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록 그룹 딥 퍼플 제 3기
전설적인 록 그룹 딥 퍼플 제 3기
  • 이근형
  • 승인 200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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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는 희대의 사건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딥 퍼플 (Deep Purple) 의 2기를 떠올리면, 말 그대로 록음악 마니아들로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왜냐면 그들은 이 세상의 하드 록과 헤비메탈에 있어서, 그 음악 장르의 기준점과 하나의 클래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록음악 역사를 다룬 서적 중, 아티스트들을 ‘위인’ 이라고 칭하는 그런 책이 있다면야, 딥 퍼플의 2기를 맞이했던 멤버들 모두 다 위인으로 불러야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딥 퍼플 2기 하면 제일 먼저 딥 퍼플 통산 6집이자 딥 퍼플 2기의 3집 Machine Head를 떠올릴 것이고, 그리고 대표적인 곡으로 Highway Star를 생각할 것이다. 더불어서 1972년 성황리에 마친 그 유명한 딥 퍼플 일본 공연도 말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딥 퍼플의 성공적인 일본 공연이 화를 초래했다. 왜냐면 딥 퍼플은 일본 공연의 성공과 그에 뒤따르는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 그리고 전 세계가 동요하는 가운데 점점 서로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딥 퍼플이라는 이름 같은 건 버리고는, 차기작을 준비하면서도 언쟁이 심하게 붙었기 때문이다. 언쟁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하기까지 느껴지는 ‘어이없는 아웅다웅’ 까지 곁들여졌다. 이들의 내막을 알고 나면, 음악적 견해뿐 아니라 명예와 이익 앞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딥 퍼플 2기 해체


하나 사례를 들겠다. 딥 퍼플 2기 멤버들은 차기작을 녹음하기 위해, 기자들의 지나친 관심을 피하고 조용한 녹음 환경을 위해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딥 퍼플의 녹음 장소를 알아낸 기자들이 그들의 녹음실을 들이닥쳤는데, 이상하게도 멤버들끼리 한 자리에서 세션을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 딥 퍼플 2기 멤버들은 각자 자기와 음악적 견해가 맞는 사람들과 방을 썼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 상황에서 딥 퍼플 2기의 드러머 이언 페이스는 팀의 리더 리치 블랙모어와 함께 “딥 퍼플 2기가 와해되면 서로 프로젝트를 꾸미자” 등의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벌써부터 해체 이후를 마련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언론은 이같은 사실을 수첩에 받아 적고는, 다음날 “딥 퍼플 2기, 곧 해체될 듯” 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다.


근데 이 추측성 기사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딥 퍼플 2기는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차분하게 녹음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협소한 공간에서 서로의 불신만 쌓았던 것이다. 이들은 녹음 작업을 마친 후 귀국하는 자리에서 곧바로 해체하기로 결정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멤버들끼리 곡 하나 만드는 데 쓸데없는 다툼과 균열이 생겼고, 보컬 이언 길런은 리치 블랙모어와의 조율이 맞지 않아 나중에는 때려치우자는 식으로 화까지 냈다. 이렇게 불협화음을 보이던 딥 퍼플은 7집 Who Do We Think We Are라는 앨범을 냈고, 결국 이 작품은 딥 퍼플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물론 이 앨범의 수록곡 Woman From Tokyo 하나만이 수익을 건져올렸지만 말이다.



딥 퍼플 2기의 와해 이유는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얻은 딥 퍼플 멤버들이 결국엔 서로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하나로 마음을 모으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딥 퍼플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두 사람인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가 각자 딥 퍼플을 이끌려고 하다보니 엇박자가 생긴 점이다. 세 번째가 바로 가장 유력한 딥 퍼플 2기의 와해 이유인데, 리치 블랙모어는 아일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그룹 신 리지 (Thin Lizzy) 의 베이시스트 필 리놋과 함께 블루스 록 프로젝트 베이비 페이스 (Baby Face) 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리치 블랙모어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흑인 음악에서 비롯된 블루스 록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딥 퍼플 역시 블루지한 맛이 가득한 그룹으로 만들려고 했고, 오로지 하드 록만 추구했던 이언 길런 및 로저 글로버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결국 뿔뿔이 헤어졌다.


