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화려했던 조연스타 최남현
주연보다 화려했던 조연스타 최남현
  • 김두호
  • 승인 200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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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그 한마디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영화배우 최남현. 60대 이후의 영화팬들 기억 속에 선명하게 살아 있는 명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한해 2백여 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절에 김승호 박암 김진규 김희갑 이예춘 허장강 등 1960년대 전후 은막의 명연기자들과 한국영화의 꽃을 피웠던 인기스타였다.

1949년 이규환 감독의 <돌아온 어머니>로 데뷔했으나 1944년 극예술협회 소속 신극무대에서부터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출생지이며 고향은 평북 정주였고, 그가 태어난 날은 3.1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며칠 전인 1919년 2월 26일이다. 1990년 1월 7일 71세에 경기도 신장에서 무명의 소시민으로 홀로 고독하게 살다가 떠난 그는 1980년 김수용 감독의 <물보라>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필자가 인터뷰를 한 것도 그가 마지막 작품에 출연하고 그해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받은 뒤였다. 그때만 해도 최남현은 영화팬이나 기자들의 시선 밖에 있는 흘러간 연기자였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특별상은 심사위원들이 과거의 공로를 생각해 원로배우에게 격려 차원에서 준 상으로 보였다. 특별상에는 상금(1백만원)도 따랐다. 30여년 전이니 적잖은 액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상금 봉투를 들고 후배들이 모여 있는 영화배우협회(당시 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해 “나보다 더 힘든 회원들에게 써달라”며 상금을 내놓았다. 그의 처지를 알고 있는 남궁원 윤일봉 윤양하 등 후배들이 그의 요구와 성의를 극구 반려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인터뷰를 통해 그때 최남현의 솔직한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단역을 해도 당당하게 본상을 받아야지 특별상은 고맙지만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상이다. 내가 어려워도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 체면 좀 세워달라고 찾아온 것이지.”


그는 특유의 근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필자의 인터뷰는 그렇게 사전 약속없이 즉석에서 시작됐다.


가장 출연 작품이 많은 배우 중 한사람으로 알고 있다. 출연편수를 기억하는가?

대충 7백여 편이 된다. 30대 시절 한창 바쁘게 활동할 때는 같은 시기 제작되는 영화 28편에 겹치기로 출연한 기록이 있다. 어쩌다 집에서 잠을 자려고 하면 막무가내로 제작팀들이 몰려와 서로 옥신각신하며 잡아가 어떤 때는 졸면서 일주일간 철야 촬영을 한 일도 있다. 허장강 씨와 내가 겹치기 출연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평생 카메라 앞에서 보낸 배우의 일생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듣고 싶다. 연기생활로 보낸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

인생이 일장춘몽 아닌가. 지나고 나면 길지도 않는 낮잠 속의 꿈이다. 산삼 한뿌리를 찾아 험산준령을 밤낮없이 헤매는 심마니 같은 게 인생이지. 평생 헤매다가 한 뿌리도 제대로 못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찾아봐야 별 것도 아니야. 늙어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뜬구름이고 물거품 같아. 지금 돌아보면 그게 인생이었어. 젊을 때 뭐가 뭔지 모르고 살다가 청춘이 가고 이제 일을 떠나니 속세에서 버림받은 낙오자 같다는 생각도 들어. 늙으면 서운하고 외롭고 서러운 것밖에 안보이지.




아마도 그것이 노배우 최남현이 기자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고 최후의 인터뷰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그후 10여 년을 더 생존했지만 기자들이나 영화팬들에게 잊혀진 인물이었고 근황도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경기도 팔당에 인접한 신장에서 살며 한동안은 양로원에서 고독한 요양생활을 했다. 슬하에 출가한 1남 2녀가 있다고 했으나 그렇게 넉넉한 환경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노후에는 병상에 있는 아내를 뒷바라지 하는 고달픔이 따랐고 홀로 살며 자신도 고혈압 등 지병으로 고생했다. 김승호 주선태 등과 어울리면 두주불사했던 최남현은 <혈맥> <싸리골의 신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마지막 황후 윤비> <완자 미륵> <대석굴암> 등 역사물에서 현대물까지 비록 조연 배역이 많았지만 주로 극의 모티브가 되거나 중심축이 되는 인물로 등장했다.

175cm의 훤칠한 키와 점잖게 생긴 외모, 언제나 중후한 배우의 이미지로 노(老) 영화팬들의 가슴에 멋쟁이 남자의 추억을 남겨주던 최남현은 차가운 바람이 불던 1990년 정초에 외롭게 하늘로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도 한참 후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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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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