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의 ‘라스트 히어로’ 유명우
한국 복싱의 ‘라스트 히어로’ 유명우
  • 김우성
  • 승인 200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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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카와의 리턴매치는 죽는다는 각오로 했죠”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90년대 중반까지 복싱의 인기는 지금의 이종격투기 이상이었다. 국내에서 경기가 열리면 체육관(또는 특설링)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경기마다 수억의 파이트머니가 오갔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체급 불문하고 조지 포먼, 타이슨, 홀리필드, 박종팔, 문성길, 장정구 등의 이름이 수시로 오르내리고, 동네 문구점에서도 복싱글러브를 쉽게 구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WBA WBC IBF로 삼분된 세계복싱계에서 한국은 항상 4~5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한 경량급의 강자로 군림했다. 그 중심에는 한국복싱사에 있어 가장 화려한 전적을 자랑했던 유명우가 있었다.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이던 그는 무려 열입곱 차례의 타이틀 방어기록과, 빼앗겼던 타이틀을 고스란히 되찾아온 극적인 승부로 세인들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수원에서 요식업체를 운영하며 사업가로 성공한 그를 만나 링 위에서의 추억을 더듬어보았다.



복싱을 시작하던 당시의 옛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TV에서 하던 복싱중계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체육관은 어떻게 알고 찾아갔나요?

그 당시는 거리 곳곳에 관원모집 포스터를 많이 붙여놨어요. 그때가 신림동에 살았을 땐데 한강중학교를 다니면서 통학하는 길목에 포스터를 본 거죠. 마침 또 체육관이 등하교 길목에 있었고요.(웃음)


(유명우가 복싱을 시작한) 대원체육관은 김철호 선수를 배출한 곳이었죠?

그렇습니다. 저하고 같이 운동했던 선배죠. 제가 체육관에 들어갈 당시에는 세계챔피언이 아니었고 저랑 같이 운동하면서 김선배가 먼저 세계챔피언이 된 겁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다가오더니 옛 문화공보부 과장을 역임하며 복싱행정에 많이 관여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유 선수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한참을 얘기하던 그가 떠나자 후배 한명이 또 인사를 하러 찾아온다. 그때마다 벌떡 일어나 손님들을 따뜻하게 배웅해주는 모습만 봐서는 인심 좋고 인상 좋은 사장님이다. 아니, 소위 주먹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던 그도 이제는 링과의 거리가 아득해 보였다.



원래 복싱이 헝그리스포츠의 상징이잖아요. 하지만 유 선수의 경우 부드러운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을 힘을 다했다’는 느낌이 덜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고 여유가 느껴졌다는 거죠.

아무래도 인상이 험악하지 않고 피부까지 하얗다보니 상대선수들 보기에 약해보였는지 굉장히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복싱의 인기가 대단해서 경기가 많았는데요. 어느 체육관이든 시합 얘기만 나오면 서로들 저와 하겠다고 했죠. 그 선수들이 저를 만만하게 보고 방심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반사이익이 많았습니다.(웃음)


이후에는 당연히 유 선수를 얕잡아 보는 시선이 없어졌겠죠?

그렇죠.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라이벌전 하면서부터 많이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85년도에 손오공 선수와의 라이벌전에서 이기고 팬도 많아졌고요.


당시 손오공 선수와의 경기가 열리기 전 모두가 손 선수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유 선수는 그 경기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매치가 이뤄졌다고 했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프로복싱선수들은 비즈니스를 해서 챔피언에게 도전하면 되는 건데, 미국챔피언 매니저와 우리측 매니저와의 계약이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을 때 한국커미션에서 유명우는 좀 약하니까 손오공이라는 절대강자와 도전자 결정전을 하라고 지시한 거죠. 저는 손오공 선수와 경기를 안 하고 바로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면 그만이었는데 중간단계를 거치라고 한 거예요. 외모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약하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 같은데 그 경기가 저에게는 플러스알파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 때 팬들도 처음 많이 생긴 거고요?

그렇죠. 결과적으로는 많이 잘됐습니다.


