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제대로 한번 놀아봤다” ‘고고 70’의 조승우
“정말 제대로 한번 놀아봤다” ‘고고 70’의 조승우
  • 김선
  • 승인 20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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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마지막을 불태운 작품 / 김선



[인터뷰365 김선] 조승우는 영화뿐 아니라 뮤지컬에서도 성공을 거둔 멀티플레이어 배우다.

1999년 임권택 감독에게 발굴되어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해 <타짜><말아톤><클래식> 등 11편의 영화와 <맨 오브 라만차><헤드윅><지킬 앤 하이드> 등 9편의 뮤지컬 무대를 통해 배우 조승우는 강렬하게 각인됐다.

9년간 영화와 뮤지컬 무대를 바쁘게 오가던 조승우가 이번 영화 <고고 70>을 통해 ‘장르의 통합’을 해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실제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고고 클럽을 중심으로 밤 문화를 리드하던 6인조 락밴드 데블스의 이야기를 다룬 <고고 70>은 처음부터 조승우를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자신을 위해 펴놓은 멍석에서 조승우는 마음껏 소리지르고 뛰어놀고 있다.

지난 8개월 동안 데블스의 보컬 상규로 후회없는 시간을 보낸 조승우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인터뷰에 응했다.


<고고 70>은 당신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로 알고 있다.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2002년 출연했던 영화 <후아유>의 최호 감독, 방준석 음악감독, 제작자 심보경 대표가 의기투합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3인방이 음악이 있는 음악영화를 찍을 예정인데, 꼭 조승우가 필요하다"고. <후아유>는 OST가 너무 좋았던 영화였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고 너무 흥분됐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바로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을 만큼. 이때부터 들어오는 작품들을 거절하고 시나리오가 나오길 기다렸다. 시나리오 초고부터 영화 최종까지 모든 과정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도 크다.


뮤지컬에서 보여준 노래 솜씨를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건가?

영화와 뮤지컬은 별개다. 연기를 하지만 비슷한 무대로 느끼지 않는다. 뮤지컬에서의 노래는 연기의 일부분이지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고고 70>에서는 밴드의 멤버가 돼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정말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


혹시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는가?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밴드를 결성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밴드 하고 싶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충고를 해주더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직접 곡을 쓸 수 있게 됐을 때 음악을 하라고. 내가 곡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단계가 되면 5년 내에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락 밴드를 결성해 홍대 근처에서 조촐하게 공연을 할 계획이다. 영화 촬영 도중 홍대에서 데블스 멤버들과 공연했고, 헤드윅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너무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주위에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두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영화 속 '데블스'의 기타리스트 역을 맡은 차승우는 실제로 홍대 클럽에서 로큰롤 밴드 '문샤이너스'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조승우는 그들에게 음악에 대한 궁금한 것들도 많이 물어봤고 영화 속에 나온 기타연주도 그들에게 배웠다.



영화를 찍으면서 음악공부를 톡톡히 했겠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뮤지컬 음악에만 빠져있었다. 뮤지컬 관련 CD만 한 트럭이다. 하지만 2005년 뮤지컬 <헤드윅>을 접하면서 ‘너바나’라는 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뮤지컬 노래밖에 몰랐던 나에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번 영화준비를 하면서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브라운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해 알게 됐고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 어떤 계기로 뮤지컬 음악을 접하게 됐나?

중학 때까지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던 아이였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물론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뮤지컬 <돈키호테>에서 뮤지컬 배우 조서연 누나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배우의 꿈을 안고 계원예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배우 남경읍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뮤지컬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책은 안가지고 다니고 악보와 뮤지컬 CD만 가지고 다녀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말썽꾸러기였을 정도로 활기찼던 것 같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지금의 당신을 보면 놀라겠다.

중학교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깜짝 놀란다. 당시 내가 예고에 들어갔다는 것도 놀랐으니깐. 요즘은 동창회를 잘 못 나가는데 소식을 들으니 초중고교 동창회 때 모여 말하는 안주거리가 다 내 이야기라고 하더라. 하하. 계집아이처럼 말없이 조용하고 얌전한 그 옛날 조승우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원래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에 쉽게 푹 빠지는 성격인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집과 집념이 강하다.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으로 데뷔 한 후 2000년 지하 소극장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의형제>로 정식 뮤지컬 데뷔를 했다. 주변에서는 '임권택 감독과 영화도 찍고 칸영화제까지 다녀온 놈이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찍는다'며 날더러 바보라고 말하더라. 드라마도 하고 CF도 찍어야 돈을 번다고. 왜 젊음을 낭비하냐고... 하지만 돈을 못 벌어도 하고 싶다는 고집이 생기더라. 결국 이런 것들이 내 인생을 더욱 풍족하게 해준 것 같다. 내 자신을 믿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길인 것 같다.


