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나, 집에서는 뻔뻔해요”
[그때 그 인터뷰] “나, 집에서는 뻔뻔해요”
  • 김두호
  • 승인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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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 연기 끝낸 김혜자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종반으로 접어든 TV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는 젊을 때부터 연기 이미지가 모범적이고 정숙한 여인상이었다. <엄뿔>에서도 한 집안 3대의 대가족 뒷바라지에 지친 김한자(김혜자)가 집을 나가 혼자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흐트러진 행동으로 옮겨가지는 않고 있다.

김혜자가 카메라 앞에서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스신을 연기한 일이 있다. 1981년 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만추>에서였다. 키스의 상대역은 연하의 후배 연기자 정동환. 연기생활 18년 만에 스크린 데뷔작인 <만추>에서 그녀의 열연은 이듬해 마닐라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화제를 남겼다. 그 무렵 영화는 심의창구가 엄격해 여배우가 앞가슴을 드러내지도 못했지만 키스 장면도 찍는 여배우들이 따로 있었다. 이미지에 흠이 된다고 생각하는 여배우들은 진한 키스 연기를 거부했다.

김혜자도 크랭크 인이 되면서 “키스 신은 찍지 않겠다”고 미리 감독에게 통보해 놓았다. 그럼에도 감독은 젊은 남녀의 억눌린 본능 세계를 분출하는 장면에서 최소한의 애정묘사인 키스 연기를 외면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난리를 치는 김혜자를 설득해 그녀의 입술을 정동환에게 안겨 준 뒤 김수용 감독은 기자에게 은근히 첫 키스 신을 치른 김혜자에게 소감을 물어보길 권했다. 그때 느낌은 감독 자신도 김혜자의 키스 연기에 대한 그녀의 소감이 자못 궁금했던 것으로 보였다.




당신의 리얼했던 키스 연기에 대해 스태프들의 찬사가 화려하다. 정말 제대로 보여준 키스 연기인가?

관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연기자의 가식이 보이는 연기이다. 키스 연기를 했다면 제대로 보여주어야지 거짓 같은 가식행위를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키스 연기를 처음에는 왜 거부했는가?

화면으로 보여주는 연기자의 모든 행위는 아름다워야 한다. 여배우의 연기 중에 가장 힘든 연기가 애정 묘사인데 잘못하면 지저분한 모습으로 그려질 것 같아 두려웠다. 또 드라마에서는 키스 장면이 없어서 경험 없는 연기를 한다는 것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지금과 달리 그때는 TV드라마에 키스 장면이 없었다)


키스 연기를 하는 순간의 감정을 알고 싶다. 아무리 연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성과의 애정행위를 실제처럼 보여준다면 관객도 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관객의 느낌이 그렇게 전달된다면 성공한 연기일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이성(異性)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전문 연기자들에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간혹 작품을 하다가 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사례가 드문 소설같은 얘기들이다.


드라마와 무관한 당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 평소 키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애정관계라면 키스는 아름다운 것 아닌가? 좋게 본다면 소중하고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방법이다.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서양인들의 키스를 보고 흉하게 느낀 적이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남이 보는 곳에서의 애정 표현은 부드럽고 가벼운 모습이 좋은 것 같다.



이만희 감독에 이어 김수용 감독이 두 번째 연출한 <만추>는 쫓기는 두 남녀가 산골에 멈춘 열차에서 내려 억제했던 욕정을 불사르는 격렬한 러브신이 들어 있다. 극중 김혜자는 특별휴가를 끝내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모범수. 고독과 부자유의 일상이 몸에 밴 우수의 여인으로 산속에서 일어난 잠깐의 꿈 같은 로맨스에 정신을 잃는다. 열차 안에서 만난 정동환은 범죄를 저지르고 숨어 다니는 도망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영화에서 키스 장면을 연기할 무렵의 김혜자에게는 섬유업을 하는 사업가 부군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독립해 중년이 된 남매 자녀도 있었다. 아무리 연기라고는 하지만 가정을 둔 김혜자에게 뜨거운 키스 장면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집에서도 얌전한 주부의 모습으로 상상된다. 애정 표현도 억제하거나 쉽게 표현 못하는 사람 같다. 제대로 본 건가?

하하하. 나 부끄럼 많고 수줍음 많은 여자로 보이지만 집안에서는 굉장히 뻔뻔스러운 여자라구요. 그렇게 정열도 없고 재미없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럼 애정 표현이나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는 매우 용감한 면이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산다. 남편에게도 여보 사랑해 라는 말이 안 나온다. 죽을 때나 그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부군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간섭은 없고 관심은 버리지 않고 사는 남편이 고마울 뿐이다. 하고 싶고, 살고 싶은 대로 아내를 믿고 따라와 준다. 그래서 언제나 가정이나 가족에게 누를 끼칠 행동을 할 생각을 않고 살았다. 늘 사랑에 대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말로 표현을 못했다.






김혜자에 대한 인터뷰를 끝내고 상대역인 정동환에게 물었다. 그는 “김혜자 선배에 비하면 나야 뭘로 보나 후배일 뿐”이라며 연기의 중심이나 리드도 선배가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안방극장의 만년 히로인 김혜자의 나이 서른 아홉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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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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