일반인들은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힘든 방어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경기장 분위기라든지 상대선수의 특징, 경기 전후의 기분 등을 다 기억하시나요?

지금도 다 생각납니다. 방어전이 많다보니 간혹 상대선수 이름은 가물가물해도 경기에 대해서는 다 기억하고 있지요.


지금까지의 복싱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뭔가요?

85년도에 미국 선수를 이기고 세계챔피언 첫 등극할 때입니다. 후에 이오카와의 리턴매치도 그에 버금가는 기억이고요.


체중감량 시 온가족이 다 같이 밥을 안 먹으려고 했다죠?

그게 참 곤욕이었어요. 저는 시합이 잡히면 호텔에 캠프 차리고 그런 게 없었어요. 집에서 훈련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가족들과 생활을 하게 됐죠. 감량을 하면 한 10킬로그램 이상을 하니까 음식을 제대로 못 먹잖아요. 운동은 힘들게 하고 식사는 못하니까 가족들이 많이 미안해했죠. 덩달아 밥을 안 먹으려고 해서 제가 그러지 말라고, 어차피 시합을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나 때문에 고생들 하지 말고 드시라고, 나는 시합 끝나면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36연승과 17차 방어가 깨진 이오카와의 경기를 얘기 해보죠. (전쟁무용담을 얘기해 주는 노병의 모습이 이럴까.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을 시작했다.)

아 그때 진짜 많이 슬펐죠. 슬펐고 괴로웠습니다. 프로 와서 한 번도 져보지 않다가 처음 진 거라 충격이 더 크더라고요. 저는 항상 방어전을 해오면서 ‘내가 타이틀 빼앗기는 순간이 은퇴다’라고 생각해 왔었거든요. 솔직히 목표는 20차 방어에서 타이틀 자진 반납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원정 가서 타이틀을 잃었던 거죠. 권투 잊으려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복싱은 잊혀 지지 않더라고요. 6개월 정도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이오카와의 리턴매치가 성사됐습니다. 그것도 저와 시합하기 위해서는 그가 다른 선수와의 두 차례 방어전을 모두 성공해야만 가능한 상황이었죠. 중간에 이오카가 타이틀을 빼앗겨버리면 만날 수 없는 상황인데 그가 타이틀을 지켜준 덕분에 극적으로 리턴매치가 성사된 거죠. 타이틀을 다시 빼앗아오고 한 번 더 방어한 다음 자진 반납했습니다.(웃음)


일본 선수였던 데다가 그 경기 이전까지 다섯 번의 경기에서 KO만 세 번일 정도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던 상황에서의 패배라 충격이 컸습니다. 질 수밖에 없던 경기였나요.

일본 선수를 얕잡아본 건 아니었는데 17차례에 걸친 오랜 방어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태해진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도 먹어가고 노련미가 생기니까 아무래도 운동을 많이 하기보다는 요령으로 잡았던 측면이 있었죠. 체력이 뒷받침 안 되면 잡을 수 없는 까다로운 스타일의 선수를 만나 패배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당시 판정에 대한 문제가 있었는데?

링 위에서는 이오카가 이겼다고 판정이 났는데, 링에서 내려와서 우리 측에서 강력히 항의하자 본부석에서 다시 제가 방어했다고 하고. 다시 호텔에 가서는 판정 번복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하루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죠.


귀국할 때의 비행기에서의 심정은 어땠나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나 돌아와서나 ‘일본 선수에게 타이틀 팔아먹었다’는 소리 들을 때는 많이 괴로웠어요. 돈도 돈이지만 당시에는 명예를 많이 좇고 있었는데 이상한 말들이 들리니까 견디기 힘들었죠. 그래서 방황을 했던 거고.


유명우의 화려했던 시절은 이제 막을 내렸다는 등의 기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때 그 선수를 상대로 적진으로 들어가서 리턴매치를 한다는, 전무후무한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본인 의지였나요?

판정에 문제가 있었으니 WBA 쪽에서 재경기를 하라고 명령이 떨어진 겁니다.