많은 연기자들이 영화 완성 후 자신의 연기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고 70>에서의 의 연기에 불만은 없나?

확실한 것은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20대 끝물에 좋은 추억을 남긴 것 같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에서 '어때, 제대로 놀 준비 됐어?'라고 쓰여 있듯이 난 상규란 녀석 덕분에 내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람있게 장식하고 즐겁게 놀았다. 사실 20대 중반까지 젊음을 즐기지 못했다. 내가 정해놓은 룰에 갇혀서 점잖고 완벽해 보이려는 강박증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쳐두고, 모든 나의 관심사는 항상 일이었다. 영감스런 구석이 있었다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뮤지컬 <헤드윅>(2005)과 영화 <타짜>(2006)를 신나게 찍으면서 문득 '남아있는 20대를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 뒤부터는 되는 대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 지금까지 와지더라. <고고 70>을 만나서 정말 제대로 놀아봤다. 하하.


곧 30대로 넘어간다. 20대에 해보고 싶은 게 더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해보고 싶었던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여행 빼고는.


<고고70>은 1970년대 고고클럽 문화뿐 아니라 '심야영업 집중단속' '고고 금지령' '긴급조치1호'등 당시 경직된 사회상과 유흥문화를 다루었다. 영화의 스토리와 배경에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100% 음악 영화라고 말은 못하겠다. 시대와 인물들의 드라마가 있고 음악이 있는 영화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시사회 후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흥행을 떠나서 작품적으로 새로운 한 분야를 개척해나갔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1970년대 어두운 시절 속에서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해 달라.


영화 속 공연장면들은 모두 라이브로 진행됐는가.

최 감독님이 무대 위에서 자유분방하게 놀라고 주문하셨다. 모든 공연장면은 실제 공연처럼 끊기지 않고 100% 라이브로 진행됐다. 영화 촬영 내내 우리는 진짜 한 밴드의 멤버라고 생각했다. 나도 데블스의 멤버 보컬로서 착각을 했을 정도니깐. 영화를 찍을 때도 영화가 아니라 무대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NG가 나면 고생 많이 했을 거 같다.

힘든 것은 없었다. 카메라에 맞춰 짜 맞춰지거나, 동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열심히 연습한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카메라가 담아가는 식이었다. 우리(데블스)는 그냥 놀고 즐기면 됐다.


얘기중에 '나'(조승우)보다 '우리'(데블스)란 말을 많이 한다. 데블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영화에서 나 혼자만의 연기는 없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승우가 아니라 데블스라 생각한다. 멤버들과 7~8개월간 합숙하다시피 하루 종일 함께 보냈다. 상상하는 것 보다 배 이상 열심히 연습했다. 촬영이 없을 때도 같이 어울려서 합주도 하고 술을 먹다가 지치면 잠을 자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놀러 다니기도 했고. 서로를 너무 좋아해서 사소한 말다툼도 없었다. 원래 술을 많이 못 먹는데 자연스럽게 술을 많이 먹게 됐다. 술살이 쪄서 차기작인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 초반에 2주 동안 6㎏를 빼야 했다. 10년 동안 먹을 술을 다 마신 것 같다. 하하.



지난 10여년 간 총 20여편의 작품을 해왔다. 열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신앙의 힘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아왔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느껴봤던 나에게 하나님은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기도를 많이 했다. 장남으로서 가족을 책임질 수 있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야구방망이를 벽에 부딪히며 혼자 시간을 보내왔던 어린 시절의 나는 꿈도 미래도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배우의 꿈을 꾸고 대학교 1학년 때 얼떨결에 교수님 추천으로 임 감독님의 <춘향뎐>에 출연하게 되고, 이후 각종 영화와 대형뮤지컬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를 마음껏 하게 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나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도박판에 뛰어든 타짜(타짜,2006)), 자폐증 청년(말아톤 2005), 순수한 고교생(클래식, 2003)뿐 아니라 <고고 70>의 밴드보컬까지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이 있는가.

맡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 둔 적은 없다. 그때 그때 꽂히는 것을 보고 선택한다. 단 시대가 지나도 촌스럽지 않고 가치있는 작품으로 남는 것이면 무조건 OK다.


<고고 70>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남긴 영화였다고 생각하나?

20대 내 인생이 배우가 되어 재미있게 연기를 하며 보낼 수 있었던 모티브는 고등학교 때 품었던 '미친놈 같은 열정'이었던 것 같다. <고고 70>은 20대 마지막을 불태울 수 있었던 작품이다. 머지않아 군대를 간다.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연기를 할 때까지 내 열정을 각인시켜줄 자양분이 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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