이언 길런은 딥 퍼플이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이탈리아에서 만든 작품 Who Do We Think We Are와 일본 공연 실황이 담긴 라이브 스튜디오 앨범 Made In Japan이 정식 발매된 이후 곧바로 팀을 나와버렸고, 베이시스트인 로저 글로버는 조금 더 딥 퍼플에 머물다가 리치 블랙모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구조조정’ 임을 직감하고 스스로 딥 퍼플을 탈퇴했다. 사실 더 정확히 다가가자면 딥 퍼플 2기는 앨범 두 장을 동시에 발매한 이후 ‘진짜 마지막으로’ 일본 공연을 한번 더 갔었다. 평단은 바로 두 번째 일본 공연에서 서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합의를 본 것으로 평가한다. 딥 퍼플 2기 해체 직후, 남은 멤버는 키보디스트 존 로드 (Jon Lord), 리치 블랙모어, 이언 페이스였으며, 곧바로 그들은 새 멤버 공개 오디션에 나섰다.


딥 퍼플 3기의 탄생


딥 퍼플은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각 보컬과 베이시스트를 공개 모집했는데, 여기에 각각 데이비드 커버데일 (David Coverdale) 과 글렌 휴즈 (Glenn Hughes) 가 선발되었다. 딥 퍼플이라는 수퍼 록그룹이 공개 오디션을 연 것 자체가 록계의 큰 뉴스였으며, 많은 지원자들이 딥 퍼플의 소속사 퍼플 레코즈에 찾아와서 장기를 선보이거나, 데모 테이프를 보내왔다. 존 로드, 로저 글로버,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는 오디션의 모든 과정을 주관했으며, 특히나 프로듀싱 면에서 전문가인 로저 글로버의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였다. 각각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데모 테이프를 통해, 그리고 글렌 휴즈는 현장에서 스카우트 되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1951년 9월 22일 영국의 노스요크셔에서 태어났으며, 미들즈브러 아트 스쿨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다가 중퇴를 하고 딥 퍼플의 공개 오디션에 지원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레스토랑의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여지는 이 예술 전공 대학생은 늘씬한 키에 허스키한 보컬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딥 퍼플이 오디션을 하자마자 데모 테이프를 그 쪽으로 보냈고, 그루브감 넘치는 음색이 마음에 들었던 리치 블랙모어는 그를 3기 보컬로 임명했다. 하지만 리치 블랙모어가 보기에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외모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지, 그에게 성형 수술을 권고했다는 소문이 있다. 물론 정확한 물증이 없기에 정설이라고 알려지진 않았지만,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데뷔하기 전과, 딥 퍼플 정식 포토 세션을 갖은 후의 모습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일리는 있다고 알려졌다.


글렌 휴즈는 1951년 8월 21일 영국의 스태포드셔에서 태어났다. 그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는 다르게 예전부터 음악 생활을 했었고, 영국에서 꽤나 유명했던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였다. 글렌 휴즈는 블루스와 헤비메탈에 강점을 보였는데, 그래서 영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록그룹 트라페즈 (Trapeze) 에서 활약한 바 있다. 그는 트라페즈에서 베이스를 맡는 동시에, 보컬 역할을 했는데, 그냥 배킹 보컬이 아니라 거의 리드 보컬에 가까운 면모를 보였다. 이렇게 보컬 면에서도 뛰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부적인 가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블루스와 펑키 재즈, 그리고 하드 록까지 커버하는 다양성을 지닌 보컬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평단에서는 재주꾼 글렌 휴즈의 딥 퍼플 가입이 팀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해서 딥 퍼플 3기는 1973년 가을 즈음에 결성되었고, 포지션은 각각 리드 보컬에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베이스도 역시 글렌 휴즈, 리드 기타 리치 블랙모어, 키보드 존 로드, 그리고 드럼에 이언 페이스가 각각 배정되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앞서 언급했듯이 블루스 록 프로젝트 베이비 페이스를 통해 블루스 록과 펑키 재즈의 매력에 푹 빠졌고,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는 이에 부응하는 적합한 자원들이었다. 그들은 블루스 록그룹이라는 새로운 밴드의 모토에 걸맞게 의상 역시 흑인 음악 아티스트처럼 깔끔하고 정갈한 어두운 색 계열 셔츠에 면바지 혹은 진한 검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섰다. 가끔 헤비한 록 세션을 선보일 때에는, 여타 록그룹과 마찬가지로 터프한 의상을 즐겨 입기도 했다. 이런 의상의 변화에 발맞춰, 역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는 블루스 록과 헤비메탈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딥 퍼플 3기의 음악적 스타일


