 노래 Jack The Stripper/Fairies Wears Boots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아트 록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여지는 장대한 러닝 타임을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Black Sabbath, vol.4 앨범에 수록된 노래 Wheels Of Confusion/The Straightner의 인트로는 구슬픈 블루스 록 스타일이다.


이런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블랙 새버스의 음악이 웅장하면서도 한 곳으로 꽉 찼다가 부드럽게 풀려지는 멜로디 구성력이나,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블루스 록 특유의 우울함으로 블랙 새버스의 스타일을 대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꼭 이런 점들이 아이오미의 덕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희대의 보컬 오지 오스본, 그리고 베이스와 드럼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는 기저 버틀러와 빌 워드의 덕택이다. 그러나 블랙 새버스 하면 오지 오스본과 토니 아이오미가 떠오를 정도로, 리드 기타로서 아이오미가 지니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의 기타 리프에서 블랙 새버스가 살아난다. 이 명제는 다음 단락에서 증명된다.



블랙 새버스의 살림꾼, 토니 아이오미


블랙 새버스는 아무래도 현재 미국 할리우드 바닥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오지 오스본이 주축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오미 역시 가끔 할리우드 가십 뉴스에 등장하거나 연예 활동을 하면서 록계의 거목으로 비춰지지만, 록가수이자 할리우드 트러블 메이커 켈리 오스본 (Kelly Osbourne) 을 딸로 두고 있는 괴짜 아버지 오지 오스본의 아우라에는 못 미치는 양상이다. 그렇지만 블랙 새버스의 역대 디스코그래피와 밴드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고생하고 많은 공로를 세운 멤버를 꼽으라 한다면, 대중들은 주저없이 토니 아이오미를 선택한다. 토니 아이오미는 단 한번도 블랙 새버스를 탈퇴하지 않았고, 자기의 혼자 힘으로 팀을 꾸려나갔던 적도 있다.



그는 혼자의 활동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블랙 새버스를 위해 멜로디를 제작하는 충성심과 책임감을 발휘하며 블랙 새버스를 끝까지 록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가 지금까지 블랙 새버스에 있으면서 만들었던 그 수많은 멜로디 메이킹의 약력을 이 글에서 풀어놓기란 불가능하다. 그만큼 아이오미표(表) 기타 리프는 그 양 자체가 방대하고 수려하다. 물론 이 글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블랙 새버스의 1집 Black Sabbath의 동명 타이틀곡 Black Sabbath를 들어보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효과음을 뚫고 귀를 공격하는 기타 리프,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잠시 쉬었다가 급습하는 공격적 기타 리프가 예술이다. Iron Man의 후렴구 기타 리프는 말할 필요도 없고, Electric Funeral에서의 섬뜩한 기타 리프와 오지 오스본의 애드리브를 그대로 따라하는 기타 립싱크까지.


이렇게 블랙 새버스는 토니 아이오미의 멜로디 메이킹에 큰 힘을 얻는 양상을 보였으며, 어쩌면 그것이 바로 팀의 두 프론트맨 오지 오스본과 토니 아이오미의 불화를 낳게 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오지 오스본은 말할 필요 없이 록계에서 거대한 아우라를 비추는 인물이고, 토니 아이오미는 이에 못잖은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 새버스라는 팀워크가 잘 맞는 그룹 내에서도 누군가가 1인자의 자리에 올라가야만 했고, 이 자리를 놓고 오지 오스본과 아이오미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사실 이 글에서 아이오미를 다뤘기에 그의 멜로디 메이킹에 더 큰 점수를 주는 편이지만, 사실적으로 이야기해서 오지 오스본의 영향력 역시 블랙 새버스의 8할이다. 그래서 두 양대 산맥의 충돌이 블랙 새버스의 오지 오스본 시절 후반기의 최악의 작품 양산 (Technical Ecstasy, Never Say Die 등) 을 낳았다.


블랙 새버스가 오지 오스본 탈퇴 이후 1980년대부터 순차적으로 로니 제임스 디오, 이언 길런, 토니 마틴 등의 보컬 릴레이가 각각의 음악적 특성과 함께 블랙 새버스 멤버를 기수로 따지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졌다. 그만큼 오지 오스본의 부재는 록계의 여러 보컬들을 실험할 수 있게 하는 열려있는 장 (場) 을 마련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블랙 새버스에서 오지 오스본만한 보컬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수마다 보컬이 자주 교체되는 악조건의 가운데에서도 아이오미의 멜로디 메이킹은 변함없었다. 오지 오스본 탈퇴 직후 로니 제임스 디오가 들어와 제작된 앨범 Heaven And Hell (1980) 의 동명 타이틀곡 Heaven And Hell 역시 1980년대 초입 헤비메탈 기타 리프의 클래식으로 불리며, 이언 길런 시절의 노래 중 급격하게 밀어붙이는 Trashed, 토니 마틴과 드러머 코지 파웰 시절의 노래 Headless Cross 등이 대표적이다. 마니아들이 손꼽는 기타 리프 중에는 Heaven And Hell의 1번 트랙 Neon Knights도 있다.


