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사탕 꼬마배우 안성기
알사탕 꼬마배우 안성기
  • 김다인
  • 승인 20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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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 없기로는 옥희 역의 전영선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생년월일 4284년 1월 5일생, 당 8세

출생지 서울

학력 동남초등학교 재학

데뷔작 <모정>

대표작 <십대의 반항>

현주소 서울 성북구 돈암동 164의 6

1959년 발행된 ‘한국 남성배우 목록’에 실려있는 이 약력의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아역 스타 안성기다.

지금은 ‘단기’(檀紀)를 쓰지도 않으니 뭘 말하는지 모를 것이다. 단기는 단군 기원, 즉 우리의 시조 단군의 탄생부터 연력을 세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서양력, 즉 서기보다 2333년이 앞선다.

단기 4284년이니까 2333년을 빼면 서기 1951년생, 당시 여덟살인 안성기가 당당하게 한국 남성배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역 배우 안성기의 데뷔작은 김지미의 데뷔작이기도 한 <황혼열차>로 알려져있는데, 이 자료에는 <모정>으로 돼있다. 촬영은 <모정>이 먼저 했지만 개봉은 <황혼열차>가 먼저 한 모양이다.

간단한 약력 옆에는 조그만 흑백 증명사진이 있는데, 사진 속의 안성기는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슬쩍 웃음을 띠고 있다. 그 미소에는 지금의 웃음이 보인다.

국내 영화에 아역 배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50년대 후반이다. 이때 영화계에는 멜로영화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들의 비중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50년대 아역 배우 가운데 전영선과 안성기가 단연 스타급이었다.

안성기는 여덟살에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전에는 ‘소년 연기자’로 지칭되던 배우 황해남이 있다. 황해남은 1956년 전창근 감독의 <단종애사>에서 주인공 단종 역으로 공모된 십대 배우로 데뷔 당시 나이 18세였다. 황해남은 얼굴이 갸름하고 애수에 찬 듯한 여린 외모로 이후 <홍길동전> <사도세자> <십대의 반항> 등에 출연했다.

황해남보다 1년 늦게 데뷔해 ‘대단한 아이’라 불렸던 또 한 명의 소년 배우는 박광수. 12세 때 김소동 감독의 1957년작 <아리랑>으로 데뷔했다. 박광수는 특히 안약도 없이 우는 연기를 잘해 ‘눈물샘 배우’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은 자녀들을 아역 배우로 만들기 위해 부모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지만 당시에는 아역 배우를 꿈꾸는 아이나 부모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역 배우들은 거의 기성영화인들과 인연이 있는 집 아들 딸들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박광수는 양아버지가 조명기사였고 안성기는 부친이 제작자였으며 전영선은 고모가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부른 가수 윤복희도 유명한 악극단 단장 윤부길을 부친으로 둔 덕에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 아역 배우로 활약했다.



아역 스타 안성기는 촬영 현장에서 귀여운 ‘알사탕 꼬마배우’로 통했다.

밤늦게까지 촬영이 이어져도 엄마를 찾는 일 없이 세트 한구석에서 잠도 잘자는 순둥이였고 감독 말을 잘 듣는 꼬마였다. 안성기에겐 알사탕이 보약이었다. 힘들어하다가도 알사탕만 주면 생기가 반짝 도는 탓에 제작부장이나 감독 주머니에는 늘 알사탕이 들어있었다.

안성기는 조긍하 감독의 <육체의 길>에서 김지미의 둘째아들 역을 비롯, 1959년 김기영 감독의 <십대의 반항> 1962년 조미령과 <모자초> 등에 출연해 당대 최고 아역 스타가 됐다.

1960년 <꽃과 별의 이중주>(완성되지는 못한 작품)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피아니스트 역에 안성기를 캐스팅했다가 개런티가 너무 비싸 다른 소년으로 교체했다는 기사도 있는 것을 보니 가히 스타라는 칭호가 어울렸던 것 같다.

화려하게 아역 스타 시절을 보냈던 안성기는 고교 및 대학시절을 평범하게 보내고 군 제대 후인 1977년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성인 연기자로 신고한 작품은 <병사와 아가씨들>이었는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역 스타는 성인 연기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영화계 징크스를 깨지 못하나 싶었다. 하지만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어눌한 자장면 배달부 연기로 영화계에 재진입하는 데 성공, 오늘날까지 연기인생을 이어오고 있다.




안성기보다 더욱 화려하게 아역 스타 시절을 보낸 것은 전영선이었다.

전영선은 할리우드의 대표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이나 나탈리 우드에 비견될 만큼, 어른 뺨치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았다. 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역을 찬탄 속에 해낸 이후 전영선은 한국영화의 마스코트가 됐다.

전영선은 작곡가 전오승의 5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고모인 나애심의 친구였던 여감독(당시는 조감독) 홍은원의 적극 권유로 만 4세 때 이강천 감독의 <종말없는 비극>에 출연했다. 이후 <가는 봄 오는 봄> <장미의 곡> <이 생명 다하도록> 등을 거쳐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작품당 개런티가 60만환을 넘는 배우가 됐다.

촬영시 NG가 없기로 유명했던 전영선은 1976년 김수용 감독의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성인 연기를 했다. 하지만 전영선은 이후 다시 영화 속에서 볼 수 없었고 영원히 깜찍한 옥희로 잔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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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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