딥 퍼플 3기는 주지하다시피 블루스 록과 펑키 재즈, 하드 록과 헤비메탈, 그리고 포크 록까지 커버하며 다양한 음악 장르를 구사했다. 딥 퍼플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꼭 하드 록과 헤비메탈에서만 한 획을 그은 밴드는 아니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음악적 다양성과 매 기수마다 달라지는 멤버들의 성향에 의해 그들은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된 모습이 아니라, 매번 색다른 음악을 들려줬던 밴드였다. 역시 결정적으로 리치 블랙모어의 프로젝트 베이비 페이스의 역할이 딥 퍼플 3기를 흑인 음악에 기원을 둔 록음악을 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딥 퍼플 3기는 1974년 딥 퍼플 통산 8집이자 딥 퍼플 3기 1집인 Burn을 내놨고, 역시 같은 해에 딥 퍼플 통산 9집 및 딥 퍼플 3기 2집인 Stormbringer를 발매했다. 그리고나서 딥 퍼플 3기의 전 유럽 투어 실황을 다룬 라이브 앨범 Made In Europe을 끝으로 더 이상의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지 못했다. 일단 3기의 1집인 Burn은 하드 록과 블루스 록의 환상적인 조합과 딥 퍼플 3기 멤버들의 짜임새 있는 팀워크로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었고, 동명 타이틀 곡 Burn을 통해 다시금 음악적, 상업적 성과를 일궈냈다. Burn 앨범에서는 그 곡뿐만 아니라 블루지한 맛이 넘치는 Might Just Take Your Life, 그루브의 절정을 들려주는 You Fool No One, 그리고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뛰어난 가창력이 돋보이는 블루스 록의 클래식 Mistreated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딥 퍼플 3기의 가장 탁월한 명작으로 손꼽힌다.


역시 1974년 같은 해에 발매한 그들의 2집 Stormbringer 역시 평단과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며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일약 세계적인 록 스타로 키워냈다. 이 앨범에는 동명 타이틀 곡 Stormbringer 외에는 거의 다 헤비한 기타 리프를 들을 수 없는 펑키 재즈, 혹은 블루스 록 스타일의 트랙으로 일관되었다. 그래서 딥 퍼플 특유의 록적인 맛이 사라졌다는 평을 들었지만, Holy Man, The Gypsy 등의 소프트 트랙이 인기를 얻으며 이런 아쉬움을 잠식시켰다. 특히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Soldier Of Fortune은 딥 퍼플의 역대 슬로우 록 트랙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특히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여담이지만, 이 노래에 등장하는 Soldier Of Fortune은 영단어로 ‘청탁을 받거나 임무를 띠고 있는 용병’ 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인’ 으로 해석되어 현충일에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들려지던 해프닝이 많이 있었다.


딥 퍼플 3기의 음악적 움직임과 그 포지션은 이렇다. 대개의 곡들은 딥 퍼플의 전형적인 시작과 동일하게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그러면 그 다음 타자는 리드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치고 들어오는데, 배킹 보컬이 필요한 시점인 하모니 파트 부분과 첨가적인 보컬이 필요한 후렴 부분에서는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글렌 휴즈가 그 자리를 맡고 있다. 드러머 이언 페이스는 빠른 스피드의 트랙이나 헤비메탈 넘버에서는 예전부터 계속 들려주던 파워 드러밍을 선보이지만, 대개의 곡들은 한 박자 쉬고 들어가는 전형적인 흑인 음악 스타일의 드럼을 들려준다. 키보디스트 존 로드의 역할은 연주하는 곡이 좀 더 맛깔나게, 그리고 달콤하게 흐르기 위해 부드러운 키보드 연주로써 크나큰 영향력을 미친다.