다시 하라고 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끝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스스로 패인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한 다음 가장 근본적인 건 체력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다시 경기를 갖겠다고 각오한 순간부터 심한 표현으로 ‘죽여버린다’는 생각으로 지옥훈련을 했습니다. 사람을 진짜로 죽인다는 게 아니라 이긴다는 표현을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면서 기존의 방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훈련을 5개월 정도 했죠.


리턴매치 당시 체육관에 양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각각 음악도 틀어주고 관중도 엄청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경기였는데요.

경기가 열리기 전 양국 기자들 모여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이오카에게 할 말 없냐”는 질문을 받고는 “내가 맡겨뒀던 타이틀을 잃지 않고 보관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웃음) 경기가 시작되자 키도 크고 원래 아웃복싱인 선수가 인파이터로 들어와 주는 거예요. 나로서는 체력훈련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었는데 들어와 주기까지 하니 경기하기가 편했어요. 초반에는 이오카가 도망 다니면서 포인트 위주로 풀어가니까 제가 포인트를 잃었는데 그도 점점 자신이 붙었는지 들어와 주더라고요. 그때 이오카도 눈이 찢어졌고, 저도 선수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눈이 찢어졌습니다. 경기 후 다섯 바늘 꿰맬 정도로 많이 찢어졌는데 피는 많이 안 났어요. 부상이 크면 시합이 중지될 수 있는데 하늘이 도왔던 거죠.



복싱의 쇠퇴를 시작부터 절실히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종격투기의 등장부터 여러 가지 요인이 지적되는데요. (실제로 그가 은퇴한 시점부터 한국 복싱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비롯한 권투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떨어지는 사고와 열정 없이 구시대적 관행으로만 가다보니 팬들에게 멀어지고, 멀어진다는 얘기는 복싱이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안 본다는 얘기거든요. 권투인들이 선수 만드는 데도 매진하고 급속히 변하는 시대에 맞춰 마케팅도 변하고 경기력도 키우면 충분히 다른 종목의 인기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집안싸움 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에서는 복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전 장사를 하고 있지만 영원한 권투인입니다.


잘잘못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는 말씀이죠?

물론입니다. 난 권투로서 이룰 수 있는 것 다 이뤘고 해볼 수 있는 것 다 해봤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도 열심히 운동만 하면 불편함 없이 대우 받을 수 있는 풍토를 물려줬어야 하는데 지금 복싱이 바닥이다 보니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다시 돌아가도 복싱을 하실 건가요?

그럼요. 전 죽을 때까지 권투인입니다. (후회한 적은 없냐고 묻자) 후회해 본 적은 없고 타이틀 빼앗겨서 괴로웠던 적은 있습니다. 하하. 권투 했던 게 자랑스럽고 보람됩니다. 다시 태어나도 권투선수로 태어날 것 같습니다.


링 위에 오를 때의 느낌이랄까요. 올라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느낌. 그런 게 유 선수에게는 무엇인가요?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항상 긴장되고 불안초조하고. 신인시절 4라운드 뛸 때부터 17차 방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8차에서 타이틀 뺏기고 다시 리턴매치해서 찾아올 할 때까지 매 시합이 똑같았죠. 꿈을 갖기 시작한 초등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권투와 인연을 끊지 않으니 링은 내 인생의 전부이자 고향입니다.


고향이라는 건 향수가 느껴진다는 말이죠? 관중들의 함성하며..

한 번씩 타이틀 방어하면서 느끼는 희열은 굉장했습니다. 사회생활 병행하면서 옛날 챔피언 시절의 화려했던 마음은 뒤로 접었습니다. 사회인으로 충실하고자. 소위 스타의식으로 사회생활 하려면 내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일단 사회생활 할 때만큼은 다 잊어버리자 하면서 적응하려고 했어요. 표시는 안 내지만 자부심은 마음속에 갖고 있으려고 했고요. 권투하면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배웠던 게 세상의 링에 올라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들도 권투에 소질이 있다면서요?

조금 하다가 만 거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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