1986년 글렌 휴즈 (Glenn Hughes) 가 참여한 블랙 새버스 시절은 더욱 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 고정 멤버 기저 버틀러와 빌 워드 모두 아이오미와 불화를 겪으며 작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오미는 두 사람을 모두 다른 팀으로 떠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만 했고, 블랙 새버스가 이 즈음에서 사장될 위기에까지 봉착했다. 그러나 블랙 새버스 원년 멤버이자 프론트맨 아이오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프 니콜스, 데이브 스피츠, 에릭 싱어, 그리고 고든 코플리 등 블랙 새버스와는 상관이 없는 멤버들로 다시 팀을 꾸린 다음, 1986년 작품 이름을 Black Sabbath Seventh Star (Feat.아이오미) 라는 특이한 제호로 록계에 등장했다. 이것은 곧 아이오미가 자신의 이름으로 피처링했다는, 자기가 총대를 멨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그만큼 아이오미는 블랙 새버스의 살림꾼이었다.



존경받는 헤비메탈 정복자 아이오미


토니 아이오미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들을 나열해보자. 먼저 블랙 새버스가 가장 1순위이겠고, 두 번째로는 록계 및 연예계의 어마어마한 인맥, 세 번째로는 앞서 얘기했던 멜로디 메이킹,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깁슨 SG 기타를 꼽을 수 있겠다. 첫 번째로 블랙 새버스 이야기다. 아이오미는 솔로 활동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중간중간에 포기 직전의 단계에 도달했는데도 아직까지도 블랙 새버스를 유지시키고 있는 장본인이다. 블랙 새버스는 사실적으로 이야기해서 토니 아이오미의 팀에 대한 충성심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되었을 것이다. 오지 오스본과의 불화는 말할 필요 없고, 고정 멤버처럼 느껴졌던 기저 버틀러와 빌 워드 역시 탈퇴와 재가입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어인 어마어마한 인맥에 대해서는, 앞서 나열했듯이 블랙 새버스가 딥 퍼플처럼 기수를 따질 정도로 수많은 멤버의 가입과 교체를 반복하면서 명맥이 유지된 그룹이었기에 아이오미의 인맥이 자연스럽게 넓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록음악 팬들 사이에서 ‘록음악계의 나무’ 라는 별칭으로 하드 록, 헤비메탈계의 인맥 관계도가 화젯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많은 교차와 동률을 이루는 멤버는 리치 블랙모어 (딥 퍼플, 레인보우), 오지 오스본, 그리고 토니 아이오미 등이다. 역시나 했더니 바로 그거다. 아이오미는 오지 오스본 탈퇴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기 위해 디오, 이언 길런, 토니 마틴, 글렌 휴즈 등의 보컬을 교체하며 블랙 새버스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했고, 드러머 역시 전설의 고(故) 코지 파웰을 끌어들이며 전력 강화에 나섰다. 이러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통성명하며 거친 록가수들이 수두룩하다. 헤비메탈의 최고봉 메탈리카 역시 위대한 선배 토니 아이오미에 대해 경의를 표시한다.


세 번째로는 멜로디 메이킹을 꼽았는데,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블랙 새버스 노래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훌륭한 기타 리프에서 비롯되는 노래들이다. 남는 것이 바로 토니 아이오미가 제작한 멜로디 메이킹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블랙 새버스의 1980년대 후반, 그리고 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특유의 멜로디 메이킹에 힘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역시 블랙 새버스 열혈 팬들도 이 당시의 디스코그래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초 절정기 시절, 그러니까 1970~1980년대 블랙 새버스의 음악을 떠올려보라. 아이오미는 (분명 기타의 신이지만)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한계점이 존재한다. 오지 오스본과의 트러블 이후 혼자 팀을 이끌며 점점 세월의 힘에 의해 스러져가는 그였기에, 우리들 같은 록음악 팬들은 블랙 새버스가 1970~1980년대 제작한 록음악 교과서를 충실히 받아들이면 된다. 굳이 토니 아이오미 노년기의 음악에 대해 비판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토니 아이오미의 시그너처 기타인 깁슨 SG 모델이다. 너무 유명하지 않은가. 너무 유명해서 탈이다. 리치 블랙모어와 에릭 클랩턴의 시그너처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그리고 잉베이 말름스틴 및 미하엘 쉥커 (Michael Schenker) 의 대표적 기타는 플라잉 V 깁슨이라면 역시 깁슨 SG 모델은 토니 아이오미다. 당연히도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의 이름으로 고유 모델이 붙여지는 대열에 토니 아이오미가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그것은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일렉트릭 기타다. 토니 아이오미는 1970년대 초반에는 흰색과 은색이 섞인 산뜻한 깁슨 SG를 들고 나오다가, 진한 자주색 모델 혹은 검정색으로 갈아쓰기도 했다. 왼손 주법으로 깁슨 SG 아이오미 시그너처를 놀리며, Iron Man 혹은 Symptom Of Universe를 연주하는 토니 아이오미는 기타리스트들에게 우상 그 자체다. 특히, Symptom Of Universe를 연주하는 아이오미의 그 현란한 손놀림은, 형언 불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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