딥 퍼플 3기의 최종 결과, 그리고 그 후


딥 퍼플 3기의 최종 결과와 성과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다. 딥 퍼플 3기는 좀 더 새로운 음악에 몸을 담고자 했던 리치 블랙모어의 계획에 의해, 하드 록과 헤비메탈에 강점을 보이는 멤버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온통 흑인 음악의 마인드로 무장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앉혔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비록 딥 퍼플 3기가 자신의 가수 커리어에서 첫 번째 단계였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데모 테이프 하나만으로도 딥 퍼플 멤버들을 감동시켰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무명 생활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보컬 재목이었다. 그리고 이미 영국에서 소문난 블루스 록그룹 트라페즈에서 재직한 바 있는 글렌 휴즈의 안정적인 지원이 딥 퍼플 3기를 흥행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딥 퍼플 3기는 정규 스튜디오 앨범으로 Burn과 Stormbringer를 내놨고, 모두 블루스 록과 하드 록의 명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고평가 및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라이브 실황 앨범으로는 앞서 언급한 대표적으로 Made In Europe, 그리고 Live In Paris 1975 등이 있다. 이들의 총 활동 기간은 대략 1973년부터 1975년, 총 햇수로 3년이다. 딥 퍼플 3기는 이 기간 동안 꽤나 많은 앨범 작업, 그리고 앞서 언급한 라이브 실황 앨범들의 자료인 성공적인 세계 투어가 있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딥 퍼플 역대 기수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기로 손꼽힌다. 그리고 그것은 딥 퍼플의 ‘블루스 록에 좀 더 전문적으로 변모하는 긍정적 효과’, 그리고 또다시 팀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는 양면성을 지녔다.


주지하다시피 딥 퍼플 3기 역시 리치 블랙모어와 나머지 멤버들의 트러블에서부터 해체가 시작되었다. 딥 퍼플 3기는 두 장의 정규 디스코그래피와 그에 뒤따르는 수익성 때문에 역시 무명에 불과하던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모두 빅 스타가 되었고, 그러면서 역시나 딥 퍼플 3기 내에서도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는 분쟁이 일어났다. 게다가 리치 블랙모어가 두 신입 멤버의 성장에 뒤따른 불안감과 음악적 견해의 차이에 의해 불같이 화를 내며 이런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 리치 블랙모어와 함께 뜻을 같이 하던 존 로드와 이언 페이스가 이번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자진 탈퇴를 결심하고, 이것은 1968년 리치 블랙모어에 의해 결성된 딥 퍼플이 결국 리치 블랙모어 본인이 팀을 나가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러면서 딥 퍼플 3기는 자연스럽게 리치 블랙모어만 제외된 나머지 멤버들로 바뀌는 동시에 4기로 기수가 넘어갔다. 이때 딥 퍼플 4기는 미국 출신의 재즈 퓨전 명 기타리스트 고(故) 타미 볼린 (Tommy Bolin, 1976년 사망) 을 영입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타미 볼린은 재즈 퓨전이라는, 재즈 록과 펑키 재즈로 이뤄진 장르의 대가였는데, 이것은 리치 블랙모어에 의해 팀이 변모된 딥 퍼플 3기의 음악적 스타일이 타미 볼린과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합동 작업이었다. 타미 볼린의, 흑인 음악에 기원을 둔 부드러운 기타 연주는 딥 퍼플 4기가 원하던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들은 1975년 블루스 록 정통 앨범 Come Taste The Band를 내놨고, 이 앨범은 후세에 기록되길 ‘딥 퍼플 역사상 가장 이질적인 작품’ 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딥 퍼플의 록적인 맛이 완전히 사라졌고, 리치 블랙모어라는 훌륭한 리더가 없었기에 누군가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없어 굉장히 저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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